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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들린 투자천재-12화 (12/300)

12화 대가를 치르게 해주마

30평 크기의 자기 방으로 돌아온 이준성은 화를 참지 못하고 책상을 내리쳤다.

쾅!

“시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도대체 자신이 뭘 잘못했다고, 이런 시련을 준단 말인가?

“뭐? 능력만 있으면 서자 놈을 후계자로 세운다고? 이게 무슨 개지랄이야!”

거의 후계자가 되기 직전이었다.

지하철 붕괴 사건만 없었으면, 확실하게 후계자가 될 수 있었을 터.

그런데 이 상황에서 뜬금없이 새로운 경쟁자라니?

그야말로 다 된 밥에 재 뿌리는 격이었다.

똑똑!

“누구야!”

“형, 나야.”

“꺼져. 죽여 버리기 전에.”

동생, 이재성의 목소리를 듣고는 용건도 물어보지 않은 채 거칠게 쫓아냈다.

평소에도 두 사람은 사이가 극도로 안 좋았다.

후계자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사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한성, 그놈에 대해서 우리끼리 이야기를 나눠봐야 하지 않겠어?”

“…….”

이준성은 입술을 깨물었다.

마음에 들진 않지만, 이재성과 대화를 나눠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역시 이한성의 등장이 불쾌한 것은 마찬가지일 테니까.

“들어와!”

“이야. 이 방에도 오랜만에 와보네. 어렸을 때는 많이 와봤는데 말이야.”

“개소리 말고 본론부터 꺼내.”

“예나 지금이나 다른 게 없네. 좋아, 본론부터 이야기하자고. 형도 이한성 그놈에 대해선 나랑 똑같은 생각이지?”

“그 생각이 무슨 생각인데?”

“왜, 마음에 안 들잖아? 서자 따위가 우리와 동등한 자격을 가진다는 게.”

이재성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자 이준성은 미간을 좁혔다.

사실 마음에 안 드는 것은 둘 다 마찬가지였다.

“지랄 마. 네놈도 자격 없는 건 똑같아. 어디서 차남 따위가 자격을 논해? 혜성 그룹은 애초에 장남인 나의 것이야.”

“장남이라서 이번에 사장직에서 물러나는 거야? 아버지가 벌써 회장 시켜준 데?”

“이 개새끼가! 너 뒤지고 싶냐?”

이준성은 참지 못하고 이재성의 멱살을 잡았다.

하지만 이재성은 얄미운 얼굴로 이죽거렸다.

“아버지는 형을 해임하자마자 이한성이란 놈을 데리고 온다고 했어. 그런데 왜 하필 이 시점이라고 생각해? 그놈이 그렇게 마음에 든다는 뜻이 아닐까? 혜성 가의 후계자로 생각할 정도로?”

으드득!

이준성은 이를 갈았다.

안 그래도 화가 나 있는 상태인데 이재성의 말을 들으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상황을 생각하며 간신히 이성을 되찾았다.

사장직에서 물러났는데 동생이랑 싸움질까지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 뭐냐?”

“별거 없어. 그냥, 놈을 견제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야.”

나쁘지는 않았다.

아직 이한성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지만, 원래 미지의 적일수록 위협적인 법이었다.

그러니 이재성과 힘을 합쳐서 이한성을 견제한다면 이준성으로선 손해 볼 게 없었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견제? 아버지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뭘 할 수 있지?”

이한철 회장이 멀쩡하게 회장직을 지키고 있는 한, 20대 애송이 한 명을 견제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계열사까지 다르다면 더 말할 것도 없었고.

“일단 형을 따르는 임원들 있잖아? 그 사람들을 움직여서 이한성 그놈이 무슨 짓을 하든 방해하게 만들어 봐.”

“혜성 모직에는 별로 끈이 없는데?”

“이참에 만들던가. 형이 손을 내밀기만 하면, 앞뒤 가리지 않고 잡을 사람이 어디 한둘이야?”

그 말에 이준성은 피식 웃었다.

“아예 옴짝달싹도 못 하게 만들자는 거군.”

“애초에 모직에서 뭘 할 수 있겠냐 마는, 실적을 세울 기회조차 없앤다면 후계자 자리는 우리 둘 중 하나에게 가지 않겠어?”

이준성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가 생각하기에도 나쁘지 않은 거 같았다.

“그리고 일요일에 그놈 만났을 때, 아주 기를 죽여 놓는 건 어때?”

“기를 죽여?”

“어차피 그놈은 재벌도 뭣도 아니잖아. 구멍가게 하나 운영했다는데, 우리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들인지 알려주는 거지. 그러면 지레 겁을 먹고 후계 경쟁을 포기하지 않겠어?”

“호오. 그거 괜찮군.”

그런 거라면 누구보다 자신 있었다.

회사에 처음 들어갔을 때부터 그가 하던 것이 아랫사람을 겁주고, 위협하고, 깔아뭉개는 것이었으니.

‘이한성이라. 아버지의 아들로 태어난 것을 곧 후회하게 될 거다.’

* * *

나는 사무실로 출근하자마자 종태 형을 불렀다.

“형, 이번 주 안에 혜성 그룹의 사람들이 올 거야.”

“엥? 혜성 그룹이랑 계약했어?”

“계약이라면 계약이지. 정확히는 인수 계약이라고 해야 하나.”

“뭐? 인수? 혜성 그룹에서 우리를 인수한다고?”

종태 형이 기겁하며 소리 질렀다.

난데없이 합병 소식을 들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쉿. 아직 직원들은 모르는 이야기야.”

물론 직원들이 안다고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었다.

다만, 내가 직접 전해줘야 오해가 없을 것이기에 종태 형에게 주의를 줬다.

“알았어. 조용히 할 테니까 말해봐. 도대체 그게 무슨 이야기야?”

“말 그대로야. 어제저녁에 혜성 그룹 회장이 찾아와서 인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결국 드림 패션을 혜성 모직과 합병하기로 했어.”

“아니, 그거는 또 뭔 소리야? 혜성 그룹 회장? 대기업 회장이 거기서 왜 나와?”

종태 형은 답답한 얼굴을 하였다.

의문이 풀리기는커녕 더해가기만 하니 답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그런 종태 형에게 폭탄선언을 했다.

“내가 이한철 회장의 아들이래.”

“잠깐만. 뭐라고? 이한철 회장이 설마 그 혜성 그룹 회장 말하는 거야?”

“어.”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진짜 말도 안 되지? 나도 처음에는 믿기 어려웠어.”

종태 형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당황스러웠던 것이다.

“하, 하, 하. 진짜 황당하네.”

“인수 금액은 1억이야. 덤으로 혜성 건설의 지분도 얼마 받기로 했고.”

“지분까지? 진짜 재벌 2세긴 한가 봐.”

“형. 많이 당황스럽지?”

“엉? 그걸 말이라고 하냐? 네가 무슨 드라마 주인공도 아니고. 허 참. 근데 이러면 나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거냐?”

자기 걱정을 하는 걸 보니 평정을 되찾긴 한 거 같았다.

“어떻게 되긴. 계속 여기 있어야지.”

“얌마. 그러기냐? 네가 나 여기로 데리고 왔잖아. 끝까지 책임져야지!”

그 점에 대해서는 종태 형에게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처음부터 드림 패션을 혜성 그룹에 매각하려는 계획을 세워놓고 종태 형을 영입한 셈이었으니까.

하지만 나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런 증거 없이 이한철 회장의 자식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드림 패션이 혜성 모직과 합병한다고 해서 종태 형의 위치가 크게 달라질 것은 없었다.

“합병 조건 중의 하나가 고용 승계야. 형도, 직원들도 전부 혜성 모직의 직원이 된다는 뜻이지. 그리고 나 역시 혜성 모직에 입사하게 될 거야. 임원으로.”

“와. 임원? 네 나이에 임원이라고? 헐! 역시 재벌이 좋긴 하네.”

“그러니까 형, 부탁할게. 당분간 계속 드림 패션에서 있어 줘.”

“혜성 모직에 들어가라는 말이지?”

“응. 내가 믿을 사람이 형 말고 누가 있어? 형이 혜성 모직에서 나를 도와줬으면 해.”

“이거 참.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됐는지.”

종태 형은 머리가 아픈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혜성 모직에 들어오라는 말은 혜성 가의 후계 경쟁에서 나를 지원해달라는 의미나 다를 게 없었다.

종태 형으로서도 그것의 의미를 모를 수 없었기에 연거푸 한숨만 내쉬었다.

“……알았다. 뭔가 내 꿈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는 거 같긴 한데, 뭐 어쩌겠냐. 사지나 다를 게 없는 곳에 너 홀로 보낼 수도 없는 일이고 말이야.”

“고마워, 형.”

“쩝. 그래도 대기업이니 부모님 잔소리는 덜 듣겠네. 아, 맞다. 혜성 모직에서 내 직책은 어떻게 되는 거야? 설마 주임이나 대리는 아니겠지?”

“차장까지는 무리겠지만 과장 정도는 무리 없을 거야. 내가 영향력이 강해지면 올해 안에 부장까지 올려줄게.”

“오우. 그거 정말 마음에 드는데? 부장이라. 크크, 나중에 네가 혜성 회장 되면 이사직도 가능하겠지?”

“그때는 계열사 사장도 시켜줄 수 있지.”

임원직을 넘어 그 이상도 해줄 수 있었다.

그만큼 종태 형에게 고마운 감정이 컸다.

내 진심을 느꼈는지 종태 형은 뒷머리를 긁적였다.

“혜성 모직에 가서는 더 빡세게 일해야겠네.”

종태 형에게 합병 소식을 알린 뒤에 직원들에게도 합병 소식을 전해주었다.

직원들은 당황했지만, 혜성 쪽에서 고용 승계를 해준다는 이야기에 크게 불만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오히려 대기업 직원이 된다는 소리에 반색하기도 했다.

“드림 패션이 더는 제 것이 아니게 된다니까, 뭔가 기분이 이상하네요.”

노사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그저 애물단지처럼 느껴졌던 드림 패션이었다.

만약 그때 이한철 회장이 나타나 인수 금액으로 1억을 제시했다면 조금도 망설임 없이 매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몇 달 동안 정이라도 생긴 건지 드림 패션을 매각한다는 사실이 찝찝하게만 느껴졌다.

마치 소중히 여기던 물건을 빼앗긴 기분이었다.

(우울해하지 마라. 이름만 바뀌었다고 생각하면 돼. 네가 혜성 그룹의 회장이 되면 결국 드림 패션도 다시 너의 것이 될 거다.)

“그렇겠죠?”

노사의 위로에 애써 웃어 보였다.

하지만 속으로는 우려가 가득했다.

과연 내가 혜성 그룹 회장이 될 수 있을까?

‘회장이 된다고 끝이 아니지. 그룹의 몰락도 막아야 한다.’

생각만 해도 골치 아팠다.

진짜 노사가 내 곁에 없었으면 후계 경쟁에 도전하는 것은 꿈도 못 꿨을 것이다.

뭐 애초에 혜성 그룹 회장이 되겠다는 생각도 안 했겠지만.

(누군가 네 뒤를 미행하고 있다.)

그때였다.

노사가 갑자기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예?”

(우연인지 알았는데 똑같은 차량이 계속 따라오더군. 운전자의 생김새로 보나 뭐로 보나 미행이 확실하다.)

“……!”

미행이라니.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당혹스러웠다.

“누굴까요? 설마 이준성이나 이재성, 둘 중 한 명일까요?”

혜성의 후계자 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이복형제들.

그들이라면 사람을 보내 나를 미행한다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글쎄. 그럴 가능성이 높아 보이기는 하지만, 지금 당장은 알 수 없다. 일단 너의 안전이 확보된다면 내가 직접 알아보마.)

다행히 미행만 할 뿐, 해를 가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온 뒤에 노사를 기다렸다.

몇 시간을 기다리니 노사가 미행자의 정보를 가지고 왔다. 미행자를 역으로 미행해서 정보를 가지고 온 것이다.

(장희자가 너를 감시하고 있다.)

“왜 그 여자가 저를 감시한답니까?”

(처음에는 흥미로 관찰하다가, 운 좋게 너의 정체를 알아차렸어. 혜성 그룹과 관련해서 뭔가 원하는 게 있는 듯하다.)

이한철 회장을 만난 지 며칠이나 지났다고 이런 일이 생기는지···.

(일단 그녀와 한 번쯤 만나보는 것도 괜찮을 거 같다. 미행 때문에 불편한 기분이겠지만, 그녀의 의도를 알아내는 게 먼저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전화기를 들었다.

장희자에게 전화를 걸기 위함이었다.

-여보세요? 어디에서 전화를 거셨죠?

“배화산업 대표님 계십니까?”

-예. 집무실에 계십니다. 누구라고 전해드릴까요?

“태신 증권의 이한성이라고 전하면 될 겁니다.”

잠시 기다리는 사이, 노사가 말했다.

(5월에 수감될 여자라고 너무 얕보지는 마. 나중에 어찌 되든 간에 지금 당장은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권력자니까.)

그 같은 말에 어깨를 으쓱였다.

내가 이래 봬도 당한 것을 못 참는 성격이라 그녀를 어떻게 대할지 나도 잘 몰랐다.

욱하면 그냥 강하게 나갈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한성이라고 했지? 일찍 좀 연락해주지 왜 나를 기다리게 해?

“기다리다 지치셔서 아랫사람들에게 미행을 시킨 겁니까?”

-호, 호, 호. 어떻게 알았어?

당혹스러운지,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미행을 시킨 지 몇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알아차렸으니 놀랄 만도 했다.

“지금도 집 밖에서 저를 감시하는 사람이 있는데, 기분이 영 좋지 않습니다.”

-아, 알겠어. 바로 빼줄게. 그런데, 오해는 하지 말아줘. 내가 당신에게 관심이 많아서 그랬던 거지, 진짜 별 뜻은 없었어.

관심이 간다는 이유로 다짜고짜 사람을 미행하다니.

역시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심리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뭐가 됐든 나를 우습게 본 대가를 치르게 해주지.’

물론 그 대가는 막대한 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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