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신 들린 투자천재-33화 (33/300)

33화 말 나온 김에 하나 경고하지

“그렇게 못하겠다면 어쩔 것이냐?”

이한철 회장이 불쾌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로서는 사실 기분이 상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마치 맡겨놓은 것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듯, 후계자로 임명해달라고 했으니까.

하지만 주식으로 거금을 벌고 있는 나에게 있어 이한철 회장의 가치는 이전만큼 크지 않았다.

“혜성 개발에서 성과를 보였음에도 후계자로 인정해 주지 않는다면 저는 혜성 그룹을 떠나겠습니다.”

“뭣이? 지금 그 말, 진심으로 하는 것이냐?”

“제가 전에 제 인생 계획에 대해 말씀드린 적이 있을 겁니다.”

내 말에 이한철 회장은 인상을 찡그리며 대답했다.

“20대에 백억 원을 모으고 30대에 승부를 건다는 그 계획을 말하는 거냐?”

“예. 그리고 40대에는 재벌 그룹을 완성하는 것이었죠.”

“그래. 그 계획을 듣고 너의 포부가 대단하다고 생각했었지. 물론 터무니없다는 생각도 했었지만 말이야.”

“저는 이미 백억 원을 모은 상태입니다.”

“……!”

내 말에 이한철 회장은 눈을 부릅떴다.

“백억? 정말 현금 백억 원을 모았다는 말이냐?”

“황 회장에게 빌린 자금을 제외한 돈이 백억입니다. 대출금까지 포함하면 160억이 넘습니다.”

“……허어.”

“제 계획은 결코 터무니없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저 자신을 과소평가한 것이지요. 이미 백억 원을 모았으니 저는 20대에 승부를 걸 수 있게 됐습니다. 그리고 30대에는 어쩌면 혜성 그룹보다 더 거대한 그룹을 일굴 수도 있습니다.”

이건 결코 만용이 아니었다.

노사가 도와준다는 가정하에, 1990년대쯤 혜성 그룹 이상 가는 대기업을 만들 수 있었다.

물론 그때는 혜성 그룹이 몰락한 이후겠지만 말이다.

“너는 정말이지…….”

이한철 회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20대에 백억을 모은 것은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강남 땅 투기로 엄청난 시세차익을 거두었던 40대의 그조차도 나만큼의 부를 축적하지 못했으니 더 말할 게 뭐가 있겠는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어쩌기는. 미래의 대재벌이 될 인재를 놓칠 수야 있겠느냐? 네 말대로 할 것이니, 혜성 그룹에서 나갈 생각은 하지도 말아라.”

나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승부수가 제대로 통했다.

이제 혜성 개발에서 성과를 내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혜성 그룹의 후계자, 아니, 혜성 그룹 회장의 자리도 내 것이었다.

* * *

‘전무라 나쁘지 않군.’

이한철 회장에게서 혜성 개발의 전무 자리를 약속받았다.

현재 직급보다 낮아지는 거지만, 혜성 개발의 전무가 혜성 모직의 부사장보다 훨씬 끗발이 좋았다.

실질적인 대우, 즉 월급이나 근무환경도 그러했고 말이다.

‘다만 혜성 개발에는 전무가 세 명에 상무도 다섯 명이라는 게 문제인가?’

확실히 큰 회사는 달랐다.

혜성 개발은 전무만 세 명에 상무가 다섯 명이었다.

심지어 상무 밑에, 흔히 상무보라 불리는 이사의 숫자도 십수 명이나 됐다.

‘뭐 어쨌든 내 위에 두 명밖에 없다는 거잖아? 혜성 모직 때 보다는 출발이 좋다고 볼 수 있겠어.’

그런 생각을 하며 기분 좋게 복도로 나오는데,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잠깐 나 좀 보지.”

듣기만 해도 불쾌하게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고개를 돌려 얼굴을 확인하니 더 기분이 거북해졌다.

이재성.

나를 상대로 같잖은 도발을 했던 혜성 그룹의 차남이었다.

“좋습니다.”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그와도 한 번쯤은 대화를 나눠볼 필요가 있었다.

어떤 성격인지 궁금하기도 했고.

“따라와.”

“그런데 한 가지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왜 저에게 반말하시는 겁니까?”

“형님에게도 그러더니 확실히 성깔은 있는 놈이로군.”

“반말하지 말라는 의미였습니다만.”

“싫으면 너도 반말하던가. 나이 차이가 열 살이나 나는 형님에게도 말 깠으면서 왜 까칠하게 굴어?”

의외였다.

일부로 도발을 한 건데 이런 식으로 반응을 할 줄이야.

‘뭐 이게 정상이고 대뜸 주먹부터 들어 올린 이준성이 이상한 거라고 봐야 하나?’

아무래도 이재성을 이준성과 같은 사람으로 취급하면 안 될 거 같았다.

노사가 이재성을 꽤 높게 평가하기도 했고 말이다.

“원한다면 그리하도록 하지.”

“역시 건방져.”

자기가 말 놓으라고 해놓고서 건방지다는 소리를 지껄이다니.

순간 어이가 없었지만, 별다른 대답 없이 그의 뒤를 따라갔다.

“난 형님과 달라. 폭력적이지 않지.”

이재성은 소파에 앉으며 그 같이 말했다.

나는 미간을 좁히며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그런데 어쩌라고?”

“굳이 주먹으로 협박하지 않겠다는 소리야.”

그 체구로 협박해봤자 전혀 안 무서울 거 같은데…….

속으로 조소를 지으며 말문을 열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혜성 모직에서 제법 잘하고 있더군. 임원들 사이에서도 너의 명성이 자자해. 심지어 아버지의 관심까지 독차지하고 있다지?”

“나는 분명히 용건을 물었는데.”

이재성이 칭찬을 해줘봤자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

입가에 걸려있는 비릿한 미소를 보면 순수한 칭찬이 아닌 것을 알 수 있었고 말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야. 네가 잘하고 있는 거, 계속해. 그 정도야 관대하게 허락해 주지. 하지만 혜성 그룹을 넘볼 생각은 하지도 마.”

나는 코웃음 쳤다.

“혜성 모직 먹고 떨어지라는 건가?”

“직설적으로 말하면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웃기는 소리를 지껄이는군. 일개 상무 주제에 뭐라도 되는 줄 착각하는 건가?”

“일개 상무가 천억짜리 수주 공사를 따왔지. 그룹의 그 누구도 못 했던 일을 내가 해낸 거야.”

“잘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만 놓았으면서 유세 떨기는. 회장이 된다는 사람이 부하의 공을 가로채도 되는 건가?”

자신만만하던 이재성의 얼굴이 처음으로 일그러졌다.

정곡을 찔렸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건방진 새끼. 어디서 그딴 소리를 들었는지 모르지만…….”

“용건이 그게 다라면 더 할 이야기가 없을 거 같군. 나는 혜성 그룹의 후계자 자리를 포기할 생각이 없거든.”

내가 말을 끊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시늉을 하니 그가 격양된 목소리로 말했다.

“뭘 믿고 그리 나대는 거지? 아버지의 총애를 믿는 거라면, 단단히 착각하는 거다! 네놈은 서자에 불과해!”

나는 피식 웃었다.

주식으로 거금을 벌었기 때문일까?

이제는 이준성이고, 이재성이고 간에 우습게만 느껴졌다.

서자라는 소리를 지껄여도 분하기는커녕 하찮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막말로 내가 서자면 자기들은 뭐란 말인가.

운 좋게 재벌 2세로 태어난 것 말고는 아무것도 아닌 놈들이 말이다.

“그러는 당신은 뭘 믿고 나대는 거지? 설마 처가를 믿고 그러는 건가?”

“이 자식이…….”

이재성의 처가는 대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 수준은 절대 아니지만, 중견급은 되는 회사였다.

당연히 후계 경쟁에서 이재성을 지지하고 있었는데, 아마 지금까지 지원받은 현금만 억 단위는 될 것이다.

인적 자원도 상당히 지원받았을 것이고.

하지만 그래 봤자, 중견 기업일 뿐이었다.

혜성 그룹 같은 대기업의 후계 경쟁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말 나온 김에 하나 경고하지.”

“네놈이 나에게 경고를 한다고? 하! 웃기는군.”

“잘 들어. 앞으로 선을 잘 지키는 게 좋을 거야. 만약 당신이 선을 넘는다면, 당신은 물론 당신의 처가도 무사하지 못할 거니까.”

어이없는 표정을 짓는 이재성에게 단호한 목소리로 경고했다.

그러자 이재성이 시뻘게진 얼굴로 확 째려봤다.

“듣자 듣자 하니까, 이 새끼가 진짜 나를 우습게 보네? 형님을 물 먹였다고 나까지 하찮게 보이는 거냐?”

“내 말 명심해. 나는 결코 허언하는 사람이 아니야.”

나는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솔직히 이재성이 내 경고를 받아들일 거로 생각하지 않았다.

아마 어떤 방식으로든 수작을 부리려고 하겠지.

‘뭐 상관없다. 무슨 수작을 부리든 이제는 하나도 두렵지가 않아.’

두려워해야 할 사람은 이재성이었다.

내 경고는 언제든지 현실이 될 수 있으니까.

* * *

두 명의 여학생이 원더우더 매장 앞을 기웃거렸다.

“어? 여기 매장 이름 바뀌었네?”

“그러게. 원래는 이버바였나? 뭔가 촌스러운 이름이었는데, 세련되게 바뀌었다.”

“근데 원더우더라는 이름 어디서 들어보지 않았어?”

“들어본 거 같기도 하고.”

그녀들의 모습을 본 점주, 방재호는 매장을 나와 원더우더 브랜드를 설명해 주었다.

“쁘띠엘르라고 아시죠? 원더우더는 쁘띠엘르 회사에서 새로 만든 브랜드입니다.”

“아, 정말요?”

“그러네! 어디서 들어봤나 했더니, 쁘띠엘르였어!”

쁘띠엘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여학생들은 꺅꺅 소리를 질렀다.

작년에 출시되어 지금까지 화제를 모으고 있는 브랜드가 바로 쁘띠엘르였다.

특히 십 대와 이십 대 사이에서는 가히 독보적인 인지도를 가지고 있었다.

‘역시 쁘띠엘르란 이름은 무조건 먹히는군!’

방재호는 여학생들의 모습에 환한 미소를 지었다.

신생 브랜드임에도 주저 없이 가맹점 신청을 했는데, 후회 없는 선택인 듯싶었다.

“그런데 원더우더는 쁘띠엘르랑 무슨 차이가 있어요?”

“더 화려하고 더 예쁩니다! 만약 쁘띠엘르보다 고급스러운 디자인을 찾으신다면 원더우더 쪽이 더 맞을 겁니다.”

“우와 정말요?”

“한번 구경해 보세요. 보는 재미가 쏠쏠할 겁니다.”

그의 자신감 넘치는 모습에 여학생들은 호기심 어린 눈을 하며 매장 안으로 들어갔다.

“매장 안도 깔끔한데? 뭔가 백화점에 온 기분이야.”

“돈 많이 썼나 보다.”

“이거 봐봐! 이 디자인 엄청 예쁘지 않아?”

“너랑 잘 어울리겠는데?”

“그치, 그치?”

“근데 조금 비싸 보인다. 막 만 원 넘는 거 아니야?”

“그, 그런가?”

“쁘띠엘르랑 같은 회사잖아. 그럼 가격이 어디에 쓰여 있지 않을까?”

“맞아, 쁘띠엘르는 정찰제였지?”

“여기 쓰여 있네. 어디 보자. 5천9백 원? 조금 비싸긴 해도 괜찮은데?”

“어 정말? 5천9백 원이면 조금 비싸긴 해도 살 수 있겠다!”

여학생들의 대화를 엿듣던 방재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가격이 거의 6천 원대라서 걱정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옷 한 장에 5천 원 이상이면 학생들에게는 제법 부담이 가는 가격이었으니까.

하지만 역시 브랜드 이미지는 통했다.

쁘띠엘르에서 파생된 브랜드의 가치.

그 가치는 적어도 학생들에게는 절대적일 것이다.

“아저씨, 이거 주세요!”

“예, 5천9백 원입니다.”

“여기요! 그런데 혹시 입어보고 문제 생기면 반품할 수 있나요?”

“물론입니다. 제품에 하자가 생긴 거라면 무조건 반품해드립니다. 고객님께서 원하시면 환불도 되고요.”

“헤헤! 감사합니다!”

여학생들은 비싼 옷을 샀음에도 행복감과 만족감이 가득 묻어나오는 얼굴로 매장을 나갔다.

명품 가치를 지닌 브랜드 제품을 명품보다 훨씬 싸게 샀으니 기쁠 수밖에 없으리라.

‘후후! 이제 시작인가? 앞으로 엄청나게 바빠지겠어!’

방재호는 확신했다.

작년에 쁘띠엘르가 갑작스럽게 유행을 탔듯이 원더우더도 곧 유행을 타게 될 거라고.

그리고 그의 확신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원더우더가 출시되고 일주일.

겨우 일주일 만에 그의 매장은 발 디딜 곳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몰려들었다.

‘신진호! 나는 이제 네놈이 부럽지가 않다. 흐하하하하!’

무너지기 직전에 쁘띠엘르의 가맹점이 돼서 기사회생한 신진호가 얼마나 꼴 보기 싫었던가.

심지어 그의 가게 손님들도 대거 빼앗아 가서 매출이 뚝 떨어지는 상황을 겪어야 했다.

방재호로선 쁘띠엘르가 원망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원더우더가 출시됨으로써 그에게도 기회가 생겼다.

원더우더 제품이 쁘띠엘르 제품보다 고가의 제품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쁘띠엘르 때보다 훨씬 더 좋은 기회라고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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