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라운드의 지배자-233화 (233/262)

제6장. 그동안의 성적으로 다 증명했잖아! (1)

전반 내내 몰아붙이던 유니온 시티의 골을 박상민이 만들어 냈다.

쉼 없이 뛰어다니며 동료들의 공을 받아 주었고, 누가 보기에도 숨이 찰 만큼 달려서 수비를 지원하며, 결정적인 순간에 찔러 주는 킬러 패스까지.

관중석 앞에 선 박상민에게 동료들이 계속 달려들었고, 레믹은 권투 경기에서 이긴 사람처럼 녀석의 왼팔을 잡아 번쩍 치켜들기까지 했다.

쿵. 쿵. 쿵. 쿵. 쿵. 쿵.

“Wild Sang(거친 박상민)!”

애스턴 빌라의 홈구장 빌라 파크다.

그런데도 원정 관중들이 얼마나 요란하게 뛰어 대는지 화면이 위아래로 흔들리고 있었다.

쿵. 쿵. 쿵. 쿵. 쿵. 쿵.

“You make my heart sing(너는 내 심장을 노래하게 해)!”

『유니온 시티의 응원 때문에 카메라가 위아래로 흔들립니다! 저렇게 일사불란하게 뛰기도 쉽지 않을 텐데요!』

『실제로 레드 블레이트에서 골이 나올 때면 관중석이 너무 흔들려서 보강해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니까요! 저런 응원이 선수들에게 힘이 되지요!』

쿵. 쿵. 쿵. 쿵. 쿵. 쿵.

“I think you move me(넌 나를 움직이게 해)!”

『레믹 선수가 유독 좋아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동안 어스시트를 워낙 많이 받았으니까 고마워서 그런 게 아닐까요?』

쿵. 쿵. 쿵. 쿵. 쿵. 쿵.

“Wild Sang(거친 박상민)!”

캐스터와 해설자는 알아채지 못했지만, 정지우와 동료들은 모두 알았다. 유니온 시티의 관중들이 박상민의 응원가를 부르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박상민이 관중석을 향해 양손 검지를 쭉 들자,

“예에에에에에에-!”

엄청난 함성이 쏟아져 나왔다.

세레머니가 끝나고 대조적인 표정의 양 팀 선수들이 중앙선을 중심으로 맞섰다.

삐이익!

휘슬과 동시에 애스턴 빌라의 코자크가 아예우에게 공을 넘겼다.

어떡해서든 밀고 올라와야 한다.

애스턴 빌라의 선수들뿐만 아니라 심지어 유니온 시티의 선수들까지 잘 아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어떻게 올라와야 하는지를 모르는 상황이었다.

박상민을 중심으로 앞에서는 이정렬과 레믹이 미친놈처럼 뛰어다니고, 좌우에서는 꼼빠니와 카알이 설쳐 대는 데다, 데이빗을 중심으로 수비 라인이 단단하게 자리 잡았다.

정지우가 보기에도 동료들의 리듬이 워낙 좋아서 이런 날은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 내보내도 우승컵을 거머쥐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물론 결승에 올라오는 팀이 이런 리듬을 유지하도록 그냥 놔둘 리 없지만 말이다.

투욱!

애스턴 빌라의 중앙을 맡은 8번 구예가 오른쪽의 카를레스 길에게 기다란 패스를 넘긴 순간이었다.

와락!

신준석이 불쑥 튀어나와 공을 잘랐다.

“와아-!”

투욱!

신준석의 선택은 역시나 박상민이었다.

그다음에 이어진 유니온 시티의 패스는 정지우도 놀랄 정도로 환상 그 자체였다.

툭!

박상민이 앞쪽에 있던 이정렬에게 공을 넘겼고,

투욱!

이정렬은 오른쪽 뒤편의 카알에게 패스해서 상대 팀 마크의 시선을 뺏었으며,

투욱!

카알은 느닷없이 페널티 에어리어 정면의 레믹에게 공을 건넸다.

“예에에-!”

수비수들이 잔뜩 있어서 슈팅을 날리기는 어려워 보였다.

그 순간, 박상민이 레믹의 왼편 앞으로 뛰어들었다.

관중들, 수비수, 골키퍼 번의 시선이 모두 박상민에게 쏠린 순간이었다.

툭!

레믹은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오른쪽으로 공을 흘렸다.

신준석이었다.

녀석이 이를 악물고 골대를 향해 똑바로 달려들고 있었다.

놀란 수비수들이 녀석에게 달려들고, 골키퍼 레스콧이 급하게 신준석을 막기 위해 몸을 움직인 직후였다.

투욱!

신준석이 몸을 던지다시피 각도를 꺾어 골대 앞으로 공을 찔러 넣었다.

화아악!

레스콧 몸을 던졌지만, 거리가 제법 있었다.

골키퍼의 손을 빗겨 나간 공이 수비수의 발 사이를 뚫고 날아갔고,

투욱!

달려들던 박상민의 발에 걸렸다.

철렁!

“예에에에에에에에-!”

달려들던 탄력에 골포스트를 붙들고 멈춰 선 박상민이 멋쩍은 얼굴로 몸을 돌렸다.

『박상민! 두 번째 골입니다!』

『신준석 선수를 가리키네요!』

『골을 넣은 박상민보다 레믹이 더 좋아합니다!』

신준석이 달려가 박상민과 어깨를 두르고 관중석으로 달렸다. 레믹이 그 둘의 뒤를 따라갔고, 원정 관중들 앞에서 셋이 머리를 맞대고 기뻐했다.

화면 가득히 기분 좋게 웃는 정지우의 얼굴이 잡혔다.

『정지우 선수! 흐뭇한 표정입니다! 유니온 시티! 박상민의 두 골로 앞서갑니다!』

이어서 화면은 목을 쭉 빼고 있던 마틴이 허공에 주먹을 날리며 기뻐하는 모습을 느린 그림으로 보여 주었다.

『박용근 감독의 표정도 한번 보고 싶네요.』

세레머니가 끝나고 양 팀이 다시 중앙선을 중심으로 나뉘어 섰을 때는 전반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었다.

애스턴 빌라가 몇 차례 뻥뻥 내지른 공을 유니온 시티가 걷어 냈고, 공이 하늘로 높다랗게 떠오른 직후에 주심이 휘슬을 불었다.

전반은 그렇게 끝났다.

정지우는 아웃된 공을 두 번 차 본 게 전부일 정도로 일방적인 경기였다.

통로를 향해 걸어가는 정지우에게 박상민이 걸어왔다.

“멋지던데? 왼발은 어떻게 된 거냐?”

“몰라! 줄 곳도 없고, 오른발은 도저히 각도가 안 나와서 그냥 꺾었는데 들어갈 줄은 몰랐어.”

정지우는 픽 하고 웃으며 통로로 들어섰다.

라커룸에서의 화제는 박상민의 새로운 응원가였다.

아직 레믹과 이정렬도 가지지 못한 응원가를 박상민이 선물 받은 거였다. 누가 시켜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관중들이 알아서 만들어 인터넷을 통하거나, 혹은 공장에서 쉬는 시간에 연습하는 거다.

‘Wild Thing’이라는 노래의 한 부분에 Sang이라는 이름을 넣은 단순한 응원가였다. 그러나 스트라이커가 아닌 박상민이 관중들에게 그런 응원을 받는 것의 의미는 컸다.

비록 많은 골을 넣는 선수는 아니지만, 관중들이 그의 헌신을 알아준다는 의미였다.

“해트트릭 한번 만들어야지!”

촐랑이가 오늘 왜 저렇게 좋아하지?

물끄러미 바라보는 정지우의 시선에 레믹이 변명처럼 입을 열었다.

“난 솔직히 팀플레이가 뭔지 잘 몰랐어! 처음에 기억나? 난 내가 넣는 골 숫자 외에 관심 없었거든!”

고백하는 것처럼 레믹이 들뜬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Sang과 Lee가 하는 플레이를 보면서 알았어! 팀이 발전하는 게 내게도 좋다는 걸! 그리고 Sang에게 수비가 쏠려야 내가 골을 만들기도 더 좋고!”

“레믹! 너무 솔직한 거 아냐?”

듣고 있던 꼼빠니가 손을 뻗자 레믹이 기분 좋게 손바닥을 쳐 줬다.

달칵.

그때 마틴이 들어왔다.

“굳이 잔소리하지 않아도 되겠지?”

그는 만족한 표정이었다. 하긴 이 정도 경기에서 만족하지 못한다고 고함을 지르면 오히려 사기가 꺾일 거다.

“방심하지 말고 리그 우승을 위해 똑바로 올라가자!”

손뼉을 두어 번 친 마틴이 버릇처럼 정지우를 향해 시선을 준 뒤에 라커룸을 나섰다.

후반전 역시 유니온 시티의 일방적인 경기였다.

『애스턴 빌라의 관중들이 경기장을 떠나고 있습니다.』

『선수들이 포기한 것처럼 보이거든요. 애스턴 빌라 선수들은 관중들을 위해서라도 좀 더 성의 있는 경기를 펼칠 필요가 있어요!』

『이럴 때 새로 감독을 선임하는 이유가 선수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려는 게 아닙니까?』

『그렇죠!』

삐이이익!

해설자의 설명을 자르며 주심이 휘슬을 커다랗게 불었다.

애스턴 빌라의 수비수 바쿠나가 꼼빠니를 끌어안고서 패대기치듯 던졌기 때문이었다.

뚫렸다면 결정적인 기회를 잡았을 상황이라 주심은 바로 옐로카드를 뽑아 들었다.

『이렇게 되면 양쪽 측면의 두 명이 모두 경고가 있습니다!』

『수비가 위축될 수 있는데요! 그렇다고 마땅히 교체할 선수도 없어요! 시즌 초반에 떠나보낸 선수들을 대신해 적당한 보강이 이뤄지지 않았거든요. 프리미어리그의 터줏대감인 애스턴 빌라가 이렇게까지 무너지는 모습을 보일 줄 몰랐습니다.』

꼼빠니가 허리에 손을 올린 채 공을 노려보았고, 골대 앞에서 선수들이 뒤엉켰다.

퍼어어엉!

골대를 향해 공이 날아갔다.

중간에서 잘라 들어가며 헤더를 해야 하는 킥이었다. 그러나 이번 공은 골키퍼 마크 번이 높다랗게 뛰어올라 잡아냈다.

“Ji! 지루하다고 방심하면 안 돼!”

교장 선생님의 고함이 정지우에게 들렸다.

염려돼서 지른 고함이라기보다는 애스턴 빌라의 홈 관중들을 자극하기 위한 거였다.

실제로 애스턴 빌라의 홈 관중들이 반쯤 빠져나가서 응원 분위기까지 일방적으로 흐르고 있었다.

정지우는 애스턴 빌라의 관중들을 바라보았다.

턱을 괴거나, 혹은 머리에 양손을 올린 채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솔직히 강등은 확정적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마지못한 듯 뛰는 홈 팀 선수들을 끝까지 지켜 준다.

앉아 있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울 텐데도 말이다.

“제발 좀 뛰어 봐! 내게 애스턴 빌라를 돌려줘!”

평생 유니온 시티를 응원해 왔던 노부부의 건너편에서 아직 앳된 애스턴 빌라의 꼬마 팬이 고함을 질렀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저 아이는 애스턴 빌라가 다시 프리미어리그로 돌아와 지금의 유니온 시티처럼 날아오르기를 기다리고 기다리며 응원을 멈추지 않을 거다. 그리고 마침내 프리미어리그로 승격했을 때, 혹은 강팀과의 경기에서 멋진 모습으로 승리했을 때, 저 아이는 지금의 노부부처럼 눈물을 보이며 감격해하는 모습을 보여 줄 거다.

저 아이에게 저토록 간절하고 한결같은 응원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무엇일까?

쿵. 쿵. 쿵. 쿵. 쿵. 쿵.

“오- 오오! 오- 오오!”

맞은편에 있는 유니온 시티의 원정 관중들이 어깨를 마주 잡고 자리에서 뛰고 있었다.

130년이 넘는 유니온 시티의 역사에서 단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프리미어리그 선두다.

그동안 강팀과의 대결 때마다 애스턴 빌라의 아이와 같은 표정으로 묵묵하게 경기를 지켜보았을 노부부, 나이 든 철강 노동자들이 흥분하기에 충분한 성적이었다.

일방적인 공격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몇 번이나 공을 막아 낸 애스턴 빌라의 골키퍼 마크 번이 거칠게 손을 마주치며 동료들에게 악을 써 댔다.

5분쯤 지났을 때였다.

휘이익! 휘익!

공을 따내기 위해 점프한 이정렬을 함께 뛰어오른 마크 번이 거칠게 들이받았다.

철퍼덕!

이정렬은 등으로 떨어졌다.

“우-!”

야유와 탄성이 동시에 쏟아졌다.

레믹과 꼼빠니가 이정렬에게 달려갔고, 혹시나 머리를 다쳤을지 모른다는 판단에 주심이 벤치를 향해 급한 손짓을 보였다.

팀 닥터 스미스가 빠르게 뛰어들었다.

정지우는 굳은 얼굴로 애스턴 빌라의 골대를 노려보았다.

이해는 한다. 사기가 꺾인 동료들을 자극하기 위해서라도 거친 플레이를 펼칠 수밖에 없었던 상대 팀 골키퍼의 심정을.

그러나 방법이 너무 감정적인 거다.

저런 더러운 모습이 아니라, 먼저 멋지고 끈질긴 선방으로 동료들을 자극했어야 했다.

팀 닥터가 이정렬의 눈을 들여다보며 몇 차례나 질문을 던졌고, 잠시 후에 녀석을 부축해서 그라운드 바깥으로 나갔다.

주심은 골키퍼 마크 번을 부른 뒤에 주머니에서 옐로카드를 꺼냈다.

“와아-!”

“우-!”

페널티킥을 얻었다는 기쁨과 퇴장이 아니라는 데 따른 비난이 동시에 쏟아져 나왔다.

데이빗과 레믹이 박상민을 향해 페널티킥 자리를 가리켰을 때 주심의 손짓을 받은 이정렬이 그라운드로 들어섰다.

박상민은 페널티킥 자리에 공을 내려놓고는 뒷걸음질로 물러났다.

『박상민! 이정렬이 얻어 낸 페널티킥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해트트릭을 기록할 기회입니다!』

『동료들이 양보한 것 같네요!』

양 팀 선수들이 페널티 에어리어 라인에 늘어서서 자세를 잔뜩 낮춘 채 달려들 준비를 마쳤다.

삐이익!

휘슬과 동시에 박상민이 공을 향해 똑바로 달려들었다.

『박상민! 슈웃!』

터어엉! 화악!

왼쪽 코너를 파고드는 슈팅이었고, 골키퍼는 오른쪽으로 몸을 날렸다.

철러- 엉!

“예에에에에에에-!”

『골! 박상민! 이정렬의 도움으로 해트트릭을 기록합니다!』

『우리 선수가 만든 페널티킥을 우리 선수가 성공합니다! 박상민의 해트트릭을 이정렬이 완성하는! 이런 장면을 영국 프리미어리그에서 볼 줄 몰랐습니다!』

일방적인 경기이고, 3 대 0의 스코어다.

요란한 세레머니를 자제한 박상민이 몸을 돌려 동료들과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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