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이게 동료다. 이런 게 한 팀인 거다. (2)
박상민을 주장으로 선임한 박용근은 준비했던 일본의 월드컵 예선 경기를 보여 주었다.
대개 인상적인 장면만 편집해서 보여 준 뒤에 주의할 점을 알려 주는 것과 다르게, 박용근은 전반 45분 경기를 그대로 지켜보게 했다.
오전 10시에 모여 방에 짐 풀고, 인사하고, 주장을 뽑느라 시간이 제법 흘러서 전반 경기를 다 보았을 때는 이미 점심시간이었다.
박용근이 손짓을 하자 미팅룸이 다시 밝아졌다.
“김오영.”
“예, 감독님.”
박용근이 불렀고, 김오영이 자세를 고치며 얼른 답을 했다.
“일본의 수비를 뚫을 방법은?”
“예?”
“전반을 보며 느낀 일본 수비의 약점, 그리고 네가 경기에 있었다면 어떤 식으로 공격을 주도했을지에 대해 말해 봐.”
“그게…….”
김오영은 답을 제대로 못하고 뒤통수를 만졌다.
“이재범.”
“예.”
“너는?”
그나마 이재범은 김오영을 보며 떠오른 것이 있는 모양이었다.
“일본은 수비에서부터 짧은 패스를 연결해서 경기를 풀려고 합니다. 전방에서부터 강한 압박을 펼쳐 패스 줄기를 차단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 같습니다.”
박용근이 만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노경래.”
“예, 감독님.”
“공격수들이 강한 압박을 실행한다. 그렇다면 미드필더들은 어떻게 움직여야 하지?”
“라인을 올려서 공격수들을 도와줘야 합니다.”
박용근이 입을 내밀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랬다가 긴 패스로 중간이 뚫리면?”
마치 수학 문제를 받아 든 학생처럼 노경래는 뒤통수를 긁어 댔다.
“박상민, 네 생각은?”
“공격수와 미드필더들이 쉴 새 없이 포지션을 바꿔 주는 게 어떨까 싶은데요? 일본의 수비수들이 공을 뿌리기 전에 전방 압박. 그 사이로 패스가 나왔을 때 미드필더들이 다시 압박. 미드필더들이 버티는 그 시간에 공격수들이 뒤를 지켜 주면 충분히 효과가 있을 거 같습니다.”
영국에서 저녁마다 하던 토론의 효과가 완벽하게 나타난 장면이었다.
김오영과 노경래, 이창진, 이재범이 놀란 눈으로 박상민을 돌아보았을 때였다.
“이런?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우선 식사부터 하자.”
박용근의 지시에 우르르 일어나서 식당으로 향했다.
“형! 그럼 공격수들은 평소보다 얼마나 더 뛰어야 하는 거예요?”
“사우디아라비아전 정도만 뛰면 충분할 것 같은데?”
“스위칭을 위아래로만 할 수는 없잖아요?”
“소속팀에서도 다들 하는 거잖아. 호흡만 맞으면 별로 어려울 것도 없어.”
미드필더들과 공격수들이 박상민 주변에 몰려서 이런저런 질문을 해 댔고, 주길성, 김범주, 강서준은 신준석에게 붙어서 궁금한 것들을 쏟아 냈다.
“태섭아!”
“예!”
강태섭이 얼른 정지우에게 다가왔다.
“뭘 그렇게 딱딱하게 그래? 같이 밥 먹자.”
강태섭은 어쩐지 정지우를 어렵게 대하는 느낌이었다.
식사다.
박용근과 코칭스태프들이 함께하는 점심.
“형! 맨유나 첼시, 리버풀, 맨시티는 어떤 느낌이에요?”
식판에 음식을 담은 강태섭이 정지우의 맞은편에 앉으며 질문을 던졌다. 못 들은 척하지만, 주변에 있던 선수들의 시선이 슬쩍슬쩍 날아들었다.
“내 생각엔…….”
이정렬과 신준석이 대놓고 정지우를 바라보며 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 우리 팀이 6개월만 함께 훈련하면 충분히 유니온 시티만큼 해낼 거라고 생각해. 유니온 시티에 스타플레이어가 있는 건 아니잖아. 오죽하면 상민이가 스타겠냐?”
“그건 아니다!”
박상민이 볼멘소리로 대꾸하는 바람에 실없는 웃음이 나왔다.
“정렬이, 상민이, 준석이, 나. 이렇게 앞에서부터 한 줄로 서 있는 모양새거든.”
젓가락으로 밥을 뜨며 정지우는 말을 이었다.
“우리 넷 중에 가장 중심을 잡아 준 게 준석인데.”
어느새 정지우의 말에 집중하던 선수들이다. 그중에서 특히 수비수들의 시선이 일제히 신준석을 향했다.
“나를 지켜 주고, 상민이에게 공을 연결하고, 상대 공격수를 밀착 마크하고, 마지막으로 공격을 지원해 주었으니까.”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나 싶은 얼굴로 코칭스태프마저 정지우를 바라보는 앞이었다.
“우리 모두 똑같이 뛰면 돼. 각자 맡은 포지션에서 뒤편의 선수를 지켜 주고, 동료에게 공을 연결하면서, 공격을 지원해 주면 이번 평가전은 충분히 해 볼 만해.”
선수들의 눈이 반짝하며 빛났고, 묘한 자신감이 올라왔다.
“그럼 넌?”
“내가 고함을 질러 줘야 네가 좀 더 뛰지.”
장난기 담긴 신준석의 질문을 정지우가 느긋하게 받았다.
일부러 말을 많이 하는 거다.
그런데도 어쩐지 아직은 무언가 부족해서 푸석푸석하게 느껴지는 분위기였다.
점심을 먹은 후에 한 시간쯤 쉬었다.
다시 한 시간에 걸쳐 후반을 보았고, 짧은 토론을 마친 뒤에 다 같이 그라운드로 나섰다.
몸풀기 수준의 달리기, 그리고 점프와 장애물 통과, 마지막으로 패스와 헤더 연습, 그게 전부였다.
삐이익!
“오늘은 여기까지만 한다!”
박용근은 오후 5시에 훈련을 마쳤다.
뭔가 특별한 훈련을 기대했던 모양인지 선수들은 ‘이게 다야?’ 하는 표정이었다.
샤워하고, 저녁 식사를 마쳤다.
밥을 먹고 나자 7시쯤 되었다.
정지우는 미팅룸으로 향했다.
당연하게 박상민과 이정렬, 신준석이 함께했고, 하나둘 합류하더니 결국 모두가 자리에 앉았다.
일본의 다른 예선 경기였다.
박용근이 없어서였을까?
오전보다 활발한 질문과 답이 오갔다.
훈련 첫날은 그렇게 지나갔다.
다음 날은 박용근 특유의 빠른 공격 훈련이 있었다.
“선도민! 그렇게 공을 끌면 늦어!”
유니온 시티 초창기의 느낌이었는데, 그나마 동기들이 있어서 적응이 좀 더 빨랐다.
한 시간에 걸친 훈련이 끝나고 휴식 시간이었다.
신준석은 주길성, 김범주, 강서준과 함께 골대 뒤편으로 움직였다.
“너희는 너무 수동적으로 움직여.”
골대의 뒤편이다.
당연하게 근처에 있던 정지우와 강태섭도 신준석의 앞에 앉아 그가 하는 설명을 들었다.
“봐! 골키퍼가 여기 있잖아. 아까처럼 기습이 넘어오면 너와 골키퍼의 동선을 생각해. 슈팅을 날리는 선수는 우선 수비수를 피해서 킥을 날리려고 하잖아.”
신준석이 왼손과 오른손의 손가락을 이용해 위치를 설명했다.
“골키퍼가 막을 공간을 확보해 줘야지. 왼쪽에서 치고 달리는 공격수는 왼쪽으로 더 몰아야 하고, 오른쪽 역시 그 방향으로 더 밀어야 돼. 그럼 골키퍼는 남는 방향만 막아 주면 되는 거지.”
프로 생활을 하는 수비수라면 다들 아는 내용이었다. 그런데도 녀석들은 신준석의 설명을 고개를 끄덕여 가며 들었다.
“1번, 모든 공격수는 가장 먼저 수비수 가랑이 사이를 노린다. 2번, 수비수를 피해서 공간을 찾는다. 3번, 상대 공격수가 주로 사용하는 발을 먼저 막는다.”
신준석이 고개를 들었다.
“4번, 달려드는 공격수에게서 절대로 몸을 빼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수비수라고 해서 수비만 하면 된다는 생각은 버린다.”
왜 저렇게까지 하지 싶을 정도로 신준석은 진지한 얼굴이었다.
“지우가 시작했고, 상민이가 인정받은 뒤에, 정렬이가 빛났지만, 단단한 수비 없이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신준석이 시선을 들었을 때 정지우는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우리는 미드필더까지 공을 건네주는 것이 공격인 거야. 급해서 뻥뻥 내지를 때도 있겠지만, 우리는 상대의 공을 완벽하게 차단해서 미드필더에 빠르게 넘겨줄 때 임무를 다한 거다.”
휴식 시간이 끝나는 것을 알리는 휘슬이 길게 불었다.
“다 아는 말을 잔소리처럼 해서 미안한데, 어쩐지 사우디아라비아전에서 보였던 투지가 보이지 않아서 나선 거야. 길성아!”
“예.”
같은 고등학교를 나온 주길성은 정지우, 박상민, 이정렬, 신준석이 어렵다. 지금까지도.
“일본 팀의 실력이 겁나냐? 질까 봐?”
“아뇨.”
엉덩이를 털며 일어선 신준석이 정지우를 향해 시선을 주었다.
“지우가 있어. 이런 골키퍼를 두고 기록적인 승리를 이루지 못한다면 우리 너무 바보 같지 않겠냐? 우리 실수로 골을 잃는 것도.”
“나는 왜 걸고넘어져?”
“이럴 땐 그냥 넘어가!”
신준석다운 능청스러운 대꾸를 끝으로 다시 훈련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박용근이 놀란 눈으로 수비수들을 돌아보았다.
퍼어엉!
기습 공격을 막는 역할이었다.
박상민에게 연결된 공을 이정렬이 받았는데, 김범주와 강서준이 독해 보이는 눈을 하고 달려들고 있었다.
“더 밀어붙여!”
신준석이 고함을 질렀고,
“길성아! 야! 오른쪽! 좀 더!”
정지우는 빈자리를 어떻게 메워야 하는지에 고래고래 악을 써 댔다.
결국 슈팅은 이뤄지지 못했다.
“이거 봐?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이정렬이 독 오른 얼굴로 달려들면서 김오영과 이재범이 좀 더 악착같이 뛰기 시작했고, 박상민을 비롯한 미드필더진 역시 더 빠른 패스를 연결할 수밖에 없었다.
삐익!
휘슬이 울리면 공이 박상민에게 연결되었고, 그 순간 이정렬과 김오영, 이재범이 달려들었다.
“나가! 범주야! 나가라고!”
정지우가 고함을 질러 댔고, 신준석이 이재범을 악착같이 따라붙었으며, 주길성은 김오영을 거칠게 막아섰다.
퍼어엉! 화아아악! 털썩!
“와아아-!”
짝짝짝짝짝짝짝!
미드필더들과 지켜보던 스태프들이 박수를 보내 줄 정도로 환상적인 수비였다.
한 시간이 훌쩍 넘도록 정지우는 빈틈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결과는 결국 한 골도 나오지 않았다.
삐이이익!
한 시간 반쯤 훈련을 한 뒤에야 박용근은 종료 휘슬을 불었다. 점심을 위해 식당으로 들어갈 때 분위기가 많이 바뀌어 있었다.
“정렬아! 오후에는 태섭이 골대에 세울 테니까 내기할래?”
“내기? 무슨 내기?”
“슈팅 숫자와 골 숫자 비교해서 진 팀이 아이스크림 사기.”
“뭐야? 너무하는 거 아냐?”
“할 거야? 말 거야?”
“하지! 해!”
아이스크림 따위 중요한 게 아니었다.
짧은 시간에 팀워크를 다시 끌어 올려야 했다. 거기에 이상하게 가라앉는 분위기도 이끌어야 했고.
신준석이 수비수들을 부른 것과 이정렬이 독 오른 표정을 짓는 것, 정지우가 내기를 제안한 건 모두 그런 의미였다.
공격수 셋이 한 팀, 수비수 넷과 골키퍼 한 명이 한 팀.
점심을 먹는 동안 이리저리 모여서 의논하느라 밥을 어떻게 먹는지도 제대로 모를 지경이었다.
“준석아! 내가 태섭이 뒤에서 각도를 잡을 테니까, 네가 앞쪽만 제대로 막아.”
“아이스크림 먹자! 정렬이가 사는 거로!”
심지어 점심 휴식 시간에 따로 모여서 작전까지 짰다.
“우리는?”
“주장은 구경만 하세요.”
“너무한다?”
박상민의 질문에 신준석이 답을 했다.
박용근이 왜 이러는지를 모를 리가 없었다.
“상민아, 오후 마지막 훈련은 미니 게임으로 할 테니까 그때 우리 아이스크림도 부탁한다.”
“예! 감독님! 맡겨 주십시오!”
분위기가 점점 달궈지고 있었다.
훈련 시작이었다.
퍼어엉!
박상민이 공을 날려 주면,
와락! 와라락!
수비수 넷이 멋지게 막아섰다.
정지우는 골대 그물 뒤편에 있었다.
“태섭아! 왼쪽! 왼쪽이야!”
퍼어엉! 화아악! 털썩!
“예- 쓰!”
강태섭이 멋지게 막아 내자 수비수들이 일제히 달려와 녀석의 머리를 두드려 주고 다시 자세를 잡았다.
“이번엔 반드시 넣자!”
이정렬의 고함이 그라운드를 울릴 때였다.
훈련을 보기 위해 들른 김문호가 박용근의 곁으로 다가왔다.
“얘들 뭐야? 왜 이래?”
그라운드를 달리는 선수들의 눈빛이 장난이 아닌 거였다.
“어때? 이 정도면 해 볼 만할 거 같은데?”
“정렬이가 저 정도였어? 움직임이 전과는 완전히 다른데?”
“저거 봐! 오영이 파고드는 거!”
“이야! 이 자식들이 하루 만에 어떻게 이렇게까지 되나? 자네, 이러다 정말 세계적인 감독 반열에 오르는 거 아냐? 그때는 나 절대로 잊으면 안 돼.”
농담을 던지면서도 김문호는 그라운드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나가! 나가!”
정지우가 커다랗게 악을 썼고,
“서준아! 앞! 재범이 끝까지 그냥 따라가!”
신준석이 손짓까지 하며 고함을 질렀다.
“태섭아! 오른쪽! 더!”
퍼어엉! 화아악! 털썩!
“예에에에-!”
김문호는 입이 벌어진 것도 모른 채 훈련에 완전히 시선을 뺏겼다. 그래서 그는 박용근이 자신을 보며 웃고 있다는 것도 전혀 알지 못했다.
“이거 사고 치겠는데? 그렇지? 박 감독?”
정신이 퍼뜩 돌아온 것처럼 고개를 돌린 김문호가 놀란 눈으로 박용근을 보았다.
한 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게 훅 지나갔다.
삐이익!
결과는 신준석 팀의 승리였다.
웃기는 것은 가장 흥분한 얼굴을 한 선수가 골키퍼 강태섭이라는 거였다.
“잘했다!”
“형! 보여요! 슈팅 타이밍! 각도! 다요!”
정지우는 녀석의 머리를 툭 하고 쳐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