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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들린 투자천재-14화 (14/300)

14화 너를 점쟁이라고 생각하겠는데?

“당신이 이준성이든 뭐든 왜 나한테 반말을 하는 겁니까?”

형이라서 반말을 한다?

절대 용납 못 할 일이다.

이한철 회장도 아버지로 인정하지 않는 상황에서 무슨 형이란 말인가.

“하! 이 새끼가 진짜 미쳤나?”

“새끼는 무슨. 어차피 동생 취급도 안 할 거면서 왜 반말질이야? 어차피 남남처럼 지낼 건데 말 놓지 마. 기분 나쁘니까.”

나는 사나운 목소리로 일갈했다.

그러자 이준성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진심으로 화가 난 모양새였다.

“시발! 이 새끼 어이없는 새끼네? 너 진짜 죽고 싶냐?”

눈을 살벌하게 치켜뜨며 주먹을 들어 올렸다.

이준성의 성격을 생각하면 주먹을 날려도 이상할 게 없었다. 30살이 넘은 뒤에도 종종 주먹을 휘두르는 그였으니까.

하지만 나는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말했다.

“제대로 된 싸움을 해본 적도 없는 주제에 센 척은. 그 주먹, 날리고 싶으면 날려봐. 나도 가만있지 않을 테니까.”

회장의 건강을 생각하면 내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는 굳이 착한 동생을 연기할 필요가 없었다.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만큼 확실한 공을 세워서 단번에 후계자 자리에 오르고 마리라.

“너 진짜 뒤질 준비…….”

“뭣들 하는 거야!”

그때였다.

타이밍 좋게 이한철 회장이 나타나 고함을 질렀다.

아무래도 집사가 불러온 듯싶었다.

“이준성, 너는 아직도 주먹질하고 다니는 거냐? 그러고도 혜성 가의 장남이야?!”

“아니, 이 새끼가 먼저 버르장머리 없게 행동해서 그랬습니다.”

“말대꾸까지? 이런 무능한 놈 같으니!”

“……으드득!”

이준성은 이한철 회장의 질책을 듣고는 나를 쏘아봤다.

물론 나는 그의 시선을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집사가 가리키는 곳에 가서 앉자 나를 향한 시선들이 느껴졌다.

장남, 이준성은 대놓고 적대감을 표출하고 있었다.

아까의 일이 있었으니 나에 대한 원한으로 가득한 상태일 것이다.

차남, 이재성의 경우 비릿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마치 하찮은 무언가를 보듯, 거슬리는 눈빛이었다.

회장의 아내인 강미경의 경우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훑어보더니 이내 관심을 끊었다.

노사가 이야기한 대로 종잡을 수 없는 인물인 거 같았다.

“모두 모였으니 소개해 주겠다. 여기 있는 애가 너희들의 동생인 이한성이다.”

아무도 박수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이곳에서 나를 반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까.

나는 기대도 하지 않았기에 별다른 타격이 없었다.

그 대신 나 역시, 인사를 하지 않고서 침묵을 지켰다.

그러자 이한철 회장이 답답한 한숨을 토해냈다.

지금의 분위기가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한성이는 앞으로 혜성 모직에서 생산을 총괄하는 상무이사를 맡게 될 것이다.”

“상무? 저 녀석 나이가 몇인데 임원직을 줍니까?”

“저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회사에 입사하지도 않았는데, 상무이사에 앉히는 것은 지나친 특혜입니다.”

지금까지 조용했던 게 믿기지 않을 만큼 반발이 쏟아졌다.

내가 임원이 되는 것이 그만큼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특혜? 네놈들이 받은 특혜는 생각 안 해?”

“저희야 직원들이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 않습니까. 아버지의 자식들이란 사실을. 하지만 저놈에 대해서는 직원들이 아는 바가 없습니다.”

이준성의 말은 나름대로 일리가 있었다.

낙하산을 좋아할 직원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도 나처럼 서자 출신의 낙하산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으리라.

“쓸데없는 소리!”

하지만 이한철 회장은 사납게 일갈하는 것으로 이준성의 주장을 묵살시켰다.

재벌 회장답게 그의 권위는 절대적이었다.

이준성은 입술을 비죽거리며 입을 다물었다.

차남인 이재성 역시 더는 이견을 제시하지 않았다.

이미 정해진 사실을 통보하는 거나 마찬가지인데 더 반대해봐야 의미가 없었다.

물론 나에게 정해진 자리가 혜성 모직이 아니라 혜성 건설이나 유통, 개발 쪽이었다면 훨씬 반발이 심했을 것이다.

혜성 모직이니 그나마 이 정도로 넘어간 것.

어쨌거나 내 직급에 관한 이야기는 유야무야 끝이 났다.

‘이제 슬슬 일어나야겠군.’

불편한 자리를 오래 있을 생각은 없었다.

얼굴도 한 번씩 봤으니 이제 자리에서 일어나도 될 거 같았다.

“제 사장직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때 갑자기 이준성이 마치 따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떻게 되긴. 이미 결정 난 사안을 왜 또 말하는 거야?”

“아버지! 건설 쪽은 제가 맡는 거 아니었습니까?”

“누가 그딴 소리를 해? 넌 지금 사장도 뭣도 아니야! 전무로라도 불러줄 때까지 잠잠히 있어!”

“이익!”

나는 조소를 흘렸다.

괜히 나섰다가 본전도 못 찾았다.

‘저럴 거면 그냥 조용히 있을 것이지.’

노사가 말하기를, 첫째는 머리도 나쁘고 철이 없다고 했었는데 정말 그런 거 같았다.

그냥 힘으로 윽박지르는 거밖에 못 하는 듯했다.

“아버지, 그럼 저는요? 저는 언제쯤 승진하는 겁니까?”

“너는 또 무슨 실적을 쌓았다고 승진 소리를 하는 거야?”

“지금 전무만 3년째입니다.”

“전무를 계속 시켜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히 여겨.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

이재성 역시 퇴짜를 맞았다.

(네가 어느 정도 성과를 보일 때까지 아버지는 두 사람의 직급을 더 올리지 않을 거다. 나 때도 그랬으니 말이야.)

다행이었다.

아무리 노사의 도움이 있더라도 당장 엄청난 성과를 낼 수는 없는데 말이다.

“생각 없는 것들 같으니. 지금 그룹의 사정이 어떤지나 알고서 그따위 말들을 하는 거야?”

이한철 회장이 잔뜩 성을 냈다.

하기야, 나라도 짜증이 났을 거 같았다.

장남이고 차남이고 그저 제 안위만 생각하는 놈들밖에 없었으니까.

이자들을 보니 혜성 그룹은 내가 이어야 된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이준성이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뒤이어 이재성도 회장을 향해 고개만 까닥이고는 복도로 나갔다.

“안방에 가 있을게요.”

강미경까지 사라지자 식당에는 나와 이한철 회장만이 남았다.

“네가 보기에 네 형제가 어떤 사람들인 거 같으냐?”

“글쎄요.”

“글쎄요는 무슨. 무능하다고 생각했지?”

회장의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답이 됐는지, 회장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놈들이 무능하다는 사실은 진즉부터 알고 있었다. 높은 자리에 앉으면 뭔가 달라질까 싶어서 사장까지 시켜봤는데 헛된 기대였더군.”

“그렇습니까?”

“내가 너를 데려온 것도 저놈들 때문이다. 도저히 저놈들에게 혜성 그룹을 물려주고 싶지 않아서 말이지.”

“저에게는 그룹을 물려주고 싶은 생각이 있다는 뜻입니까?”

“있지. 없었으면 괜히 너를 데리고 와서 그룹에 분란이 생길 일을 만들지 않았을 거다.”

“솔직하시군요.”

“그러면? 설마 내가 지금에 와서 아버지의 정을 느끼고 너를 데려왔다고 생각했느냐?”

“물론 그렇게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다행이구나. 감정적인 성격은 아닌 거 같아서 정말 다행이야.”

“그러면 제가 뭘 해야 합니까? 혜성 모직에서 실적만 쌓으면 후계자가 될 수 있는 겁니까?”

“실적도 중요하지. 하지만 실적 말고도 다른 능력을 증명해야 한다.”

“자세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일단 안목을 시험하고 싶구나.”

“안목이요?”

“그룹의 미래를 위해서 내가 뭘 해야 할지를 한번 이야기해 봐.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해준다면, 내가 너를 적극적으로 밀어주마.”

선심 쓰듯 하는 그 말에 나는 눈을 빛냈다.

회장이 적극적으로 지원해 준다면 후계 경쟁에 엄청난 이점이 될 것이다.

“참고로 장남 녀석은 사우디아라비아 사업에 집중하자는 이야기를 하더군. 지금 하는 사업을 더욱 강화하자는 주장이지.”

“별로 의미가 없는 말이군요.”

“그렇지. 그나마 차남 녀석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었어. 우리 그룹이 해운 업계에 진출해야 한다고 했었지. 정부의 해운 강국 의지가 아주 대단하다는 설명을 덧붙이면서 말이야.”

그의 이야기를 들은 노사가 혀를 찼다.

(82년부터 몇 년간 계속 불황이 이어질 텐데, 해운 진출을 이야기하다니. 쯧쯧. 이재성 그놈은 아무리 똑똑한 척을 해도 반푼이나 다를 게 없어.)

노사는 해운 전문가였다.

해운 하나로 중견 기업을 만든 사람인데 전문가가 아니면 뭐겠는가.

‘애초에 지금은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때가 아닌데.’

해운이니, 중동 건설이니 그런 논의 자체가 나로선 우습게만 느껴졌다.

지금 혜성 그룹은 직원들 월급조차 제대로 주지 못 하고 있는 상태였다.

게다가 다음 달에는 단기 채권까지 갚아야 하니 자금난이 더 심각해질 터.

“저는 혜성 그룹이 미래를 논하기 전에 현재부터 직시해야 한다고 봅니다.”

“현재를 직시해라?”

“일단 자금난부터 해결해야 하지 않습니까?”

내 말에 회장이 인상을 찡그렸다.

자금 압박이 상당한 만큼 내 말이 좋게 들리지는 않을 것이다.

“중동에서 공사 대금만 들어온다면 바로 해결될 문제다. 겨우 이런 위기 때문에 멈춰 있을 시간은 없어.”

“공사 대금이 언제 들어올지 알고요?”

“길어봤자 몇 년이다. 공사가 끝났는데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언제까지 까탈을 부리진 않을 거야. 그리고 나의 혜성 그룹이라면 그깟 몇 년 정도는 얼마든지 버틸 수 있다.”

대단한 자신감이었다.

하지만 혜성 그룹이라면 그런 자신감을 느끼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대마불사!

중소기업은 빚이 많으면 파산하지만, 대기업은 달랐다.

빚을 많이 지면 질수록 오히려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경제에 악영향을 끼칠까 두려워, 정부가 직접 나서서 공적 자금을 투입해 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놈의 정부가 부채를 핑계로 산업합리화 조치를 취한다는 게 문제지.’

혜성 그룹의 몰락 배경은 부채로 인한 파산이 아니었다.

부채를 명분으로 개입한 정부 때문에 몰락한 것.

그렇기에 혜성 그룹은 부채가 일정 수치를 넘어서면 안 된다.

자칫하면 원래의 역사대로 정부가 산업합리화 조치를 꺼내 들 테니까.

“만약 다음 달에 은행에서 단기 채권을 회수한다고 하면 어떡하시겠습니까?”

“시험하는 사람은 나인데, 마치 네가 나를 시험하는 거 같구나?”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5월이 혜성 그룹에 고비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자세한 것은 이야기할 수 없다.

미래를 알려줘 봤자 믿지 않을 게 뻔하니까.

단지 나는 내 안목을 자랑하고 싶었다.

그래야 후계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으니 말이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동영토건, 일심제강, 삼인주택 등. 현재 위기에 처한 중견 기업이 한두 개가 아닙니다. 당장 무너져도 이상할 게 없는 기업들이죠. 만약 이 기업들이 같은 시기에 부도가 난다면 상황이 어떻게 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현실성 없는 이야기를 하는군. 중견 기업들이 단체로 부도날 때 동안 은행이 가만있겠느냐? 정부는 또 어떻고?”

“저는 회장님을 설득할 자신이 없습니다. 하지만 5월이 되면 결과가 나오겠지요. 그 결과를 보고 저의 안목을 평가해 주십시오.”

이한철 회장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자신감 넘치는 내 모습을 보고 ‘혹시’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내가 주식으로 4억을 벌었다는 사실도 알고 있으니 더욱더 찝찝하게 느껴질 터.

(5월 7일이 되면 깜짝 놀라시겠군. 어쩌면 너를 점쟁이로 생각할 수도 있을 거 같다.)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아무래도 좋았다.

내 말을 절대적으로 믿기만 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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