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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들린 투자천재-7화 (7/300)

7화 사업가라면 모름지기 차 한 대 정도는

“2,570만 원입니다.”

“수익률이 정확히 얼마죠?”

“428%입니다. 한 달이 채 안 돼서 네 배 이상의 수익을 보셨습니다. 정말 축하드립니다.”

정현우의 말에 나는 입이 찢어질 듯 미소를 지었다.

전 재산이었던 6벡만 원이 한 달 만에 2천 5백만 원이 되어서 돌아왔다.

서울 강남 아파트가 2천만 원 정도 하니 은행 빚을 제외해도 강남 아파트 한 채를 살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정현우 대리님이 큰 도움이 되셨습니다.”

“아닙니다. 제가 뭘 한 게 있다고…….”

실제로 정현우가 한 일은 거의 없었다.

그저 내가 사라고 할 때 사고, 팔라고 할 때 팔았을 뿐이니.

하지만 지금 같은 시대에선 그것만으로도 감지덕지했다.

고객 돈을 횡령해 자신의 부채를 처리한 이른바 ‘박황 사건’이 불과 몇 년 전의 일이었다.

신뢰할 수 있는 매니저가 극히 드물다는 뜻.

그런 의미에서 정직하기 그지없는 정현우의 존재는 그 자체만으로 든든했다.

‘전산 시스템이 정비되기 전까지는 정현우 대리와 쭉 함께해야겠어.’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는데 정현우가 물었다.

“고객님, 혹시 새롭게 투자하실 의향이 있으십니까?”

“주가가 전체적으로 내림세라 당분간은 은행에 둘 생각입니다.”

고림 건설 같은 곳이 또 있다면 당연히 주식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노사가 전해주기를, 11월 중순까지는 마땅한 투자처가 없다고 했다.

그나마 11월 중순부터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심으로 일부 주식이 상승세를 탄다고 하니 그때 다시 주식을 하는 게 좋을 거 같았다.

“이율이 높은 투자 상품이 있는데 들어보시겠습니까?”

“말씀하시죠.”

“MSG를 생산하는 대원주식회사의 보증사채를 저희 태신 증권에서 관리하고 있습니다. 연 이자가 23%로 1년 정기예금보다 이율이 높습니다.”

한 달 만에 428%의 이익을 거둬서 그런지 연 23%가 그리 높아 보이지 않았다.

‘아니네. 생각해 보니 23%면 4백만 원이 넘잖아?’

가만히만 있어도 작년 순수입의 네 배를 버는 셈이다.

이렇게 따지니 결코 작은 액수가 아니었다.

물론 그렇다고 대원의 보증사채를 취급할 생각은 없었다.

“크게 관심 없습니다.”

단호하게 거절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참 대단한 시대야. 1년 정기예금이 20%에 가깝다니. 은행에만 돈을 맡겨도 워런 버핏이 부럽지 않아.)

“워런 버핏은 또 누굽니까?”

(미국의 전설적인 투자가. 아마 너도 언젠가 그자를 볼 기회가 생길 거다.)

전설이라 부를 정도로 대단한 사람과 만나게 된다고?

뭔가 비현실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근데 지금처럼 돈을 벌기만 한다면, 가능할 거 같기는 해.’

영어도 괜히 다시 공부하고 있는 게 아니다.

언젠가 그런 일이 생길 걸 예상하고 공부하는 것.

(이 돈으로 뭘 하고 싶으냐?)

“글쎄요.”

이번에 벌게 된 2천5백만 원 중 천만 원은 당장 마땅한 투자처가 없으니 은행에 놔둘 계획이다.

저축예금은 하루만 맡겨도 이자를 준다. 세금을 떼면 그 이자가 연 11.75%.

그리고 나머지 1천5백만 원은 공장 확장 자금으로 사용할 것이다.

하지만 이 중에 1, 2백만 원 정도의 돈은 날 위해, 또는 가족을 위해 사용하고 싶었다.

마냥 아끼는 것도 능사는 아니었으니까.

“일단 차부터 사는 게 좋을까요?”

자동차는 더 이상 부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유행어부터 ‘마이카!’이지 않은가?

나 역시 차에 대한 욕망이 있었다.

‘그라나타처럼 비싼 차는 당연히 안 되겠지만 소형차 정도는 타도 괜찮겠지.’

이런 내 생각에 노사도 동의해 주었다.

(사업을 위해서도 차는 사야겠지. 차가 없느냐, 있느냐에 따라 첫인상이 확 달라지니 말이야.)

“차를 산 다음엔 공장을 알아보려고요.”

노사는 흡족히 고개를 끄덕였다.

(엄한 곳에 돈을 쓰지 않으니 마음에 드는구나.)

“노사님 덕분에 돈을 벌게 됐는데 제가 어떻게 사치를 부리겠습니까.”

(너무 나를 의식하지는 마라. 적당히 즐기는 선이라면 뭐라 할 생각 없으니. 이왕이면 헬스클럽 같은 곳에 다니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고민해 보겠습니다.”

(어쨌든, 공장을 구하는 건 좋은 생각이다. 경기가 안 좋으니 부도 난 공장이 많을 터. 부채까지 인수하는 조건이라면 5백 이하로 지금보다 넓은 공장을 구할 수 있을 거다.)

“예, 알겠습니다.”

은행 일을 마친 뒤 공장으로 돌아왔다.

내가 잠시 자리를 비웠는데도 공장 직원들은 열심히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돈의 힘이 참 대단하기는 한 거 같습니다.”

(그러게 말이다. 쓰러지는 사람이 나올까 걱정될 정도야.)

노사의 말을 들으니 나도 괜스레 걱정스러웠다.

점심시간도 최소한으로 하면서 작업에 열중하는 직원들이었다.

타깃 수당을 얻고야 말겠다는 열정이 스스로를 혹사하게 만들었던 것.

‘아무래도 오늘 하루만큼은 쉬게 해줘야겠어.’

짝! 짝!

손뼉을 쳐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드르륵, 드르륵.

직원들은 나에게 시선을 두면서도 작업을 멈추지 않았다.

사장 입장에서 보기 좋은 모습이긴 했다.

하지만 직원들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오늘 하루만큼은 쉬게 해주고 싶었다.

“모두 작업 멈추세요. 오늘은 일찍 퇴근합시다!”

조기 퇴근.

직장인이라면 열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직원들의 반응은 미적지근하였다.

“작업이 많이 남았는데 이따가 퇴근하면 안 되겠습니까?”

“맞습니다. 지금 집에 가봤자 할 것도 없습니다.”

마치, 일에 미친 사람들 같았다.

물론 정확하게는 돈에 미친 거지만.

(인복을 타고났구나. 아무리 돈을 준다 해도 이렇게 열정적인 직원들을 구하기는 쉽지 않은데 말이야.)

인복이라.

확실히 나는 직원들을 잘 만난 거 같았다.

비록 예전에는 내 속을 썩게 만들기도 했지만, 그거야 나의 무능 때문이지 직원들 문제는 아니었다.

노사의 도움으로 직원들의 진면목을 보니 이들이 내 곁에 있다는 사실이 그저 감사하게만 느껴졌다.

“내일부터 다시 열심히 일하시고, 오늘은 집에서 편히 쉬세요. 타깃 수당 대신 각자에게 5천 원씩 드리겠습니다.”

지갑에서 지폐 뭉치를 꺼냈다.

그러자 직원들이 양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우와아아! 사장님 만세!”

“감사합니다!”

“열심히 쉬고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돈 받고 일찍 퇴근한다는 사실에 직원들은 미친 듯이 환호했다.

(갑작스러운 지출이긴 해도 썩 나쁘지는 않구나. 잘했다.)

노사의 칭찬까지 더해지자 나의 미소도 더욱더 진해졌다.

‘십만 원이 조금도 아깝지 않아.’

직원들에게 격려금을 내린 것은 충동적인 결정이었다.

그런데 약간의 후회도 없었다.

오히려 다음에도 기회가 될 때마다 격려금을 내려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면 가족들과 백화점이라도 갔다 와라. 맛있는 것도 사 먹고.)

“안 그래도 그러려고 했습니다. 어머니가 원하시는 컬러 TV도 사드리고 가전제품도 많이 사드릴 겁니다.”

어머니가 아니었으면 이렇게 돈을 벌지도 못했을 거다.

염치란 게 있으면 효도부터 하는 게 우선이었다.

(될 수 있으면 지현이에게도 돈을 써줘. 대학 생활하느라 돈 필요할 때가 많았을 텐데, 한 번도 내색하지 않은 아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어렸을 때는 많이 다퉜던 사이지만 어른이 된 지금은 다르다.

특히 지현이의 비참한 최후를 알고 있는 나였기에 더 애틋한 마음이 있었다.

‘이번 생에서는 반드시 행복하게 만들어주마.’

그렇게 머릿속으로 지현이를 떠올리는데 노사가 한쪽을 가리켰다.

(저기 있는 여자애, 지현이 아니냐?)

골목길에 왠지 모르게 익숙한 여성의 뒤통수가 보였다.

노사의 말처럼 그녀는 여동생, 이지현처럼 보였다.

‘그런데 쟤가 왜 남자랑 있는 거야?’

살짝 굳어진 얼굴로 지현의 이름을 불렀다.

아니나 다를까.

지현이가 화들짝 놀란 얼굴로 뒤를 돌아봤다.

“오, 오빠?”

“너 여기서 뭐 하냐?”

“그, 그게 그러니까.”

어쩔 줄 몰라 하는 지현이 대신 지현이 또래로 보이는 남성이 내 물음에 답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김동윤이라고 합니다.”

“제 동생과 어떤 관계이십니까?”

잠시 주저하던 그는 이내 용기 있게 말했다.

“연인 관계입니다.”

(허어. 이 시기의 지현이에게 남자친구가 있었을 줄이야.)

노사의 감탄사는 한 귀로 흘려들었다.

나는 미간을 좁히며 김동윤이란 사내를 훑어봤다.

‘이놈이 내 동생의 남자친구라고?’

첫인상이 어떻고 자시고 간에 썩 마음에 드는 상황은 아니었다.

이유는 나도 알 수 없었다.

그냥 이상하게 기분이 나빴다.

(뭘 그렇게 무게를 잡고 있어? 하여간, 80년대 남자들은 이게 문제라니까. 개방적이지가 않아요. 여동생이 연애를 하면 축하해주지 못할망정. 쯧쯧.)

“…….”

노사의 핀잔을 듣고 나는 아차 했다.

저도 모르게 꼰대스러운 행동을 하고 말았다.

“지현이 오빠입니다.”

“마, 말 놓으셔도 괜찮습니다.”

“저는 이게 편합니다.”

어색한 분위기가 흘렀다.

여동생의 남자친구와는 무슨 대화를 나눠야 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굳이 뭘 하려고 할 필요 없이 자리를 피해 주는 게 좋을 거 같았다.

“이지현. 늦지 않게 돌아와라.”

“으, 응. 지금 가게?”

“자 받아.”

나는 지갑을 열어 만 원을 꺼냈다.

“이건 뭐야?”

“용돈이다. 이거로 뭐라도 사 먹어.”

지현이가 눈을 크게 떴다.

가끔 천 원 정도 용돈을 줄 때는 있어도 만 원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고마워, 오빠!”

고작해야 만 원인데 지현이는 세상을 다 가진 얼굴이었다.

대학생인 그녀에겐 결코 작은 액수가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혼자서 집으로 향했다.

“일단 두 사람의 데이트를 허락하긴 했는데, 솔직히 걱정이 됩니다. 과연 그 김동윤이라는 놈이 제대로 된 남자일지…….”

(나도 그건 걱정이 되는군. 아무래도 오늘 저녁에 내가 직접 조사를 해봐야겠어.)

“그래주시겠습니까?”

(너의 여동생이기도 하지만 내 여동생이기도 해. 지현이의 미래를 생각하면 더욱더 신경 써야 할 일이고.)

“제대로 된 놈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지현이가 이번 생에서만큼은 연애결혼을 할 수 있게끔 말입니다.”

지현이는 정략결혼의 피해자였다.

혜성 그룹의 회장이 정략결혼을 강요했던 것이다.

그녀의 결혼 생활이 평탄하지 않은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이번 생에서는 본인이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 * *

지현이가 돌아온 뒤 가족을 데리고 백화점에 다녀왔다.

명색이 봉제 공장의 사장인데 몇백 원짜리 값싼 옷을 입었다.

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돈을 꽤 벌었기에 모처럼 사치를 부렸다.

지현이에게 3만4천 원짜리 원피스를 사주는가 하며, 어머니에게 2만5천 원짜리 전기장판과 만천 원짜리 커피 주전자를 사주었다.

이걸로도 모자라단 생각에 어머니에게 생활비를 두둑하게 30만 원을 드렸고, 지현이에게도 용돈으로 5만 원을 주었다.

두 사람은 한편으로 나를 걱정하면서도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가족을 위해 돈 쓴 다음엔 나를 위해 돈을 썼다.

물론 롤렉스 시계를 산다거나 수십만 원 하는 고급 정장을 구매하지는 않았다.

그저 차.

자동차 한 대 구입했을 뿐이었다.

(이제야 사업가다워졌군. 80년대 사업가라면 모름지기 차 한 대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지.)

로얄 코드.

모 소설에서 ‘재벌이 타는 차’로 나왔던 자동차를 샀다.

중고차인데도 가격이 무려 120만 원이나 했다.

비쌌지만 후회는 없었다.

고작 차 한 대 생겼을 뿐인데도 나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확 변했다.

노사의 말처럼 사업가에게 자동차는 필수인 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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