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라운드의 지배자-227화 (227/262)

제3장. 무패 우승을 원한 건 아니었다. (2)

손을 들어 보인 쿠티뉴가 공을 향해 달려들었다.

퍼어엉!

그가 찬 코너킥은 골대를 멀찍이 지나쳐 왼편에 떨어졌다.

정지우가 공을 따라 왼쪽 골포스트로 움직인 직후였다.

앨런이 공을 향해 달려들었고, 박상민이 거의 동시에 앨런을 덮쳤다.

펑! 티잉!

정지우가 움찔하는 순간에 박상민의 발에 걸린 공이 페널티 에어리어 왼편 바깥으로 튀어 나갔다.

짝짝짝짝짝짝짝짝!

박상민의 플레이에 박수가 나오는 동안 공을 잡은 것은 카알이었다.

투욱!

그가 달려온 박상민에게 공을 주었고,

투우욱!

박상민은 그 공을 곧장 이정렬에게 연결했다.

“우와아- 아!”

『유니온 시티의 역습입니다!』

유니온 시티 관중들의 커다란 함성이 그라운드를 가득 메울 때,

퍼어엉!

이정렬은 리버풀 오른쪽 구석으로 공을 길게 넘겼다.

“예에에에-!”

데니였다. 그가 빠르게 달려 공을 잡았고, 리버풀의 골대를 향해 방향을 틀었다.

툭툭!

모레노를 앞에 두고 공을 두어 번 몰고 간 데니가,

투욱!

오른쪽 페널티 에어리어 모서리를 향해 공을 찔러 주었다.

훅 달려든 레믹이 또다시 기회를 잡았다.

『걸렸어요! 쏴야죠!』

리버풀의 수비수와 미드필더들이 자리 잡기 전이었다.

페널티 에어리어 라인 바로 안쪽이고, 골키퍼와 일대일 상황이었다.

치고 들어가든, 바로 슈팅을 날리든, 결정적인 찬스였다.

티이잉!

그러나 레믹은 이번에도 타이밍을 제대로 맞추지 못했다.

그의 발에 빗겨 맞은 공은 어처구니없이 페널티 에어리어 라인을 타고 왼편으로 흘렀다.

퍼어어엉!

사코가 잽싸게 공을 걷어 냈다.

“우와아- 아!”

박상민, 이정렬, 카알, 데니가 깊숙이 들어간 상태에서 리버풀의 역습이었다.

가슴으로 공을 받은 헨더슨이 빠르게 안쪽으로 패스했고, 벤테케가 받아서 가볍게 뒤로 흘렸으며, 그 공을 피르미노가 다시 유니온 시티의 왼편으로 깊숙하게 찔러 주었다.

“스웰던! 나가! 나가!”

정지우는 있는 대로 고함을 질렀다.

그때까지도 스웰던은 위치를 지킬 건지, 달려들 건지에 대해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 모습이었다.

시간을 벌어 줬어야 할 스웰던이 뒤늦게 뛰어나갔다.

투우욱!

그 바람에 앨런은 여유 있게 페널티 에어리어 왼편으로 공을 찔러 줄 수 있었다.

“예에에-!”

라파엘 역시 뛰어나갔어야 했다.

벤테케가 그를 제치는 한이 있어도 그에게 붙어 줬어야 했다. 그러나 라파엘은 주춤거렸다. 그러면서 공을 노려보던 정지우의 시야를 가렸다.

“라파엘! 나가! 나가라고!”

하겠다는 의지는 있지만, 컨디션이 올라오지 않은 탓이었다. 판단이 늦은 만큼 골키퍼와의 동선마저 놓친 거였다.

퍼어엉!

함성 속에서 섬뜩한 슈팅 소리가 들렸다.

어디로 날아올지 전혀 짐작하지 못한 상태였다.

티잉!

몸을 풀쩍 띄운 라파엘의 머리를 맞은 공이 정지우의 오른쪽 위로 날아왔다.

화아아아악!

정지우가 몸을 날렸지만, 공은 손을 살짝 벗어나서 날아갔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골을 먹어도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열심히 하려고 했지만, 몸이 따라 주지 않는 동료들을 비난할 마음은 없었다.

골을 먹은 건 누가 뭐라고 해도 골키퍼의 책임인 거다.

털썩!

정지우가 바닥에 떨어진 직후였다.

“우우-!”

리버풀 관중들의 탄식이 커다랗게 들렸다.

『크로스바를 스친 것처럼 지나갔습니다! 양 팀 모두 아쉬울 수밖에 없는 기회를 놓칩니다! 저런 걸 표현할 때 깻잎 한 장 차이로 빗겨났다고 하는데, 꼭 그런 느낌입니다!』

『예전에는 크로스바의 도색이 벗겨졌다는 표현도 썼지요!』

전반이 얼마 남지 않았다.

쿠티뉴가 코너킥을 준비할 때, 레믹을 제외한 유니온 시티 선수들 모두 페널티 에어리어 안쪽에 들어와 있었다.

삐이익! 투우욱!

휘슬이 울렸고, 쿠티뉴가 바로 근처에서 기다리던 엠레찬에게 공을 넘겨주었다.

엠레찬이 공을 툭 차고 안으로 뛰어들 때였다.

콰아악!

신준석이 공을 깔끔하게 걷어 내는 태클로 공을 빼냈고,

퍼어엉!

데니가 리버풀의 진영을 향해 길게 차 버렸다.

삑! 삐이익!

전반은 그렇게 끝났다.

라커룸에 들어간 정지우는 평소처럼 자리에 앉아 물을 마셨다.

라커룸을 파고드는 응원가는 경기장마다 특색이 있는데, 리버풀의 응원은 웅장한 느낌이었다.

동료들 사이에 어색함이 떠돌았다.

전반이 끝나 갈 무렵부터 최선을 다한 동료들이다.

이미 전반이 끝났으며, 다행히 실점하지 않았는데, 이런 상황에서 굳이 민망해할 이야기를 꺼내서 뭘 하겠나.

생각을 정리한 정지우가 물병을 입으로 가져갈 때였다.

“나는 영어가 서툴러.”

이정렬이 정말 서툰 영어로 말을 꺼냈다.

동료들과 간단한 농담이나 안부나 나누던 동기들이다.

그런 동기 중 이정렬이 어색한 분위기에서 서툰 영어로 말을 꺼낸 거라, 단박에 시선이 녀석에게 달려갔다.

“나는 경기를 망쳤었다.”

정지우를 힐끔 바라본 이정렬이 진지한 표정으로 동료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지우가 나를 지켜 주었다. 그리고 이건 내가 한 약속이다.”

이정렬이 손을 들어 이마의 흉터를 들춰냈다.

순간 말릴까 싶었다.

그러나 이정렬의 진지한 얼굴을 보자 함부로 끼어들기 어려웠다.

“나는 달릴 거다. 쉬지 않는다. 더 뛴다. 나는 오늘 승리하고 싶다. 그래서 부탁한다. 더 뛸 것을. 우리 모두.”

서부 영화에 나오는 인디언 추장이 할 법한 말투였다.

웃을 수도 있는데, 데이빗을 비롯한 동료들 모두 무거운 표정으로 이정렬의 말을 듣고 있었다.

말을 마친 이정렬이 정지우에게 시선을 주었다.

‘왜 그랬어? 그렇게까지 안 해도 돼.’

‘그냥. 최선을 다하고 싶어서.’

녀석이 쑥스럽기도 하고, 괜히 나선 건가 하는 얼굴로 시선을 떨군 다음이었다.

“Lee.”

데이빗이 나직하게 이정렬을 불렀다.

“고맙다.”

그는 이정렬이 알아듣기 편하란 듯 천천히 또박또박 말을 건넸다.

“오늘 컨디션이 엉망이었다. 부끄럽다. 후반에는 반드시 한 걸음 더 뛰겠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이정렬의 부족한 영어를 비웃는 건가 싶을 정도로 데이빗은 쉬운 단어를 또박또박, 그것도 손짓까지 섞어 가며 꺼내고 있었다.

“미안하다, Ji. 사과하고 싶었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우리가 지금껏 이뤄 온 것들이 한 걸음 더 뛰는 악착스러움이었는데, 그걸 잠시 잊었었다.”

데이빗이 오른팔을 쭉 뻗었다.

꽈악!

정지우가 손을 잡았고, 다음으로 자연스럽게 일어서서 오른쪽 어깨를 부딪쳤다.

“Lee!”

촐랑이 레믹이 달아오른 얼굴로 몸을 일으켰다.

“후반에는 내가 뒤로! Lee가 앞으로!”

녀석은 손짓으로 제 가슴을 찍은 다음에 왼손과 오른손으로 바닥을 가리켰고, 빙글 돌리는 것처럼 위치를 바꾸었다.

“꼭 골을 성공시켜! 알아들었어? 나 대신! 리버풀 골대! 공! 넣어!”

말을 마친 레믹이 손을 뻗었다.

이정렬이 녀석의 손을 잡고 일어서서 오른쪽 가슴을 부딪치자 분위기가 좀 더 살아나기 시작했다.

“여기서 반성 안 하면 Lee처럼 이마에 상처가 나는 건가?”

스웰던이 성격처럼 투박한 농담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크리스마스에 모였다가 다 함께 많이 마셨다. 우리가 자랑스러웠지. 하지만 성급했다는 것을 알았다. 미안하다, Ji!”

그가 정지우에게 다가와서 손을 내밀 때였다.

달칵.

문이 열리고 마틴이 들어왔다. 그는 우선 흥미로운 시선으로 선수들을 쭉 돌아보았다.

“Lee의 협박에 모두 반성 중이었습니다. 후반에는 분명 달라질 거고, 시즌이 끝날 때까지 변함이 없을 겁니다.”

데이빗이 곧바로 말을 건넸다.

“아예 입을 막아 버리는군. 내가 더 실망하는 일은 없겠지?”

“그럴 겁니다.”

“컨디션이 다들 엉망이다. 무리해서 실점하지 않도록 조심하고. 경기가 끝났을 때.”

마틴이 라커룸의 천장을 향해 검지를 치켜들었다.

“저 응원을 우리 것으로 바꾸어 주었으면 좋겠다.”

픽 하고 웃은 마틴이 정지우를 의미심장한 시선으로 바라본 뒤에 라커룸을 나섰다.

『후반을 위해 선수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일단 양 팀 모두 교체 선수는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리버풀에 비해 유니온 시티 선수들의 몸이 많이 무거워 보였거든요. 후반에는 교체를 통해 활력을 불어넣을 필요가 있어 보여요.』

삐이이익!

주심이 휘슬을 부는 것과 동시에 레믹이 공을 툭 차 주었다.

공을 받은 이정렬이 바로 박상민에게 연결했고, 박상민은 데이빗에게, 데이빗이 무둔바에게, 무둔바가 신준석에게 차례로 공을 넘겼다.

『유니온 시티! 몸을 푸는 것처럼 공을 돌리고 있습니다.』

실제로도 그렇게 보였다. 마치 리듬을 찾기 위해 패스를 하는 느낌이었고, 그래서 리버풀 선수들이 달려들 때는 패스 게임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레믹이 이정렬 선수와 동일 선상에 서 있습니다!』

『그러네요. 상황에 따라 전반에 움직임이 좋았던 이정렬에게도 마무리하라는 지시가 내려온 모양입니다.』

공은 계속해서 유니온 시티 동료들 사이를 돌았다.

리버풀 선수들이 거칠게, 혹은 빠르게 달려들었는데 박상민과 레믹, 이정렬이 부지런히 움직이며 계속 공을 받아 주었다.

『이정렬 선수는 부상 이후로 오히려 움직임이 정말 좋아졌어요! 게다가 달리는 거리도 상당하구요.』

『그런 것이 최근 이정렬 선수가 기록한 골로 나오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렇죠! 골대 앞에서의 몸싸움만 이겨 낼 수 있다면 세계적인 스트라이커로 성장할 수도 있겠어요.』

『월드컵 같은 큰 대회에서 우리가 늘 안아야 했던 득점에 대한 고민을 이정렬 선수가 풀어 주길 희망합니다.』

투우욱!

중앙선에서 공을 받은 박상민이 바로 앞쪽에 있던 이정렬에게 시선을 준 채로 공을 툭 찼다.

리버풀 선수들이 확 이정렬에게 달려드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공은 오른쪽으로 길게 빠져나갔다.

“와아-!”

시선을 다른 곳에 준 채로 연결한 소름 끼치도록 멋진 패스였다.

“예에에-!”

완벽하게 속아 이정렬에게 달려들던 리버풀 선수들 뒤에서 데니가 텅 빈 그라운드를 빠르게 달리고 있었다.

『박상민! 패스 한 방으로 완전히 리버풀을 뚫었습니다!』

이정렬, 레믹, 박상민, 카알이 악착같이 골대로 향했고, 그 주변에서 리버풀 선수들이 다급하게 뛰고 있었다.

툭툭!

페널티 에어리어로 방향을 튼 데니가 두 번쯤 공을 치고 달린 다음이었다.

툭!

데니가 중앙의 박상민에게 공을 주었고,

툭!

박상민이 왼편의 카알을 향해 방향만 바꾸어 주었으며,

투욱!

카알은 공을 잡자마자 페널티킥 지점을 향해 빠르게 찔러 넣었다.

와락!

레믹이었다.

녀석이 툭 튀어나와 공을 향해 달려들었다.

로브렌이 레믹의 앞으로 몸을 던졌을 때,

투욱!

레믹은 공을 바로 오른쪽으로 빼 주었다.

이정렬이 공을 향해 달려드는 순간이었다.

콰아악! 콰다당!

로브렌이 레믹과 뒤엉켜 커다랗게 쓰러졌다.

삐이이이익!

바로 앞에 있던 주심이 곧바로 휘슬을 불며, 오른손으로 페널티킥 지점을 가리켰다.

“예에에에에에-!”

『페널티킥입니다! 레믹! 오늘 두 번의 실수를 만회하는 결정적인 찬스를 만들어 냅니다!』

『확실히 공이 빠져나간 다음에 태클이 들어왔거든요! 발을 들지 않았더라도 저건 파울이 맞구요, 페널티 에어리어 안에서 일어난 파울은 페널티킥을 주는 것이 맞습니다!』

리버풀 선수들이 주심을 둘러싸다시피 항변했지만 주심은 고개를 가로젓는 것으로 항의를 물리쳤다.

『어? 이정렬 선수가 페널티킥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레믹이나 데이빗이 담당해 왔는데요? 아무래도 오늘 컨디션이 좋은 이정렬에게 기회를 주는 모양입니다.』

이정렬이 페널티킥 지점에 공을 놓고는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녀석이 짧게 숨을 뱉어 내고는 힐끔 뒤를 돌아보았다.

‘자신 있게 차. 피하지 말고.’

멀리 떨어졌지만 알 수 있었다. 이정렬의 얼굴에 미소가 스쳐 가는 것을 말이다.

주심이 골대와 페널티 에어리어 라인을 번갈아 보았다.

리버풀의 골키퍼 미놀레가 손을 든 상태에서 허리를 잔뜩 낮추었고, 페널티 에어리어 라인에 줄줄이 선 양 팀 선수들 역시 자세를 낮추고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삐이이익!

주심이 휘슬을 기다랗게 불었다.

『이정렬! 페널티킥입니다!』

이정렬이 주춤주춤 공을 향해 움직였다.

‘정렬아! 자신 있게! 아쉬움은 남더라도 후회하지 않게!’

미놀레가 좌우로 몸을 흔드는 순간,

투욱!

이정렬이 가볍게 공을 날렸다.

‘설마……?’

정지우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

화아아악!

미놀레의 선택은 오른쪽이었다.

그러나 공은 원래 미놀레가 서 있던 골대 한중간을 향해 날아갔다.

철러- 엉!

“예에에에에에에-!”

유니온 시티 원정 팬들의 함성이 안필드를 완전히 뒤덮었다.

『이정렬! 페널티킥을 리버풀 골대의 한중간에 꽂아 넣습니다!』

『굉장하네요! 어지간한 담력이 아니면 중앙을 저렇게 택하기 어렵거든요!』

가슴의 엠블럼을 움켜쥔 이정렬이 코너 플래그 앞으로 달렸고, 뒤따라간 레믹이 높다랗게 뛰어서 녀석을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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