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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들린 투자천재-25화 (25/300)

25화 너무 아쉬워하지 마라

과연 어떤 판결이 내려질까?

이준성을 아예 후계 경쟁에서 배제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임직원은 징계 해고하고 준성이 그놈은 자숙시켜야지. 물론 착복한 돈은 다 털어내게 해야겠지만 말이다.”

자숙이라.

썩 마음에 드는 결과는 아니었다.

“너무 관대한 처벌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면? 겨우 그 정도 일로 그룹에서 내치기라도 하라는 말이냐?”

2억을 착복한 게 겨우 그 정도 일이라니.

회장 마인드부터가 이러니 그룹이 무너지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나였으면 절대 저러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너무 아쉬워하지 마라. 이준성, 그놈이 당분간 활동을 중단한다는 사실만으로 만족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기회는 앞으로도 많아.)

맞는 말이다.

앞으로도 기회는 많을 터.

다음에는 더욱 확실한 기회를 노려 이준성을 후계 경쟁에서 완전히 배제하고 마리라.

‘그래도 이준성의 측근들이 대거 해고될 테니 그걸 위안으로 삼아야겠어.’

이미 평판이 최악으로 떨어진 이준성이었다.

그런데 심복들까지 잃게 되었으니 입지가 많이 흔들릴 것이다.

뭐 그래 봤자 아직도 내가 유리하다고 볼 수 없는 처지였지만 말이다.

“회장님. 지난번에 저를 파격적으로 밀어주신다고 하셨지 않았습니까?”

“설마 준성이 그놈을 해고라도 시키라는 게냐?”

“그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닙니다. 이준성 전무를 처벌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회장님의 권한입니다. 저는 그에 대해서 더 할 말이 없습니다.”

“다행이구나.”

“제가 원하는 것은 제 브랜드 사업에 금전적인 지원을 해주는 것입니다.”

“금전적인 지원이라…….”

쁘띠엘르는 지금 한창 유행을 타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 봤자 매출로 따졌을 때는 중소기업 수준에 불과했다.

설령 계획했던 대로 가을 시즌에서 큰 흥행을 몰고 온다 해도 그룹 전체를 기준으로 봤을 땐, 지극히 미미한 성과였다.

매출이 적어도 수십억은 되어야지만, 유의미한 성과로 인정받을 터.

‘매출을 늘리려면 투자는 필수다.’

투자 없이는 한계가 있었다.

공장을 100% 가동해봐야 얼마 늘어나지도 않으니까.

“얼마나 필요하더냐?”

“10억. 단 10억이면 됩니다.”

“단 10억?”

이한철 회장은 어처구니없다는 얼굴을 하였다.

10억을 별거 아닌 돈처럼 말하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래, 알겠다. 10억이야 얼마든지 투자해 줄 수 있지. 네 덕분에 황 회장에게 돈을 빌린 것을 생각하면 그보다 더한 것도 못 해줄 게 없어.”

“그럼 혜성 모직의 지분도 주실 수 있습니까.”

나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그 같이 말했다.

그러자 이한철 회장이 미간을 찌푸렸다.

“지분까지 달라고?”

대뜸 지분을 요구하니 역시 표정이 좋지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결코 무리한 요구를 한 게 아니었다.

“다른 형제들에겐 성과에 따라 지분을 지급해 주셨지 않습니까?”

“흠.”

“올해까지 성과를 보여주겠습니다. 그러니 성과만큼만 지분을 주십시오.”

일리가 있는 말이었는지 이한철 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작년 혜성 모직의 매출이 얼마였지?”

“20억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올해는 그 두 배인 40억을 벌어봐라.”

“40억이요?”

“가능하겠느냐?”

나는 턱 끝을 쓰다듬었다.

드림 패션을 인수했으니 내가 가만히 있어도 매출이야 전년보다 훨씬 늘어날 것이다.

대성 어패럴과 거래 관계가 계속 유지된다면 연말까지 몇억 정도는 가능할 터.

하지만 40억은 도저히 무리였다.

매출이 그 정도가 되려면 쁘띠엘르 사업이 말도 안 되게 잘 풀려야지만 가능했다.

(10억의 투자를 받는다면 매출을 두 배 늘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래.

10억이 있으면 가능했다.

10억이면 노사가 이야기했던 프랜차이즈 사업도 가능했으니.

“충분히 가능합니다.”

나는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이한철 회장이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면 내 지분의 절반인 20%를 주겠다.”

20%?

이건 기대 이상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자신이 가진 지분의 절반씩이나 주다니.

혜성 모직은 혜성 그룹의 모태였다.

지금이야 비중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계열사 지분은 여전히 많이 가지고 있었다.

혜성 유통의 지분만 해도 15%나 될 정도.

‘무슨 수를 써서라도 목표 매출을 달성해야겠어.’

아니, 목표 매출을 달성하는 것을 넘어 한참을 초과하고 싶었다.

50억 정도로 말이다.

그러면 혹시 아는가?

이한철 회장이 지분을 더 챙겨줄지.

‘지분은 많을수록 좋다.’

상속세를 생각해도 그랬다.

만약 혜성 모직의 최대 주주가 된다면 혜성 모직을 지주회사로 삼아 후계자 작업을 할 수 있게 된다.

뭐, 정부의 눈치를 봐야 하니 상장 회사인 혜성 건설만큼은 합법적으로 상속세를 내야겠지만 말이다.

* * *

창립 기념일은 별로 기대하지 않았던 행사였다.

아직 나는 떳떳하게 자부할 만큼, 뚜렷한 성과를 이룬 게 없었다.

그래서 되도록 조용히 있으려고 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일이 연달아 벌어지면서 나는 그룹 임직원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제 너도 비로소 후보자 중 한 명으로 인정받았다.)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지금까지 이한철 회장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나를 인정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저 운 좋게 임원이 된 서자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그러나 창립 기념일에서 있었던 일들로 나에 대한 인식이 크게 변하였다.

이준성을 상대로 당당하게 맞섰고 비리 사실을 폭로했으며, 이한철 회장의 지지를 받는 모습까지 보여주었다.

그룹의 창업 공신들조차도 이제는 나를 후보자 중의 한 명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반면 이준성은 바닥으로 추락을 거듭하는 중이지.’

공식적으로는 휴가 중이었다.

하지만 실상은 저택에서 두문불출하고 있었다.

이한철 회장이 자숙을 권고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이준성이 집에서 자숙하고 있을 때, 그의 파벌에 속해있던 인사들은 옷을 벗거나 좌천을 당했다.

아마 자숙이 끝난 뒤에도 그는 한동안 쥐 죽은 듯 지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후보자로 인정받는 거로 만족해선 안 된다. 더 치고 올라가야 해.)

당연한 이야기였다.

나는 이제야 이준성, 이재성과 동등한 위치에 섰을 뿐이다.

“창립 기념일 때 안면을 텄던 김한선 상무나 다른 임원들과도 자주 만나고 다녀야겠습니다.”

(그래야 한다. 지금부터 너의 세력을 만들어두는 게 좋아. 더 늦었다간 회장이 되고도 그룹을 장악하기가 어려워질 수 있으니.)

회장이 된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원 역사대로라면 그룹의 몰락까지 불과 4년밖에 남지 않았다.

만에 하나 그룹을 장악하는 데 실패한다면 결국 원 역사처럼 그룹은 몰락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회장이 되기 전에 미리 나만의 세력을 만들어둘 필요가 있었다.

‘사업부터 인맥 관리까지……. 앞으로도 할 일이 많구나.’

물론 지금 당장 신경 써야 할 것은 사업이었다.

쁘띠엘르를 얼마나 성공시키느냐에 따라 내 입지가 달라질 것이니까.

* * *

쁘띠엘르가 성공 가도를 달리면 달릴수록, 혜성 모직 안에서 나에 대한 평가가 수직으로 상승하였다.

생산부는 이제 확실하게 휘어잡았다고 해도 무방했다.

아니, 경리부까지도 반쯤 내 영향력 안으로 들어왔다.

경리부장이 내 앞에서 꼬리를 흔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 같은 상황은 이한철 회장이 십억을 지원해주면서 더욱 심화하였다.

‘이제 종태 형을 불러와도 되겠군.’

지금의 나에게 차장급 인사를 부장급으로 승진시키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종태 형을 기획부장으로 임명하는 게 가능해졌다는 뜻이었다.

“와. 내가 부장이라니.”

“내가 말했잖아. 올해 안에 직급을 올려주겠다고.”

9월이 되었을 때, 마침내 종태 형이 기획부장으로 승진했다.

“그런 말을 듣긴 했지만 설마 이렇게 빨리 올라오게 될 줄은 몰랐다.”

믿기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종태 형.

20대 후반의 나이로 부장이 되었으니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근데 형, 놀라고 있을 시간이 없어.”

“뭐?”

“사람들 바쁘게 움직이는 거 봤지?”

“어, 정신없어 보이더라.”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시기거든. 형도 빨리 기획부에 적응해서 가을 시즌 진행에 도와줘야 해.”

여름 시즌은 성공리에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쉴 틈 따윈 없었다.

훨씬 더 중요한 가을 시즌이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공장에 있었으니까 잘 알지? 우리가 얼마나 많은 양을 주문했는지. 근데 그건 시작에 불과해. 나는 가을에만 30만 장을 파는 게 목표야.”

“뭐? 30만 장?”

“그것도 최저치고 가능하면 그 이상을 원하고 있어.”

“그게 가능한 수치야? 아니, 애초에 우리 공장 하나로 그렇게 많은 양을 생산하는 건 불가능하잖아.”

“생산은 문제없어. 하청을 주면 되니까.”

앞으로는 하청 시스템도 적당히 이용해 주어야 했다.

자체 생산으로는 물량을 맞추기가 힘들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내가 앞으로 지향하는 것은 제조 회사가 아닌, 패션 회사였다.

의류를 제조하는 것보다 상품을 기획하고 유통하는 것이 훨씬 큰 이익을 창출할 터.

그러니 가을 시즌부터는 하청 시스템을 이용하는 게 좋았다.

물론 그렇다고 지금 가지고 있는 공장을 어디로 팔 생각은 없었지만 말이다.

“생산이야 그렇다 치고, 쁘띠엘르 상품이 그렇게까지 인기를 끌까? 몇십만 장이 팔릴 정도로?”

“여름 시즌 때 봤잖아? 재고율 2%를 기록한 거. 8월 한 달 동안 거의 7만 장 가까이가 팔렸는데, 가을에 30만 장을 파는 것은 어렵지 않을 거야.”

내 말에도 종태 형은 걱정스러운 얼굴이었다.

말은 안 했지만 내가 계속된 성공에 도취한 것은 아닐지 우려하는 모습이었다.

“걱정하지 마. 9월 중순부터는 신문으로 광고도 크게 할 거니까.”

어차피 곧 알게 될 내용이지만, 종태 형이 걱정을 내려놓게끔 가을 시즌의 진행 상황을 알려주기로 했다.

“광고를? 회사에 그럴 돈이 있어?”

“다른 계열사에서 지원을 해주는 중이야. 지원받은 금액만 무려 10억이지.”

“그 돈을 쁘띠엘르 사업에 다 써도 되는 거야?”

“당연히 써도 되지. 내가 받아온 돈인데.”

“……!”

종태 형은 눈을 부릅뜨며 놀라워하였다.

10억이나 되는 돈을 받아왔다니 놀랄 만도 했다.

“그리고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가맹점을 늘리면 판매량도 많이 올라갈 거야. 매장이 수십 개로 늘어나면 30만 장을 소화하는 것쯤이야 어렵지도 않겠지.”

“벌써 프랜차이즈까지 생각했어?”

혀를 내두르는 모습을 보니 괜스레 뿌듯해졌다.

한껏 도취하는 기분이었다.

“근데 우리 가맹점으로 들어올 매장이 있을까? 아직 쁘띠엘르는 신생 브랜드잖아.”

하지만 신중한 성격의 종태 형은 여전히 우려를 나타내고 있었다.

“요즘 대학생들이라면 우리 브랜드 이름을 한 번쯤 들어봤을 거야. 그리고 감각이 있는 사장이라면 이 사실을 모를 리 없어.”

“매장에서 먼저 우리를 찾을 거라는 말이야?”

“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걸? 길어 봐야 일주일?”

“또 예언하는 거냐?”

“언제 내 예언이 틀린 적 있어?”

“그건 그렇지.”

“이번에도 믿어봐. 그리고 정 안 되면 직영몰을 늘리면 되는 거니까. 우리한텐 10억이 있잖아?”

“하긴…… 10억이 있었지.”

종태 형은 그제야 안심하는 얼굴이었다.

역시 백 마디 말보다 돈이 더 강력한 전달 방식인 듯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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