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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들린 투자천재-27화 (27/300)

27화 지금은 이재성을 경계할 때다

사실 그리 어려운 요구는 아니었다.

말 그대로 자리만 보전해달라는 요구였으니.

하지만 그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당신이 자리를 지키고 있으면 내가 부사장이 될 수 없잖아?’

나는 상무로 만족할 생각이 없었다.

1년 안에 다른 계열사로 자리를 옮기겠지만 그전에 혜성 모직에서 승진할 수 있는 곳까지 승진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내가 노리는 최종 자리가 바로 부사장.

최진수가 앉아있는 자리였다.

‘무엇보다 저따위로 사과하는데 받아줄 수는 없는 일이지.’

무릎 꿇는 것까진 바라지도 않는다.

하지만 항복을 하는 입장에서 떳떳한 태도를 취하는 건 문제가 있었다.

나는 결코 성인군자가 아니었기에 도저히 사과를 받아주고 싶지 않았다.

“……싫다고?”

“예.”

“내가 어려운 요구를 한 것도 아닐 텐데.”

“어려운 요구 맞습니다. 적이었던 당신을 어떻게 그 자리에 계속 나둡니까? 혜성 모직이 예전처럼 가치 없는 계열사도 아닌데 말입니다.”

“이익!”

최진수는 분노와 모멸감을 느끼며 이를 악물었다.

충혈된 눈만 봐도 그가 얼마나 분노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무시해도 정도가 있지. 네가 이렇게 나를 무시하고도 뒤탈이 없을 성싶으냐?”

결국 참지 못한 최진수가 목에 핏대를 올리며 소리쳤다.

하지만 나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뭐든 해보세요.”

“정녕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당신이 무릎 꿇고 사과하지 않는 한, 끝까지 갈 겁니다.”

과연 어떻게 나올 것인가.

흥미로운 얼굴로 최진수를 관찰했다.

하지만 최진수는 예상했던 반응을 보여주었다.

“네가 그렇게까지 나를 모욕한다면, 좋다! 나도 더는 가만있지 않겠어!”

그의 반응에 나는 혀를 찼다.

‘그렇게 자리를 보전하고 싶어 하면서 무릎 한번 못 꿇는다니. 그런 주제에 이준성에게는 그리도 비굴하게 굴었나?’

보면 볼수록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이런 자는 한시라도 빨리 쫓아내는 게 나도 좋고 회사도 좋은 일이었다.

쾅!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건지 문을 부숴버릴 기세로 세게 닫는 최진수.

그 모습이 더욱더 한심스럽게 보였다.

“괜찮겠습니까?”

“어떤 게요?”

“부사장이 저렇게 화가 났는데 가만있겠습니까? 분명 우리 일에 방해하려 들 텐데, 그냥 적당히 상대하는 게 좋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신은규는 나의 대응이 썩 마음에 들지 않은 거 같았다.

하긴, 그가 보기에 내 대응이 지나칠 정도로 강경하게 느껴질 수도 있었다.

실제로 내 성격이 불같은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고.

“걱정하실 거 없습니다. 손을 쓰려고 해도 부사장을 도울 사람은 없을 겁니다.”

“흠…….”

여전히 납득이 안 가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더 설명하지 않았다.

설명하지 않아도 곧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최진수가 허튼수작을 부릴 시간조차 주지 않으리라.’

그날 저녁.

어디론가 잠시 떠나있던 노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셨습니까.”

(별일 없었느냐?)

“부사장과 마찰이 있었습니다.”

(성급했구나. 굳이 지금 마찰을 일으킬 필요는 없을 텐데.)

“먼저 찾아와서는 화해하자고 하더군요. 자기와 싸우면 손해 보는 건 나뿐이라고 협박하면서 말입니다.”

(그래? 어지간히 상황 판단이 느린 놈이군. 뭐 아무튼 상관없다. 어차피 그놈을 쳐낼 정보는 찾아왔으니까.)

“결국 찾으셨습니까?”

노사가 잠시 자리를 비운 이유는 바로 이거였다.

정보 수집.

그중에서 최진수의 비리를 찾아내는 일을 했다.

(구린 게 많은 놈이다. 내가 찾은 것도 아마 빙산의 일각일 거야.)

“역시 그랬군요. 하긴, 그라나타를 타고 다닐 때부터 알아봤습니다.”

월급이 50만 원도 안 되는 최진수였다.

그런데 시판 가격이 강남 아파트만큼 비싼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것은 그에게 구린 구석이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1년에 최소 천만 원 이상씩 빼돌렸다. 납품업체에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그만큼 챙긴 거야. 지금까지 빼돌린 금액을 합하면 5천만 원도 넘을 거다.)

혀를 내둘렀다.

이 작은 회사에서 그만한 금액을 수년 동안 빼돌렸다니.

역시, 회사를 위해서라도 치워버려야 할 사람이었다.

“최진수를 처리하려면, 아무래도 사장에게 보고하는 게 좋겠죠?”

(민제훈, 그 양반이 아무리 너를 좋아해도 옛사람은 옛사람이라 내부 고발을 반기지는 않을 거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솔직히 민제훈이라고 털어서 먼지 하나 안 나올 정도로 청렴하지는 않을 거다.

내가 갑자기 뒷조사해서 부사장의 비리를 수집했다고 하면 민제훈도 유쾌하게 받아들이지만은 않으리라.

(차라리 검찰을 이용하는 것이 낫다.)

“검찰이요?”

(아버지에게 소개받은 사람 중에 진영석 지검장이라고 있잖아? 그 사람을 이용하면 그룹에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도 최진수를 처리할 수 있을 거다.)

이한철 회장은 몇 달 전부터 꾸준히 자신의 인맥들을 나에게 소개해 주고 있었다.

조흔 은행 고위 간부부터 시작해서 무슨 무슨 협회의 부회장, 그리고 주류 언론사의 편집장까지.

서자라는 신분 때문에 아직 정치인이나 경제인에게는 소개를 안 하는 거 같지만 어쨌든 이한철 회장 덕에 내 인맥도 넓어졌다.

노사가 거론한 진영석 지검장도 벌써 두 번의 술자리를 가진 사이였다.

아직 무언가를 부탁할 사이는 아니지만, 거래라면 충분히 가능할 거 같았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내부 싸움에 외부인을 끌어들이는 건 조금 그렇지 않습니까? 더군다나 검찰이라면 말들이 많을 거 같은데.”

솔직하게 말하면 검찰을 이용하는 거 자체가 양심에 찔렸다.

뭔가 하면 안 될 짓을 하는 느낌이랄까.

(걸리지만 않으면 될 일이다. 그리고 진영석은 나중에 국회의원까지 된 사람이야. 괜히 너에 대해 안 좋은 소문을 퍼뜨리거나 하지는 않을 거다.)

“음…….”

(순진한 생각을 하고 있다면 접어둬라. 굳이 이 일이 아니더라도 기업을 경영하려면 검찰과의 인맥은 필수다. 비록 사소한 일이지만, 최진수 건으로 지검장과 친분을 쌓을 수 있다면 결코 손해가 아니야.)

그 같은 말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마음이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앞으로 큰 사업을 하려면 검찰에도 끈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3선 국회의원이 될 진영석과 친해질 필요도 있었고 말이다.

“알겠습니다. 노사의 말대로 하겠습니다.”

(그래. 이참에 진영석 지검장을 확실하게 너의 편으로 만들어라. 아주 약간의 용돈만 줘도 네 말을 들어줄 거다.)

장희자에게 받은 돈이 30억이니, 얼마 떼서 뇌물로 주면 될 거 같았다.

물론 최진수 비리 의혹은 워낙 사소한 일이라 백만 원 정도면 충분할 것이다.

(참고로 최진수와 관련해서 네가 한 가지 알아둬야 할 게 있다.)

“어떤 겁니까?”

(최진수가 이준성에서 이재성으로 배를 갈아타려고 하더군.)

“이재성이요? 허어.”

그새 파벌을 바꾸다니.

그야말로 철새 그 자체였다.

(물론 이재성이 최진수를 지켜주지는 않을 거다. 비리 의혹이 보도되는 즉시 최진수를 버릴 테지. 하지만 최진수 그놈과 상관없이, 앞으로는 이재성을 경계하는 게 좋을 거다. 이재성이 지금 시점에 사우디로 간 게 영 껄끄러워.)

노사의 말에 나 또한 경각심을 가지기로 했다.

이준성이 힘을 잃었으니 이제부터 이재성을 견제해야 했다.

비록 이준성만큼은 아니지만, 이재성 역시도 만만치 않은 세력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 * *

“이거, 얻어먹기만 하는 거 같아서 미안하네.”

진영석 지검장은 전혀 미안하지 않은 얼굴로 생글거리며 말했다.

“아닙니다. 저야 지검장님과 함께 식사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상무가 그렇게 말해주니 기분이 좋구먼, 하하하. 이 회장님이 아들을 잘 키웠어!”

“감사합니다.”

“나이가 스물여섯이라고 했나? 혹시 생각 있으면 이야기하게. 내가 조건 좋은 신붓감을 소개해줄 테니.”

“지금은 생각 없지만, 나중에 꼭 부탁드리겠습니다.”

“하하하하! 언제든 말만 하게!”

의례적인 대화가 마무리되자 나는 쇼핑백 하나를 들어 올렸다.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지는 쇼핑백이었는데 안에는 현금 백만 원과 백화점 명품 옷이 들어있었다.

“저, 여기 간단한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아니, 뭘 또 이런 걸 준비했나!”

“진짜 별거 아닙니다. 받아주십시오.”

손사래를 치던 진영석이 힐끔 쇼핑백 안을 바라봤다.

만 원권 지폐가 수북하게 쌓여 있는 것을 확인했는지 입가에 환한 미소를 그렸다.

‘이렇게 뇌물 좋아하는 사람이 3선 국회의원이 된다니.’

단순히 국회의원이 되는 것을 넘어 아쉬운 것 하나 없이 은퇴하게 된다.

그야말로 누릴 거 다 누리고 가는 삶이었다.

물론 나비효과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번 삶도 그렇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최진수 부사장이라고 했나? 하하, 그자에 대해서는 염려 말게. 내가 아랫사람들에게 확실하게 말해줄 터이니.”

“잘 부탁드립니다.”

진영석의 호언장담은 곧 현실이 됐다.

10월 27일.

고려일보에 이 같은 기사 내용이 보도되었다.

<5년간 천만 원씩…… 월급처럼 ‘납품 뒷돈’>

기사 내용이 보도되기 무섭게 그룹에서 최진수에 대한 해임 처분이 내려졌다.

단순히 보도만 나온 게 아니라 검찰에 입건된 상태이니 그룹 차원에서 처벌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앓던 이가 빠진 느낌이군.’

나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검찰이란 패를 사용하는 게 처음에는 꺼려지기도 했는데, 막상 결과를 보니 이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이래서 노사가 검찰과의 끈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 거 같았다.

‘전무까지 조사받고 있으니, 이젠 정말 내 세상이라고 할 수 있겠어.’

민제훈을 제외하면 내가 가장 직급이 높았다.

더는 나를 귀찮게 할 사람이 없다는 뜻이었다.

“축하드립니다. 상무님.”

“와, 이렇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비서들이 축하 인사를 해주었다.

내 직속 부서라고 할 수 있는 기획부와 생산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나의 성공이 곧 자신들의 성공이라 생각하였기에 진심으로 기뻐했다.

물론 이와 대조되게, 영업부의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어두웠다.

최진수에 이어 전무까지 나가리 되었으니, 그들이 예전처럼 거만하게 행동할 날은 영영 오지 않을 것이다.

“회사 입장에서는 결코 기뻐할 일이 아닙니다. 괜히 좋아하는 티 내지 마시고 본인의 업무에 집중해 주십시오.”

나는 누구보다 기뻤지만, 겉으로 기쁨을 내색하지 않았다.

회장이 될 사람이 가벼운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역시 상무님이셔. 언행이 저리도 진중하시다니.”

“그러게 말이야. 부사장 따위와는 비교가 안 되잖아?”

“능력은 또 얼마나 좋으시고? 쁘띠엘르가 성장하는 기세를 보면 경악스러울 정도라니까.”

“저런 분이 전무가 되어야 할 텐데.”

“전무가 뭐야. 부사장이 되셔야지. 솔직히 상무님 정도면 진급 몇 번 해도 이상할 게 없다니까.”

차분한 내 모습이 인상적이었는지 사내 여론이 더욱 좋아졌다.

마치 임직원 전체가 내 사람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

(직원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운이 좋으면 부사장이 될 수도 있겠어.)

“부사장이라. 제 나이가 나이인데 가능하겠습니까?”

(매출이 전년도보다 두 배나 늘었다. 벌써 50억이라지? 만약 올해 말까지 60억 이상을 번다면 부사장도 문제없을 거야.)

노사의 말을 듣자 괜스레 기대되었다.

이십 대 중반의 나이로 부사장이라니?

내 신분이 아니었으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내 신분이 회장의 아들인 이상, 불가능한 이야기도 아니었다.

‘일단 이한철 회장이 제시해둔 목표는 초과 달성한 상태다.’

연 매출 40억은 달성한 지 오래였다.

지금은 50억에 가까워지고 있는 상태.

그룹에서도 내 기적적인 성공에 대해 주목하고 있었다.

정말 연 매출이 60억을 돌파한다면 부사장직을 다는 것도 가능할 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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