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장. 영광이지! (2)
혼다 케이스케와 달리 고개를 떨군 일본 선수들이 굳은 눈빛으로 서 있거나, 그라운드에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모습이 TV 화면에 나왔다.
일본 관중과 선수들은 완전히 장례식에 참석한 듯한 분위기였다.
그렇더라도 축구계의 거물들을 모아 놓았으니 출정식을 안 할 수도 없었다.
경기가 끝난 직후에 김문호는 FIFA 임원과 아시아 축구 연맹 임원들의 축하 인사를 받느라 정신이 없었다.
영어가 능통한 송인수에게는 친선전이나 평가전이 가능하겠느냐는 문의가 연달아 건너왔다.
김문호가 악수를 나누는 옆에서 나와구치는 벌레를 이 사이에 끼우고 있는 듯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귀빈들과 함께 출정식을 관전해야 하는 데다, 중간에 선수들에게 내려가 악수를 나눠야만 했다.
그러니 그는 꼼짝없이 김문호가 승리를 축하받는 장면을 바로 옆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주변의 귀빈들과 인사를 마친 김문호가 자리를 떠나기 전에 나와구치 앞에 섰다.
웃는 얼굴로 손을 내미는 김문호, 이를 꽉 깨무는 바람에 결국 벌레가 터져 버린 듯한 얼굴의 나와구치.
두 사람이 악수를 나누는 장면을 기자들이 제대로 잡았고, 이 사진은 인터넷 매체들을 통해 특종으로 연결되었다.
평택의 호박 나이트는 ‘대- 한민국!’이란 구호가 입구를 쩌렁쩌렁 울렸다.
느린 그림으로 박상민이 골을 넣는 장면이 다시 나올 때면 다 같이 ‘박상민! 박상민! 박상민!’을 외치기도 했다.
웨이터 이름을 ‘박상민’으로 정한 직원이 더할 수 없이 행복한 얼굴로 술과 안주들을 날랐다.
한국 응원단에게 인사를 마친 정지우는 동료들과 함께 믹스트존으로 움직였다.
정지우만큼이나 박상민에게도 기자들이 몰려 있었다.
좋았다. 기자들 앞에서 자꾸만 코를 만져 가며 또박또박 답을 하는 박상민을 보는 것이 말이다.
“첫 골을 넣을 때의 상황을 알려 주세요.”
“기회가 왔는데 패스가 마땅치 않았습니다. 동료 정렬이가 슈팅하라고 알려 준 것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오늘 경기를 평가한다면요?”
“일본은 많은 준비를 했고, 그만큼 좋은 팀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우리만의 작전으로 뛰었는데, 무엇보다 오늘 경기는 일본을 상대로 한 박용근 감독님의 전술이 승리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박상민의 인터뷰 뒤에 정지우 역시 기자들에게 둘러싸였다.
“평소보다 선방을 보일 기회가 부족했습니다. 골키퍼로서 오늘 경기를 평가해 주시죠.”
“급하게 준비한 평가전이기 때문에 선수들의 능력보다 벤치의 전술 덕분에 승리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월드컵 본선에서도 좋은 성적을 이룰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Ji! 올해를 정말 환상적으로 보내고 있는데요, 다음 시즌과 월드컵 본선 목표를 알려 줄 수 있습니까?”
유독 정지우에게는 외신 기자들의 질문이 많았다.
“올해는 운이 좋았습니다. 유니온 시티에서 마틴 감독님을 만났고, 그 뒤에 박용근 감독님을 다시 뵈면서 부족했던 점을 계속 메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음 시즌의 목표는 아직 생각할 틈이 없었습니다.”
인터뷰를 끝낸 정지우는 기자들에게 둘러싸인 박용근을 보며 통로로 움직였다. 이러고도 박용근과 박상민은 다시 공식 기자회견을 해야 한다.
통로로 향하는 정지우의 앞에 신준석이 있었다.
“준석아!”
정지우는 얼른 다가가 녀석의 어깨에 팔을 얹었다.
“좋은 거 있으면 나눠 먹기로 한 것 기억하지?”
농담이었다.
이런 질문을 던지면 신준석은 늘 재치 있는 답으로 동료들을 웃게 하곤 했다.
“너 뒤로 넘어지는 것 보고 나서 눈이 뒤집혔었어. 그렇게라도 달리지 않으면 참을 수가 없더라고. 축구잖아. 너 혼자서 외롭게 싸우는 것처럼 느껴지는 게 정말 분통이 터졌어.”
땀이 아직 식지 않은 신준석의 대답이 고마워서 정지우는 녀석의 어깨에 얹은 손으로 머리통을 슥슥 문질렀다.
“야! 가뜩이나 머리가 커서 키가 작아 보이는데, 꼭 방송 나가는 장면에서 이래야 되냐?”
그래도 역시 신준석이다.
녀석의 볼멘소리에 앞에서 걷던 선수들이 뒤를 돌아보며 웃고 말았다.
라커룸에 들어간 정지우는 경기를 뛰었던 선수들과 손을 맞잡고 어깨를 다독여 주었다.
“형! 우리 정말 굉장했던 거죠?”
“실력으로 보였잖아!”
“이 정도면 진짜 잘하는 거 맞죠?”
정지우는 계속해서 확인하는 김오영의 머리를 툭 쳐 주며 웃었다.
늘었다. 분명하게 성장했다.
사우디아라비아전을 마치고는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었던 선수들이 지금은 마지막까지 체력을 통제할 수 있는 수준이 된 거였다.
꼭 1년 남았다.
예선부터 단단하게 달려온 강호들을 상대하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한 시간이었지만, 월드컵에서 사고 칠 가능성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우리나라 국가대표 축구팀이 일본의 사이타마 스타디움에서 있었던 일본 국가대표 축구팀과의 평가전에서 박상민, 이정렬, 이재범의 연속골에 힘입어 4 대 0의 완승을 거두었습니다.』
밤이 늦도록 보도 채널은 연신 일본과의 평가전을 보도했고, 인터넷 매체들 역시 그에 뒤질세라 평가전의 이모저모를 계속해서 기사로 올렸다.
물론 혼다 케이스케와 정지우가 유니폼을 교환한 뒤에 굳게 악수하는 보도도 있었다.
그러나 대개는 ‘박용근, 일본 열도를 침몰시키다’라는 자극적인 제목을 단 기사들이 많았다.
기사마다 반응은 뜨거웠다.
[황재철] 일본전 감사합니다. 다음 경기도 부탁합니다.
[날라리겁뚱] 이 정도면 정지우 발롱도르 받아야지요.
[10년 숙성된 똥맛 사탕] 캬! 이길 줄은 알았지만, 보는 내내 두 손에 땀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우리 국가대표 선수들! 감사합니다! 아직도 심장이 벌렁벌렁합니다!
[김정아~서은&서희❤] 혼다~ 멋진 선수네요. 일본 선수가 아니라 국가대표 축구 선수답습니다. 다들 멋졌어요!
[일방통행] 일본도 다 야비하고 호전적인 잡놈들만 있지는 않을 거라 믿고 싶습니다.
[햇볕은 쨍쨍] 와! 정말~ 가슴이 뭉클한 경기였습니다.
[주군❤네오스] 5 대 0까진 안 갔네요? 박 감독님! 좀 봐주신 듯? 설마 본선에서도 잘해 주실 거죠?
[(까탈)예민아씨] 와 이리 좋노???? 와 이리 좋노???? 간호사가 주사를 팍팍 찔러도 참을 만큼 좋네(새로 왔나? 못 보던 얼굴이)
대강의 반응은 이랬다.
호텔로 돌아온 뒤에 박용근은 정지우를 불렀다.
좁은 방이다. 문을 열어 준 박용근이 정지우와 함께 조그맣고 작은 탁자로 움직였다.
창밖으로 어둠이 깔렸고, 건물들이 달고 있는 조명 사이로 자동차의 불빛이 흐르고 있었다.
박용근은 어쩐지 굳은 얼굴이었다.
“몸은 어때?”
“괜찮습니다.”
박용근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런 다음, 그는 나직하게 숨을 내쉬고서야 입을 열었다.
“쉬지 않고 달렸다. 악착같이 뛰었고. 네가 나를 비롯해 지키고 싶은 것들을 위해 그랬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너에게는 정말 필요한 것 한 가지가 부족하다.”
“알려 주시면 이번 휴식기에 제대로 훈련하겠습니다.”
정지우는 탁자에 놓았던 시선을 들어 박용근의 지시를 기다렸다.
“너는 쉬는 법을 배워야 돼!”
그런데 박용근이 픽 하고 웃으며 뜻밖의 답을 건네고 있었다.
“사람은 기계와 달라. 아니, 기계라도 쉴 때는 쉬고 정비도 해 주면서 돌려야지. 이렇게 몰아붙이기만 해서는 다음 시즌에 부상을 당할 위험이 커지는 거야.”
“쉬는 날 정도면 충분한 줄 알았습니다.”
“그런 날도 시즌 막판까지 훈련했었잖아.”
“오후에는 쉬었는데요?”
“이 녀석이?”
박용근은 이제야 넉넉하게 웃는 얼굴로 정지우를 대했다.
정지우를 직접 보았고, 움직이는 것을 살피고 나자 여유가 생긴 모양이었다.
“휴식기에는 일주일 정도 시간 만들어.”
“저요?”
“그래, 이 녀석아! 우리, 축구 떠나서 넷이서 펜션도 가고, 낚시도 하고, 그렇게 좀 쉬자.”
정지우가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자 박용근은 재미있다는 얼굴이었다.
“데이지라는 아가씨가 한국에 오겠다고 한 모양이더라. 이번에 영국 가면 부모님께 인사도 하기로 했다면서?”
“감독님? 누구에게 들으셨어요?”
“내가 이래도 귀가 커.”
박용근이 양손을 귀에 동그랗게 붙인 것이 웃겨서 정지우도 웃을 수밖에 없었다.
“지우야.”
“예, 감독님.”
“이제부턴 멀리 보고, 조금은 여유를 갖고 가자. 그리고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혼자 짊어지려 하지 말고, 꼭 셋이서 함께 나누기로 하고. 알았지?”
“예.”
짓궂은 눈길로 정지우를 바라보던 박용근이 ‘피곤할 텐데 이제 그만 건너가.’라고 말을 건넸다.
“쉬세요, 감독님.”
정지우가 인사하고 일어서서 문을 열었을 때, 마침 밖에 김문호가 와 있었다.
“오! 지우야!”
김문호는 무척이나 통쾌한 얼굴이었다.
“오늘 잘했다! 고맙다!”
정지우의 팔뚝을 다독인 그가 가서 쉬라며 연신 손짓해 주었다.
평가전이었다.
그런데도 축구 국가대표팀이 도착한 공항에는 월드컵 우승이라도 한 것처럼 팬들과 기자들이 몰려 있었다.
경찰과 공항 경비대원들이 손을 줄줄이 잡고 막아선 바깥에서 팬들이 쉴 새 없이 선수들을 향해 사진을 찍어 댔다.
간단하지만, 몹시도 거창했던 기자회견을 끝낸 정지우는 부천의 빌라로 향했다.
정지우 혼자였다. 박용근은 협회에서 해결할 일이 있어서 늦게 온다고 했었다.
벨을 누르자 급한 발걸음이 들리고, 전은주가 활짝 문을 열어 주었다.
“다녀왔습니다.”
영국에서 함께 살던 전은주다.
그런데도 그녀는 반가움에 눈을 붉게 물들인 채 정지우의 가방에 손을 뻗었다.
“어머니.”
당황해서 멈칫했던 전은주를 정지우는 조심스럽게 안았다.
“지금껏 지켜 주신 거, 정말 고맙습니다.”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아는 것이 있다.
정지우의 등을 다독여 주는 전은주는 분명 입을 삐죽이며 울먹이고 있었다.
“고맙습니다, 어머니.”
전은주가 정지우의 등을 꼭 안아 주었다. 이번엔 틀림없이 눈물을 흘리는 게 분명했다.
집에 들어간 박상민은 부친의 침대 옆에 앉아서 함께 과일을 먹었다.
“요즘은 밤에 잘 주무세요?”
“자리가 편한 데다, 제대로 치료받으니까 밤에 잔다.”
딱딱하고 어색한 답이었다. 하지만 그나마 돌덩이 같던 박상민 부친을 생각하면 엄청난 발전이었다.
“아버지, 저 아무래도 계약을 다시 하게 될 것 같아요.”
“감독님께 말씀드렸니? 허락받았어?”
“예, 아버지.”
곱은 손으로 과일을 깎아 놓으면서 모친은 연신 행복한 얼굴로 웃었다.
“어머니도 좀 드세요.”
“난 너만 봐도 배부르다.”
당최 박상민의 부친과 모친은 계약금 따위 관심도 없는 사람들 같았다.
“계약 말씀인데요.”
“감독님께 말씀드렸다면서? 무슨 문제라도 있냐?”
“그게 아니라요. 1년에 60억쯤 받을 것 같아요.”
“뭐? 언제까지?”
“언제까지가 아니라, 1년에 60억을 받는 조건이라구요.”
부친과 모친이 눈을 마주쳤다가 다시 시선을 돌렸다.
“감독님도 알고 계신 거지?”
박상민은 ‘네.’ 하면서 웃고 말았다.
사흘을 푹 쉰 뒤에 영국으로 돌아갔다.
영국에 도착한 다음 날, 정지우는 데이지의 양부모와 함께 저녁을 먹었다.
데이지가 선택한 남자가 정지우인 거다.
양부모는 대뜸 유니폼과 사인지를 들이밀었고, 이어서 사진을 찍느라 바빴다.
둘이서, 셋이서, 넷이서, 돌아가면서 포즈를 취한 뒤에도 관심은 계속해서 축구였다.
올 시즌 강팀들이 왜 밀려났는지, 다음 시즌은 어떨지에 대한 이야기들로 시간을 다 보냈다.
“우린 이만 호텔로 가야겠다.”
실컷 축구 이야기를 마쳤던 부친이 몸을 일으켜서 정지우를 향해 섰다.
“자네 이야기는 기사를 모두 보아서 듣지 않아도 대강 짐작하지. 릴리를 살려 낸 이야기, 그리고 성 마테오 병원에 브레드를 찾아간 이야기는 특히 감동적이고, 인상적이었네.”
부친의 옆에 선 모친이 정지우와 데이지를 부드러운 미소로 바라보았다.
“결혼은 신중하게 결정하게.”
“이미 결정했다니까요.”
“데이지보다 매력적인 여자는 세상에 절반쯤 있을 거야.”
“아빠!”
데이지를 힐끔 본 부친이 다시 시선을 가져왔다.
“그러니 결혼을 결심한다면 적어도 세상의 절반쯤 되는 여자가 유혹하더라도 절대 흔들리지 않겠다는 각오가 있어야 하고, 그 어떤 고난과 위기가 오더라도 자네의 두 팔로 가정을 지켜 낼 각오가 있어야 하지.”
부친은 답을 원하는 눈빛이었다. 지금껏 축구 이야기만 떠들던 것과는 전혀 다른 표정이기도 했다.
“세상의 그 어떤 유혹과 고난, 고비에서도 반드시 데이지와 우리 둘이 만들 가정을 지켜 내겠습니다.”
데이지가 먹먹한 눈으로 정지우를 보았고, 모친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는데, 부친은 아직 무언가 부족한 얼굴이었다.
“어떻게 말인가?”
정지우가 픽 웃으며 양팔을 넓게 벌리자, 그제야 부친이 만족한 듯 웃었다.
“우리가 가슴으로 낳은 아이일세. 똑똑하고 영리하지만, 고집은 좀 있지. 잘 부탁하네.”
부친이 내민 손을 정지우가 공손하게 마주 잡았다.
한국에는 조용하게 움직였다.
물론 눈치챈 기자들도 있었는데 다들 약속이나 한 것처럼 단신으로 짧게 처리했지, 인터뷰를 하자고 매달리거나 붙잡지는 않았다.
새로운 시즌에는 리그 경기 외에 챔피언스 리그에 대비해야 했으며, 리그가 끝난 뒤에 바로 월드컵을 준비해야 했다.
유니온 시티는 정지우와 동기들을 위해 직원 한 명을 한국으로 보냈다.
혹시 휴가 기간에 아쉬운 점이 있거나 컨디션에 문제가 생기면 바로 조치할 수 있게 한다는 설명이 있었지만, 선수를 지키겠다는 쥬피터의 강한 의지가 반영된 배려인 게 분명했다.
[자네가 없으니까 레드 블레이트가 너무 허전해. 그래, 휴가는 좀 즐겼나?]
마틴은 이틀에 한 번쯤, 정지우에게 전화를 걸어 엉뚱한 소리를 하다가 끊곤 했다.
정지우는 부천의 빌라를 나섰다.
“어디 가니?”
“그냥 한 바퀴 둘러보려구요.”
“그래. 다녀와.”
“예. 한 시간쯤 걸릴 것 같아요.”
정지우가 나간 현관을 보며 전은주가 미소 지었고, 소파에 앉아 있던 박용근은 픽 하고 웃었다.
쉬라고 붙들었더니 저렇게 몰래 나가서 달리고 들어온다.
창으로 들어온 햇살에 열기가 짙어지는 계절이었다.
전은주는 주방으로 움직여 주전자에 물을 담았다.
“여보? 차 마실래?”
“그럴까?”
박용근이 듬직한 덩치로 움직여서는 주전자를 올려놓는 전은주를 뒤에서 살포시 안았다.
“왜 이래?”
“고마워서 그래.”
전은주가 ‘이렇게 행복하게 해 줘서 나도 고마워.’ 하고 답을 한 다음이었다.
박용근이 조그만 전은주의 몸을 꼭 안아 주었다.
“우리 아들, 참 대단하지?”
박용근이 질문했고,
“그러- 엄.”
전은주가 분명하게 답을 했다.
작품 후기
안녕하세요?
그라운드의 지배자 작가 무장입니다.
부족한 작품을 끝까지 성원해 주신 독자님들께 먼저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개인적으로 박지성 선수를 정말 좋아했습니다.
그 덕분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알게 되었고, 점점 발전해서 영국 프리미어리그를 매주 시청하는 마니아가 되었습니다.
갓 오브 블랙필드를 연재하면서도 제게 유일한 낙은 주말마다 영국 축구를 보는 것이었습니다.
한 번은 ‘매주, 매번 같은 팀들이 돌아가며 하는 축구가 어떻게 이렇게 재미있을 수가 있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때 퍼뜩 얼개가 떠올라 처음 세 편을 앉은 자리에서 썼었습니다.
이왕이면 스트라이커가 떠올랐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은데, 불행하게 제 머릿속에 그려진 주인공은 포지션이 골키퍼인 정지우였습니다.
B급 정서를 지닌 부족한 글쟁이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다른 것을 잘 표현하지 못해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이 부족한 글쟁이는 늘 ‘작은 이야기’ 소설에 바람에 실린 계절 냄새만큼이라도 사람의 냄새가 담겨 있어야 한다고 믿고, 또 그런 글이 재미있습니다.
뜬금없지만, 경기를 승리로 이끌 수 없는 골키퍼 포지션이 제게는 어머니와 같은 느낌이었다.
세상의 온갖 험한 일들에 맞서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팔을 넓게 벌리고 서 있는, 그래서 점점 더 강해지고 독해질 수밖에 없는 우리 어머니들의 모습과 골키퍼는 그렇게 비슷한 감정으로 제게 다가왔습니다.
물론, 결과는 슬프게도 보신 것처럼 초지일관 뱀 머리에 뱀 꼬리로 끝나는 바람에 부족한 재능을 다시 확인하는 것이었습니다.
글을 마치면 늘 고맙고 감사한 분들이 떠오릅니다.
항상 댓글로 응원해 주신 독자님들.
편집자로 글이 어려울 때, 흔들릴 때, 쉼 없이 조언해 주던 설화객잔의 화운 작가, 이 부족한 글을 홍보하며 간혹 아쉬운 설정을 조언해 주던 마루출판사의 권용희 이사, 늘 힘겨워하던 교정 팀 최상미 과장, 그리고 개인적인 감성이 마르지 않도록 애써 준 무아 작가에게 이 자리를 빌려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부족한 재능을 메울 길은 쉬지 않고 쓰는 것이라 믿습니다.
로맨스 두 편을 공동 집필한 뒤, 늦어도 올해 8월까지는 갓 오브 블랙필드 2부로 찾아뵙겠습니다.
지금껏 응원해 주시고, 끝까지 함께 정지우와 동기들, 그리고 부족한 이야기를 지켜봐 주신 독자님들께 다시 한 번 고개 숙여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고맙고 감사합니다.
행복한 날들 되세요.
무장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