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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들린 투자천재-22화 (22/300)

22화 스타 마케팅을 활용하는 게 좋겠어

‘첫 출시에 만 장? 하하하하! 애송이 새끼. 알아서 자멸해 주는군.’

최진수는 처음 한성을 봤을 때, 우습게만 여겼다.

나이도 고작 20대에 사회 경험이라고는 작은 공장을 운영한 게 다였다.

심지어 서자여서 배경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우습게 봤고 허수아비처럼 다루려고 했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한성은 만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입사 첫날부터 민제훈 사장의 지지를 받았고, 서자임에도 이한철 회장과의 관계가 나쁘지 않았다.

게다가 엄청난 현금을 손에 쥐고 있다는 소문까지 들려왔다.

그 현금 규모는 무려 억 단위.

어쩌면 10억이 넘는다는 이야기까지 있었다.

이때쯤 되니 최진수도 한성을 무시할 수가 없게 됐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한성을 허수아비처럼 다루겠다는 생각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사장이 그를 지지하고 심지어 회장까지 한성을 보러 혜성 모직을 찾았는데 어떻게 그를 쥐락펴락할 수 있겠는가.

최진수는 한성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의외로 상황은 나쁘지 않게 전개되어갔다.

독단적으로 일을 추진하던 한성이 연거푸 무리수를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크크. 쁘리예른지, 뭔지, 그 브랜드가 망한다면 네놈도 더는 당당할 수 없을 거다.’

그는 한성의 실패를 확신했다.

50대인 그의 눈으로 봤을 때 쁘띠엘르의 옷은 하나같이 기괴하기만 했던 것이다.

이딴 디자인의 옷을 만 장씩 파는 게 가능할 리 없었다.

가격도 평화 시장의 옷들과 비교하면 그리 싼 편도 아니었고 말이다.

“이한성 상무가 성공할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자신만만한데?”

이준성이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최진수 정도 되는 인물이 이 정도로 확신한다면 한성에 대해선 우려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 * *

생산 준비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정식으로 브랜드를 출시할 날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하지만 브랜드 출시가 다가올수록 기획부 직원들의 얼굴은 어두워졌다.

“거래처 매장에서 난감해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유로 그렇죠?”

“가격이 애매하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차라리 가격을 올리는 게 나을 거라면서 아예 입고를 거절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신은규의 보고에 나는 미간을 좁혔다.

유행을 만들려면 일단 제품을 소비자들에게 보여줘야 했다.

그런데 정작 그 보여줄 곳이 마땅치 않아서 문제였다.

오래된 거래처조차 쁘띠엘르 제품들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관계를 끊기 싫어서 억지로 제품을 받는 곳도 있었고 아예 입고 자체를 거절하는 매장도 있었다.

그만큼 쁘띠엘르 제품들은 디자인부터 가격까지 모든 게 파격적이었다.

“일부러 중저가로 가격대를 정한 것을 설명해 줬는데도 그렇습니까?”

“예. 아무래도 중저가 시장이 존재하지 않다 보니 못 미덥게 여기는 거 같습니다.”

“일단 영업부에 이야기해서 다시 한번 설득하라고 해보세요.”

“그렇게 큰 효과는 없을 거 같습니다만, 일단 해보겠습니다.”

조금 막막한 기분이었다.

쁘띠엘르는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디자인은 분명 잘 나왔다.

노사의 설명대로라면 이 시대의 트렌드를 주도할 디자인이었다.

실제로 내가 영입한 디자이너들은 곧 엄청난 명성을 얻을 디자이너들이기도 했다.

‘문제는 디자인이 좋다고 무조건 흥행하는 게 아니라는 건데.’

초조함을 떨쳐내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지휘관이 흔들리면 부대 전체가 흔들리는 법이었다.

나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다른 질문을 던졌다.

“직영몰은 어떻습니까? 진열대는 잘 설치해뒀습니까?”

“제가 직접 가서 확인했는데, 매장에 들어오면 손님들이 가장 먼저 볼만한 곳에 진열대를 설치하였습니다.”

“거기서 희망을 걸어보는 수밖에 없겠군요.”

혜성 모직의 직영몰 중에 몇 군데는 대학가 근처에 있었다.

유행을 일으키기에는 썩 나쁘지 않은 위치였다.

하지만 직영몰은 불과 여섯 곳에 불과했다.

심지어 통째로 쁘띠엘르 매장으로 꾸미는 것도 아니고 쁘띠엘르 전용 진열대를 따로 놓는 것에 불과했다.

그러니 효과가 얼마나 있을지 미지수였다.

‘정 안 될 거 같으면 다른 방법도 강구해 봐야지.’

아직 정식으로 출시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불안을 느낄 필요는 없었다.

애초에 여름 시즌은 실험적인 성격이 강하기도 했고.

“상무님, 사장님이 호출하셨습니다. 지금 바로 사장실로 오시랍니다.”

그때, 이소희가 전화기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참고로 신은규가 일종의 조언자 역할을 해준다면, 이소희는 비서로써의 역할에 충실히 하고 있었다.

유동연 같은 경우는 영업직처럼 이곳저곳을 쏘다니며 그룹 내부의 정보를 취합하는 중이었고 말이다.

“용건이 뭐랍니까?”

“따로 말씀은 안 해주셨습니다.”

“그렇습니까?”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사장실로 찾아갔으면 찾아갔지 사장이 직접 나를 부른 적은 드물었다.

애초에 회사 일에는 신경도 안 쓰는 사람인데 오죽하겠는가.

뭐 그래도 나에게 우호적인 인물이었으니 만남을 피할 이유는 없었다.

“부르셨습니까, 사장님.”

“이 상무 왔어? 김 비서, 커피 좀 준비해줘.”

사장 비서가 커피를 타오자 나는 바로 용건을 물었다.

“저를 부르신 이유가?”

“이 상무, 골프는 잘 치나?”

“예? 아직 쳐본 적은 없습니다.”

“그럼 안 되지. 우리 그룹에 골프장도 있는데 골프를 못 쳐서야 되겠어? 그리고 미래에 회장이 되려면 골프 정도는 배워둬야 해.”

계열사 사장치고 함부로 후계자를 운운하는 사람은 없을 텐데, 민제훈은 역시 남다른 면이 있었다.

“나중에 꼭 연습하겠습니다.”

“하하, 그래! 열심히 연습해둬! 필드 한번 같이 가보자고.”

“예.”

“임직원들과의 관계는 어떤가? 내 들어보니, 생산부 직원들과는 제법 친해졌다던데?”

“직원들과의 관계는 나쁘지 않습니다. 다만 임원들과는 아직 데면데면히 지내고 있습니다.”

“흐흐! 부사장, 그놈이랑 사이가 많이 안 좋지?”

나는 어깨를 으쓱하였다.

구태여 최진수에 대해 부정적으로 이야기할 필요는 없었다.

우리 사이가 안 좋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이니까.

“요즘 그놈이 자네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하고 다니더군. 영업부고, 경리부고 가리지 않고서 말이야.”

“어떤 이야기를 했습니까?”

“뻔하지 뭐. 험담이야. 들을 가치도 없는 험담. 누가 보면 망하라고 고사지내는 거 같단 말이지.”

속으로 혀를 찼다.

안 그래도 영업부에서 말들이 많았는데, 그게 다 최진수가 작업한 결과인 듯싶었다.

‘50살이나 먹은 양반이 하는 행동은 참 유치하기 그지없군.’

민제훈의 말대로 최진수는 내가 망하기만을 고사 지내고 있었다.

부사장이면서도 회사의 미래는 안중에도 없는 모양이었다.

“그놈 하는 게 나도 마음에 안 들기는 한데, 그렇다고 내가 어떻게 할 수는 없어. 부사장의 입을 꿰맬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 하하하!”

“저를 신경 써주신다는 사실만으로 감사할 따름입니다.”

“고마워할 건 없고, 신경 써준 김에 조금 더 신경 써준다는 의미로 한 가지 이야기해주지. 이번에 시작한 브랜드 사업, 반드시 성공시키게. 실패한다면 최진수 그놈이 온갖 모함을 할 거야. 그럼 자네의 평판도 크게 낮아질 거고.”

“노력하겠습니다.”

“노력만으로는 부족해! 회장님의 신임을 받는 자네는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고. 오점이 없는 후계자가 되어야 한다 이 말이야.”

나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실패할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지만, 최진수 때문에라도 무조건 성공해야 할 거 같았다.

‘쁘띠엘르가 망한다면 최진수, 그놈이 실컷 비웃어대겠지. 역시 서자는 안 된다는 식으로 말이야. 나는 절대 그 꼴을 볼 수 없다.’

그 생각을 하며 사장실을 나오는데 마침 최진수를 복도에서 마주쳤다.

“이한성 상무. 사장님과 친해서 좋겠어? 나보다 더 사장님을 많이 뵙는 거 같아?”

특유의 빈정거리는 말투로 말을 거는 최진수.

나는 그의 모습을 보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한 대 때려주고 싶을 정도로 밉상이었다.

하지만 회사 안에서는 그가 상급자였다.

겉으로는 예의를 차려야 한다는 뜻.

“설마 그렇기야 하겠습니까.”

“능청 떠는 건가? 뭐, 좋네.”

“용건이 없으시다면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상무. 브랜드 사업 준비는 잘 되고 있나?”

자리를 떠나려는 나에게 최진수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건넸다.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래? 꽤 무리한다고 들었는데? 원가도 비싼 옷을 만 장이나 생산한다지?”

“…….”

“뭐, 자네가 알아서 잘하겠지. 무려 회장님의 자제분인데 말이야. 근데, 혹시 아주 혹시 말일세.”

“뭡니까?”

“브랜드가 망한다면 누구의 책임인가?”

저도 모르게 코웃음이 나왔다.

최진수가 어떤 의도로 저런 말을 하는지 알 거 같았다.

내가 책임을 회피하지 못하게 만들려는 수작일 것이다.

“그럴 일은 없지만, 이번 사업이 실패한다면 당연히 제가 책임질 일이겠죠.”

물론 나는 책임을 회피할 생각이 없었다.

브랜드를 만들자고 한 것도 나였고 실행에 옮긴 것도 나였다.

당연히 내가 책임지는 게 맞는 일이었다.

“역시! 회장님의 자제분답게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군. 상무의 그 말, 꼭 기억해 두겠네!”

원하는 대답을 들었다는 듯, 크게 기뻐하는 최진수의 모습에 나는 속으로 다짐했다.

어떤 수를 써서든, 쁘띠엘르를 성공시키자고 말이다.

* * *

1982년 6월 30일.

마침내 쁘띠엘르의 여름 신상품이 출시되었다.

입하(5월 5일)를 기준으로 치면 뒤늦은 출시였지만, 시기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쁘띠엘르는 기대와 달리 큰 반향을 일으키진 못했다.

첫날에는 매출이 아예 없을 정도였다.

그나마 며칠 지나고서부터 베스트 드레서라고 자부하는 패셔니스트들이 쁘띠엘르의 옷에 흥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아직은 흥미 수준이라, 소소한 반향만 일어났을 뿐이었다.

“얼마 있으면 8월인데, 재고를 얼마나 줄일 수 있을까요?”

“1할이라도 줄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가을 시즌엔 더 많은 물량을 생산한다고 하셨는데, 큰일이네요.”

“지금이라도 광고를 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여름이 다 끝나가는 데 뒤늦게 광고를 해봤자 무슨 의미가 있겠어? 돈만 아까워.”

“근데 이렇게 가만히 있으면 손해가 막심이지 않습니까. 가을 시즌까지 생각하면 적자만 억에 가까울 텐데…….”

기획부의 분위기는 침울했다.

이미 여름 시즌의 실패를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였다.

7월 중순이 되었는데도 판매량이 천 장도 채 안 되니 비관적인 분위기가 형성된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반면에 영업부의 분위기는 기세등등했다.

“하! 나이도 어리고, 경험도 없는 낙하산 인사가 뭘 할 수 있겠어?”

“그러게. 이렇게 될 줄 알았다니까?”

“브랜드는 무슨 브랜드. 우리라고 능력이 없어서 브랜드를 못 만든 줄 아나?”

“돈만 있으면 다 된다고 생각하니 저러는 거야.”

“흥! 그래도 돈 많으니 쁘띠엘르인지 뭔지 망해도 상관없겠네.”

신사업에서 철저하게 배제되었던 영업부였다.

민제훈의 명령으로 어쩔 수 없이 협력 관계를 가졌지만, 나에 대한 감정이 좋을 순 없었다.

‘뭐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부사장인 최진수가 뒤에서 여론을 조장하고 있으니 더욱더 내가 부정적으로 느껴질 것이다.

실제로 매출이 기대에 못 미치는 것은 사실이었고.

“노사님은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보십니까?”

사내 여론은 점점 나를 궁지에 몰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아직 기회는 많이 남아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쁘지 않아. 내가 살던 시대에서 소위 인싸라 불릴 이들이 우리 브랜드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지금이야 겨우 몇백 장에 불과하지만, 입소문을 타면 곧 수천 장, 수만 장이 판매될 것이다. 여름 시즌은 몰라도 가을 시즌은 확실히 그렇게 될 테지.)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역시나 노사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다.

시간만 주어진다면 쁘띠엘르의 성공은 기정사실이나 마찬가지였다.

20대에게 통한다는 사실은 이미 확인했으니 말이다.

(다만, 조금 더 유행을 앞당기는 게 좋을 거 같긴 하군.)

“방법이 있겠습니까?”

(스타 마케팅을 활용하는 게 좋겠다. 스포츠 선수들에게 협찬 형태로 옷을 줘서 홍보하게 하면 입소문이 더 빠르게 퍼질 거야. 돈도 얼마 안 들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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