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신 들린 투자천재-6화 (6/300)

6화 내 말 들어서 손해 볼 건 없다

이정석은 느긋하게 공장으로 출근했다.

오후 1시였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사장은 병원에 있을 것이니까.

사장이 없을 때 공장은 그의 세상이나 마찬가지였다.

“아이고, 형님 왜 이제야 오셨어요? 사장님 출근하셨다고요.”

하지만 그의 생각과 달리 사장은 퇴원한 이후였다.

“벌써 퇴원하셨다고? 지금 어디 계시는데?”

“원단을 보러 잠시 나가셨어요.”

“그래? 다행이네.”

“다행이라니요. 아까부터 사장님이 형님을 계속 찾으셨는데?”

“나를 찾았어?”

“예. 왜 이렇게 안 오냐고 화내기도 하셨어요.”

“제기랄. 하필 오늘 출근하실 줄이야. 이번엔 제대로 한소리 듣겠는데?”

“그러게 왜 늦게 오셨어요.”

“나야, 마누라 일 도와주느라 늦었지…….”

그의 한 달 월급은 12만 원.

시다나 하급 재봉사들의 월급이 7~8만 원이었으니 그리 낮은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한 달에 12만 원으로 다섯 식구를 먹여 살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그는 아내와 함께 인형 눈알을 붙이는 부업을 하고 있었다.

오늘도 인형 눈알을 꿰매다가 늦게 된 것이다.

“형님. 변명거리 좀 생각해 두셔야 할 거 같은데요? 아까 양 사장 왔었는데, 사장님이 화끈하게 들이박았습니다. 성깔 장난 아니시더라고요.”

“하아. 알았다. 내가 알아서 해볼게.”

“엇. 저기 사장님 오시네요. 형님도 얼른 일하는 척하세요.”

오태호는 호들갑을 떨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 모습을 보니 괜히 더 불안해졌다.

‘설마 해고하는 건 아니겠지?’

사장은 그를 예전부터 불편하게 여겼다.

그러니 이번 기회에 그를 해고한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이정석 작업 반장님. 이제 출근하셨어요?”

마침 사장이 그에게 말을 걸었다.

늘 그랬듯 사무적인 목소리로 말이다.

“……죄송합니다.”

“내일도 늦으신다면 직급이 변경되실 겁니다. 반장에서 일반 재봉사로.”

직급을 변경하겠다는 것은 사실상 해고한다는 의미와 다를 게 없었다.

하지만 이정석은 사장의 말에 오히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당장 해고당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그는 안도했다.

“알겠습니다. 다음부터는 절대 늦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사장은 잠시 뜸을 들였다.

뭔가 중요한 말을 하려는 모양이었다.

“내일부터 자리를 옮기셔야 합니다.”

“자리를 옮기다니요?”

“앞으로는 최미영 씨의 자리에서 공정의 앞부분을 담당해 주세요.”

그 같은 말을 듣자 저도 모르게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제가 이 짬에 시다가 하는 일을 해야 합니까?”

이건 그를 모욕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아무래도 이직하는 게 좋겠어.’

그의 실력이라면 어느 공장에서든 대우를 받을 것이다.

객공으로 뛴다면 일당 5, 6천 원도 가능할 정도.

지금껏 의리로 남아 있었지만, 자신을 대우해주지 않는다면 더는 남아 있을 이유가 없었다.

“대신, 타깃 수당을 지급하겠습니다.”

“타깃 수당? 그게 뭡니까.”

“목표는 140장. 140장을 채우면 이정석 반장님께 1,500원을 지급해 드리죠. 160장을 채우면 3천 원, 180장을 채우면 4,500원을 드리겠습니다.”

현재 한 라인에서 생산하는 물량은 100~120장에 불과했다.

그런데 140장이라고?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가 앞 라인에 간다면 가능할 거 같기는 해. 간단한 공정이라면 하루에 2백 장도 가능한 나니까 말이야.’

처음에는 거절하려고 했다.

하지만 거절하기엔 너무 큰 돈이었다.

객공 뛰는 것은 비교도 안 될 정도였다.

‘만약 하루에 2백 장씩 생산하면 나에게 떨어지는 돈이 얼마지? 계산해보자. 140장부터 1,500원이니까…… 헉! 6천 원! 하루에 6천 원이라니. 월급까지 합하면 한 달에 2, 30만 원도 가능하다는 거 아니야?’

계산대로만 된다면 대기업 직원보다 많이 받는 셈이었다.

가장인 이정석으로선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는 제안이었다.

“2백 장 이상을 생산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당연히 그만큼 타깃 수당을 드릴 겁니다.”

“알겠습니다. 사장님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좋습니다.”

이정석은 결국 사장의 제안에 응하기로 했다.

앞 라인을 담당하기로 한 것이다.

‘뭔가 사장한테 당한 거 같은 느낌이긴 한데, 돈만 벌 수 있다면 괜찮겠지.’

* * *

드르륵, 드르륵.

재봉틀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얼핏 보면 평소와 크게 다를 게 없어 보였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직원들의 손이 어느 때보다 빠른 것을 알 수 있었다.

“130장 돌파! 조금만 더 힘냅시다! 아자, 아자!”

“아자, 아자!”

직원들은 기합까지 지르며 작업하였다.

실로 엄청난 열의였다.

(어때? 내 말이 맞지?)

노사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나는 홀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이렇게까지 변할 줄은 몰랐습니다.”

(돈이면 안 되는 게 없다니까.)

타깃 수당제를 실시한 지 불과 열흘.

처음에는 직원들의 반응이 미적지근해서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라인 하나당, 140장 이상의 생산량만 유지했으면 바람이었다.

하지만 이틀이 지나지 않아 상황이 변했다.

가장 먼저 변화를 보인 것은 이정석이 담당하는 라인이었다.

첫날에는 적응 단계여서 135장을 생산하는 것에 그쳤다.

그런데 그 바로 다음 날에 무려 162장을 생산하였다.

재봉사들은 각자 2천 원씩, 라인 반장인 이정석은 3천 원의 타깃 수당을 얻었다.

타깃 수당이 지급되는 것을 직접 보게 되자 다른 라인의 직원들도 눈이 돌아갔다.

결국에 며칠이 지나지 않아 모든 라인에서 160장 이상씩 생산되기 시작했다.

간간히 2백 장 넘게 생산되는 경우도 있었다.

직원을 늘리지 않았음에도 생산량이 두 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근데 뭔가 씁쓸합니다.”

(왜? 직원들에게 배신당한 기분이야?)

“배신까지는 아니고 조금 실망스럽기는 합니다. 돈 준다고 할 때는 이렇게 잘하면서 그동안은 왜 그거밖에 못 했나 싶습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월급 받는 봉제사들은 객공 뛰는 봉제사들에 비하면 생산량이 떨어질 수밖에 없어. 어차피 일을 잘하든 못하든 받는 돈은 똑같으니까.)

“직원들이 주인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제 착각이었나 봅니다.”

(주인의식은 무슨. 직원들이 주인의식을 왜 가져? 지분을 단 1도 안 가지고 있는데 말이야. 앞으로도 그딴 기대는 하지 마. 충성심, 의리, 주인의식, 그런 건 이 세상에 없어. 오직 돈. 돈만이 직원을 확실하게 통제할 수 있다.)

노사는 다 좋은데 너무 돈돈 거리는 게 문제였다.

돈이 세상의 전부는 아닌데 말이다.

‘결혼을 못 한 이유도 저 성격 때문이 아니었을까.’

(어쨌든 이 정도면 납기 일정을 앞당길 수 있겠지?)

“예. 10월 29일이 아니라, 10월 20일 정도에 납기를 하는 것도 가능할 거 같습니다.”

(납기도 납기지만 품질을 최대한 신경 써. 납기를 앞당겼는데 만약 품질까지 좋다면 김휘겸이 너를 화끈하게 밀어줄 거다.)

당연한 말이다.

김휘겸이 나에게 오더를 준 것은 드림 패션만큼 품질에 신경 쓰는 공장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나로선 더욱더 각별하게 품질에 신경 쓸 수밖에 없었다.

따르릉!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이한성 사장님. 저 태신 증권 정현우 대리입니다. 좋은 소식이 있어서 전화를 드렸습니다.

왜 갑자기 태신 증권 직원이 전화했을까?

나는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일인가요?”

-현재 이한성 사장님이 보유하고 계신 고림 건설의 주가가 오전부터 상승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드디어 시작됐군.)

노사가 작게 중얼거렸다.

꽤 흥분한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보니 나도 흥분되는 것을 느꼈다.

“지금 주가가 얼마죠?”

-1만3백 원입니다. 매수단가 기준으로 5% 이상 상승하였습니다.

5%?

내가 6백만 원을 넣었으니 벌써 30만 원을 이득 본 셈이었다.

‘주식이 확실히 엄청나긴 하네. 보름도 안 돼서 30만 원이라니.’

심지어 이것도 시작에 불과했다.

올림픽 유치가 확정 난다면 5% 정도가 아니라 300% 아니, 400%도 가능했다.

-혹시 매도하실 의향이 있으십니까?

“계속 갖고 있을 겁니다.”

-올림픽 유치 가능성이 커졌으니 나쁘지 않은 선택일 거 같습니다.

정현우와의 통화가 끝나자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제 시작인가요?”

(9월 말이니 곧 올림픽 유치 결과가 나올 거다. 그리고 그때부터 쭉 오르겠지.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말이야.)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

과연 어느 정도의 수익을 안겨줄지…….

“그런데 설마 역사가 바뀌어서 개최지가 달라지지는 않겠죠?”

괜히 불안해졌다.

대출까지 끌어모아 투자했으니 불안하지 않은 게 이상한 일이었다.

(네가 뭘 했다고 벌써 나비효과가 생겨? 걱정하지 마라. 올림픽은 무조건 서울에서 개최될 것이니.)

그렇게 시간이 흘러 9월 30일 오후 4시.

사마란치 올림픽위원장의 입에서 ‘쎄울, 코레.’라는 말이 함성처럼 튀어나왔다.

실로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작고 가난한 대한민국이 일본 나고야를 52대 27로 꺾은 것이다.

<88년 올림픽, 서울서 연다!>

<서울 올림픽에 여야서 환영!>

<서울 개최 확정 축하, 시바따 JOC 위원장.>

<고림 건설, 주가 연일 상승세.>

당연하게도 올림픽 개최가 확정된 순간부터 건설주의 주가는 상승세를 보였다.

그중에서 고림 건설은 독보적이었다.

고림 건설은 대통령의 장인과 유착 관계를 맺었다고 알려진 기업이기 때문이었다.

(정말 무섭게 올라가는군.)

“그러게요. 벌써 두 배 가까이 올랐습니다.”

올림픽 개최가 확정된 이후로, 정현우에게 주가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심장이 벌렁벌렁했다.

하루가 지날 때마다 평가금액이 백만 원 이상 상승했다.

평가금액이 벌써 천만 원을 넘어설 정도였다.

“언제쯤 정리하는 게 좋을까요?”

(조금 더 지켜봐라. 내가 전에 말했잖아. 네 배 이상도 오를 거라고. 적어도 4만 원까지는 오를 거야.)

나는 잠자코 노사의 의견에 따랐다.

하지만 이집트의 대통령 사다트가 암살당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초조함을 느꼈다.

중동 정세가 불안해지면 필연적으로 건설주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한국에서 사다트 암살이 보도된 10월 9일부터 건설주의 주가가 큰 폭으로 하락했다.

“계, 계속 기다립니까?”

(고림 건설은 멀쩡하잖아. 며칠만 더 기다려.)

노사는 태평해 보였다.

나 혼자만 초조한 거 같아서 괜히 얄미웠다.

‘지금 팔면 은행 빚 갚고도 천만 원 이상이 남을 텐데.’

고민스러웠다.

어차피 이득은 충분히 보았는데 굳이 도박할 필요가 있을까?

물론 노사의 말이 지금까지 틀린 적이 없긴 하다.

하지만 무려 42년 전의 일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노사가 42년 전의 일을 정확하게 기억하는 것은 불가능할 거 같았다.

내 기억력이 절대 그 정도는 아니었다.

“후우. 알겠습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가 보겠습니다.”

잠시 고민하던 나는 입술을 깨물며 그와 같이 말했다.

결국 이번에도 노사를 믿어보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다행히 이 같은 믿음은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

10월 14일, 고림 건설의 주가가 41,000원으로 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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