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라운드의 지배자-228화 (228/262)

제4장. 손님이 찾아왔어. (1)

양 주먹을 불끈 쥐고 흔들어 대는 관중들 앞에서 이정렬과 동료들이 기쁨을 나누고 있었다.

데이빗과 레믹이 양보한 페널티킥이다.

쉬지 않고 달리며, 한 걸음이라도 더 뛰겠다며 상처까지 보였던 이정렬이 동료들의 양보를 골로 만들어 냈다.

코너까지 달려갔었던 신준석이 돌아올 때쯤, 양 팀 선수들이 중앙선을 중심으로 나뉘었다.

쿵. 쿵. 쿵. 쿵. 쿵.

“Go, Go, Go my Red! Go, Go, Go my Red!”

유니온 시티 관중들의 응원이 그라운드를 휩쓸 때 주심이 휘슬을 들었다.

삑!

경기가 다시 시작되었다.

툭! 투우욱!

벤테케가 짧게 밀어 준 공을 피르미노가 받아서 바로 엠레찬에게 넘겼다.

『이렇게 되면 리버풀도 승부를 걸어야 하겠습니다.』

『실제로 리버풀의 포백이 라인을 올렸거든요. 아직 한 골 차이라 조심은 하겠지만, 그래도 전체적으로 위로 올린 건 분명해 보이네요.』

투우욱! 툭! 툭!

쿠티뉴가 공을 받아서 중앙의 피르미노에게 패스했고, 피르미노는 곧바로 왼편의 앨런에게 넘겨주었다.

퍼어엉!

앨런이 대각선으로 공을 넘겼다.

투욱.

유니온 시티의 페널티 에어리어 오른쪽 앞에서 엠레찬이 공을 받고는 달려든 데이빗을 거칠게 뿌리쳤다.

“라파엘! 헤이! 헤이!”

정지우는 한동안 하지 않았던 수비수들의 움직임을 일일이 잡아 주었다.

라파엘이 헨더슨에게 달려들었고, 스웰던은 앨런을 따라다녔으며, 무둔바와 박상민이 오른쪽 라인을 맡았다.

그러나,

툭!

엠레찬이 페널티 에어리어 왼편으로 공을 흘려주었고,

투욱!

그 공을 받은 피르미노가 골대 앞으로 훅 찔러 넣었으며,

와락!

헨더슨이 몸을 돌리는 가벼운 동작으로 뒤에 있던 라파엘을 벗겨 냈다. 훅 하는 순간에 헨더슨이 수비수를 떨구고 슈팅 기회를 잡은 거였다.

봤다. 그리고 헨더슨이 패스 타이밍에 몸을 돌리는 것을 보고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예에에-!”

와락!

정지우는 곧바로 달려 나가 공을 향해 옆으로 몸을 던졌다.

파악! 팍!

헨더슨의 스파이크가 눈 바로 앞에 있었다.

꽈아악! 휘이익!

공을 잡는 순간 헨더슨은 몸을 띄워 정지우를 훌쩍 넘어갔다.

짝짝짝짝짝짝짝짝!

고개를 들었을 때 라파엘이 가장 먼저 달려왔다.

각오는 전과 다를 바 없는데 분명 몸이 따라 주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몸을 일으킨 정지우는 오른쪽으로 공을 던져 주었다.

신준석이 받아서 데니와 주고받은 다음, 이번에는 데이빗에게 넘겨주었다.

빠르게 연결되는 패스를 자르기 위해 리버풀 선수들이 적극적으로 달려들었다.

영국 축구는 정말이지 거칠고, 몸싸움에 관대해서 어지간한 반칙이 아니라면 휘슬을 불지 않는다.

리버풀 선수들이 박상민의 팔을 잡아챘다가 반칙이 아니라는 듯 양손을 위로 들어 보이곤 했다.

압권은 박상민이었다.

팔을 잡아채도, 슬쩍 손으로 밀어도, 비틀거리다가는 글자 그대로 오뚝이처럼 일어나 동료에게 공을 넘겨주었다.

짝짝짝짝짝짝짝!

관중들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

넘어질 듯 비틀거렸던 박상민이 카알에게 악착같이 공을 넘겨주었고, 카알이 리버풀 선수들에게 갇히자 어느새 그리 가서 다시 공을 받아 주었기 때문이다.

『박상민은 정말 칭찬을 안 할 수가 없습니다!』

『공이 어디로 가야 할지, 또 어디로 보내야 할지를 판단하는 능력이 뛰어납니다! 엄청난 활동량에 덩치 큰 선수들과 몸싸움에서도 밀리지 않거든요.』

『박상민! 또다시 데니의 옆에서 공을 받아 줍니다! 어? 레믹이 들어와 있습니다!』

촐랑이 레믹은 이정렬의 골과 박상민의 헌신적인 플레이에 자극받은 게 분명했다.

그가 데이빗의 앞까지 내려와 공을 받자 유니온 시티의 중앙에 숨통이 확 트이는 느낌이었다.

레믹은 가장 앞쪽에 있는 이정렬에게 공을 넘겨주었다.

레믹을 대신해 원톱 자리에 서 있던 이정렬이다.

당연히 박상민이나 다시 레믹, 아니면 카알에게 패스가 연결될 줄 알았다.

휘익!

그런데 공을 받은 이정렬이 몸을 홱 돌리고는 그대로 리버풀 골대를 향해 뛰어들었다.

“와아-!”

짧은 함성이 터져 나온 직후였다.

투욱!

오른쪽으로 공을 밀어준 이정렬이 속도를 죽이지 않고 앞으로 계속 달렸다.

투우우욱!

어느새 거기까지 달려간 박상민은 이정렬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리버풀의 골대 오른쪽으로 달려가는 이정렬의 발 앞에 공을 찔러 넣어 주었다.

“예에에에-!”

가슴을 편 채 양팔을 아래로 뻗은 미놀레가 달려 나왔고, 사코와 로브렌이 이정렬을 향해 뛰어들었다.

툭!

이정렬은 다시 공을 왼쪽 뒤로 흘렸다.

와락! 퍼어어엉!

레믹이었다. 불쑥 나타난 레믹이 공을 향해 달려들어서 몸이 붕 뜰 만큼 강력한 슈팅을 날렸다.

미놀레가 몸을 날렸지만, 역부족이었다.

터어어엉!

빨랫줄처럼 쭉 날아간 공은 골대가 흔들릴 정도로 강하게 크로스바를 때리고 높다랗게 솟구쳤다.

휘이익!

이정렬과 레믹이 달려들었지만, 점프한 상태에서 팔을 뻗은 미놀레를 이기지는 못했다.

아까운 장면이었다.

이정렬을 향해 엄지를 치켜든 레믹이 고개를 흔들며 중앙으로 뛰어나왔다.

“데이빗! 조심해! 라파엘! 무둔바! 조금 더 나가! 더! 그래! 거기를 꼭 지켜 줘!”

저렇게 확실했던 기회를 놓치면 이상하게 위기가 온다.

정지우는 미리 수비수들을 재촉해서 분위기를 잡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리버풀은 라인을 더 올렸고, 보다 거친 플레이를 펼쳤다.

한 가지 다행이라면 유니온 시티 역시 거칠고 투박한 플레이로 챔피언십에서 살아남았고, 프리미어리그에 올라왔다는 거였다.

콰악! 콱!

엠레찬과 피르미노가 번갈아 박상민을 들이받았고,

콰다당!

녀석이 그라운드에 커다랗게 넘어졌다.

삐이이익!

어깨로 어깨를 들이받는 건 엄격하게 반칙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막상 경기에 나서 보면 어깨로 가슴과 등을 들이받는 게 더 많다. 그리고 그 짧은 순간에 손을 써서 상대를 밀치는 경우도 흔했다.

주심이 휘슬을 불어 파울을 선언했다.

투우욱!

레믹은 카알에게 공을 연결해 주었고, 카알이 다시 데이빗에게 패스했다.

콰아악! 콰다당! 삐이익!

이번에는 공을 뺏으려고 달려들었던 엠레찬에게 데이빗이 커다랗게 넘어졌다. 리버풀 선수들이 주심에게 이게 왜 파울이냐는 투로 손짓했지만, 누가 봐도 파울이라고 할 만한 거친 플레이였다.

파울을 얻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이렇게 자꾸 몸싸움을 당하면 동료들이 위축될 수 있고, 그때부터 정말 위기가 시작된다.

고함을 질러서라도 동료들에게 경고해야 할까?

우리도 좀 더 거칠게 나가라고 악을 써 볼까?

정지우가 스웰던과 데이빗, 신준석을 돌아볼 때였다.

“왜 자꾸 넘어지는 거야! 우리도 좀 쓰러트리라구!”

교장 선생님의 엄청난 고함이 관중들의 함성을 뚫고 또렷하게 들렸다.

사람 목소리가 저렇게 클 수 있다니!

“유니온 시티의 진가를 보여! 밀어붙여! 데이빗!”

관중들의 고함은 가끔 들린다.

특히 터치라인으로 움직였을 때, 혹은 응원이 한풀 꺾인 틈에 날아오기도 한다. 그럴 때 선수가 반응하는 건 좋지 않은 일이었다.

공을 바닥에 내려놓은 데이빗이 고개를 좌우로 돌려서 동료들을 보았다.

삐익!

주심의 휘슬이 울렸고, 당연하게 데이빗이 공을 찼다.

데니가 받아서 박상민에게 패스했고, 박상민이 다시 데이빗에게 넘겼다.

와락!

엠레찬이 달려드는 순간이었다.

콰악! 꽉!

들이받는 엠레찬과 팔을 뒤엉키고도 데이빗은 악착같이 버텨 냈다.

툭!

그 와중에 박상민에게 공이 넘어가면서 짧은 몸싸움은 끝났다. 그러나 조금 전 데이빗의 플레이를 동료들이 모두 보았다. 그때부터 경기가 좀 더 격렬해지기 시작했다.

『리버풀은 그렇다고 쳐도, 유니온 시티가 오히려 한 점 뒤진 팀처럼 거칠게 경기를 풀어내고 있습니다.』

『후반 중반부터 움직임이 다시 돌아왔는데요. 한 골을 넣고 분위기가 살아나는 경우가 종종 있거든요. 유니온 시티가 그런 것이 아닌가 싶네요.』

공은 빠르게 양 팀을 오갔다.

그동안에도 리버풀은 결정적인 기회를 만들지 못했는데 그건 데이빗을 비롯해 스웰던, 데니, 그리고 무둔바의 헌신적인 플레이 덕분이기도 했다.

후반 40분이 넘어가자 동료들은 급격하게 지친 모습을 보였다. 역시나 의지만으로 경기력을 끌어 올리는 데는 한계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벤테케! 슛! 박상민! 또 몸을 던져서 막아 냅니다!』

『박상민 선수는 포지션이란 게 없네요!』

『공을 잡은 쿠티뉴! 신준석 멋진 태클로 저지합니다. 리버풀의 스로인! 이정렬과 레믹까지 페널티 에어리어 앞에 있습니다.』

『오늘 유니온 시티 선수들이 체력적으로 문제가 있는 게 확실하네요. 박상민과 신준석이 아니었다면 위험한 순간이 훨씬 더 많았을 겁니다.』

『모레노의 스로인! 엠레찬! 오늘 많이 뛴 엠레찬의 패스! 피르미노! 툭툭 치고 들어가는 피르미노! 슈웃!』

날카로운 중거리 슈팅이었다.

정지우가 높다랗게 떠서 오른손으로 걷어 낸 공이 크로스바를 살짝 넘어갔다.

피르미노가 양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린 후, 상의를 들어 얼굴을 닦았다.

시간은 계속 흘렀고, 마침내 주심이 휘슬을 입에 물었다.

『이렇게 되면 유니온 시티의 무패 기록은 계속 이어질 것 같습니다. 어려운 리버풀과의 경기, 유니온 시티 승리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삑! 삑! 삐이이익!

“예에에-!”

경기가 끝났다.

이상하게 힘들고 어려운 경기였지만, 그래도 승리로 끝난 경기였다.

정지우에게 다가오는 동료들의 얼굴에 안도와 미안함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무둔바와 손을 맞잡았고, 라파엘의 뒤통수를 툭 쳐 주었으며, 스웰던과 오른쪽 어깨를 부딪쳤다.

“상민아.”

정지우가 박상민의 머리를 잡고 두들겨 주는 모습이 TV 화면에 잡힌 뒤로 경기의 하이라이트 장면이 이어졌다.

유니온 시티 동료들에게 예방 주사와 같은 경기였다.

그해 마지막 경기인 12월 30일 맨시티와의 경기에서 유니온 시티는 0 대 0 무승부로 무패를 기록했다.

1월 2일 토요일의 경기에서 유니온 시티는 본머스와 또다시 0 대 0 무승부를 기록했다.

26일, 30일, 그리고 2일.

연일 이어지는 일정과 리버풀, 맨시티 등의 강팀을 상대하며 지친 탓에 본머스전은 특히 체력적으로 힘든 경기였다.

맨시티와 본머스의 경기가 끝나고 정지우에게 쏠린 세계의 시선은 엄청났다.

두 경기에서 정지우는 일곱 번의 슈퍼세이브를 보였고, 그 선방은 패배의 수렁에 떨어지는 유니온 시티를 혼자서 끄집어낸 것과 다름없었다.

특히나 맨시티전 전반 아구에로의 환상적인 발리슛과 추가 시간에 나온 야야투레의 헤딩슛을 막아 낸 장면은, 동영상 전문 사이트에서 단기간에 5천만 조회수를 기록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세계적인 팀이 정지우를 원한다는 멘트를 대놓고 하기 시작해서 연일 비슷한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쥬피터는 정지우의 안부를 묻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고, 정지우의 컨디션을 살피는 것으로 하루를 마감했다.

정지우 덕분이었다.

산유국의 세계적인 거부들이 유니온 시티에 투자를 제안한 것은 말이다.

그동안 쥬피터가 고민하던 문제를 해결할 기회였다.

투자자들의 조건은 간단했다. 정지우와 계약을 갱신해서 그의 바이백 조건을 우리 돈 2천억 원 이상으로 만들라는 것이었다. 계약 조건에는 박상민도 포함되어 있었다.

쥬피터는 한국인 요리사를 고용했다.

유니온 시티의 식단에 잡채와 불고기, 김치, 갈비탕이 나오기 시작한 것도 이쯤이었다.

유니온 시티의 홍보 담당 매니저 에이미는 정지우의 기사를 관리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지금은 전 세계의 유력한 방송사들이 유니온 시티의 리그 무패 기록에 관한 취재를 요청하고 있었고, 더불어 정지우와 그의 동기들의 인터뷰를 요구했다.

정지우에게 인터뷰를 요청한다고?

그랬다가 그가 불편한 표정을 지으면 아마 쥬피터는 당장 드라큘라로 변해서 에이미의 피를 남김없이 빨아먹고도 분을 풀지 않을 거다.

1월 본머스전을 마친 유니온 시티 선수들은 회복 훈련을 하며 오전을 보냈다. 다음 경기는 1월 13일 토트넘과의 원정 경기여서 모처럼 여유도 있었다.

오전에 간단하게 몸을 푼 정지우는 기구를 통해 근력 운동을 마쳤고, 동기들과 함께 식당으로 들어섰다.

리버풀과의 경기 뒤로 동기들은 부쩍 동료들과 친해졌는데 특히 레믹과 데니, 그리고 이정렬이 함께 떠들었고, 데이빗, 카알, 꼼빠니가 박상민, 그리고 수비수들이 신준석과 좀 더 친했다.

모처럼 여유 있게 앉아 잡채, 불고기, 갈비탕과 밥을 먹는 점심이었다.

식사가 끝났을 때쯤 클락이 식당으로 들어와 정지우에게 다가왔다.

“Ji, 손님이 찾아왔어.”

“나를?”

정지우는 물론이고 동기들까지 시선을 주었을 때였다.

“한국에서 온 기자분이라고 하던데? 홍보실에 있어.”

클락의 대답이 건너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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