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라운드의 지배자-261화 (261/262)

제9장. 영광이지! (1)

하늘 위에서 떨어지는 것처럼 공이 날아왔다.

손을 뻗쳐도 절대 걸리지 않을 것처럼 멀찍이서 날아왔고, 골대 밖으로 빠져나갈 테니 안심하라는 듯 여유 있게 떨어졌다.

안다. 훈련했다.

저러다가 느닷없이 뚝 떨어지며 들어온다는 것을.

훈련하지 않았다면 이쯤에서 안심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이익!’

정지우는 좀 더 허리를 뒤로 꺾으며 공이 떨어질 각도를 향해 손을 뻗었다.

‘준석아! 도와줘!’

처음이었다.

날아오는 공을 보며 누군가에게 도움을 부탁한 것은.

이쯤에서 몸을 비틀어야 부상이 없다.

‘제발! 좀!’

그런데도 정지우는 몸이 떨어지는 순간까지 팔을 뻗었다.

‘제발!’

터억! 철퍼덕!

“와아아-!”

『우와-! 정지우! 정지우가 막아 냈습니다!』

퍼어엉!

정지우의 손에 맞고 떨어진 공을 신준석이 냅다 걷어 냈다.

“와아-!”

공은 박상민이 잡았다.

『박상민! 단독 드리블! 일본 선수들 황급히 달리고 있습니다! 수비 넷! 공격 넷!』

『서둘러야죠! 바로 연결해야죠!』

투욱!

박상민의 선택은 왼쪽의 김오영이었다.

“와아아-!”

김오영은 공을 잡기 무섭게 골대를 향해 방향을 틀었고, 무섭게 달렸다.

하야시 아키히로 골키퍼가 뛰어나왔고, 뒤늦게 달려온 후지하루 히로키가 김오영에게 달려든 순간이었다.

투우욱!

골키퍼를 노려본 상태에서 김오영이 페널티 에어리어 중앙으로 공을 흘려주었다.

『박상민! 우리 박상민입니다!』

『쏴야죠! 저건 걸렸어요! 박상민입니다!』

하야시 아키히로가 다급하게 중앙으로 움직였고, 하라구치 겐키와 쇼지 겐이 박상민의 슈팅을 막기 위해 몸을 던졌다.

모두가 슈팅이 나온다고 믿었던 그 순간,

투욱!

박상민은 수비수 둘을 빼돌리고 오른쪽으로 공을 흘렸다.

와락!

페널티 라인을 타고 흐르는 공을 향해 이정렬이 뛰어들었다.

『오오-!』

『이정렬! 하야시 아키히로!』

콰아아악!

다급한 야미구치 호타루가 이정렬의 앞으로 몸을 던진 직후였다.

커다랗게 뛰어든 이정렬이 커다랗게 슈팅을 날릴 것처럼 오른발을 뒤로 젖혔다.

『이정렬! 슈우- 웃!』

투욱.

그런데 공은 옆으로 흘렀다.

『아-!』

슈팅이 빗맞은 줄 알았던 해설자가 탄식을 토해 낼 때였다.

오른쪽 골대 앞으로 흐른 공을 향해 이재범이 무섭게 뛰어들었다.

박상민이 주었던 공을 놓쳤던 그 이재범.

투우욱!

수비수들이 빠른 패스에 속아서 바닥에 줄줄이 몸을 던진 상태였고, 골키퍼는 이정렬의 발동작에 속아 반대쪽으로 기울어진 다음이었다.

철러- 엉!

“와아아아아아-!”

『골! 대한민국! 골! 골! 골! 고오- 올!』

『골도 골이지만 연결이 기가 막혔어요! 이런 연결을 보면서 누가 감히 우리를 얕보겠습니까! 세계 어느 팀이 이런 연결을 막아 내겠습니까! 이거죠! 이겁니다!』

골을 넣은 이재범이 달리던 탄력으로 골대를 가로질러 코너 플래그를 향해 뛰었다.

『굉장합니다! 오늘 세 골이 나왔는데요, 첫 골은 박상민 선수의 개인 능력, 두 번째 골은 박상민에게서 이정렬로 이어진 전형적인 골! 마지막은 역습에 이은 환상적인 패스로 이재범이 성공했어요! 우리 팀! 강합니다!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재범은 중앙에 있는 우리나라 응원단 앞까지 그대로 달려서 한국 응원단을 향해 양팔을 위로 들어 보였다.

“와아아아-!”

펄쩍펄쩍 뛰며 좋아하는 우리 관중들 앞에서 선수들이 머리와 등을 두드리고, 겨우 응원을 시작하던 일본 관중들은 다시 침묵에 빠져들었다.

“벌금 맞고 싶냐?”

정지우는 근처에 남아 움직이지 않는 신준석을 향해 농담을 던졌다.

“너 다쳤지?”

“괜찮아.”

“뒤로 그대로 떨어졌잖아! 바로 못 일어나고 시간을 끈 것도 그렇고!”

“멀쩡하다니까!”

신준석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시선을 돌린 곳에서 박용근이 비슷한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느린 그림이 다시 나왔다.

혼다 케이스케가 작정하고 제대로 감아 찬 슈팅을 향해 정지우가 높이뛰기 선수처럼 점프했고, 가까스로 쳐 낸 공을 신준석이 바로 걷어 냈다.

박상민이었다.

공을 받은 박상민은 중앙선 아래에서 일본의 페널티 에어리어까지 일직선으로 달렸다.

일본 선수들이 고통스럽게 박상민의 옆을 달리는 모습이 화면에 고스란히 나왔고, 그 순간에 박상민이 왼쪽으로 연결, 공을 받은 김오영이 방향을 튼 다음 수비수 한 명을 달고 다시 패스.

뛰어든 박상민이 수비수 둘을 달고 오른쪽으로 흘렸고, 이정렬이 마지막 남은 수비수와 골키퍼를 완전히 속이고 공을 흘려주었다.

이재범이 정말 침착하게 툭 차 넣은 공이 제대로 꽂힌 거였다.

정지우는 등을 천천히 뒤로 젖혔다.

‘끄응.’

비틀며 떨어졌어야 했다. 그런데 그 타이밍에 몸을 비틀면 공을 끝까지 막아 낼 자신이 없었다.

“준석아!”

“뭐!”

선수들이 중앙선을 중심으로 서고 있어서 신준석은 이미 제 위치를 향해 몸을 돌린 다음이었다.

“고맙다! 오늘 너 최고다!”

“야! 휴대폰 만드는 대기업 회장이 납품 업체 사장 보고 너 돈 좀 번다며? 하는 거 같다!”

정지우는 픽 웃고 중앙선을 향해 몸을 돌렸고, 신준석은 빠르게 제자리로 뛰었다.

삐이익!

경기가 다시 시작되었다.

『정지우 선수가 골을 막았을 때 신준석 선수의 위치가 절묘하지 않았습니까? 그쪽으로 공이 올 걸 알고 있었던 것 같았는데요! 함께 훈련해서 알아챌 수 있었던 걸까요?』

『그런 면도 있구요! 아무래도 신준석 선수가 그만큼 발전한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거겠죠?』

“오오-! 오오! 오오오! 오오-! 오오! 오오오!”

『5천여 명의 우리 응원단이 6만에 달하는 일본 응원단을 압도하고 있습니다! 여기는 일본의 사이타마 스타디움입니다!』

시간은 매정하다.

아무리 매달려도, 빨리 가라고 악을 써 봐도 늘 일정하게 흐른다.

후반 정규 시간이 10분쯤 남자 일본의 플레이가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콰아악! 콰다당!

터치라인을 따라 달리던 이재범을 오카자카 신지가 들이받는 바람에 녀석이 라인 밖의 에이 보드에 처박혔다.

삑! 삑! 삑!

박영길과 선도민을 박상민이 등으로 막고 손을 펼쳤고, 신준석이 빠르게 쓰러진 이재범에게 달려갔다.

『우리 선수들! 흥분하면 안 됩니다! 엉뚱한 판정에 당할 수도 있어요! 박상민과 신준석! 역시 노련하게 잘 대처하고 있습니다!』

주심은 오카자카 신지를 불러서 옐로카드를 높다랗게 들었다.

“우우-!”

일본 관중들의 야유가 쏟아지면서 경기가 계속되었다.

투욱!

이재범은 공을 박영길에게 패스했다.

박영길이 수비수 강서준에게 공을 넘겼는데, 그때 일본 선수들이 작정한 것처럼 일제히 밀고 올라왔다.

“서준아! 야!”

박상민이 손으로 정지우를 가리켰다.

툭!

강서준의 패스가 약했다.

“와아아-!”

일본 선수들이 더욱 맹렬하게 달려들었고, 정지우가 이를 악물고 뛰어나갔다.

투우우욱!

정지우가 한발 빨랐다.

부딪칠 뻔한 것을 아슬아슬하게 피한 정지우가 몸을 빼냈을 때였다.

“와아아-!”

느닷없는 한국 응원단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박영길과 2 대 1 패스를 받은 신준석! 그대로 터치라인을 따라 달립니다! 일본 선수들! 급하게 들어오고! 신준석 아직 달립니다!』

오카자카 신지가 뻗은 팔을 신준석이 다부지게 뿌리쳤다.

패스할 줄 알았다. 신준석이 달린 거리를 생각하면 지금은 패스해야 했다.

와락!

그런데 신준석은 일본의 오른쪽 코너 플래그를 향해 계속 치고 달렸다.

이정렬, 박상민, 김오영, 이재범이 신준석을 돕기 위해 뛰었고, 혼다와 가가와, 우사미를 제외한 일본 선수들이 수비를 위해 급하게 달렸다.

와락!

일본 진영 중간쯤에서 요시다 마야가 신준석을 막아섰다.

툭!

“와아아-!”

정지우도 놀랄 정도로 신준석은 무모했다.

마주 선 요시다 마야의 옆으로 공을 툭 차 놓은 신준석은 그를 피하는 것처럼 골대를 향해 달렸다.

『신준석! 혼자서 일본 진영을 완전히 뒤집습니다!』

몸을 돌려 달려온 요시다 마야가 신준석을 따라잡는 순간이었다.

골대 앞을 슬쩍 본 신준석이 공을 툭 하고 띄워 올렸다.

『신준석! 크로스! 오-!』

『이정렬이에요! 이정렬!』

터어엉!

높다랗게 떠오른 이정렬이 크로스바 위에서 내리찍는 것처럼 통쾌한 헤더를 날렸다.

급하게 손을 뻗은 하야시 아키히로가 쓰러지는 것처럼 몸을 날렸지만, 공은 왼쪽 구석을 향해 제대로 꽂혔다.

철러- 엉!

『골입니다! 골! 일본 진영을 일직선으로 뚫은 신준석의 통쾌한 돌파! 그 공을 받은 이정렬의 완벽한 헤더! 우리 대표팀! 이대로 월드컵 결승에 보내도 승리를 가져올 것 같습니다!』

호프집, 한강 공원, 상가, 아파트, 빌라, 호박 나이트, 사람들이 모인 곳마다 환호성과 함성이 터져 나왔고, 일어선 사람들이 옆에 있는 이들을 부여잡고 펄쩍펄쩍 뛰었다.

박영길에게 공을 차 준 신준석이 손을 발 앞으로 뻗으며 터치라인을 따라 달렸다.

박영길이 패스했고, 신준석은 그곳에서부터 일본 페널티 에어리어까지 일직선으로 달린 거였다.

어깨로 밀고 들어오는 오카자카를 제쳤고, 막아선 요시다 마야를 무모하리만치 단순한 방법으로 제친 뒤에 크로스까지 날렸다.

런닝 점프로 높다랗게 떠오른 이정렬의 머리에 공이 맞는 장면이 다시 보이는 순간,

“와아아아아아아-!”

모여 있던 이들이 또다시 커다랗게 함성을 지르며 펄쩍펄쩍 뛰었다.

『박용근 감독이 사우디아라비아전을 5 대 0으로 승리하지 않았습니까? 오늘 한 골만 더 넣어서 그때의 승리가 운이 아니었음을 증명했으면 싶습니다!』

『와아! 우리 선수들! 축구 했던 사람으로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경기를 다시 시작할 때는 정규 시간이 거의 끝나 있었다.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그라운드를 바라보는 일본 관중석 중간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는 여자 관중의 모습이 카메라에 길게 잡혔다.

삐이익!

주심이 휘슬을 울리자 혼다 케이스케가 강인하게 생긴 얼굴을 돌려 동료들에게 고함을 질러 댔다.

추가 시간은 5분이었다.

일본 팀이 전열을 가다듬는 것처럼 패스를 연결하자 카메라는 귀빈석을 비춰 주었다.

FIFA 회장과 부회장, 아시아 연맹의 임원들이 송인수와 무언가 대화를 나누고는 무거운 표정으로 그라운드를 바라보는 장면이 고스란히 화면에 담겼다.

『일본 방송 카메라가 솔직한 장면을 많이 담아 냅니다! 저럴 때는 무슨 대화를 나눌까요?』

앵커는 확실히 여유 있고 자신 있는 태도였다.

경기장의 골대에 몰려 있는 기자들의 모습이 확연하게 달라졌다. 경기 초반만 해도 한국 팀의 골대 뒤에 몰려 있던 기자들이 이제는 일본 측의 뒤편에 진을 치고 있었다.

프레스 센터에서는 외국 기자들이 한국 기자들을 향해 연신 엄지를 치켜들며 대단하다는 감탄을 손짓으로 표시했다.

프레스 센터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에 4 대 0이란 숫자가 뚜렷하게 올라와 있었고, 일본 선수들이 오히려 시간을 끄는 것처럼 공을 돌렸다.

『추가 시간이 3분 남았습니다! 일본! 이대로 경기를 끝내고 싶은 것처럼 공을 돌리며 나오고 있지 않습니다!』

『경기를 뒤집는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거든요. 한 골이라도 만회하고 싶을 텐데요, 지금의 일본 팀은 만회골보다 추가 실점이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모습이네요.』

실제로도 이정렬과 이재범, 김오영이 달려들면 일본 선수들은 아예 골키퍼에게 공을 빼 버릴 정도로 소극적인 플레이를 하고 있었다.

정지우는 마지막까지 공에서 시선을 놓지 않았다.

완벽한 승리를 원하는 경기다. 휘슬이 울리기 직전까지 절대 방심하지 않을 거다.

일본 진영에서 움직이는 공을 따라 정지우가 몸을 트는 순간이었다.

삑! 삑! 삐이이익!

주심이 휘슬을 길게 불었다.

“와아아아아-!”

열광하는 한국 응원단 옆에서 일본 관중들이 침울한 표정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두 주먹을 불끈 쥔 선수들이 가까이 있는 선수들에게 달려가 기쁨을 나눌 때였다.

“솔직히 못 막을 줄 알았다.”

혼다 케이스케가 정지우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굉장했어! 우리의 마지막 기회를 완벽하게 막아 낸 세이브였거든! 유럽이든, 월드컵이든, 언제고 다시 한 번 만나자!”

영어로 전하는 그의 말이 진심처럼 느껴졌다.

정지우는 그와 손을 마주 잡고 어깨를 두드렸고, 웃어 주었다.

“한국 팀의 기합이 대단했다! 월드컵에서 아시아 팀끼리 좋은 성적이 나올 수 있도록 더 노력하자.”

얼굴을 빤히 본 상태에서 나눈 대화였다.

“유니폼을 바꿀까?”

정지우가 질문했고,

“영광이지!”

혼다 케이스케가 웃으며 답을 했다.

두 선수가 유니폼을 교환하는 장면이 화면 가득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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