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라운드의 지배자-246화 (246/262)

제3장. 그러니까 오늘만큼은. (1)

4월 3일의 사우샘프턴전이 끝난 다음 날부터 한국과 영국의 스포츠 뉴스는 유니온 시티의 소식을 거르는 날이 없었다.

인터넷 매체도 마찬가지였다.

유니온 시티 관련 기사마다 조회 수와 댓글 수가 폭발하는 지경이어서, 뉴스를 만들지 못한 매체들은 심지어 일주일 식단표를 올리는 수준이었다.

<정지우! 무패 우승을 견인하다!>

이 정도 기사는 그냥 매일 쏟아져 나오는 수준이었고,

<무패 우승을 이끈 한국의 감독!>

모르는 사람이 보면 유니온 시티의 감독이 박용근이라고 오해할 만한 기사도 있었으며,

<박상민과 이정렬! 김치와 쌀밥의 힘으로 달린다!>

소설에 가까운 기사도 멈출 줄 몰랐다.

특히 한일전을 앞두고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었는데, 일본이 불에 기름을 붓는 발언을 하는 바람에 과열 양상까지 보였다.

<일본 대표팀이라면 정지우를 상대로 세 골은 가능하다.>

누구라고 딱히 밝히지 않은 채 일본 스태프와 선수단의 공통된 의견이라는 명목으로 일본 언론에 올라온 기사였다.

이 기사에 달린 댓글 수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영국의 기사는 방향이 조금 달랐다. 과연 무패 우승이 가능한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유니온 시티를 상대로 수비 실책이 아닌 골을 만들어 낼 팀과 선수가 있을지에 대한 분석도 연일 쏟아졌다.

4월 10일 일요일, 한국 시간으로 오후 9시 30분에 있었던 선덜랜드전은 생각보다 훨씬 더 힘겨웠다.

처음 프리미어리그에서 경기를 갖는 선수들인가 싶을 정도로 동료들이 긴장을 털어 내지 못한 데다, 하필이면 상대가 잔류왕이라 불리는 선덜랜드다.

리그 시작과 동시에 내내 강등권에 속하는 선덜랜드는 매번 막바지 경기에서 연승을 거두며 악착같이 프리미어리그에서 살아남는다.

이번 시즌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개막일부터 200일 가까이 강등권에서 헤매던 선덜랜드는 또다시 막판에 괴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11번의 유효 슈팅, 그중 골과 다름없는 결정적인 슈팅 5개.

정지우의 신들린 선방이 나올 때마다 선덜랜드의 홈구장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가 터져 나갈 정도의 함성이 울려 나왔다.

가슴의 엠블럼을 두드리며 눈빛을 번득이는 정지우 덕분에 경기는 0 대 0 무승부로 끝났다.

매직 넘버 1.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거머쥐는 데까지 필요한 승점은 딱 1점이었다.

『유니온 시티가 마침내 승점 1점을 남겨 두었습니다. 우리 시간으로 일요일 밤에 있었던 선덜랜드전에서 유니온 시티는 정지우의 눈부신 선방에 힘입어 승점 1점을 확보했습니다.』

화면은 정지우의 선방과 미칠 것처럼 환호하는 유니온 시티 관중들의 모습을 차례로 비춰 주었다.

『일주일 뒤에 열리는 웨스트햄과의 홈경기에서 유니온 시티가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거머쥘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기자는 상체를 뒤로 돌려 레드 블레이트를 가리켰다.

『유니온 시티의 무패 행진에 가장 큰 역할을 하는 정지우 선수를 비롯해 우리 선수 이정렬, 박상민, 신준석이 선발로 나온다면, 프리미어리그 우승팀 최초의 동양인 선발 골키퍼 기록을 비롯해 여러 가지 새로운 기록이 세워지게 됩니다.』

흥분한 기색을 감추지 않은 기자의 보도가 이어졌다.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잘 먹는다는 말처럼 우승도 경험 있는 팀들이 마지막 순간에 흔들리지 않는다.

경기 다음 날, 회복 훈련을 하는 동료들 사이에 좀 더 짙은 긴장이 떠돌았다.

“이봐! 데이빗! 왜 그렇게 딱딱하게 그래? 좀 살살 가자고!”

마틴과 스태프들이 농담으로 분위기를 이끌고,

“어후! 우승팀 주장이라 그런지 목이 뻣뻣한데?”

정지우가 나서 동료들의 목을 감싸 안으며 장난을 걸었지만, 동료들은 긴장을 완전히 털어 내지 못한 얼굴이었다.

웨스트햄과의 경기를 이틀 앞둔 날에는 모처럼 쥬피터가 마틴의 사무실을 찾았다.

사무실에 들어선 그는 몸살쯤 난 사람처럼 움직임이 조심스러웠다.

“홍차를 드릴까요?”

“내 평생 처음으로 홍차를 마시면 잠이 안 온다네. 그러니 따뜻한 물을 한 잔 주겠나?”

마틴이 놓아 준 머그잔에서 온기를 얻으려는 것처럼 쥬피터는 한 손으로 잔을 감쌌다.

“자네는 어떤가?”

마틴은 가볍게 웃으며 책상 건너편에 앉았다.

“다섯 경기에서 승점 1점을 얻으면 자력 우승입니다.”

“그 정도야 나도 알지. 그런데 어쩐지 나는 깎아지른 절벽 사이에 난 길을 걷는 기분일세.”

쥬피터가 뜨거운 물을 조심스럽게 마신 후에 다시 입을 열었다.

“처음 말하는 거지만, 웨스트햄전에 승리하면 무패를 이룰 것 같고, 그 경기에서 실수하면…….”

쥬피터가 마틴의 눈치를 살핀 후에 다시 입을 열었다.

“다 잡았던 우승이 모래로 변해 손을 빠져나갈 것만 같아.”

“표현이 멋지군요.”

“자네에게 여유가 있어 보여서 그나마 위로가 되네.”

“우리에게는…….”

마틴이 지그시 웃으며 말을 이었다.

“세계 최고의 골키퍼가 있으니까요.”

사무실 안에 나직한 침묵이 흘렀고, 잠시 뒤에 쥬피터의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고맙네, 마틴. Ji의 진면목을 알아본 자네의 안목에 감사하고, 박 감독과 한국 선수 세 명을 선택해 준 자네의 결단에도 진심으로 감사하네.”

쥬피터는 분명 위안을 받은 얼굴이었다.

성 마테오 병원 옥상에 올라간 정지우는 벤치 앞의 데이지를 보며 재미있다는 얼굴로 웃었다.

“당신은 긴장 안 돼요? 난 벌써 이렇게 떨려요.”

데이지의 눈에는 실제로도 긴장이 묻어 있었다.

“130년 만이라면서요? 솔직히 난 몰랐어요. 그런데 병원 스태프들의 말을 들으면서 이제야 실감 나요. 알아요? 우승이에요! 우승! 다들 지난 경기에서 당신이 없었으면 우리가 졌을 거래요. 그 경기에서 졌으면…….”

정지우의 앞에서 데이지가 빠르게 말을 이었다.

“무서워요. 무승부로 계속 이어지는 이 승부가. 당신이 실점해서 다음 경기를 놓치고, 만약 그 뒤로 우승을 놓치게 된다면, 130년을 기다린 사람들의 분노와 원망이 모두 당신에게 향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벌써 4월이다. 봄이다. 그리고 어둠이 서서히 내리는 시간이었다.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어요.”

정지우가 말을 건네자 데이지가 시선을 들었다. 긴장이 그녀의 초롱초롱한 눈빛을 자꾸만 흔들어 댔다.

“사랑해요.”

잠시 멍했던 데이지는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웃음을 터트렸다.

“뭐예요? 그게?”

“사랑한다구요.”

데이지는 궁금하다는 얼굴이었다.

“당신은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요?”

“왜요? 막 떨리고 그렇죠.”

“말도 안 돼! 장난치지 말고요!”

데이지가 좀 더 편안해진 얼굴로 웃었다.

“난 당신이 수술방에 있을 때를 떠올려요. 죽음이 근처까지 왔는데도 묵묵하게 수술하던 당신 모습이요. 경기에 나서는 나도 그럴 거예요. 그리고.”

정지우는 잠시 데이지의 눈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낸 뒤에 다시 말을 이었다.

“다음 경기는 내가 얻은 모든 것들을 지키는 경기가 될 거예요. 감독님, 어머니, 릴리, 동기들, 나를 응원해 주는 모든 사람들, 그리고 평생 나와 함께해 줄 당신을.”

그리고 정지우는 높이 나는 새처럼 양팔을 들었다.

“이렇게 지켜 낼 거예요. 다시는 놓치는 일이 없도록.”

데이지가 왈칵 달려들었고, 정지우는 그런 그녀의 등을 조심스럽게 어루만졌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가 된 수도원.

경기 전날 레드 블레이트가 딱 그랬다.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취재진이 에이미의 혼을 쏙 빼놓았고, 우승을 위한 순간을 준비하느라 스태프들이 바쁘게 움직였는데, 그들 모두 말 한마디조차 조심하는 분위기였다.

『웨스트햄과의 경기를 하루 앞둔 레드 블레이트는 긴장과 흥분으로 뒤엉켜 있습니다. 경기 전날인데도 5천 명이 넘는 유니온 시티 응원단과 관광객들이 레드 블레이트를 찾아 사진 촬영을 하거나, 기념품을 구매하고 있습니다.』

레드 블레이트의 잔디 앞에서 마이크를 든 기자들의 모습이 심심찮게 보였다.

『유니온 시티는 우리 시간으로 일요일 밤 9시 30분에 열리는 웨스트햄전에서 승점 1점을 확보해 우승을 결정짓겠다는 각오가 레드 블레이트에 넘쳐나고 있습니다.』

기자들의 뒤로 관광객과 홈 관중들이 승리를 표시하는 손짓을 하며 괴성을 지르곤 했다.

『웨스트햄은 유니온 시티의 홈에서 반드시 골을 만들어 내겠다고 벼르고 있습니다. 이 경기에서 우리 정지우 선수가 선발로 나올 것이 확실시되는 가운데, 전 세계 축구 팬의 이목이 레드 블레이트로 집중되고 있습니다.』

토요일에 한국 뉴스는 유니온 시티의 경기를 재조명하는 것으로 상당한 분량을 할애했다.

우승을 위한 승점 1점을 남겨 두었고, 웨스트햄과의 경기를 하루 앞둔 토요일 저녁이었다.

다 함께 모여서 먹었다.

평소와 다르지 않은 반찬이었는데 경건하다고 할 만큼 식사 분위기가 가라앉아 있었다.

“지우야! 이거!”

홍삼 봉지를 나눠 주는 신윤희의 손끝이 잘게 떨리고 있었다.

“누나!”

“어? 어!”

정지우가 부르자 신윤희가 놀라고 급한 얼굴로 답을 했다.

전은주가 얼른 고개를 돌리고 무슨 일인가 하는 눈으로 바라보는 앞이다.

“왜 그렇게 긴장해요?”

답을 하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그래서 신윤희는 어색하게 웃기만 했다.

“내일 잘할 거예요. 나도 잘할 거고, 준석이, 정렬이, 상민이 전부 잘할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누나가 그렇게 긴장하면 배 속의 조카도 힘들지 않아요?”

“얘는!”

정지우의 농담에 신윤희가 겨우 웃었다.

경기 전날이면 함께 상대 팀의 경기 영상을 보곤 했는데 오늘은 그냥 소파에 다들 모여 앉았다.

별로 재미있지도 않은 농담을 하며 시간을 보낸 다음이었다.

“벌써 리그 막바지구나.”

박용근이 지난 시간이 생각난 것처럼 입을 열었다.

“지금껏 해 왔던 리그 경기일 뿐이다. 내일이라고 다를 것 없고. 나는 이런 커다란 리그에서 우승을 놓고 다퉈 본 경험이 없다. 이제부터는 너희의 시대다.”

덤덤하게 건네는 말이 이상하게 가슴에 콕콕 박히는 느낌이었다.

“우승을 놓고 다투는 경험, 우승한 경험, 세계적인 선수들과 함께 경쟁하는 이 모든 과정이 너희를 좀 더 강하게 만들어 줄 거다. 그러니 지금은 이 과정을 즐긴다는 마음으로, 내일 경기를 소중한 경험이라고 생각하고 맞아 주었으면 싶다.”

시간은 정직하게 흘러서 박용근의 이야기가 끝났을 때쯤은 잠자리에 들 시간이었다.

“감독님, 가 보겠습니다.”

신준석이 신윤희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준석아, 아침에 못 보니까 지금 말할게. 내일 잘해.”

“예, 어머니.”

다가가 등을 다독여 주는 전은주를 신준석이 가볍게 안아 주었다.

“너는 자고 갈 거지?”

“그러려고.”

이정렬은 박상민과 함께 지내기로 했다.

“감독님, 저도 들어가겠습니다. 편히 쉬세요.”

박용근이 ‘그래.’ 하고 답을 했고, 전은주는 ‘지우야, 잘 자.’ 하는 인사를 건넸다.

침대에 누운 정지우는 내일 있을 경기를 상상했다.

어느새 여기까지 달려왔다.

‘어머니, 보고 계세요? 저 사실은 조금 떨려요. 그래도 최선을 다할 자신은 있어요. 잘해 볼게요.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아셨죠?’

긴장된다. 솔직히. 조금은.

표시 낼 수 없었다.

동기들, 동료들, 스태프까지 모두 정지우에게 기대는 상황이라 절대로 내색하지 못했다.

‘이제 골을 먹을 때도 됐잖아? 그렇지? 너도 그렇게 생각하잖아? 안 그래?’

가슴 어딘가에 똬리를 틀고 있던 나쁜 생각이 독사처럼 머리를 슬그머니 들고 있었다.

웨스트햄이 리그 6위를 할 정도로 강한 팀이라는 부담도 떨치기가 어려웠다.

정지우는 이를 꽉 깨물었다.

‘다시는 안 놓친다! 바보 같았던 건 한 번이면 충분해!’

승점 1점인 거다.

골키퍼인 정지우가 만들어 낼 수 있는 최고의 승점.

일요일 오후 9시 30분 경기다.

그런데도 호프집은 8시가 되기도 전에 이미 엉덩이 댈 공간도 없었다.

“죄송합니다!”

“그러지 말고 그냥 서서 보겠다니까!”

아니, TV가 귀한 시절도 아닌데, 편안한 집 놔두고 왜 호프집에서 서서 보겠다는 걸까?

“나 여기 정말 단골이잖아! 사장님 잠깐 불러 줘 봐요!”

직원이 슬프고 지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린 곳에서, 사장은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유니온 시티 유니폼을 입고 벌써 이성을 반쯤 날린 얼굴로 있었다.

“사장님! 저기 손님들! 이리 오시라고 해요!”

보다 못한 손님들 6명이 다시 몸을 붙이고 붙여서 자리를 만들어 주었는데,

“정지우! 정지우! 정지우!”

사장은 목청껏 정지우의 이름을 외치고 있었다.

단골들은 다 이해한다.

저렇게 지르는 고함이 오늘 경기에서 정지우가 실수하지 않기를, 실점하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기도와 같다는 것을 말이다.

“정지우! 정지우! 정지우!”

경기를 시작하려면 한 시간이 훨씬 더 남았는데도 사장은 벌써 목이 쉬었다.

그런데도 그는 이 외침을 멈추면 정지우가 실점이라도 한다는 것처럼 꽥꽥 정지우의 이름을 불러 댔다.

“정지우! 정지우! 정지우!”

결국 손님들이 주인을 따라 함께 정지우의 이름을 외쳐 댈 수밖에 없었다. 분위기가 정말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쿵. 쿵. 쿵. 쿵. 쿵. 쿵.

“We're by far the greatest team(우리는 세계 최강 팀)!”

쿵. 쿵. 쿵. 쿵. 쿵. 쿵.

“The world has ever seen(세상에 나왔던 팀 중에서)!”

경기 시작 4시간 전부터 레드 블레이트 광장은 우승을 염원하는 관중들로 북적였고, 정신이 아득할 정도의 응원가가 울려 나왔다.

평소 가격의 30배쯤 웃돈을 얹어도 표를 구하지 못해 지금은 60배쯤 줘야 겨우 표를 구하는 실정이었다.

쿵. 쿵. 쿵. 쿵. 쿵. 쿵.

“유니온 시티는 세상에서 제일 강하지!”

쿵. 쿵. 쿵. 쿵. 쿵. 쿵.

“절대 패하는 법이 없지!”

각국의 취재진이 레드 블레이트 곳곳에서 관중들의 반응을 취재하고 있었는데,

“오늘 결과를 어떻게 보세요?”

“믿겨요? 우리가! 우리 유니온 시티가 우승을 노리는 경기입니다! Ji가 우리를 여기까지 이끌어 줬어요! 할아버지가 이 경기를 꼭 보셨어야 했어요!”

눈물을 보이며 답하는 홈 팬의 모습이 그대로 TV 화면에 올라왔다.

오늘 경기에 얼마나 많은 관심이 집중되었는지, 오늘 경기가 홈팬들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단적으로 증명해 주는 모습이었다.

쿵. 쿵. 쿵. 쿵. 쿵. 쿵.

“유니온 시티는 세상에서 제일 강하지!”

쿵. 쿵. 쿵. 쿵. 쿵. 쿵.

“절대 패하는 법이 없지!”

그라운드에서 울려 나온 응원가가 평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세게 라커룸을 파고들었다.

정지우는 골키퍼 장갑을 매만지고 있었다.

리그 경기 중 하나일 뿐이다.

평소에 하던 대로 하면 되는 경기.

라커룸을 파고드는 응원가가 좀 더 거세게 들리는 것이 이전과 다를 뿐이다.

정지우가 장갑에서 풀려 나온 실밥을 뜯어냈을 때였다.

“예에에에에에에-!”

느닷없는 함성이 라커룸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뭐지? 왜 그러지?

정지우를 비롯한 동료들이 궁금한 얼굴로 그라운드 방향을 바라본 직후였다.

달칵.

문이 열리며 엄청난 응원가와 함께 마틴이 들어왔고, 문을 닫아서 응원가의 꼬리를 뚝 잘랐다.

“함성을 들었지?”

그는 퀴즈를 내는 사회자처럼 입을 열었다.

“우리의 마스코트가 도착했다.”

릴리가?

정지우를 바라본 마틴이 고개를 끄덕였다.

“구단에서 남몰래 준비한 이벤트지. 또 한 명의 놀라운 관중이 있다. 브레드도 릴리의 옆에서 경기를 지켜볼 거다.”

말을 마친 마틴이 흥분을 털어 내는 것처럼 가슴을 커다랗게 부풀렸다가 숨을 토해 냈다.

“남은 것은 승점 1점이다! 130년 유니온 시티의 역사에 오래도록 기억될 승점! 단 1점! 오늘! 우리는! 그 승점을 손에 쥐고 경기를 마친다!”

웅변처럼 말을 토해 냈던 마틴이 선수들을 한 명씩 돌아보았다. 그리고 마지막에 정지우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우리 모두에게 오래도록 기억될 경기를 부탁한다.”

동료들이 모두 보는 앞이다.

주장 데이빗을 두고도 마틴은 정지우를 향해 당당하게 요구를 건네고 있었다.

“알겠나? 그라운드의 지배자?”

마틴이 확인하는 듯한 강렬한 눈빛과 함께 다시 말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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