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라운드의 지배자-251화 (251/262)

제5장. 130년 역사에 길이 남을 경기. (1)

『긴장된 순간입니다! 유니온 시티의 역사에 오래 기억될 후반이 시작됩니다!』

『경찰이 웨스트햄 관중들을 겹겹이 둘러싼 것이 보이네요! 지금 레드 블레이트 바깥에 3만 명에 가까운 응원단들이 몰려와 있다고 하는데요!』

『주심! 휘슬을 들었습니다!』

삐이익!

“와아-!”

『후반 시작되었습니다!』

레믹이 이정렬에게 굴려 주는 것처럼 공을 밀었고, 이정렬은 바로 박상민에게 패스했다.

투우욱!

박상민이 데이빗에게 공을 차 주었는데, 그때까지도 웨스트햄 선수들은 단단하게 자리를 지키며 함부로 중앙선을 넘어서지 않았다.

투욱!

데이빗은 데니에게 공을 연결했다.

콰악! 콰다닥!

데니가 공을 잡는 순간에 노블이 거칠게 달려들었고, 둘이서 팔이 엉킨 자세로 함께 달렸다.

이 정도면 다른 리그에서는 거의 파울을 선언한다. 그러나 영국 축구다. 저 상태에서 누군가 상대 선수를 뿌리치거나 밀치지 않는다면 관중이나 주심, 선수들 역시 힘과 힘으로 맞붙는 축구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투욱!

오른쪽 터치라인 근처에서 버티던 데니가 중앙 쪽의 박상민에게 공을 넘겼다.

툭툭!

박상민은 페널티 에어리어 앞으로 두 번쯤 공을 치고 달렸다.

콰아아악! 콰다당!

오비앙이 그 꼴을 두고 볼 수 없다는 듯 거친 태클을 날렸고, 박상민은 붕 떴다가 바닥에 그대로 처박혔다.

“헤이!”

데니와 이정렬이 단박에 오비앙에게 달려들면서 후반 시작과 동시에 선수들이 또 뒤엉켰다.

“적어도 선수 생명을 위협하지는 말아야지!”

이번엔 데니가 주인공이었다.

이정렬이 그를 말리며 뒤로 밀어냈고, 대신 데이빗이 경고하는 것처럼 오비앙의 얼굴에 검지를 디밀었다.

『웨스트햄! 오늘 상당히 거친 플레이를 펼치고 있습니다!』

『박상민 선수도 이제 우리 국가대표 주축이거든요! 부상을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삑삑삑!

주심이 달려와서 오비앙과 데니, 그리고 데이빗에게 적당히 하라는 것처럼 손짓을 하고는 경기를 다시 진행시켰다.

웨스트햄 선수들이 페널티 에어리어 근처를 완전히 둘러싼 채 레믹과 이정렬을 꽁꽁 묶는 앞이었다.

쿵. 쿵. 쿵. 쿵. 쿵. 쿵.

“Go, Go, Go my Red! Go, Go, Go my Red!”

관중석에서 쏟아지는 함성이 열기처럼 선수들을 뜨겁게 달구는 느낌이었다.

꼼빠니가 뒤로 물러나 골대 앞을 노려보았다.

『좋은 위치에서 유니온 시티의 프리킥입니다!』

『골대 앞으로 보낼 거예요! 직접 차기는 거리가 있거든요!』

삐익!

주심이 휘슬을 불자 그가 공을 향해 움직였고,

퍼어엉!

웨스트햄 골대 앞으로 길게 공을 날렸다.

와락! 휘익! 휘익!

아드리안이 또 뛰어나왔다.

그는 레믹과 이정렬, 그리고 수비수인 옥보나의 틈에서 공을 잡았고, 그 직후에 바로 페널티 에어리어를 향해 뛰었다.

『웨스트햄! 전반에 보여 주었던 역습입니다!』

『수비들이 돌아와야죠! 위험해요!』

와락! 와락! 와라락!

쿠야테와 오비앙, 에메니케, 그리고 파예가 신의 명령을 받은 충직한 전사처럼 중앙선을 향해 일제히 달렸고,

“와아-!”

웨스트햄 원정 관중들이 토해 낸 불같은 함성에 대항하듯, 유니온 시티의 수비수 4명이 죽을힘을 다해 달리기 시작했다.

휘이이익!

아드리안이 던진 공은 중앙선을 향해 일직선으로 날아왔다.

완벽하게 유니온 시티의 역습을 흉내 낸 듯한 공격이었다.

터억!

자세를 낮췄던 정지우도 놀랐다.

박상민이었다. 그가 가슴으로 오비앙을 향해 날아가는 공을 가로챈 거였다.

“와아- 아!”

상황이 홱 뒤집혔다.

이번엔 레믹과 이정렬이 페널티 에어리어 앞의 수비수들 틈으로 파고들었고, 꼼빠니와 데니가 좌우로 뛰면서 자리를 잡았다.

중앙선 너머까지 달려왔던 웨스트햄 선수들이 거꾸로 뛰어가고, 유니온 시티 수비수 넷이 이번엔 웨스트햄 골대를 향해 악착같이 뛰었다.

해 보자! 누가 진짜인지 보여 주자! 밀리지 말자!

수비수들이 이를 악물고 달리는 모습이 그렇게 외치는 것처럼 보였다.

툭툭!

박상민은 다부지게 달렸다.

투우욱!

그리고 옥보나가 태클을 시도하기 직전에 오른쪽으로 공을 넘겼다.

콰악! 콰다당!

박상민이 또다시 태클에 넘어졌지만, 주심은 양팔을 앞으로 쭉 펴고 달리며 경기를 계속하라고 알려 주었다.

투욱!

데니가 오른쪽을 깊게 파고들다가 페널티 에어리어 모서리로 공을 빼돌렸다.

콰악!

뒤늦게 달려온 크레스웰이 데니와 엉키느라 웨스트햄의 오른쪽이 텅 빈 상태였다.

투욱!

공을 잡은 데이빗이 그 빈 공간으로 공을 쿡 찔러 넣었다.

“예에에-!”

이번엔 이정렬이었다.

녀석이 불쑥 튀어 나가 공을 잡자 옥보나가 대뜸 달려들었고, 골키퍼 아드리안이 각도를 죽이기 위해 오른쪽 골포스트에 바싹 매달렸다.

투욱!

이정렬은 레믹을 확인하고 확실하게 공을 띄웠다.

마치 손으로 던져 주는 것처럼 여유롭게 포물선을 그린 공이 골대 왼쪽 앞으로 날아갔다.

휘익!

골대 앞에 있던 수비수 리드가 먼저 몸을 띄웠고,

휘이이익!

레믹이 달려들며 공을 노렸다.

역동작에 걸린 아드리안이 넘어지는 것처럼 달려오는 앞에서,

터어엉!

공은 레믹의 이마에 맞았고,

화아악!

아드리안이 몸을 던졌다.

유니온 시티의 벤치와 관중들이 모두 반쯤 일어났고, 출입구에 있던 스태프들의 상체가 골대를 향해 일제히 기울었다.

터억! 터엉!

『슈퍼세이브! 아드리안!』

공은 아드리안의 손끝에 걸렸다가 크로스바를 때리고 앞으로 튀어나왔다.

화아아악!

그리고 보인 것은 박상민이었다.

『오오!』

그가 떨어지는 공을 향해 슈퍼맨처럼 하늘을 날았다.

휙!

수비수 옥보나가 발을 뻗었고, 골키퍼 아드리안이 박상민을 향해 뛰어나온 순간이었다.

터어엉! 철러- 엉!

박상민의 머리에 맞은 공이 웨스트햄의 골대 그물을 확실하게 흔들었다.

“예에에에에에에에에-!”

관중석이 뒤집힌 느낌이 먼저 들었고, 이어서 레드 블레이트 바깥에서 일어난 해일이 그라운드를 뒤덮는 듯한 커다란 함성이 달려왔다.

유니온 시티는 승리한다!

우리는 우승한다!

박상민은 그렇게 외치는 것처럼 왼쪽 가슴의 엠블럼을 두드리며 그라운드 바깥을 힘차게 달렸다.

“예에에에에에에-!”

그의 뒤를 동료들이 일제히 따랐는데, 그 앞에서 환호하는 관중들은 아예 미친 사람들처럼 보였다.

“예쓰! 예쓰! 예에쓰!”

마틴은 허공을 향해 쉴 새 없이 주먹을 뻗어 댔다.

터질 것 같은 이 심정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겠나!

조금 전에 보았던 득점 장면이!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기뻐서, 속된 말로 환장할 것 같은데 어떻게 가만히 주머니에 손을 넣고 바라볼 수 있겠냐는 말이다.

“이예에에에에-!”

쥬피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두 주먹을 치켜들고 계속해서 고함을 질러 댔다.

쿵. 쿵. 쿵. 쿵. 쿵. 쿵.

“Wild Sang(거친 박상민)!”

그는 관중들이 부르는 응원가를 힘차게 따라 불렀다.

쿵. 쿵. 쿵. 쿵. 쿵. 쿵.

“You make my heart sing(너는 내 심장을 노래하게 해)!”

『믿을 수 없는 광경입니다! 유니온 시티 130년 만의 우승을 박상민이! 우리 박상민 선수가 거의 결정지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박상민 선수예요! 와아! 박상민! 웨스트햄의 악착같은 저지를 이 한 방으로 밀어냅니다!』

쿵. 쿵. 쿵. 쿵. 쿵. 쿵.

“I think you move me(넌 나를 움직이게 해)!”

동료들이 박상민을 싸안고 뒤엉켰을 때, 정지우는 하늘을 향해 양손 검지를 들었다.

‘지킬게요! 앞으로 이렇게 지켜 낼게요! 고마워요, 어머니! 사랑해요!’

운명이 파 놓은 함정이 저만치 밀려난 느낌이었다.

쿵. 쿵. 쿵. 쿵. 쿵. 쿵.

“Wild Sang(거친 박상민)!”

레드 블레이트 주변에 모인 3만 명의 응원단도 박상민의 응원가를 함께 불렀다.

답답해서, 혹은 이렇게 나가면 선수들이 힘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바람을 안고 레드 블레이트를 찾은 응원단이었다.

기마경찰까지 나와 있었다.

그런데 그들도 골 소식을 듣자 당장은 웃음을 감추지 못한 얼굴이었다.

골이 들어간 순간에 할머니는 결국 굵은 눈물을 흘렸다.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아버지의 목에 올라가 지켜보던 유니온 시티의 경기였다.

그분들이 평생을 바라고 기다렸던 경기.

우승을 두고 다투는 유니온 시티의 경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울렁였는데 선제골마저 넣었다.

아들 내외가 어깨를 감싸 주고, 손자와 손녀들이 무릎에 매달려 달래 주는데도 하얀 머리칼을 한 할머니는 눈물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색 바랜 유니온 시티의 유니폼을 사 준 사람은 아버지였다.

“이 옷을 입고, 꼭 유니온 시티의 우승을 지켜봐 주렴.”

“그렇게 될 수 있을까요?”

“너도 너의 자녀와 또 손자, 손녀들에게 유니폼을 사 주는 거야. 할 수 있겠지? 우리 믿자. 우리가 이렇게 바라면 언젠가 유니온 시티가 우승하는 날이 있을 거다. 너만이라도 꼭 그 우승을 지켜볼 수 있었으면 싶다. 사랑한다.”

“사랑해요, 아버지.”

우승이 코앞에 있었다.

그녀의 어깨를 감싸 준 아들이 ‘사랑해요, 어머니.’ 하고 말을 건네주었고, ‘할머니, 우리도 사랑해요.’ 하는 천사 같은 음성도 들렸다.

우승이 정말 코앞에 있었다.

한국의 호프집은 ‘광분’이라는 한 단어로 표현됐다.

박상민의 골이다.

슈퍼맨처럼 몸을 날린 그의 헤더가 골 그물을 철렁이는 장면이 다시 나올 때마다 계속해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아! 박상민! 이마에서 피가 납니다!』

『마지막에 옥보나 선수가 뻗은 스파이크에 이마가 찢긴 것 같은데요, 큰 상처가 아니었으면 싶습니다!』

『다시 들어가겠다고 하는 제스처를 보입니다!』

웨스트햄은 두 명의 선수를 동시에 교체했다.

『14번 오비앙을 빼고 9번 캐롤을, 그리고 16번 노블을 아웃시키고 28번 란지니를 넣었습니다!』

『노블이 경고가 있는 점을 조심하는 것 같구요, 공중볼과 피지컬에서 우위에 있는 캐롤을 선택해서 골대를 바로 노리려는 게 아닌가 싶네요!』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상태에서 다시 경기가 시작되었다.

“라파엘! 헤이!”

정지우는 라파엘을 불렀다.

데이빗을 부르고 싶었는데 함성이 얼마나 큰지 도저히 그를 부를 정도로 커다란 소리를 낼 수는 없었다.

『정지우 선수! 동료들에게 흥분하지 말라는 사인을 보내고 있습니다!』

화면에서 정지우가 양손을 눌러 보이는 동작을 펼치고 있었다.

우승까지 25분 남았다.

동료들은 정말이지 약 처먹은 사자들처럼 뛰어다녔다.

콰악! 콰아악!

어지간히 어깨를 부딪쳐서는 밀리지도 않는다.

콰아악! 콰다당!

거친 태클을 당해도 벌떡벌떡 일어서서 달려들었다.

경기가 10분쯤 더 진행되자 웨스트햄 선수들의 기가 조금씩 꺾이는 느낌이었다.

쿵. 쿵. 쿵. 쿵. 쿵. 쿵.

“오- 오오! 오- 오오!”

홈 관중들의 열기는 줄어들 줄 모르고 계속해서 레드 블레이트를 채웠고, 바깥에서 해일처럼 넘어오는 함성이 거기에 힘을 더해 주었다.

“헤이! 레믹!”

데이빗이 레믹을 불러 댔고, 레믹과 이정렬, 데니와 꼼빠니가 쉴 새 없이 좌우를 바꾸어 가며 뛰어다녔다.

초조하고 안타깝지만, 시간은 늘 그랬던 것처럼 정직하게 흘렀다.

후반이, 우승이 꼭 10분쯤 남았다.

“데이빗! 헤이!”

정지우가 알려 준 방향으로 데이빗이 공을 넘겼고, 그 공이 데니를 거쳐 신준석까지 연결되었다.

무리할 필요 없다.

10분이다! 10분만 견디면 우승이다!

“방심하지 마! 헤이! 130! 130!”

정지우의 고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두 알았다.

한 골을 앞서고 있지만, 프리미어리그에서 웨스트햄이란 팀은 추가 시간에도 두 골을 넣을 수 있는 상대인 거다.

마틴이 미드필드에서 밀리지 말라는 의미로 자꾸만 중앙선을 향해 손짓했다.

그만 그런 것이 아니라 지켜보는 이들 모두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 가고 있어서, 응원가가 오히려 줄어들었을 정도였다.

투욱! 투우욱!

공은 유니온 시티 진영을 천천히 돌았다가 빠르게 넘어갔고, 웨스트햄의 소유가 되곤 했다.

레믹과 이정렬은 아예 수비수처럼 중앙선 부근에서 웨스트햄의 선수들을 막아섰다.

3분 남았다. 130년 만의 우승이!

마음 약한 관중들이 양손을 가슴 앞에 쥐고 조바심 내는 시간이었다.

콰악!

공을 빼앗은 웨스트햄의 선수들이 넘어올 때면, 단박에 두세 명의 유니온 시티 선수들이 그들을 둘러쌌다.

“우-!”

『추가 시간 5분이 주어졌습니다!』

『아! 5분 정말 길게 느껴지네요!』

『유니온 시티의 130년 역사에 길이 남을 경기가 5분 남았습니다!』

“헤이! 데이빗!”

마틴이 다시 손짓으로 선수들을 일깨웠다.

관중석도, 벤치도 모두 일어났다. 그리고 그렇게 서서 경기를 지켜보았다.

심지어 귀빈석의 쥬피터와 이사들마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선수들에게 의지를 전하고 있었다.

퍼어엉!

웨스트햄의 공격은 골대를 향해 공을 날리고, 캐롤과 에메니케, 파예가 어떡해서든 헤더를 따내는 형태로 바뀌어 있었다.

『무둔바! 또다시 두 명의 선수를 상대로 공을 걷어 냅니다!』

『페널티킥을 허용했던 것이 걸렸는지 후반에 무둔바 선수, 정말 대단한 활약입니다! 추가 시간이 끝나 가는데요!』

『주심, 휘슬을 입에 물고 있습니다!』

퍼어어엉!

쿠야테가 골대로 공을 길게 날렸고,

휘이익!

정지우가 뛰어나가 높다랗게 솟구쳐 공을 잡았을 때,

삑! 삑! 삐이이익!

주심의 휘슬이 레드 블레이트에 또렷하게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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