소설리스트

귀신 들린 투자천재-40화 (40/300)

40화 늦어도 4월 안에는 결정이 날 거다

“얼마나 버틸 거 같습니까?”

(글쎄. 늦어도 4월 안에는 항복할 거다. 지창훈 그놈의 판단력이 조금 빠른 편이라면 이번 달 안에 항복할 수도 있고.)

똑똑!

“전무님, 광영 기업의 대표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이소희의 말에 나는 피식 웃었다.

제 말 하니 나타난 걸 보면, 양반은 아닌 듯했다.

‘4월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었군.’

속으로 그리 중얼거리고는 이소희에게 말했다.

“들어오라고 하세요.”

“예.”

얼마 지나지 않아 초췌한 인상의 중년 사내가 전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일주일 전에는 제가 찾아갔었는데, 이번에는 대표님이 저를 찾아주셨네요?”

“……죄송합니다.”

“뭐가 죄송하다는 겁니까.”

알면서도 일부로 모른 척했다.

그러자 지창훈이 침을 꿀꺽 삼켰다.

“전무님께서 한성 주택의 사장님이라고 들었습니다.”

“딱 보면 모릅니까. 제 이름이잖아요.”

“그런데 한성 주택에서 제 회사를 인수한다는 소문이 있던데…… 혹시 사실입니까?”

“제가 경고했었잖아요. 회사를 잃게 될 거라고.”

“그, 그럼 정말로?”

“경고를 무시했으니, 결과는 뻔한 거 아니겠습니까.”

“……!”

한성 주택의 대표가 나라는 사실에 대해, 아마 확신은 없었을 것이다. 그저 회사 이름만 듣고 의심하는 정도였을 터.

하지만 내가 솔직하게 말함으로써 그는 알게 되었다.

결코 믿고 싶지 않은 진실을 말이다.

“형동생 하는 분들이 주변에 많으시던데, 도움 많이 받아서 발버둥 쳐보세요. 제가 백억 있다고 했죠? 참고로 현금만 백억입니다. 돈 나올 구석, 아직 많이 남아있어요. 물론 백억을 다 쓰려면 한참 남았지만 말입니다.”

나는 여전히 충격에 빠진 얼굴을 하는 지창훈에게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전무님, 제발 살려주십시오!”

“누가 대표님을 죽이기라도 한답니까?”

“저에게서 회사를 뺏는 것은, 저를 죽이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발버둥 쳐보라니까요. 저에게 세상이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셔야 하지 않습니까.”

“그 말은 정말 실수였습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러니 부디 회사만은…….”

“그런데 혹시 그거 아십니까? 제가 명동의 큰손들과 꽤 친합니다. 저도 나름대로 큰손이라 불리는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그분들에게 부탁했죠. 광영 기업의 주식을 싸게 사들이고 싶은데 조금 도와달라고.”

실제로 찌라시를 이용한 덕분에 지분을 저렴하게 살 수 있었다.

14%의 지분을 사들이는데 들인 돈은 겨우 팔억.

전 재산은커녕 1년 이자도 안 되는 돈으로 잘 나가는 중견 기업의 지분 14%를 사들였다.

“그러면 그 찌라시들이…….”

“맞습니다. 저를 도와주시는 분들이 열심히 퍼뜨려준 거죠. 아 참, 은행에서도 자주 찾아오지 않았습니까? 조흔 은행장님이 저를 많이 예뻐하셔서 도움을 요청했거든요.”

지창훈은 이때쯤 되니 아연해서 입만 벌리고 있었다.

내 배후에 명동 큰손과 은행이 있다고 하니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심지어 내가 말한 백억이 진짜라면?

그야말로 절망 그 자체였다.

“정 힘드시면 이재성에게 도와달라고 해보시던가요.”

물론 이재성이라고 지창훈을 도와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장남인 이준성도 수준 낮게 이억짜리 비리를 저지르는 판국에 차남인 이재성이라고 얼마나 돈이 많겠는가.

외가에서 돈을 지원받아도 십억 정도가 한계이지 않을까 싶다.

‘그놈이라면 바로 버리지 않을까? 이혼 사유야 차고 넘칠 테니 말이야.’

내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할 때, 지창훈이 갑자기 무릎을 꿇었다.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앞으로 전무님의 개가 되겠습니다. 후계 경쟁에서도 무조건 전무님을 밀어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부디 제 회사를 살려주십시오.”

지창훈도 나와 같은 결론에 도달했나 보다.

이재성에게 도움을 요청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 바로 무릎을 꿇는 것을 보면.

하긴, 이재성의 평소 행실이 행실이다 보니, 믿지 않는 것도 이해 못 할 것이 아니었다.

“정말 제 사람이 되실 겁니까? 당신의 사위가 이재성인데도?”

“회사를 살리려면 그 방법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전무님의 배경을 알고 나니, 재성이를 위해서라도 전무님 밑으로 들어가야 할 거 같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전무님이 혜성 그룹을 잇게 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그게 왜요?”

“왕이 정해졌는데, 왕의 형제들이 왕국에 멀쩡히 남아 있을 수는 없지요. 재성이도 결국 혜성 그룹이라는 왕국에서 나와야 할 것이고, 그런 재성이를 먹여 살리기 위해서라도 제 회사를 지켜야 합니다.”

참 멀리도 본다.

나중에 내가 이재성을 숙청할 것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니.

‘근데, 틀린 예측은 아니야. 이재성과 이준성은 살생부 최상단에 적혀 있으니까.’

참고로 숙청은 내가 후계자로 완전히 자리 잡을 때 바로 진행할 예정이었다.

굳이 회장에 오를 때까지 그들을 내버려 둘 필요는 없으니 말이다.

“좋습니다. 이렇게 전향적으로 나오시는데, 구태여 피를 볼 필요는 없겠지요.”

“가,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대신, 잘하시리라 믿습니다.”

“예?”

“목동 땅을 건들지 말라는 이야기입니다.”

“아, 그렇게 하겠습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땅은 혜성 개발에서 사드리겠습니다.”

“혹시 매입가는 어느 정도로…….”

“손해 보지는 않게 넉넉히 챙겨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혜성 개발에 대표님과 친한 임원들이 많은 거로 알고 있는데, 그 사람들한테도 말을 잘해놓으세요. 그들에게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는 대표님도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물론입니다. 혜성 개발의 임원들에게는 제가 잘 말해놓겠습니다. 후계자가 되실 이한성 전무님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라고 말입니다.”

지창훈의 대답에 나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혜성 개발에서 지창훈의 위상은 절대 낮지 않았다.

회사야 중견 기업에 불과할지 몰라도, 그는 이재성의 장인이었다.

사위가 지원해준 덕에 그는 혜성 개발에 자신의 사람을 많이 심어놓을 수 있었다.

이재성이 워낙 의심이 많아서 자신과 혼인으로 묶여 있는 지창훈을 배려해준 것이다.

그 결과, 지창훈이 심어놓은 사람들은 동광파의 일부로서 혜성 개발의 핵심 파벌이 되기에 이르렀다.

숫자로 따지면 상무가 두 명에 이사는 세 명이었다.

‘무려 다섯 명의 임원이 나에게 오는 셈인가. 적은 돈으로 큰 이익을 봤군.’

겨우 8억.

그조차도 지분을 얻었으니 날린 것도 아니다.

광영 기업의 가치를 생각하면 주식 투자로도 큰 성공이라고 볼 수 있을 터.

여러모로 기분 좋은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 * *

혜성 개발, 매매사업부 회의실.

나는 상석에 앉은 채로 목동 부지 매입 관련 브리핑을 들었다.

“현재까지 270,000㎡의 부지를 매입하였으며, 추가로 광영 기업이 가지고 있는 78,000㎡의 부지 계약을 체결한 상태입니다.”

토지 매입을 전담하는 홍준기 부장의 이야기에 내 바로 옆자리에 앉은 차진만 상무가 물었다.

“평균 매입가는 얼마야?”

“매입가는 평당 9만3천 원입니다.”

“그럼 잔금 계약까지 다 하면 우리가 백억 정도 쓴 건가?”

“예, 그렇습니다.”

홍준기 부장의 답변에 실내가 크게 술렁거렸다.

백억.

혜성 개발이 대기업답게 매출 규모가 천억이 넘는다지만, 백억은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었다.

“예상보다 비싸게 산 거 같은데. 땅값이 떨어지면 타격이 엄청나겠어.”

“설마 그럴 리가 있겠나.”

“모르는 일이지. 정부가 어떤 정책을 펼치느냐에 따라 부동산 가격이 확 달라지는데.”

임원들은 평온한데 직원들은 크게 동요하고 있었다.

목동 부지 매입에 큰 부담을 느끼는 듯 보였다.

‘뭐, 내 편인 임원들이야 나를 믿어서 그런 거고, 반대로 이재성 편인 임원들은 내가 실패하길 바라고 있으니 평온한 거겠지. 직원들은 실적이 없으니 나를 못 믿는 거고.’

속으로 그 같은 생각을 하며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광영 기업에서는 어떤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까?”

“직원들도 철수한 것을 보면 아무래도 매입을 중단한 것처럼 보입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했던 결과였다.

“경쟁 상대가 사라졌으니, 더 쉽게 땅을 매입할 수 있게 되었군요.”

“그 말씀은?”

“이번 달 중순까지는 계속 매입하는 걸로 합시다.”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다시금 여기저기서 술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추가로 매입한다니. 이걸, 통이 크다고 해야 할지…….”

“불안한데. 이러다 우리까지 피 보는 거 아니야?”

“그래도 본인이 책임을 지신다고 했으니, 그걸 믿어봐야지.”

동요하는 직원들의 모습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내가 매입하는 땅들이 한 달만 지나도 이십만 원 가까이 오른다는 걸 알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해졌다.

심지어 몇몇 부지는 30만 원까지도 오른다.

몇 년만 기다리면 백만 원도 우스울 테고.

‘그때가 되면 나를 의심할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

아마 그날은 멀지 않을 것이다.

이번 달 중순만 돼도 정부에서 중대 발표를 할 것이니 말이다.

* * *

회의가 끝나고 전무실로 돌아가는데 갑자기 손님이 찾아왔다.

이재성의 사람으로 알려진 정승호 상무였다.

“지창훈 대표님께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그분이 저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하셨습니까?”

“능력이 무척이나 뛰어나고 그릇이 큰 분이라고 하더군요. 옛날에 태어났으면 무조건 왕이 되었을 분이라면서 말입니다. 저는 그분이 누군가를 그렇게까지 칭찬하는 모습은 처음 봤습니다.”

지창훈이 내가 시키는 대로 잘해주고 있는 거 같았다.

하기야, 회사를 지키려면 무엇이든 해야 했다.

여전히 지분 14%는 나에게 있으니 말이다.

“그렇습니까?”

“예, 심지어 배경이 좋다는 말도 하시던데…….”

“아닙니다. 그냥 친하게 지내는 큰손들이 몇 분 계시는 거뿐입니다.”

“아무튼 대단하십니다. 저도 지창훈 대표님 덕분에 이한성 전무님을 다르게 보게 됐습니다. 이전까지는 음…….”

“애송이로 보셨던 거 잘 알고 있습니다.”

“하하, 솔직하게 말하면 그렇습니다. 나이가 워낙 젊으셔서 저도 모르게 그런 착각을 했던 겁니다. 그런데 이제는 제 생각도 달라졌습니다. 차 상무가 뭘 보고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알게 된 기분입니다.”

말은 태연하게 해도 정승호는 아마 속으로 차진만을 무지하게 부러워하고 있을 거다.

지창훈에게 무슨 말을 들었는지 몰라도, 지창훈이 나를 지지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알게 됐을 터.

그러니 누구보다 일찍 줄을 갈아탄 차진만이 부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제라도 저를 다시 봐주니, 저로선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우리는 그 뒤로도 화기애애한 대화를 나누었다.

아직까진 내 아래로 들어오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의 태도를 보니 그것도 시간문제처럼 보였다.

‘정부 발표가 나기만 한다면 그때는 내 밑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을 거다.’

정승호 이후로도 세 명의 임원들이 찾아왔다.

그들 역시 정승호와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지창훈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다, 덕분에 나를 다시 보게 됐다, 앞으로 잘 지냈으면 한다.

뭐 이런 이야기들이었다.

아쉽게도 그중에서 나를 그룹의 후계자로서 지지하겠다고 선언한 사람은 없었다.

내가 확실하게 보여준 것이 없어서 그런지, 아직은 간을 보고 있는 거 같았다.

‘늦으면 늦을수록 손해 보는 건 자신들일 텐데. 쯧.’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나는 박쥐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그들의 결정이 늦어질수록 그들이 받게 될 대우도 낮아지게 될 것이다.

“전무님, 김영수 이사가 찾아왔습니다.”

마지막으로 김영수 이사가 찾아왔는데, 그는 어색하게 비서들과 눈인사를 하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니, 허리를 꾸벅 숙여 인사하였다.

“안녕하십니까!”

“어쩐 일입니까.”

워낙 첫 만남부터 부정적이었기에 내 목소리도 퉁명스러웠다.

하지만 김영수는 의외의 반응을 보여주었다.

“전무님을 받들어 모시겠습니다. 부디 저에게도 전무님의 옆에 설 기회를 주십시오.”

김영수는 혜성 그룹의 후계자로 나를 선택했다고 확실하게 선언하였다.

비서들이 보는 앞에서 무릎을 꿇은 채 그 같이 외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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