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최고였어! (1)
전반이 5분쯤 남은 시간이었다.
캐릭의 파울로 얻은 프리킥을 카알이 뒤로 돌리면서 경기가 이어졌다.
결정적인 찬스를 두 번이나 놓친 맨유 선수들이 잡았던 승기를 잃지 않으려는 것처럼 달려들었지만, 그다지 효과는 없었다.
투욱!
데이빗이 받은 공이 신준석과 라파엘을 거쳐 왼편에 있던 꼼빠니에게 연결됐다.
툭!
꼼빠니는 다시 뒤에서 움직이는 이정렬에게 공을 넘겨주었다.
그 순간이었다.
와락!
기회를 엿보던 루니가 거칠게 이정렬에게 달려들었다.
휘익!
이정렬은 원래 스트라이커 출신이다.
녀석은 루니를 타고 도는 것처럼 몸을 돌리며 가볍게 그를 제쳤다.
“와아-!”
멋진 동작에 관중들의 함성이 터져 나왔고,
툭툭!
그에 보답이라도 하는 것처럼 이정렬이 대뜸 중앙선을 넘어 앞으로 달려 나갔다.
『이정렬! 맨유의 진영을 똑바로 밀고 올라갑니다!』
『지금은 역습 상황이 아니거든요! 맨유의 수비진이 단단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어서 패스한 후에 다시 자리로 돌아오지 않을까 싶네요!』
“이봐! Lee! 염병할 맨유의 골대에 골을 넣어 버리라고!”
이제는 누군지 알고 있는 관중의 고함이 응원단의 우렁찬 함성을 뚫고 그라운드에 울렸다.
교장 선생님이 하기에는 거친 응원이었는데 지금 누구도 그것을 신경 쓰지 않았다.
『이정렬! 카알에게 패스!』
중앙선을 넘어간 이정렬이 카알에게 공을 넘겨주었다.
와락!
그러고는 느닷없이 맨유의 오른편을 향해 달려갔다.
투욱!
카알은 앞에서처럼 이정렬의 앞으로 공을 흘려주었다.
카알을 맡던 영과 맨유의 수비수 블린트가 이정렬에게 달려든 직후였다.
투욱!
이정렬은 중앙의 레믹을 향해 공을 넘겨주고는 곧바로 골대로 달려들었다.
2 대 1 패스가 성공한다면 제대로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장면이기도 했다.
그러나 블린트가 이정렬을 제대로 따라붙었고, 슈바인슈타이거와 마타가 레믹에게 달려들었다.
함부로 파고들기 빡빡한 상황이었다.
퍼어엉!
레믹은 꼼빠니를 향해 왼쪽으로 공을 빼 주었다.
유니온 시티가 맨유의 페널티 에어리어 주변에서 공을 돌리면서 기회를 엿보며 시간이 흘렀다.
퍼엉!
위험하다 싶으면 그새 중앙선 앞쪽까지 올라가 있는 이정렬이 공을 받아 돌렸다.
『유니온 시티! 꽁꽁 묶여 있는 박상민을 대신해서 이정렬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이건 정말 효과적이네요! 이정렬은 사실 활동량이 많은 선수는 아니었거든요! 전반만 뛰고 교체할 생각이라면 이 방법은 충분히 맨유를 괴롭힐 수 있습니다!』
투욱!
실제로도 박상민은 마치 이정렬의 패스를 받으려는 것처럼 여기저기 빈곳으로 뛰어다녔다.
툭!
그리고 유니온 시티의 패스는 아예 이정렬을 거쳐 가야 한다는 것처럼 두 번에 한 번은 중앙선 앞에 선 이정렬에게 몰렸다.
콰아악!
화가 났는지, 아니면 리듬을 끊으려는 건지, 슈바인슈타이거가 공을 잡으려는 이정렬에게 거친 태클을 시도했다.
삐이이익!
넘어진 이정렬이 발목을 쥐고 고통스러워했다.
“우-!”
『맨유 선수들이 완전히 유니온 시티의 흐름에 잡혔네요! 캐릭이 박상민에게 보였던 신경질적인 반응과 마찬가지로 슈바인슈타이거 역시 중원에서 밀리는 것에 굉장히 예민해진 것 같거든요.』
짝짝짝짝짝짝짝짝짝!
『이정렬, 일어났습니다! 관중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보내 주고 있습니다! 정말 가슴 뿌듯한 장면입니다!』
『오늘 경기에서 이정렬은 굉장하네요! 다만, 저렇게 뛰고 후반까지 견딜 수 있을지 그게 좀 염려스럽네요.』
전반 추가 시간이 2분이라는 패드를 대기심이 높다랗게 들었다.
투욱!
이정렬이 얻은 프리킥을 박상민이 찼다.
공은 이정렬에게 넘어갔다.
툭툭!
그리고 다시 이정렬이 공을 몰고 중앙선을 넘어섰다.
『이정렬! 데이빗에게! 데이빗! 다시 이정렬에게 공을 줍니다!』
『보세요! 경기의 리듬을 유니온 시티가 완전히 잡고 있거든요! 원래 유니온 시티는 역습이나 짧은 연결로 단숨에 골을 만들어 내는 팀인데, 지금은 오히려 천천히…….』
해설자의 설명이 끝나기 전이었다.
투욱!
이정렬이 꼼빠니에게 공을 돌린 뒤에 이번엔 맨유의 골대 왼편으로 빠르게 달려갔다.
투욱!
꼼빠니가 이정렬의 앞으로 공을 흘려주었다.
툭!
이정렬은 중앙에서 왼편으로 움직인 레믹에게 공을 주었다.
“와아-!”
그러고는 골대를 향해 달려들었다.
수비수들이 이정렬에게 온통 시선을 빼앗긴 순간,
퍼어어엉!
레믹이 느닷없이 맨유의 오른쪽 골대 구석을 향해 기습적으로 슈팅을 날렸다.
화아아아악!
정지우는 이를 꽉 깨물며 데 헤아의 움직임을 지켜보았다.
무서울 정도로 빠르고 정확한 반응이었다.
거기에 데 헤아는 월등한 신장과 엄청난 팔 길이의 이점까지 가지고 있었다.
터어억!
데 헤아가 가까스로 쳐 낸 공이 맨유의 골키퍼 에어리어 오른쪽으로 떨어졌다.
『슈퍼세이브! 데 헤아!』
『넣어야죠! 걸렸어요! 저건 걸렸어요!』
튀어나온 공을 향해 카알이 빠르게 뛰어들었다.
퍼어엉!
정말이지 데 헤아의 5미터 앞에서 날린 슈팅이었다.
화아악!
그런데 거짓말처럼 데 헤아의 몸이 왼쪽 허공에 떠 있었다.
미리 알고 있었던 건가?
엉뚱한 생각이 들 만큼 기가 막힌 반응이었다.
터억! 티잉!
그의 손을 맞고 튕긴 공이 크로스바를 커다랗게 울리며 다시 튀어나왔다.
『오오오!』
해설자는 비명만 질렀다.
이정렬이 골대를 향해 날아가는 것처럼 허공에 떠 있었다.
터엉!
공은 정확하게 이정렬의 머리에 맞았고,
철러- 엉!
데 헤아가 쓰러진 반대편 골대 그물에 그대로 처박혔다.
『이정렬! 추가골! 이정렬!』
“예에에에에에에에-!”
카메라가 흔들릴 정도로 홈 관중들이 요란스럽게 뛰었다.
『와! 이정려- 얼! 추가골! 어느새 골대 앞으로 달려간 이정렬이 맨유를 상대로 추가골을 성공합니다! 오늘! 레드 블레이트 극장의 주인공은 이정렬입니다!』
해설자와 캐스터가 고함을 버럭버럭 질러 대는 동안, 몸을 일으킨 이정렬이 왼편 가슴의 엠블럼을 움켜쥔 채로 벤치 홈 관중들 앞으로 달려갔다.
“히이- 호오오!”
“Lee!”
관중들은 완전히 이성이 날아간 사람들처럼 보였다.
그들이 이정렬에게 달려드는 것을 막기 위해 안전 요원들이 관중석의 앞으로 달려갈 정도였다.
마틴은 허공을 향해 두 번이나 주먹을 뻗어 냈다.
“예에-!”
클락이 달려와 안겼고, 늘 감정을 조절하던 팀 닥터 스미스가 뛰쳐나와 마틴을 끌어안았다.
“마틴! 자네가 내 소원을 이뤄 줬어!”
함께 지낸 세월이 10년이 넘는다.
유니온 시티에 청춘과 인생을 모두 바치다시피 한 나이 든 팀 닥터의 감정을 마틴은 이해할 수 있었다.
늘 프리미어리그를, 그리고 우승을 꿈꾸던, 이제는 늙어 버린 팀 닥터가 마틴을 안고 애처럼 뛰고 있었다.
호프집은 사장이 카운터에, 손님들은 소파에 올라가 미친 사람들처럼 뛰었다.
땡땡땡땡땡땡땡땡땡!
종은 쉴 새 없이 울렸다.
양팔을 위로 들고 악을 쓰던 손님들이 기쁨에 못 이겨 종을 울렸고, 카드를 직원에게 넘겼다.
“받지 마!”
주인이 고함을 지르며 손님들의 주문을 막았다.
“정지우 타임이 두 개나 있어! 지금부터 내가 낼 거야!”
“사장님! 이정렬의 골 봤잖아요! 두 골이에요! 두 골! 맨유를 상대로 두 골이나 넣었다구요! 이건 내가 기뻐서 내는 거니까 얼른 닭이랑 맥주 다 돌려요!”
손님들은 사장에게 지지 않았다.
데 헤아가 허리에 손을 짚은 자세로 바라보는 앞에서 양 팀 선수들이 그라운드에 나뉘어 섰다.
삑!
주심이 휘슬을 불었다가, 마타가 공을 건드리는 순간에,
삑! 삑! 삐이이익!
“예에에에-!”
곧바로 전반을 끝냈다.
『이정렬의 추가골로 유니온 시티가 두 골 앞선 상태에서 전반이 끝났습니다!』
『골도 골이지만, 전체적인 경기 내용에서도 유니온 시티가 앞선 전반이었습니다. 정지우의 두 번에 걸친 환상적인 선방을 빼놓을 수도 없구요. 굉장합니다! 우리 선수들!』
TV는 전반의 주요 장면을 보여 주었다.
정지우의 선방, 데 헤아의 선방이 차례로 나온 뒤에 이어서 이정렬의 득점 장면이 연속해서 나왔다.
골이 터질 때 골대 뒤편의 관중들이 일제히 일어나는 것과 효과음처럼 ‘예에에에에에에-!’ 하는 함성이 TV를 타고 흘러나왔다.
정지우는 그라운드를 걸어 통로로 향했다.
“Ji! 당신이 보여 준 선방이 내 평생 보았던 그 어떤 장면보다 감동적이었어!”
고함의 주인공과는 이미 아는 사이다.
정지우가 시선을 든 곳에서 덩치 큰 교장이 뽀빠이처럼 양팔 알통을 자랑하는 자세로 있었다.
정지우가 씨익 웃어 주자 그는 ‘미스터, 어메이징! 우리의 승리를 지켜 줘!’ 하고 특유의 우렁찬 고함을 질러 댔다.
짝짝짝짝짝짝짝짝!
전반의 멋진 경기를 칭찬하는 박수가 레드 블레이트를 가득 메웠다.
정지우는 벤치 위로 시선을 들었다.
‘잘했어, 지우야!’
전은주가 물개 박수를 치며 응원해 주었고,
‘당신, 오늘 최고였어요!’
데이지가 사랑 가득한 눈으로 손뼉을 치고 있었다.
라커룸에 들어섰을 때, 동료들은 이정렬의 머리와 어깨를 두드려 대고 있었다.
아플 것 같지만, 스트라이커에게는 최고의 찬사와 같았다.
“미친 골키퍼!”
라파엘이 먼저 다가와 손을 내밀었고, 이어서 데이빗, 스웰던, 그리고 무둔바와 손을 맞잡고 오른쪽 어깨를 부딪쳤다.
동료들이 자기 자신과 유니온 시티 팀을 믿기 시작했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지우야!”
이정렬이 흥분을 감추지 못한 얼굴로 정지우에게 다가왔다. 놈은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꽈악!
정지우가 손을 내밀었고, 이정렬이 잡았다.
“최고였어!”
터억!
오른쪽 어깨를 부딪치는 순간에 녀석이 정지우의 등을 꽉 잡았다.
“고마워. 절대로 실망시키지 않을게.”
“미친놈! 동기끼리 뭐라는 거야?”
이정렬이 먼저 웃었고, 정지우가 따라 웃었으며, 신준석과 박상민이 흐뭇한 얼굴로 지켜보고 있었다.
짝짝!
정지우는 골키퍼 장갑을 낀 채 손뼉을 마주쳤다.
“후반에는 바로 플랜 B로 넘어간다! 다들 맨유를 주저앉힐 준비 됐지!”
“예에- 쓰! 미스터 어메이징!”
전반을 그렇게나 뛰어 놓고도 누구 한 사람 지친 기색이 없었다.
정지우는 박상민에게 시선을 주었다.
‘이번엔 네 차례다, 상민아!’
박상민이 불이 활활 타오르는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15분의 시간 동안 그나마 흥분이 가라앉았다.
“와! 나! 우리 이 멤버로 월드컵 나가면 사고 치는 거 아닐까?”
“너도 그 생각 했냐? 상대 팀이 어느 나라건 정지우에, 신준석에, 박상민, 이정렬까지! 일단 이 넷은 먹고 들어가는 거잖아! 거기에 한 팀에서 저렇게 손발 맞췄는데! 화아! 벌써부터 가슴이 뛴다!”
광고가 끝나고 다시 전반의 주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저거! 어후! 또 봐도 미치겠네! 아니, 저 거리에서 어떻게 저 헤딩을 막지?”
“점프할 때 봐라! 나는 혹시 정지우가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에서 온 건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미리 올 방향을 알고서 막는 건가, 그런 거?”
기가 막힐 정도로 엉뚱한 말이었는데, 또 다들 그럴 수도 있겠다는 표정으로 들었다.
『후반이 시작되겠습니다. 선수들이 그라운드로 나오고 있습니다.』
『일단 양 팀 모두 변화는 없네요. 유니온 시티의 전반을 본 반 할 감독이 어떤 전술을 들고 나왔을지 궁금하네요.』
유니온 시티 홈 관중들의 응원가가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가운데, 양 팀 선수들이 중앙선을 중심으로 맞섰다.
삐이익!
후반이 시작되었다.
레믹이 박상민에게 공을 넘겨주었고, 박상민은 곧바로 데이빗을 향해 공을 뒤로 빼 주었다.
『어? 박상민 선수가 유니온 시티 수비 쪽으로 깊게 내려옵니다?』
『그러네요! 보세요! 또 이번엔 이정렬 선수가 박상민의 자리로 아예 올라갔어요!』
투욱!
뒤로 물러난 박상민에게 공이 연결되었는데, 캐릭과 슈바인슈타이거는 얼떨떨한 얼굴로 따라 내려오지 못했다.
두 사람이 박상민이 있는 쪽까지 움직이면 맨유의 중앙이 텅 비어 버리기 때문이었다.
『이정렬은 원래 스트라이커라 올라가는 것 괜찮구요, 박상민은 미드필더였거든요. 물론 공격형 미드필더이긴 했지만, 이정렬보다는 저 위치를 소화하기 쉬울 거예요.』
『맨유가 골치 아프겠는데요?』
『그렇죠! 반대로 박상민에게 묶여 있던 캐릭과 슈바인슈타이거가 마음 놓고 움직일 수 있다는 것도 계산해야 합니다.』
터억!
공을 잡았던 꼼빠니를 향해 루니가 거칠게 달려들었고, 오늘 두 번째로 그에게서 공을 뺏었다.
툭툭!
루니는 공을 몰고 곧바로 유니온 시티 진영으로 뛰어들었다.
와락!
이정렬 자리로 내려왔던 박상민이 먼저 막아섰다.
콰악!
루니와 박상민은 먼저 어깨를 부딪쳤고, 이어서 함께 달리며 손이 뒤엉켰다.
누가 먼저라고 할 건 없었다. 루니가 거칠게 뿌리쳤고, 박상민은 악착같이 달려들었다.
콰아악! 콰다당!
힘으로 무둔바를 밀어내던 루니가 결국 박상민과 함께 뒤엉켜 그라운드에 처박혔다.
삐이이익!
분한 얼굴로 씩씩대는 루니 앞에서 박상민은 전혀 밀리지 않는 얼굴로 몸을 일으켰다.
“와아-!”
달려온 주심이 맨유의 진영을 향해 팔을 뻗었다.
루니의 파울이란 의미였다.
루니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주심에게 달려들었다.
『캐릭을 화나게 했던 박상민! 이번엔 루니를 흥분시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