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라운드의 지배자-241화 (241/262)

제9장. 우승은 실리다. (2)

『눈과 비가 섞여서 내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공을 확실하게 다룰 필요가 있어요! 이럴 때 엉뚱한 슈팅이 의외의 결과를 가져오거든요!』

“우-!”

해설자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페르난지뉴가 툭 차고 달린 공이 엉뚱한 방향으로 튀어 버렸다.

퍼엉!

이정렬이 재빠르게 달려들어 오른쪽의 카알에게 공을 넘겼다. 그러나 그 공 역시 그라운드에 튕기는 순간, 예상하지 못했던 속도로 날아가서 터치라인 바깥으로 빠져나가고 말았다.

카알이 이정렬에게 엄지를 들었고, 이정렬은 미안하다는 의미로 손을 들어 주었다.

쿵. 쿵. 쿵. 쿵. 쿵. 쿵.

“Go, Go, Go my Red! Go, Go, Go my Red!”

2월이다. 아직 추위가 주변에 그대로 남은 계절.

그런데도 관중들은 진눈깨비에 맞서는 것처럼 우렁찬 응원을 계속 펼쳐 냈다.

철퍼덕!

맨시티의 스로인 이후로 그라운드에서 선수들이 수시로 미끄러졌다.

차라리 눈만 오는 것이 지금처럼 비와 섞여 오는 것보다 백배쯤 낫다. 물과 눈이 섞여 있는 곳에 공이 튕기면 정말이지 방향을 가늠하기 어려운 거다.

전반 시작과 동시에 중앙선을 중심으로 빠르게 내려왔던 공이 한 방에 올라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투욱!

오른쪽을 파고들던 카알이 중앙으로 굴려 준 공이다. 혹시 미끄러질까 봐 살살 찬 모양인데, 이번엔 엉뚱하게도 물구덩이에 닿은 것처럼 속도가 확 죽었다.

공의 속도에 맞춰 뛰어들었던 레믹이 주춤한 옆에서 이정렬이 날카롭게 뛰어들었다.

퍼어어엉!

맨시티의 골키퍼 하트가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그리고 딱 거기까지였다. 어떻게 저럴 수 있지 싶을 정도로 공이 데굴데굴 굴러서 하트의 품으로 들어가 버린 거였다.

소리만 들어서는 정말 멋진 슈팅이었는데 말이다.

그라운드를 스칠 정도로 떠서 날아갔다면 어떤 결과를 낼지 모르는 아쉬운 슈팅이기도 했다.

짝짝짝짝짝짝짝짝!

돌아서 나오는 레믹과 이정렬, 그리고 카알에게 원정 관중들이 박수를 보내 주었다.

퍼어어엉!

골키퍼 하트가 기다랗게 찬 공이 중앙선 근처에 떨어졌다.

전투적인 아구에로, 어슬렁거리는 것 같으면서도 순간 폭발력이 대단한 야야투레가 몸을 띄웠고, 절대 밀리지 않는 박상민과 늘 공중볼을 잡아 주던 데이빗이 함께 솟구쳤다.

터엉!

공은 아구에로의 머리에 빗겨 맞은 뒤에 떨어졌다.

눈과 비가 흩날렸다가 진하게 쏟아지곤 했는데 바람까지 제법 불어서 공을 보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정지우는 유니폼에 장갑을 문질러 물기를 제거했다.

오늘 같은 날은 중거리 슈팅을 노릴 확률이 높고, 그런 순간을 대비하는 것이 좋았다.

투우욱!

아구에로가 헤더한 공을 잡은 것은 델포였다.

그는 곧바로 정지우의 왼쪽을 향해 공을 깊게 찔러 넣었다.

페르난지뉴와 실바가 뛰어들었고, 공은 페르난지뉴의 발에 걸렸다.

퍼어어엉!

슈팅 거리가 대략 25미터쯤 됐다.

거기에 눈과 비가 날려서 시야를 확보하기도 어려웠다.

골키퍼의 시선에서는 공이 25미터를 확 뛰어넘어서 한순간에 옆을 스치는 느낌인 거다.

화아아악!

정지우가 오른쪽으로 몸을 날렸지만, 손에 걸리는 것은 없었다.

털썩!

“우-!”

『골대를 아슬아슬하게 벗어났습니다!』

『위험했어요! 박상민과 데이빗이 공중볼을 따내기 위해 앞쪽이 비었었거든요! 꼼빠니와 스웰던, 라파엘이 공간을 잡아 줬어야 했는데, 실바 선수! 공을 잡지 않은 상태에서 스웰던의 앞으로 달려드는 동작으로 수비수들을 흔들었어요!』

몸을 일으킨 정지우는 골대 한쪽에 놓아둔 수건을 들어 장갑을 닦았다.

수비 라인을 형성하는 4명의 동료들은 바닥이 미끄러워 마음껏 달리지 못한다. 막말로 훅하고 맨시티 선수에게 달려들었다가 자칫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바로 넘어지는 상황인 거다.

바닥에 공을 내려놓은 정지우가 뒤로 물러나 오른발을 콕콕 찍었다.

휘익! 퍼어어엉!

그리고 있는 힘껏 공을 차 주었다.

오늘 같은 날, 어설프게 패스로 전진하려다가는 엉뚱하게 공을 빼앗길 수 있었다. 길게 차 주고 앞쪽에서 어떡해서든 슈팅으로 마무리하는 게 좋았다.

“맨시티! 워- 오오! 맨시티! 워- 오오!”

슈팅 한 번에 홈 관중들의 응원가가 울려 나왔다.

그사이 진눈깨비는 다시 스프레이로 물을 뿌리는 것처럼 얇은 비로 바뀌어 있었다.

촉촉하게 젖는다.

데이트할 때 이런 비가 내린다면 분위기 죽여줄 것 같은데, 축구 경기에서, 그것도 승점을 위해 악착같이 뛰어야 하는 선수 입장에서 보면 별로 환영할 것은 아니었다.

공은 다시 맨시티가 잡았다.

투욱! 툭! 툭!

맨시티는 실바와 페르난지뉴, 야야투레를 중심으로 공을 주고받으며, 아구에로에게 기회를 만들어 주기 위해 노리는 느낌이었다.

아스널과 3, 4위를 놓고 치열하게 겨루는 맨시티다.

어느새 순위를 끌어 올린 맨유와의 승점 차는 3점, 그 아래 웨스트햄과는 7점의 승점 차이라 한두 경기면 바로 5위로 밀려나는 상황이었다.

우승을 위해 달리는 유니온 시티와 어떡해서든 4위 안에 들어서 다음 시즌 챔피언스 리그 진출권을 손에 넣고 싶은 맨시티의 대결.

시즌 초반만 해도 상대하기 정말 어려웠던 팀 맨시티가 이제는 유니온 시티에게서 승점을 얻어 내야 하는 절박한 팀이 되어 달려드는 거였다.

툭툭!

실바의 드리블은 매서웠다.

“와아- 아!”

그는 단박에 꼼빠니를 제치고, 스웰던의 앞으로 뛰었다.

박상민이 라파엘에게 손짓하며 실바의 앞을 막아섰다.

나오지 말고, 중앙을 지키라는 의미였다.

툭! 툭!

실바가 스웰던과 박상민을 약 올리는 것처럼 공을 짧게 차며 움직이다가,

투우욱!

다시 뒤편에서 기다리던 페르난지뉴에게 공을 넘겼다.

페널티 에어리어 왼쪽이었다.

스웰던은 공을 안 가진 실바를 따라 함께 뛰었고, 박상민은 라파엘을 지켜 주기 위해 페르난지뉴의 앞으로 뛰었다.

데이빗은 야야투레를 노려보는 것과 동시에 앞쪽으로 올지 모르는 패스에 대비하고, 오른쪽에서는 신준석이 델포와 스털링을 맡아서 이리저리 뛰었다.

“무둔바! 헤이!”

정지우는 무둔바에게 아구에로를 가리켰다.

투우욱!

페르난지뉴의 선택은 야야투레였다.

덩치가 엄청난 야야투레다.

그는 프리미어리그 선수치고는 근육조차 없어 보이는 몸매였고, 어딘가 게을러 보이기도 한다.

툭툭!

그런데 유연함, 상대 선수와의 몸싸움, 느닷없는 슈팅까지, 어느 것 하나 나무랄 구석이 없었다.

정지우는 자세를 낮추고 재빠르게 장갑을 몸에 문질렀다.

무서운 팀, 맨시티.

초반에 휘청이긴 했지만 실바의 돌파, 아구에로의 힘과 골 결정력, 유연하고 예상하기 어려운 야야투레, 탄력과 순간 판단력이 죽여주는 스털링까지, 맨시티는 절대로 만만한 팀이 아닌 거였다.

투우우욱!

그리고 정지우가 가장 염려하던 패스가 눈과 비에 젖은 그라운드를 가르는 것처럼 왼쪽으로 파고들었다.

야야투레가 찔러 넣은 공을 향해 데이빗이 급하게 발을 뻗었고, 라파엘과 스웰던이 비슷하게 막아섰지만, 결국 공은 그 사이를 절묘하게 피하는 것처럼 왼쪽 골대 앞을 파고들었다.

정지우가 빠르게 왼쪽으로 움직였을 때,

와락!

실바가 뛰어들고 있었다.

박상민이 두 번째로 좋아하는 스페인 출신의 세계적인 미드필더. 이런 순간에도 패스할지, 슈팅을 할지를 알아채기 어려운 선수.

정지우는 그의 왼발만 보았다.

실바는 왼발로도 빈 곳을 찔러 넣는 슈팅을…….

퍼어엉!

공은 정지우의 정면 아래를 파고들었다.

와락!

정지우는 정강이를 좁히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가랑이 사이를 노릴 줄은 몰랐다.

“우-!”

“예에에-!”

터어엉!

정지우의 발에 걸린 공이 튀어 나갔고,

퍼어엉! 와락!

그 공을 아구에로가 곧바로 날렸다.

골대 중앙에서 오른쪽이었다.

공을 잡을 여유도 없었고, 물에 젖은 공이라 함부로 잡을 수도 없었다.

터어엉!

공은 급하게 몸을 날린 정지우의 가슴에 맞고 튀어 나갔다.

퍼어어엉!

오른쪽에 있던 신준석이 멀리 걷어 낸 공이 사이드라인 바깥으로 나가면서 유니온 시티는 겨우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쿵. 쿵. 쿵. 쿵. 쿵. 쿵.

“우리는 세상에서 제일 강한 팀! 절대 지는 법이 없지!”

슈팅은 맨시티가 날렸는데 유니온 시티의 응원가가 우렁차게 울려 나왔다.

아구에로가 젖은 얼굴을 쓸어내리는 동작으로 아쉬움을 닦아 냈고, 실바는 특유의 표정으로 정지우에게 시선을 주었다.

“상민아! 야! 박상민!”

정지우는 실바를 손으로 가리켰다.

가능하다면 전반까지는 아예 실바를 맡아 달라는 의미였다.

녀석이 고개를 끄덕일 때, 맨시티의 콜라로프가 공을 길게 던지며 다시 플레이가 시작되었다.

“신준석! 야! 야- 아!”

응원가가 워낙 크게 울리고 있어서 신준석을 부르는 게 쉽지 않았다.

녀석이 힐끔 시선을 돌린 순간에 정지우는 스털링을 분명하게 가리켰다. 실바와 스털링만 제대로 묶어도 맨시티의 공격을 중앙으로 몰아 둘 수 있는 거다.

오래 함께 뛴 동료들이다.

특히 수비수와 데이빗은 박상민과 신준석에게 당부한 내용을 모두 이해하는 수준이었다.

이제 라파엘과 무둔바는 아구에로의 결정력을 막아설 거고, 데이빗과 카알이 야야투레를, 꼼빠니와 스웰던은 페르난지뉴를 막아 준다.

투욱! 툭!

공은 델포를 거쳐 역시 야야투레에게 연결됐다.

달려들기 어렵다.

레믹과 이정렬이 뒤로 물러나 야야투레를 막아섰고,

투우욱!

공은 맨시티의 수비수 오타멘디에게 움직였다.

『기세가 오른 맨시티의 공격입니다!』

『카알의 움직임이 좀 아쉽네요. 공을 소유했을 때 오른쪽을 파고들거나 지금 같은 순간에는 거친 몸싸움으로 버텨 줘야 하는데, 그쪽에서 밀린 게 그라운드 전체로 퍼지는 느낌이네요.』

『신준석 선수가 스털링을 집중적으로 마크하고, 박상민 선수는 아예 대놓고 실바를 막아서고 있습니다.』

레믹이 악착같이 달려들었는데 공은 그를 피하는 것처럼 돌아서 야야투레에게 이어졌다.

“야야! 야야- 야야! 야야! 야야-! 야야- 야야! 투레!”

단순하고 중독성 있는 야야투레의 응원가가 에티하드 스타디움을 가득 메웠다.

퍼어엉!

그리고 그에 응답하는 것처럼 야야투레가 날카롭게 공을 날렸다.

휘익! 휘이익!

아구에로와 페르난지뉴가 몸을 솟구쳤는데,

터어엉!

공은 무둔바의 머리에 맞고 왼편으로 튀어 나갔다.

터억! 툭툭!

공을 잡은 건 박상민이었다.

녀석은 실바를 뒤에 두고 빠르게 맨시티의 진영을 향해 뛰었다.

콰아악! 콰다다당!

삐이이익!

실바의 태클이었다.

발이 높지 않았지만 명백한 백태클이고, 공보다 박상민의 발이 먼저 걸려서 충분히 옐로카드 정도는 나올 상황이었다.

그러나 달려온 주심은 실바에게 손바닥을 눌러 보이는 구두 경고를 한 것으로 경기를 진행했다.

“우우-!”

“비가 와서 눈이 안 보여! 와이퍼를 달아 줄까!”

흥분을 참지 못한 교장 선생님의 고함이 관중들의 야유를 뚫고 또렷하게 들렸다.

먼저 일어난 실바가 박상민의 손을 잡아당겼다.

툭툭.

그리고 그가 박상민의 뒤통수를 쳐 주고는 맨시티 진영으로 뛰었다. 녀석이 한국 축구의 영웅, 박지성 선수 다음으로 좋아하는 미드필더가 함께 경기에 뛰고 있는 거였다.

정지우는 피식 웃으며 박상민을 보았다.

놈은 독이 올라 있었다.

경기에 밀리는 것이, 그리고 치고 달리는 순간에 백태클에 걸렸다는 것이 몹시 화가 난 모양이었다.

데이빗이 킥을 하기 위해 공을 내려놓는 동안 정지우는 그라운드 전체를 둘러보았다.

어느새 동기들이 완전히 자리 잡은 느낌이었다.

어지간한 팀에서 늘 일대일 마크를 내세워야 할 정도로 활동량과 어시스트가 많은 박상민, 유정호에게 계속해서 이적 제안이 들어온다는 이정렬, 특별히 표시 나지는 않지만 스털링이라는 선수쯤 꽁꽁 묶을 수 있는 신준석까지.

퍼어어엉!

데이빗이 오른쪽의 카알을 노리고 기다랗게 공을 날려 주었다.

아직 분무기로 뿌리는 듯한 비가 내리는 그라운드다.

시선을 돌린 곳에서 마틴이 팔짱을 낀 채 비를 맞고 있었다. 머리칼이 흠뻑 젖은 나이 든 감독이 물러나지 않는 자세로 그라운드의 한쪽에 있는 거였다.

터어엉!

카알은 공을 제대로 잡지 못했다. 그래서 데이빗이 넘겨준 공이 바로 아웃되고 말았다.

“집중해! 레믹!”

동료들에게 고함을 지른 마틴이 레믹을 따로 불러 엄지를 세워 주었다. 그가 지금까지 보여 준 활동량만큼은 충분히 칭찬받을 만했다.

『유니온 시티! 패스가 제대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네요!』

『박상민이 실바를 묶은 것까지는 좋았는데, 중앙에서 공을 제대로 연결해 줄 선수가 없어진 모양새거든요.』

『맨시티의 절박함이 유니온 시티의 우승을 향한 걸음을 제대로 붙드는 느낌입니다.』

캐스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공은 다시 야야투레에게 연결되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