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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들린 투자천재-32화 (32/300)

32화 이게 바로 정보의 힘이다

태신 증권.

정현우 대리는 50대 고객에게 간곡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이라도 빼셔야 합니다. 건설 업종이 급등할 일은 당분간 없을 겁니다.”

“손해 본 게 얼만데 인제 와서 돈을 빼? 안 돼! 죽어도 안 돼!”

“차라리 자동차 쪽으로 주식을 옮기는 게 어떻겠습니까? 일이 잘 풀린다면, 내년 상반기에 손해를 만회하실 수 있을 겁니다.”

“3백 원이었던 주가가 6백 원까지 오른 그 자동차 회사 말하는 거야? 재미 볼 사람은 이미 다 재미 봤을 텐데, 뒤늦게 들어가 봐야 무슨 소용이 있어!”

“그러면 일성 전자라도…….”

“주식 하는 사람이 시시하게 일성 전자를 사나? 됐고, 나는 그냥 여기 계속 나둘 테니 더 이야기하지 마!”

“……알겠습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매번 손해만 보면서도 고집을 절대 꺾지 않았다.

정현우의 입장에선 그저 답답하기만 할 따름이었다.

‘개미가 이익을 보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데…….’

1년 이상을 보고서 장기 투자하는 게 아닌 이상, 개미가 주식으로 돈을 벌기는 쉽지 않았다.

주식판은 큰손들의 놀이터나 다를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모조리 매수해!’

큰손이 특정 주식을 매수한다는 소문이 퍼지면 그 즉시 시장에 매물이 사라진다.

반대로 큰손이 매물을 팔기 시작하면 그 주식은 급락을 거듭한다.

상승세를 주도하는 것도 큰손이었고 하락세를 주도하는 것도 큰손이었다.

심지어 큰손들이 주식시장을 떠났다는 소문이 나돌 경우, 모든 주가가 20% 이상 폭락한다.

그 정도로 큰손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개미가 큰손을 이긴다?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정보력도 압도적으로 차이가 났고, 자금력은 그보다 더 압도적이었으니까.

물론 예외는 있었다.

태신 증권에서도 VIP 취급을 받는 이.

바로 한성이 그 예외적인 존재였다.

‘슈퍼 개미란 단어는 이분을 위해 존재하는 단어지.’

큰손들조차 확신하지 못했던 올림픽 유치.

하지만 한성은 승부사처럼 자신의 전 재산을 고림 건설에 투자했다.

그리고 그 투자는 무려 400% 주가 수익률을 기록하였다.

이것만으로도 개미에겐 엄청난 성과.

그런데 한성은 그 뒤로 단 한 번도 미끄러지지 않고 엄청난 이익을 거두었다.

지금까지 벌어들인 수익만 육십억이 넘을 정도였다.

‘다만 5월 중순부터는 다른 곳에 투자를 안 하고 계시는군. 물론 지금 수익률도 나쁘지는 않지만 말이야.’

정현우는 아쉬움을 느꼈다.

한성은 그에게 있어 여러모로 배울 점이 많은 인물이었다.

개인적으로 한성의 성공을 지켜보며 대리만족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한성은 어느 순간부터 태신 증권을 찾아오지 않았다.

그저 전화로만 이런저런 지시를 내릴 뿐이었다.

“오랜만입니다. 정현우 대리님.”

정현우는 순간 눈을 크게 떴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한성을 생각하고 있는데 마침 한성이 그의 앞에 나타났다.

“고객님. 오랜만에 태신 증권을 찾아오셨군요.”

“예. 볼일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볼일이라면?”

“제가 가진 주식들, 전부 팔아주세요. 일성 전자까지 포함해서 말입니다.”

“현금으로 인출 하실 겁니까? 아니면 다른 회사의 주식을……?”

침을 꿀꺽 삼켰다.

주식을 모두 매도한다면 한성의 현금은 대략 백십억이 된다.

이 정도면 큰손 중의 큰손이었다.

당연히 태신 증권 입장에서는 절대 놓칠 수 없었다.

“고림 건설을 매입하겠습니다.”

다행히도 주식판을 떠나지는 않았다.

만약 현금을 뺀다고 했으면 정현우가 아니라 지부장까지 버선발로 뛰어와서 한성을 붙잡아야 했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정현우로선 의아했다.

왜 하필 고림 건설이지?

“고객님도 물론 알고 계시겠지만, 현재 고림 건설의 상황은 썩 좋지가 않습니다. 건설주의 주가가 하락을 거듭하고 있고, 특히 고림 건설은 해외 수주가 취소되었다는 소문과 올해 영업이익률이 급락했다는 악성 루머가 돌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가도 많이 내려가 있는 상태입니다.”

건설주는 전체적으로 주가가 많이 내려가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서 고림 건설의 상황은 가장 안 좋았다.

1977년도에는 8만 원까지 올라갔고, 작년 올림픽 유치 때는 잠깐 4만 원 대까지 올라간 적이 있었던 고림 건설이다.

하지만 현재는 칠천 원에서 팔천 원 사이를 횡보하고 있었다.

심지어 최근에는 찌라시를 통해 악성 루머들이 퍼져나가며 주가가 조금씩 하락하는 중이었다.

“그래서 지금 고림 건설을 사야 합니다.”

“예?”

“지금이 저점이니 이제 올라갈 일만 남지 않았겠습니까?”

정현우는 눈에 이채를 띄었다.

만약 다른 사람이 저런 소리를 했다면 헛웃음을 쳤을 것이다.

바닥 밑에 지하실이 있는 걸 모른다면서 말이다.

하지만 상대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무려 60억에 가까운 수익을 벌어들인, 슈퍼 개미였다.

‘이번에는 또 어떤 기적을 보여줄지 기대가 되는군.’

* * *

노사의 지시에 따라 고림 건설을 다시 매입했다.

평단가는 8천2백 원.

6천9백 원일 때 들어가서 9천4백 원이 될 때까지 계속 매입했다.

처음엔 주가가 크게 상승하지 않았다.

내가 50억에 달하는 현금을 동원하니 15% 정도 상승했을 뿐이다.

하지만 해가 바뀌면서 상황이 급변하였다.

해외 수주가 취소되었다는 루머가 헛소문으로 밝혀졌고, 그 외에 각종 호재가 맞물리면서 주가가 급상승했다.

결과적으로 내가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7천 원에서 8천 원 사이를 횡보하던 고림 건설이 어느덧 1만5천 원을 넘어섰다.

(그새 많이도 올랐군. 이 정도의 상승세라면 200%도 문제없겠어.)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200%.

겨우 보름 만에 두 배를 벌었다.

무려 오십억에 달하는 거금을 보름 만에 번 셈이었다.

(다만, 큰손들이 눈치채면 안 되니 지금부터 조금씩 매도해야 할 거 같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지금 정리해도 크게 상관은 없었다.

이미 엄청난 수익을 벌었으니까.

“그나저나 대단하네요. 이렇게 단기간에 거금을 벌어들일 줄이야.”

감탄만 나왔다.

돈이 돈을 번다고, 자본금이 크니까 한탕 벌 때도 수익이 무지막지했다.

이러다가 진짜 혜성 건설을 통째로 인수할 만큼의 돈을 벌 수도 있을 거 같았다.

(정보의 힘이란 원래 그렇다. 큰손들이 괜히 돈 많은 게 아니야. 찌라시를 퍼뜨려서 시장에 혼란을 준 뒤에 눈먼 개미들의 돈을 쓸어 담는 식으로 돈을 번 거다.)

“엄청나군요. 인제 보니 대기업 회장들보다 주식판의 큰손들이 더 대단해 보이는데요? 돈도 훨씬 많을 거 같고.”

(꼭 그렇지만은 않아. 큰손들이 개입할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국내뿐이야. 오일 쇼크 같은 게 터지면 큰손들도 손을 쓸 수가 없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한 번 미끄러지면 손해 금액이 천문학적이야. 기업 경영하다 손실 나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지.)

하기야, 나만 해도 갑자기 주가가 폭락하면 최소 몇억의 손실이 나게 된다.

백억 단위로 굴리는 큰손이라면, 손실도 막대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다르겠죠? 노사께서는 큰손들도 모르고 있는 정보들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래. 맞는 말이다. 우리는 웬만해선 손해를 볼 일이 없을 거야. 큰손들이 우리의 시야 안에 있고, 주식 시장에 영향을 줄 외부 상황도 내가 전부 인지하고 있으니까.)

정말 믿음직스러웠다.

노사의 말만 잘 듣는다면 수백억을 모으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다만 조심할 게 있다. 우리가 이런 식으로 큰손의 작전에 개입해서 돈 버는 짓을 하다가 걸리면 그자들이 무슨 짓을 할지 몰라. 어쩌면 무력을 동원할 수 있다.)

“무력이요?”

(조폭 말이다. 조폭.)

그 말을 듣자 모골이 송연해졌다.

생각해 보니 주식판에서 활동하는 큰손 중에는 깡패 출신도 적지 않았다.

황 노인만 해도 겉으로야 평범한 노인처럼 보이지만, 명동의 거물이었고 말이다.

“조심해야겠군요.”

(고림 건설 같은 대기업만 노린다면 괜찮을 거다.)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살짝 겁이 나기도 했지만, 거금을 벌 기회를 마다할 생각은 없었다.

적당히 주의를 기울이면 문제될 게 없으리라.

‘뭐 설령 문제가 생겨도, 재벌 2세인데 조폭 따위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겠지.’

* * *

1983년 1월 13일.

오늘은 이한철 회장의 생일이었다.

나는 이한철 회장에게 용건도 있었기에 적당히 차려입고서 방배동의 대저택으로 향했다.

“왔느냐.”

이한철 회장은 서재에서 나를 맞아주었다.

‘장남이고, 차남이고, 꼴 보기 싫은 얼굴들을 보지 않아서 다행이군.’

그쪽에서도 나를 보기 싫어할 테니 서로에게 좋은 일이었다.

“건강하셨습니까.”

“여기 와서 앉아라.”

“예.”

소파에 앉자 이한철 회장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작년에는 정말 수고가 많았다. 특히 혜성 모직에서의 성과는 내가 봐도 놀랄 정도였어.”

“그렇습니까?”

“황 회장을 소개해 준 것도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한다. 만약 네가 아니었으면 작년에 우리 그룹은 큰 어려움에 부딪혔을 거야.”

나는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이한철 회장이 피식 웃었다.

“올해도 공격적으로 사업을 하려는 모양이더구나.”

“새로 준비하고 있는 브랜드 사업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작년에 벌어들인 수익을 전부 재투자한다지?”

“반드시 성공시킬 것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믿어주마. 자식 놈 중에 너만큼은 내 기대를 배신하지 않는 거 같으니 말이야.”

이재성이 중동에서 큰 활약을 펼쳤는데도 여전히 나에 대한 신뢰도는 굳건한 거 같았다.

하긴, 이한철 회장이라면 이재성이 수주 공사에 숟가락만 얹혔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회장님. 한 가지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2월, 늦어도 3월에는 계열사를 옮기고 싶습니다.”

“음?”

갑작스러운 내 말에 이한철 회장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계열사를 옮긴다고?”

“예. 혜성 개발로 옮기고 싶은데, 가능하겠습니까?”

“……이해가 안 가는군. 혜성 모직이 그렇게 잘 나가고 있는데 갑자기 계열사를 왜 옮기려는 것이냐?”

“제가 혜성 그룹에 들어온 이유는 회장님의 뒤를 잇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혜성 모직에서 아무리 발버둥을 쳐봤자, 후계자가 되기는 어려울 거 같더군요.”

“성급한 생각이다. 내가 너의 성과를 얼마나 높게 평가하고 있는데?”

물론 그가 나를 유력한 후계자 후보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나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후계자로 확정 지을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다른 형제들을 오랜 시간 지켜봤듯, 나 역시 오랜 시간 지켜보려고 할 터.

나로서는 그걸 원치 않았다.

나는 하루라도 빨리 후계자가 되고 싶었다.

“만약 올해 혜성 모직의 매출을 2백억까지 키운다면, 저를 후계자로 임명하실 겁니까?”

“…….”

이한철 회장은 내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반론을 하지 못하는 모습만 봐도 내 추측이 틀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아마 임원들의 반대를 명분으로 반대하시겠죠. 그래서 저는 저만의 세력을 키우기 위해 혜성 개발에 가고 싶습니다. 혜성 개발은 혜성 건설 다음가는 계열사이니 말입니다.”

“……그런 생각을 가졌다면 반대는 하지 않으마. 하지만 혜성 개발은 둘째의 영향력이 강한 곳이다. 네가 그곳에 간다면 큰 반발을 겪게 될 거야.”

“제가 감수할 일입니다. 대신 회장님께서는 한 가지만 약속해 주셨으면 합니다.”

“약속이라…… 일단 한번 말해 보거라.”

“만약 제가 혜성 개발에서 성과를 보일 경우, 저를 후계자로 인정해 주십시오.”

나는 이 지지부진한 후계 경쟁에 더 시간을 끌고 싶지 않았다.

반드시 올해 안에 후계 경쟁을 끝내고 정식으로 후계자가 될 생각이었다.

‘혜성 그룹에 남은 시간은 고작 3년. 만약 올해 안에 후계자가 되지 못한다면, 혜성 모직만 챙기고 그냥 혜성 그룹을 나가는 게 나.’

물론 노사는 반대하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침몰하는 배 위에 굳이 올라탈 이유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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