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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들린 투자천재-37화 (37/300)

37화 너만의 회사를 세워라

김영수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차진만에게 정강이를 맞은 게 아직도 영향이 남은 듯싶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었다.

“전무님? 정말 종로구의 동우 빌딩 건물주를 알고 계십니까?”

“예, 조금 친분이 있습니다.”

“그러면 연락처를 구해 주실 수 있으신지……?”

문정현 차장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나는 흔쾌히 대답했다.

“물론 구해 줄 수 있습니다.”

“가, 감사합니다!”

백방으로 뛰어다녔음에도 알아내지 못했던 건물주의 연락처를 알아낼 수 있을 거란 기대에 그는 크게 반색했다.

‘마침 황인범 회장님에게 연락할 생각이었는데 잘됐군.’

동우 빌딩의 건물주는 바로 황 노인.

즉, 황인범 회장이었다.

“황 회장님.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끌끌. 자주 좀 연락하지 그랬나.

“죄송합니다.”

-뭐 됐네. 그나저나 주식으로 재미 좀 본다는 소식을 들었어.

역시 황 노인의 정보력은 대단했다.

하기야 명동의 제일가는 큰손 중의 한 명이니 정보력이 대단한 것도 어찌 보면 당연했다.

“황 회장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니긴. 자네가 굴리는 자산이 못해도 2백억은 될 거 같던데?

아직 그 정도는 아니었다.

작전이라는 게 그리 자주 있는 일이 아니었으니까.

한 번의 작전으로 이익을 얻기까지 몇 개월 걸리는 경우도 허다했고 말이다.

1월에만 50억을 벌고 2개월 동안은 겨우 20억밖에 못 벌었을 정도였다.

그렇다 보니, 황 노인에게 빌린 돈을 제외하면 2백억에는 한참 못 미친다.

‘뭐 그래도 내 자산을 다 합하면 2백억은 되겠지.’

혜성 건설의 지분 5%에다 혜성 모직의 지분 20%까지.

나도 이제 큰손이라 불려도 부족함이 없는 자산가였다.

-재미있는 정보 있으면 나도 좀 알려 주지. 혼자만 재미 보지 말고 말이야.

황 노인이 마치 투정 부리듯 그렇게 말했다.

사실 오늘만 이런 것이 아니었다.

연락이 닿을 때마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는 했다.

크게 재미를 본 작년의 일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회장님이 굴리는 자산은 너무 커서 제가 함부로 추천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혼자만 재미 보겠다는 건가?

나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황 노인의 목소리를 들어보니 투자 조언을 해 주지 않으면 안 될 거 같았다.

“당분간은 재미를 볼 만한 주식이 없습니다. 저도 그래서 백억이 넘는 돈을 은행에 놔두고 있는 상태입니다. 다만 한 가지, 회장님께 추천해 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말해 주게. 어떤 건가?

“주식 말고 부동산을 해 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부동산이라. 안 그래도 올해부터 부동산이 활황을 띌 거라는 이야기가 많았는데, 자네까지 그런 말을 하니 구미가 당기는군. 끌끌!

왠지, 황 노인이라면 내가 말하지 않아도 부동산 투자를 하지 않았을까 싶다.

부동산이 활황을 띌 것도 예측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어디가 좋겠나?

“지역은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황 노인에게 괜히 부동산에 투자하라고 말한 것이 아니었다.

나중에 황 노인의 재력이 필요할 거 같아서 미리 말해 준 것.

그러니 지금 당장 투자해야 할 지역을 말해 줄 순 없었다.

-나중에 자네와 같이 들어가는 건가?

“예. 혜성 개발과 같이 들어갈 겁니다.”

-기대하지. 너무 늦지 않게만 해 주게.

나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황 노인의 태도를 보니 내가 돈이 부족하다면 언제든 공동 매입을 해 줄 거 같았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런데 용건은 뭔가? 아무 용건 없이 전화하지는 않았을 것이 아닌가. 혹, 대국 신청을 하는 거라면 오늘 당장 시간을 내줄 수 있네.

“하, 하, 하. 대국은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하는 거로 하겠습니다.”

-거참 아쉽구먼. 끌끌!

“별일은 아니고 제 부하 직원에게 회장님의 연락처를 주려고 하는데, 괜찮으십니까?”

-연락처? 뭐 자네의 부하라면 상관은 없네만. 그런데 무슨 일인가?

“회장님이 가진 빌딩 중에 동우 빌딩이라고 있지 않습니까? 왜, 종로에 있는. 거기를 매입하고 싶어 합니다.”

-동우 빌딩? 어딘지는 알겠네. 한데, 10억도 안 되는 빌딩에 관심을 두는 이유가 있나?

“따로 호재가 있는 것은 아니고, 회사 차원에서 임대 수익을 벌어 보려고 매입하는 겁니다. 물론 제가 관여하는 것은 연락처를 전달해 주는 것뿐입니다. 직원에게 빌딩을 팔지, 안 팔지는 황 회장님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내 말에는 거짓이 없었다.

실제로 나는 동우 빌딩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저 나의 인맥을 회사 사람들에게 보여 줄 수 있으면 그걸로 만족이었다.

-흠, 그렇다면 이건 어떤가? 자네가 직접 계약하는 건?

“제가 직접, 말씀입니까?”

-굳이 부하 직원에게 공을 넘길 필요가 있겠나. 어차피 자네도 실적이 필요할 테니, 동우 빌딩은 자네가 직접 챙기게. 자네에게는 시가보다 저렴하게 줄 수 있네.

나로선 나쁘지 않은 이야기였다.

건물주와 연결해 주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매입 계약까지 따낸다면 그건 내 실적이 된다.

아무리 내가 전무라고 해도 이건 결코 작은 성과가 아니었다.

시가보다 저렴하다면 더 말할 것도 없었고.

“그래 주신다면 저야 감사할 일입니다.”

-너무 고맙게 생각하진 않아도 되네. 자네도 그렇고, 우리에게는 그리 가치 있는 빌딩이 아니지 않은가.

“대신이라고 뭐하지만 한 가지 정보를 드리겠습니다.”

-끌끌! 선물을 주겠다면 굳이 거절하지는 않겠네.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 대관(정부를 상대로 한 모든 활동)에 신경 쓰여야 할 거 같습니다.”

-대관? 정부가 또 무슨 짓을 벌이는 건가?

“사채업자에게 유난히 가혹한 해가 될 겁니다.”

사실 내 진짜 본론은 이거였다.

황 노인에게 위기감을 심어 주는 것.

정부에서 사채업자를 상대로 대대적인 세무조사를 벌일 때, 황 노인만큼은 피해를 줄일 수 있게 하는 게 나의 목표였다.

‘그렇게 도움을 주면 황 노인의 성격상 은혜를 갚지 않을 수 없을 거다.’

황 노인이 괜히 최고의 사채업자가 된 게 아니었다.

그에게는 신용이란 게 있었다.

도움을 받으면 그에 걸맞은 대가를 주는 것이 황 노인이 수십 년간 보여 준 신용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를 도우려고 한다.

앞으로 황 노인에게 얻어야 할 것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 * *

“이제 본격적으로 나설 때가 되었군요.”

3월 7일.

혜성 개발에서의 회사 생활도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다.

적아의 구분도 거의 완벽해졌고, 매매 사업부에서 내가 해야 할 일도 파악이 끝난 상태였다.

이제 남은 건 실적을 쌓는 일뿐.

물론 황 노인의 도와준 덕분에 실적이 하나 공짜로 생기긴 했다.

무려 빌딩 하나를 계약 체결한 것이다.

하지만 일반 직원들이라면 모를까, 전무에게 이 정도의 실적은 그리 인정받을 만한 것은 아니었다.

후계 경쟁에서 승리하려면 그보다 훨씬 규모가 큰 실적이 필요했다.

못해도 백억 이상의 규모로 말이다.

“어디를 사야 단기간에 큰 수익을 벌 수 있겠습니까?”

혜성 개발은 부동산을 사들여서 임대 사업을 하거나 다시 팔아서 이익을 남기는 회사였다.

그러니 가치 있는 부동산을 찾아내는 게 가장 중요했다.

(지금은 목동을 사야 한다.)

“목동이요? 목동은 이미 오를 만큼 오르지 않았습니까?”

뭐, 지역 자체는 여전히 허허벌판이었다.

직접 가 본 적은 없지만, 버려진 농토와 무허가 건물로 가득하다고 들었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정부에서 목동을 개발할 거라는 소문이 있었기에 땅값은 이미 많이 오른 상태였다.

(많이 오르긴 올랐지. 빨간 바지 입은 복부인들이 웬만한 곳은 다 가져갔으니 말이야. 아마 비싼 곳은 평당 가격이 10만 원도 넘을 거다.)

경기도의 지역을 잘 훑어보면 평당 천 원도 안 되는 땅들이 적지 않으니, 10만 원이면 확실히 많이 오른 편이었다.

물론 목동 지역 전체가 십만 원은 아닐 테지만 말이다.

(그래도 다음 달에 서울시가 목동 신시가지 건설 계획을 발표하면서 더욱 땅값이 치솟게 될 거야.)

그렇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지금도 비싸긴 하지만, 신시가지가 건설된다면 더욱더 비싸게 될 여지는 충분했다.

(더군다나 서울시는 아직 세부적인 설계안을 만들지 못한 상태지. 그 말인즉슨, 설계안을 결정하는 서울시장 본인도 어디의 땅값이 가장 오르게 될지 모른다는 거야.)

“하지만 노사님은 알고 있겠군요. 목동의 어느 지역이 가장 땅값이 오르게 될지.”

(당연하지. 내가 오목교역 근처에서도 살아 본 사람인데 모를 리가 있나.)

나는 눈을 빛냈다.

노사가 확실한 정보를 손에 쥐고 있다면, 선택을 주저할 필요가 없었다.

어떻게든 혜성 개발을 움직여서 목동의 부동산을 대대적으로 매입하게끔 만들어야 했다.

‘아니, 회사도 회사지만 내 개인 자산으로도 목동 땅을 사는 게 좋지 않을까?’

아무리 노사의 지원이 있더라도 백억 이상의 자산을 굴리기는 쉽지 않았다.

내가 생각하기에 주식 투자에 적합한 최적의 자금은 50억.

실제로도 백억 이상의 돈이 은행에서 놀고 있었다.

은행 이자가 제법 쏠쏠하기는 해도, 주식으로 재미를 많이 본 입장에서 은행에 넣어둔 이 돈이 아깝게만 느껴졌다.

부동산에 투자한다면 주식만큼 재미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근데 땅값이 그렇게 오른다면, 저도 부동산을 구매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안 그래도 회사를 차리라고 말할 생각이었다. 개인으로서 부동산을 사는 것보단 법인으로서 부동산을 사는 것이 은행의 지원을 받기 수월하니 말이야.)

“그러면 회사를 차린 뒤에 목동의 땅을 살까요?”

(아니. 너는 목동 말고 다른 곳을 노려야 한다.)

“다른 곳이요?”

(네가 사야 할 땅은 송파구의 잠실이다.)

송파구란 말에 나는 가슴이 떨릴 정도로 기대되었다.

강남!

무려 강남이지 않은가.

땅값이 많이 오른 상태인 지금도 최대가 10만 원밖에 안 하는 목동과는 비교도 안 되는 게 강남이었다.

어쩌면 주식 투자할 때 얻는 이익보다 더 큰 이익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 * *

이재성은 중년 남성을 향해 분통을 터뜨렸다.

“삼촌,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이한성 그놈이 왜 혜성 개발에 가서도 미쳐 날뛰고 있냐는 말입니다!”

평소엔 절대 이렇게 예의 없는 행동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준성과 달리 이재성은 나름대로 선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의 그는 이성을 완전히 배제해 버렸다.

그만큼 이재성은 자신의 외삼촌인 강성호에게 분노한 상태였다.

“미안하다.”

“제가 지금 사과 듣고 싶어서 이러는 건 줄 압니까? 이유를 묻는 거지 않습니까! 차진만 그 새끼가 갑자기 줄을 갈아탄 이유를!”

한성이 혜성 개발로 전임했을 때, 이재성은 오히려 기뻐했다.

혜성 개발은 그의 영역이나 다를 게 없었다.

이한철 회장이 직접 혜성 개발을 관리하지 않는 이상, 혜성 개발의 왕은 이재성이었다.

제아무리 한성이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있다 해도 혜성 개발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리라.

분명 얼마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같은 생각은 어리석은 착각이었다.

한성은 전임 첫날부터 혜성 개발 안에서 자신만의 세력을 만들었다.

심지어 그 세력 안에는 이재성의 측근이었던 이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위로 더 올라가고는 싶은데 빈자리가 없어서 이한성에게 간 것이 아닐까 싶다. 아무래도 이한성 그놈의 곁에는 인재가 없으니 말이야.”

“고작 그런 이유로 줄을 갈아탔다는 겁니까?”

“……솔직하게 말하면 나도 모르겠다. 차진만과 대화해 봤는데 이한성의 능력에 반했다느니, 포용력이 남다르다느니, 이상한 소리만 하더군.”

“변명은 더 듣고 싶지 않습니다. 인제 와서 그런 소리 들어봤자 의미도 없고. 그러니 확답만 해주세요.”

“어떤 확답 말이냐?”

“그놈이 더는 미쳐 날뛰지 못하게 막겠다는 확답 말입니다!”

이재성의 말에 담긴 의미는 간단했다.

어떤 더러운 수를 써서라도 한성이 실적을 세우는 것을 방해하라는 의미였다.

“걱정하지 마라. 그놈이 자신의 인맥으로 빌딩 계약 따내는 건 내가 막을 수 없지만, 그 이상의 일은 내가 허락하지 않는 한 절대 할 수 없을 거야.”

“믿겠습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재성은 여전히 표정을 풀지 않고 있었다.

‘외삼촌 말대로 지금 상황에서 그놈이 실적을 세우는 건 불가능에 가까워. 애초에 부동산을 매입할 자금조차 구할 수 없을 테니까.’

강성호는 경영관리부의 수장이었다.

혜성 개발의 자금을 관리하는 사람이란 뜻이었다.

한성이 어떤 사업을 시작하려고 하든, 강성호가 반대한다면 결코 실행에 옮길 수 없었다.

‘하지만 왜 불안하지?’

이재성은 입술을 질끈 깨물고는 강성호에게 은밀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 일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갑자기 나온 ‘일’이라는 단어에 강성호의 눈썹 끝이 꿈틀했다.

“굳이 회장님의 사람을 칠 필요가 있을까.”

“그놈이 설치는 꼴을 더는 보고 싶지 않습니다. 숨도 못 쉬게 만들고 싶다는 말입니다.”

“…….”

“삼촌도 승진해야죠. 언제까지 전무로 남아계실 거예요.”

이미 말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강성호는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찾을 수 있는 데까지 최대한 찾아보마.”

“나오는 게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가져오세요. 아시겠죠?”

“……그렇게 하마.”

강성호의 대답에 이재성은 그제야 만족한 듯,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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