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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들린 투자천재-26화 (26/300)

26화 고작 그거야?

손님 한 명 없이 텅텅 빈 옷 가게.

가게의 주인인 신진호는 버럭 화를 냈다.

“빌어먹을 방가 놈 같으니!”

그는 인천 제물포 고등학교 근처에 위치한 아일랜드 매장의 주인이었다.

10년도 넘게 옷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요즘엔 통 장사가 안되고 있었다.

이유야 뻔했다.

바로 근처에 경쟁업체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가격을 그따위로 하면 나는 뭐 먹고 살라고!”

장사꾼이 늘 하는 소리지만, 신진호는 진심이었다.

지금 그의 가게에서 파는 옷들은 비싸 봐야 2천 원이었다.

반팔이나 치마는 천 원 정도에 불과했다.

그런데 바로 근처에 있는 ‘이버바’라는 가게에서 반팔 티셔츠를 7백 원에 팔기 시작했다.

다른 옷의 가격도 신진호 가게보다 최소 3백 원은 쌌다.

가격 차이가 이렇게 나니 당연히 손님들은 이버바로 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신진호로선 가격을 내리고 싶어도 내릴 수가 없었다.

가격을 내리면 말 그대로 남는 것이 없었던 까닭이다.

‘젠장 할!’

결국 매장을 닫을 시간이 될 때까지 다섯 장도 못 팔았다.

인건비는커녕 임대료도 못 낼 돈이었다.

터벅터벅.

기운 없는 발걸음을 옮기며 집으로 향했다.

“아버지, 다녀오셨어요?”

딸아이가 인사를 했는데도 신진호는 별다른 반응을 하지 못했다.

워낙 신경이 옷 가게로 쏠려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우연히 신진호의 눈에 딸아이의 옷이 포착됐다.

척 봐도 시장 옷처럼 보이지 않았다.

백화점에서나 파는 브랜드 제품처럼 보였다.

“이놈의 계집애가 미쳤나? 아버지는 몸이 부서져라 일하고 왔는데, 딸이라고 하나 있는 것이 돈을 허투루 써?”

“예? 아, 이 옷이요? 이거 별로 안 비싸요!”

“별로 안 비싸다니! 딱 봐도 만원은 되겠는데,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아니에요. 이거 4천 원도 안 해요!”

“뭐? 4천 원?”

신진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백화점에서나 파는 옷처럼 보였는데 4천 원도 안 한다니?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요즘 학교에서 이거 안 입으면 얼마나 무시당하는데요? 저도 어쩔 수 없이 산 거예요.”

물론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산 게 아니라, 옷이 정말 마음에 들어서 산 거였다.

하지만 신진호에게 그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딸아이가 입은 옷이 굉장히 저렴한 데다 유행을 타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할 따름이었다.

‘이건…… 기회다!’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기회를 절대 놓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 * *

1982년 10월.

쁘띠엘르의 인기는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었다.

신문 광고에까지 나오자 이제는 학생들은 물론이고 중년층까지 브랜드 이름이 알려질 정도였다.

“어머, 상무님 오셨어요?”

“어서 오십시오!”

혜성 모직의 직원들이 반갑게 인사하였다.

브랜드 사업이 성공할수록 나의 평판도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이젠 부서를 떠나 모든 직원이 나를 우호적으로 대하였다.

심지어 최진수의 최측근인 전무조차도 알랑방귀를 뀌며 다가올 정도였다.

‘혜성 모직을 장악하기까지 이제 최진수만 남았군.’

단 한 명.

권력을 잃은 뒷방 늙은이만 처리한다면 혜성 모직은 내 것이었다.

“오셨습니까, 상무님.”

“주말 동안, 별일 없었죠?”

“예. 오늘 아침에 기사 하나 나온 거 빼고는 별일 없었습니다.”

“기사요?”

신은규가 신문을 건네주었다.

자리에 앉아서 살펴보니 기사에 확실히 우리 회사 이름이 들어가 있었다.

<혜성 모직, 『제2의 도약』 채비!>

도매업으로 성장한 혜성 모직은 최근 도매업만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 유통, 브랜드 사업 등에 진출, 사업을 다각화하였다.

이 기업은 업계의 고정관념을 깨뜨린 중저가 브랜드 ‘쁘띠엘르’를 출범시켜 선풍을 일으켰으며 자사 상표 매장인 ‘쁘띠엘르’를 전국으로 확대하고 있었다.

“우리가 광고한 곳은 아니죠?”

“예. 단순한 보도 기사입니다.”

광고도 없이 신문에서 보도될 정도라니.

중저가 브랜드라는 게 그만큼 인상적이었나 보다.

물론 우리 회사가 혜성 그룹의 계열사라서 더 관심을 두는 거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 신문사에서 상무님에 대한 인터뷰 요청도 있었습니다.”

“인터뷰요?”

의외였다.

조금 화제가 되고 있다지만, 매출로 따지면 겨우 수십억밖에 안 되는 회사였다.

나는 일개 상무였고.

하지만 신은규의 말을 들어보니 이해 못 할 일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상무님의 성장 스토리가 비범한 구석이 있지 않습니까? 기자들이 그 부분에 흥미를 보이는 거 같습니다.”

“일개 서자였던 제가 활약하는 모습이 신기했나 보군요.”

쓴웃음이 나왔다.

역시 서자라는 신분은 일반인들에게도 큰 관심의 대상이었다.

‘뭐 나쁜 일은 아니지.’

지금의 나로선 존재감을 알릴 수만 있다면 신문사와의 인터뷰도 마다할 일이 아니었다.

“브랜드도 홍보하고 나 자신도 홍보하고 일석이조군요. 일정 잡아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가맹점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습니까?”

혜성 모직은 9월부터 본격적으로 프랜차이즈 사업에 진출했다.

그리고 프랜차이즈 사업은 신문에서 나온 것처럼 큰 성공을 거두고 있었다.

직영점을 비롯해 대부분의 가맹점이 재고율 5% 미만이었다.

물품이 입고되는 족족 팔리고 있다는 뜻이었다.

“인천에서 이버바라는 업체가 가맹점 신청서를 제출하였습니다.”

워낙 쁘띠엘르 가맹점이 잘 나가니 여기저기서 가맹점을 신청하였다.

서울에만 벌써 스무 곳이 넘었다.

이제는 인천, 부산, 광주 등의 주요 대도시에서도 최소한 한 곳 이상이 가맹점 신청서를 제출하였다.

“인천에는 이미 가맹점이 있지 않나요?”

“예, 아일랜드라는 매장에서 이미 가맹점을 신청해서 현재 인테리어 공사 중에 있습니다.”

“그렇군요.”

인천도 벌써 중복 신청이라니.

가맹점이 늘어나는 속도가 실로 무시무시하였다.

‘올해 안에 50개 이상은 어렵지 않게 채우겠는데?’

물론 신청서를 제출했다고 무조건 받아주지는 않았다.

가게의 입지 조건도 따져봐야 했고 가맹점 수익을 고려해 상권 중복도 피해야 했다.

하지만 이런저런 조건을 다 따져봐도 올해 안에 가맹점 50개를 채우는 건 무리 없이 가능할 거 같았다.

이한철 회장에게 투자받은 돈으로 직영점도 늘리고 있으니 대리점을 다 합하면 백 개도 가능하지 않을까?

“이 기세라면 올해 매출 40억은 무리 없이 가능하겠군.”

“40억이 문제겠습니까. 50억도 충분히 가능할 겁니다.”

신은규가 내 혼잣말을 듣고서 그리 말했다.

50억.

불과 두 달 전까지만 해도 터무니없게 들리는 액수였다.

전년도 매출의 두 배가 넘는 금액이었으니.

하지만 쁘띠엘르가 승승장구하고 있는 지금 시점에선 50억도 당연하게 느껴졌다.

“매출도 매출이지만, 영업이익이 기대가 돼요. 상무님이 고르신 디자인은 재고율이 전부 3% 미만이었잖아요? 남는 게 얼마나 많겠어요?”

이소희도 싱글벙글 웃으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나는 그녀의 말에 뿌듯한 얼굴을 하였다.

재고율 3%.

실로 엄청난 기록이었다.

그야말로 ‘팔리지 않는 옷은 만들지 않는다.’라는 모토에 부합하는 기획력이랄까.

‘물론 대부분이 노사께서 고르신 거지만, 내가 직접 고른 디자인도 꽤 성공적이지.’

나에겐 확실히 재능이란 게 있었다.

패션도 모르고 트렌드도 모르는데 내가 고른 디자인은 죄다 잘 나갔다.

오직 감 하나로 전문가들 이상의 성과를 보여준 것이다.

‘기획부도 제법 잘해주고 있어.’

종태 형이 기획부에 들어가고서 주먹구구식이었던 업무가 체계적으로 변하였다.

디자인 기획부터 아웃소싱과 유통 및 고객, 재고관리까지 원활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다른 부서와의 연계도 훨씬 좋아졌고 말이다.

‘이제 내가 없어도 잘 돌아가겠는데?’

똑똑!

그때였다.

갑자기 노크 소리가 들리며 낯익은 사내가 상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저, 상무님…….”

“김 비서께서 여기는 웬일입니까?”

김기선.

그는 다름 아닌, 최진수의 비서였다.

“부사장님께서 찾으십니다.”

“저를요?”

“예…….”

최진수가 왜 나를 찾을까?

조금 궁금하기는 했지만, 구태여 그를 만나고 싶지는 않았다.

“제가 바빠서요.”

“예!?”

“지금은 바쁘니 다음에 찾아오시라는 말입니다.”

“…….”

김기선이 크게 당황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최진수의 호출을 거절하는 것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최진수가 회사의 실세였으니까.

하지만 이제 그것도 옛날 일이 되었다.

힘의 균형은 완벽히 나에게로 넘어온 상태.

실세는 최진수가 아닌 나였다.

“아니면 부사장이 직접 오라고 하던가요.”

김기선은 얼굴을 와락 찌푸렸다.

최진수 밑에서 호가호위했던 사람이니 내 말에 자존심이 상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상황은 역전되었는데.

“……알겠습니다.”

으드득.

김기선은 분한 눈을 하며 물러났다.

“부사장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나 봅니다. 감히 상무님을 호출하다니 말입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거겠죠. 자신이 겨우 20대 중반에게 패배했다는 사실을.”

“근데 상무님을 만나서 뭐라 하려고 했을까요?”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글쎄요.”

뭐 별거 있을까 싶다.

어차피 퇴물이 된 사람인데 말이다.

똑똑!

최진수에 대해 신경을 끄고서 다시 업무에 집중하려는데 노크 소리가 들렸다.

“들어오세요.”

“흠흠!”

“부사장님이 여긴 왜?”

당황스럽게도 노크를 한 사람은 최진수였다.

“직접 찾아오라고 하지 않았나?”

“……용건이 뭡니까?”

내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으니 최진수가 미간을 찌푸렸다.

연배도 한참 어린 내가 다짜고짜 용건을 묻는데 기분이 좋을 순 없었다.

“상무와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고 싶네만.”

나는 순간 헛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어처구니가 없군.’

실컷 적대해놓고 인제 와서 관계를 회복하고 싶다?

들을 가치도 없는 말이었다.

“왜 웃지?”

“황당해서 그렇습니다. 부사장님과 제가 사이 안 좋은 건 말단 신입도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화해라니요?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전에는 내가 상무의 능력을 잘 몰랐어. 그래서 실수를 한 거지. 이젠 자네의 능력을 알게 되었으니 화해를 해도 되지 않겠나?”

“제 능력을 모르셔서 그렇게 뒷말을 한 겁니까?”

최진수는 입을 꾹 다물었다.

하긴 그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아버지 없이 자란 놈이라느니, 시장 장사밖에 모르는 애송이라느니, 별의별 뒷담을 다 했던 최진수였다.

그런데 제대로 사과도 하지 않고 대뜸 화해하자 하다니.

나로서는 그저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 일에 대해서는 내 잘못이 크지. 미안하게 됐어.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걸세.”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다니, 의외였다.

그의 성격이라면 뻔뻔하게 아닌 척하리라 생각했는데 말이다.

“제게서 무엇을 원합니까?”

“나는 서로 주고받는 걸 원하지, 꼭 일방적인 관계를 원하는 건 아니야.”

“부사장께서 저에게 어떤 것을 줄 수 있는데요?”

“전폭적인 지지를 해주마.”

“고작 그겁니까?”

“고작이라니! 내 영향력이 우습게 보이나 본데, 나 최진수야! 최진수! 내가 작정하고 방해하면 자네라고 편할 거 같은가?”

조금 귀찮아지긴 하겠지.

말 그대로 ‘조금’ 귀찮아지는 것에 불과하지만.

“괜히 인생 어렵게 살 필요가 있겠나? 어차피 자네는 위로 올라갈 사람이잖아. 굳이 나한테 발목 붙잡힐 필요 있나?”

“그건 그렇다 치고, 만약 관계가 개선되면 저는 부사장께 뭘 해줘야 합니까?”

“……지금의 자리만 지킬 수 있게 해주게. 자네가 회장이 된 이후에도 말이야.”

나는 피식 웃었다.

뭘 바라나 했더니 고작 그거였다.

“싫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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