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라운드의 지배자-254화 (254/262)

제6장. 이게 동료다. 이런 게 한 팀인 거다. (1)

박용근과 정지우, 신준석, 박상민, 이정렬의 입국이었다.

런던에서 날아오는 길이다.

비행기에 함께 탄 한국 팬들은 물론이고, 덩치가 커다란 영국인부터 미모를 빛내는 아가씨들까지 사진 한 장 같이 찍고 싶다며 달려들었다.

“정지우 선수, 죄송한데요, 사진 한 장 함께 찍어도 돼요?”

승무원들도 다르지 않았다.

정지우와 동료들 사이에서 V 자를 그려 낸 승무원이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는 기쁜 얼굴로 돌아갔다.

“너 왜 그러냐?”

“뭘?”

“평소에 팬들을 그렇게 챙기던 네가 어째 사진 찍는 게 부자연스러우니까 그렇지.”

“내가?”

신준석을 향해 장난스럽게 웃어 보인 정지우는 의자에 몸을 기댔다.

“한국에서 정신 팔리면 안 돼요.”

“내가요?”

“그래요. 한국 여자들은 다들 모델 같잖아요. 화장도, 옷도 세련되고.”

정지우는 한국으로 출발하기 전날 데이지와 나누었던 키스를 떠올리며 씨익 웃었다.

“이거 봐? 너 뭐 있지?”

확실히 신준석은 날카롭다.

“좋아서 그래, 인마! 너희랑 감독님 모시고 이런 느낌으로 한국에 갈 줄 생각조차 못했어. 그래서 그래.”

“그건 그렇지.”

아직 의심을 떨치지 못한 눈을 하고서도 신준석은 순순히 답을 했다.

촤자자자자작! 촤자작! 촤자자자작!

“꺄아! 정지우!”

“상민 오빠! 사랑해요!”

입국장에 들어서는 순간 일행을 덮친 소리였다.

전은주가 웃음과 함께 돌아볼 정도로 박상민의 인기는 대단했다.

“신준석 선수! 파이팅!”

“이정렬 선수! 멋져요!”

동기 둘을 위로하는 것처럼 고함도 들렸다.

“일본 팀을 상대하는 각오를 들려주세요!”

“짧은 시간이지만, 동료들과 최선을 다해 준비하겠습니다.”

“일본은 정지우 선수에게서 세 골 이상을 뽑아낼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습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정지우는 먼저 가볍게 웃었다.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그냥 나온 웃음이었다.

“이번 한일전이 양 팀에 좋은 경험이 되길 희망합니다.”

기자들이 뭔가 도발적인 멘트를 원하는 것처럼 질문을 서너 개 더 던졌지만, 정지우는 계속해서 비슷한 답으로 넘어갔다.

질문이 박상민과 이정렬, 그리고 신준석에게 향한 다음이었다.

“정지우 선수! 정지우 선수!”

입국장 앞으로 엄청나게 몰려 있는 사람들 틈에서 누군가 종이 쇼핑백을 디밀며 정지우를 애처롭게 부르고 있었다.

정지우가 고개를 갸웃했다가 웃는 얼굴로 그에게 다가갔다.

“꺄아- 아!”

여고생인 듯한 팬들이 다가온 정지우를 보며 비명처럼 탄성을 지르는 앞이었다. 정지우를 불렀던 남자가 감격한 얼굴로 쇼핑백을 내밀었다.

“호프집 사장님이시죠?”

“나를 기억하세요?”

남자의 눈에 왈칵 눈물이 맺혔다.

“영국에서 경기하는 동안 힘들 때마다 생각났었어요. 응원 감사합니다. 보내 주신 과자도 잘 먹었구요.”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정지우 선수!”

선물을 보내 준 사람이 오히려 감동한 얼굴로 고맙다는 말을 연신 전하고 있었다.

“이거! 우리 정지우 선수에게 꼭 전해 드리고 싶었어요.”

공항에 나와서, 이런 사람들 틈에서 겨우 내민 선물이었다.

정지우는 호프집 사장이 내민 쇼핑백을 받아 들고 ‘고맙습니다.’ 하고 고개 숙였다.

뭔가 아쉽다.

그래서 정지우는 팔을 뻗어 호프집 사장을 가볍게 안아 주었다.

“꺄아-!”

비명이 터져 나온 뒤에 정지우는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아저씨! 정지우 선수랑 아는 사이예요?”

부러움이 가득 담긴 질문이 날아왔는데 호프집 사장은 대답도 하지 못했다.

공항에서의 회견에 한 시간 가까이 걸렸다.

박용근, 전은주, 정지우는 부천으로, 신준석과 이정렬은 그의 부모와 집으로 향했고, 박상민은 협회에서 배정해 준 차를 타고 평택으로 움직였다.

하루를 쉬고, 내일 파주에서 모이는 거였다.

박상민은 이사한 집에 처음 와 본다.

협회 차량을 타고 전에 살던 것과는 분위기가 다른 동네를 들어섰을 때였다.

<자랑스러운 평택의 아들 박상민!>

<호박 나이트가 박상민을 환영합니다!>

뜻밖의 걸개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이리저리 기웃거리며 집들을 살피는 박상민의 시선이 차창 저 너머에 딱 고정되었다.

끼이익-

차가 멈춘 다음이었다.

“와아-!”

박상민이 차에서 내리자 주변에 사는 이들이 탄성을 질러 댔다.

“아버지? 왜 나와 계세요?”

집 앞에 박상민의 부친이 있었다.

“집에서 기다리기 지루하다고 나오셨어.”

부친이 탄 휠체어 뒤에서 눈물이 그렁그렁한 모친이 얼른 답을 건네주었다.

“박상민 선수! 정말 자랑스러워요!”

“진짜로 보니까 잘생겼어요!”

주변에 있던 사람들의 응원이 들릴 때마다 모친은 입을 삐죽였다.

“피곤하지?”

“괜찮아요. 아버지는 정말 좋아지신 거예요?”

“나야……. 이렇게 좋지.”

“사진 좀 찍어 주세요!”

카메라를 들고 연신 박상민을 찍어 대는 사람들 틈에서, 아주머니 한 명이 초등학생쯤 돼 보이는 아들을 앞세우고 다가섰다.

모친에게 인사하는 모양으로 봐서 옆집에 살거나, 아는 사이인 것처럼 보였다.

박상민은 아이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

“이름이 뭐야?”

“승환이요. 유승환.”

“사진 찍을래?”

“예!”

쭈뼛대던 녀석이 커다랗게 답을 했다.

박상민이 유승환의 어깨를 짚은 자세로 서자, 그의 엄마가 서너 장의 사진을 연속해서 찍었다.

“고마워요! 박상민 선수! 아버지랑 어머니는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 동네 모두가 두 분을 챙길 거예요!”

아주머니의 말이 떨어지는 순간에 모친은 눈물을 왈칵 쏟았다.

챙겨 준다는 말에 그런 게 아니다.

아들의 저런 모습을 보자 고맙고, 감사하고, 뿌듯해서 그런 거였다. 박상민의 부친은 고개를 돌리고 자꾸만 눈을 껌뻑이고 있었다.

저런 아들 모습이 싫은 아버지가 있을까?

집에 들어선 이정렬은 방에 가방을 들여다 놓고는 소파로 나왔다.

“피곤할 텐데 한숨 잘래?”

“괜찮아요.”

이정렬이 소파에 앉자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어요.”

모친이 부친을 힐끔 보고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이정렬을 바라보았다.

“저를 위해 애쓰셨다는 거 알면서도 함부로 굴었어요. 죄송해요, 아버지.”

부친은 멍한 얼굴이었다.

“지우가 감독님께 하는 것 보고 알았어요. 제가 먼저 아버지께 뭘 원하는 건지 솔직하게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어요. 용서하세요.”

이정렬의 말이 끝났을 때도 부친은 말을 하지 못했다.

“저 방에 있을게요. 저녁 함께 먹을 거니까 혹시 자면 꼭 깨워 주세요.”

이정렬이 방으로 들어간 다음이었다.

“저놈이 언제 저렇게 훌쩍 컸지?”

부친이 혼잣말처럼 말을 꺼냈고,

“당신만 몰랐지, 쟤는 원래 저랬어.”

모친의 다부진 대꾸가 있었다.

부천의 집에 들어온 정지우는 박용근, 김문호와 함께 거실에 앉아 한일전을 의논했다.

“전에 사우디아라비아전 멤버들이 주축이니까 선수들 간의 문제는 없을 것 같은데, 준비 기간이 워낙 짧아서 그게 문제야.”

김문호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명단을 비롯한 몇 가지 자료를 건네주었다.

“돈이 좋은 건지, 일본 협회의 힘이 세진 건지는 모르겠는데 FIFA 회장과 부회장, 그리고 아시아 축구 연맹 회장단이 모두 관전한다네. 일본은 이 경기를 통해 자국 선수들을 해외에 알리는 계기로 삼겠다는 욕심도 있는 것 같고.”

박용근은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잘게 쪼개는 패스로 점유율을 높이는 것은 물론이고, 페널티 에어리어 바로 앞에서도 빠른 2 대 1이나 3 대 1 패스를 통해 슈팅을 노려.”

무시할 수 없다는 것처럼 김문호가 고개를 저어 댔다.

“일본이 해외파도 전부 소집하겠다는 것도 맞아?”

“독일과 이탈리아, 영국에서 활동하는 선수를 전부 불렀어. 솔직히 만만치 않은 전력인 거지. 월드컵 예선 성적도 그렇고, 당장은 아시아 최강이라고 불릴 만하지.”

30분쯤 이야기를 나눈 김문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피곤할 텐데 미안하다, 박 감독.”

박용근에게 인사를 건넨 그는 전은주, 정지우에게도 쉬라는 말을 남기고 빌라를 나섰다.

정지우는 그제야 공항에서 받았던 쇼핑백을 꺼냈다. 옷 가방에 넣어 두는 바람에 차에서 꺼내 볼 틈이 없었다.

“그게 뭐냐?”

“전에 호프집 사장님 말씀드렸었잖아요? 그분이 공항에 오셨더라구요. 그리고 이걸 주시고 가셨어요.”

정지우가 쇼핑백에서 꺼내 든 것은 유니폼이었다. 잘 개켜진 유니폼이 비닐 포장 안에 있었다.

비닐 위쪽을 연 정지우가 유니폼을 꺼내 들었다.

“어쩜!”

전은주가 감탄사를 터트렸다.

2002년도 국가대표팀 골키퍼 유니폼의 가슴 아래로 써진 글씨가 한눈에 들어왔다.

이럴 때 먹먹하다. 고맙다. 그리고 힘이 난다.

셋이서 잠시 유니폼을 바라보며 말이 없었다.

파주 NFC에 들어가는 입구에 기자들이 엄청나게 몰려 있었다.

역시 가장 관심을 받는 선수는 정지우였다.

촤자자자자작! 촤자자작! 촤자자자자작!

“정지우 선수! 입고 있는 유니폼은 뭔가요?”

“공항에 나오셨던 팬이 주신 건데요. 이거 보이세요?”

정지우는 유니폼의 앞을 잡아서 기자들 앞에 보였다.

촤자자자자자작! 촤자자자자작!

“실망하시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질문을 던질 틈 없이 정지우는 파주 NFC 안으로 들어갔다.

『월드컵 축구 국가대표 선수들이 파주 NFC에 모였습니다. 박용근 감독을 비롯한 선수들의 각오가 대단합니다. 보도에 이승주 기자입니다.』

화면이 바뀌어 파주 NFC로 선수들이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오늘 오전 10시, 박용근 국가대표 감독과 선수들이 파주 NFC에 모였습니다. 이번 훈련은 처음으로 해외 리그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이 모두 모인 첫 번째 훈련입니다.』

화면에 파주 NFC로 걸어오는 정지우가 나왔다.

『정지우 선수! 입고 있는 유니폼은 뭔가요?』

『공항에 나오셨던 팬이 주신 건데요. 이거 보이세요?』

정지우가 자랑스럽게 유니폼을 보이고는 웃는 얼굴로 들어가는 장면이 나왔고, 이어서 이정렬, 박상민, 신준석, 그리고 김오영, 이재범을 비롯한 선수들이 연속해서 화면에 나왔다.

『한국을 꺾고 월드컵 본선 출정식을 화려하게 치르겠다는 일본은 벌써부터 세계 축구계에 한국과 일본의 평가전을 홍보하고 있습니다. 우리 국가대표팀의 선전을 기원합니다.』

뉴스에 연일 국가대표 축구팀의 소식이 올라왔다.

사우디아라비아전을 함께 뛰었던 선수들이다.

파주 NFC에 모인 선수들이 기쁘고 반가운 얼굴로 정지우와 동기들에게 모여들었다.

이게 동료다. 이런 게 한 팀인 거다.

적어도 함께 경기를 치러야 할 선수들이라면, 그리고 그 경기가 국가의 명예를 걸고 나서는 것이라면 더더욱 이런 반가움과 믿음이 있어야 하는 거다.

“형!”

김오영과 이재범은 말할 것도 없고, 주길성과 김범주, 강서준이 신준석을 둘러쌌다.

반가운 인사를 마친 다음이었다.

박용근이 미팅룸으로 들어섰다.

“인사할 시간이 더 필요해?”

앞으로 나간 그는 가벼운 농담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다들 시즌 중이라 무리한 훈련을 하기는 어렵다. 오늘 오전은 일본의 월드컵 예선전을 다 함께 보고, 오후에는 앞으로 우리가 주로 사용할 전술을 연습할 계획이다.”

박용근이 선수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이번 훈련에 주어진 시간은 고작 사흘이다. 무언가를 만들겠다는 생각보다는 어떤 방식으로 공격과 수비를 전개하려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의 포지션에서 어떤 움직임을 가져가야 하는지, 동료들과 어떻게 연계하는지를 익혀 주길 바란다.”

말을 마친 박용근이 신준석을 바라보았다.

“이번 한일전은 준석이 네가 주장을 해 주었으면 싶은데?”

“감독님! 인기순으로 하시죠? 지우나 상민이가 먹어 줍니다.”

김오영과 이재범을 비롯한 선수들이 빠르게 박용근과 신준석의 눈치를 살폈다. 지금까지 이런 자리에서 저렇게 감독의 지시를 받아 드는 선수는 없었다.

당장 불벼락이…….

“그래? 지우나 상민이? 다른 선수들 생각은?”

“감독님! 최근 떠오르는 별을 주장으로 해야 인기가 좀 더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정지우의 말에 박용근이 픽 하고 웃었다.

“박상민!”

“예.”

“네가 주장!”

쾅쾅쾅.

박용근이 탁자를 세 번 두드렸고, 박상민이 뒤통수를 만졌으며, 정지우와 신준석이 픽 하고 웃었는데, 다른 선수들은 아직도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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