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좀 더 완벽한 골키퍼가 되고 싶다. (1)
경기는 끝났고, 어렵게 승점 3점을 얻었다.
정지우는 근처에 있던 동료들의 머리나 등을 두드려 주며 통로 쪽으로 걸었다.
“아스널이 대단하긴 하다.”
“그래도 이겼잖아!”
신준석의 뒤통수를 툭 쳐 주었고, 씨익 웃으며 다가온 박상민의 목도 끌어안았다.
중간중간에 섞여 있던 아스널 선수들이 정지우에게 다가왔다.
“굉장한 슈퍼세이브였어.”
가장 먼저 다가온 선수는 외질이었다.
“다음부턴 좀 편안한 크로스를 부탁해.”
정지우의 대꾸에 그가 웃는 얼굴로 어깨에 손을 얹었다.
“두 번씩이나 지고 싶지는 않은데?”
외질이 딱딱한 발음의 영어로 말을 건네고는 몸을 돌렸다.
이어서 산체스와 지루가 다가와서 인사를 나눴고, 마지막으로 체흐가 다가왔다.
정지우는 얼른 왼손을 내밀어 그와 손을 맞잡았다.
“영상에서 보던 것보다 더 훌륭한 경기였어. 젊은 시절의 내가 떠오르더군.”
“페널티킥을 막아 낸 장면은 오랫동안 기억날 거야. 덕분에 우리 스트라이커가 페널티킥에 자신을 잃은 것 같아.”
둘이서 레믹을 힐끔 보며 웃었다.
“골키퍼란 힘겨운 자리다. 가능하다면 더 상위의 팀으로 움직여. 좀 더 뛰어난 스트라이커를 상대하며 충분한 경험을 쌓는 게 좋아.”
진심이 담긴 충고여서 더 좋았다.
“식사 초대하면 한번 와 주겠나?”
“얼마든지.”
뾰족한 인상과 다르게 체흐는 말이 많았다.
“다음을 기대하지.”
정지우의 어깨를 한 번 더 다독여 준 체흐가 아스널 팬들을 향해 박수를 치며 걸어갔다.
정지우는 체흐와 비슷한 동작으로, 손을 들어 손뼉을 치며 홈 관중들이 몰려 있는 벤치 앞으로 걸었다.
스태프와 서브 선수들, 동료들이 한 줄로 서서 관중들의 응원에 박수로 답하는 시간이었다.
5분쯤 홈구장에서의 승리를 만끽한 정지우는 믹스트존으로 움직였다.
리그 첫 실점이 있었던 경기였다.
당연하게 기자들의 질문이 줄지어 몰려들었다.
“오늘 실점으로 기록이 깨졌습니다. 많이 아쉬울 텐데 소감을 말해 주겠습니까?”
“우리 팀은 오늘 승리했고, 승리할 자격이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동료들이 팀을 위해 헌신했고,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무실점보다 승점을 쌓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점 뒤에 카알을 끌어안았는데 무슨 말을 했습니까?”
“지극히 개인적인 내용이었습니다. 축구 선수들끼리 하는 농담 같은 거였습니다. 카알은 늘 팀에 도움을 주는 선수입니다. 그와 함께 경기하는 것은 환상적인 일입니다.”
믹스트존에서 제법 시간이 걸렸다.
기자들의 질문에 모범적인 답을 한 정지우는 통로로 빠져나와 곧바로 팀 닥터를 찾았다.
“무슨 일이야?”
“손가락이 좀 이상해서요.”
스미스가 지켜보는 앞에서 장갑을 벗던 정지우가 인상을 찌푸렸다. 생각보다 통증이 꽤 있었다.
“이런……!”
상처를 본 스미스가 탄식을 쏟아 냈다.
중지의 끝 마디가 이미 시커멓게 피멍이 덮인 데다 엄지손가락 굵기 이상으로 부어 있었다.
“살펴볼 것도 없어. 얼른 병원으로 가자.”
팀 닥터 스미스는 곧바로 구내전화를 들어 응급차를 호출했다.
정지우는 상처를 보며 내심 한숨을 내쉬었다.
“왜 이렇게 되도록 교체 신호를 안 보냈나?”
“통증이 있기는 했는데 이 정도인 줄은 몰랐어요. 손톱이 찢어진 게 아닌가 싶었거든요.”
스미스는 손목과 손등에 넓적한 판을 묶어서 정지우의 손가락이 움직이지 못하게 고정시켜 주었다.
“자넨 지나치게 무모할 때가 있어. 그 어떤 승점도 자네의 인생만큼 중요하지는 않아. 그 점을 명심해.”
“리듬을 찾은 동료들을 지켜 주고 싶었을 뿐입니다. 이 경기를 이긴다면 우리 팀이 좀 더 강해질 것 같았구요. 무엇보다 이 정도 부상인 줄 몰랐습니다.”
정지우가 말을 하는 동안 스미스는 손목에 연결한 테이프의 끝을 잘라 냈다.
“언제 이런 거야?”
“후반 중반쯤이요.”
“이러고도 마지막에 그 슈팅들을 막아 냈다니, 보고서도 믿기지가 않는군.”
응급치료를 마친 스미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같이 가나요?”
“이 정도 부상이면 정확한 내용을 보고할 의무가 있어. 담당 의사의 소견도 들어 봐야 하고.”
바쁘게 나서는 스미스를 따라 의무실을 나왔을 때, 바로 앞에서 클락이 기다리고 있었다.
정지우의 부상을 받아들이는 구단의 부담이 어느 정도인지가 클락의 얼굴에 분명하게 쓰여 있는 느낌이었다.
마음이 무거웠다.
셋이서 통로를 걸을 때였다.
뒤쪽에서 급한 발소리가 들리더니 마틴이 나타났다.
경기 후, 기자회견을 하느라 이제야 들은 모양이었다.
“부상이라니?”
그는 넓적한 판이 붙은 정지우의 손가락을 보고는 꽤 놀란 모양이었다.
“왜 이렇게까지 했어?”
화가 났다기보다 그걸 알아채지 못한 자신을 책망하는 표정과 말이었다.
그는 정지우를 바라보며 얼른 표정을 수습했다.
“일단 출발해. 스미스, 결과 나오는 대로 알려 주게.”
마틴이 과장된 손짓으로 정지우와 스미스를 독촉했다.
주차장이 붐빈다고 해도 앰뷸런스는 예외였다.
흥분한 관중들 사이를 빠르게 빠져나온 앰뷸런스가 병원을 향해 속도를 높였다.
구단의 연락을 받은 의무진이 대기하고 있었고, 정지우의 상태를 노출하지 않기 위해 수건으로 손을 덮은 채 움직였다.
상처를 본 의사의 요구에 따라 엑스레이와 CT를 찍었고, 다음으로 스미스, 클락과 함께 담당 의사를 찾았다.
정말이지 이 정도로 심한 부상인 줄은 몰랐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아스널이란 팀을 상대하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 일이었는지를 새삼 느꼈다.
더 뛰어난 선수가 되고 싶다.
순발력, 반응속도, 다 좋다.
그러나 리그 한 경기에서 승리하기 위해 이런 부상을 당했다면 그건 자랑스러운 승리는 아닌 거였다.
“앉으시죠.”
담당 의사가 두 개의 커다란 모니터에 정지우의 CT 사진을 올려놓았다.
“손가락 끝에 이 부분이 보이시죠?”
의사는 화면 위에서 마우스를 움직여 하얗게 보이는 손가락뼈의 끝을 가리켰다.
“검지는 크게 문제가 없습니다. 문제는 중지입니다. 여기, 이 부분에 금이 갔습니다.”
“후우!”
스미스가 단박에 탄식 같은 한숨을 쏟아 냈다.
“3주면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겠지만, 공을 막아야 하는 골키퍼로 나서려면 최소 6주는 지나야 합니다.”
의사가 화면에서 정지우의 손가락으로 시선을 옮겼다.
“당장은 너무 부어 있어서 한 이틀 부기가 가라앉기를 기다렸다가 그때 깁스를 하겠습니다. 6주가 지난다고 해도 경기 중에 통증이 느껴질 수는 있습니다.”
스미스가 ‘크흠.’ 하는 신음으로 대꾸를 대신했다.
“통증이 지속되면 플레이가 위축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이런 부상은 완벽하게 치료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래야겠지.”
“다시 말하지만, 6주가 지났더라도 강한 공에 충격을 받았을 때 붓거나 통증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알았네.”
“일단 손가락을 고정하겠습니다.”
“부탁하지.”
의사는 두꺼운 솜으로 검지와 중지를 감싼 후에 아래쪽에 깁스 형태의 틀을 만들고 다시 압박붕대로 손가락을 감쌌다.
“충격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세요. 술은 안 됩니다.”
“예.”
치료가 끝난 시간은 얼추 자정쯤 되었다.
“수고했어.”
스미스의 인사로 셋이서 의사의 방을 나섰다.
늦은 시간이라 복도와 입구가 한산했다.
엘리베이터를 통해 주차장으로 내려간 정지우는 클락이 운전하는 밴에 올랐다.
“일단 이틀은 집에서 쉬는 거로 하지. 내일 구단에 보고할 테니, 공식 발표가 결정될 때까지 말이 새 나가지 않도록 주의해 주고.”
“예.”
답을 한 정지우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잘 달려왔다. 최선을 다했고, FA컵 아스널전 이후로 꿈같이 보내온 하루하루였다.
그리고?
다시 리그에서 만난 아스널에게서 귀중한 승리를 얻어 낸 대가로 6주짜리 부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하프 타임에 장갑을 던졌을 정도로 부족했던 점이 부상으로 연결되었을 거란 생각도 들었다.
강해지고 싶다.
아스널 같은 팀들을 상대로 무실점을 자신할 수 있는 실력을 쌓고 싶다.
캄캄한 밤을 달려 집 앞에 도착했고, 정지우는 차에서 내렸다.
“들어갑니다! 고생했어, 클락!”
두 사람에게 속마음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좀 더 큰 소리로 인사를 전했다.
손을 흔든 클락이 출발하자 정지우는 현관으로 걸었다.
벨을 누르려는 순간이었다.
불쑥 문이 열리며 박상민이 머리를 내밀었다.
“어떠냐? 어? 이거 어떻게 된 거야? 많이 심하냐?”
놈이 상처를 보고는 연달아 질문을 던졌다.
“옆집 잠 다 깨겠다. 일단 들어가.”
늦은 시간임에도 박용근과 전은주 역시 거실에 있었다.
“다녀왔습니다.”
“많이 다친 거니?”
“금이 갔대요. 깁스를 해야 하고, 6주 정도 지나야 경기에 나갈 수 있다고 들었어요.”
전은주는 놀란 얼굴이었고, 박상민은 황당한 표정이었는데, 박용근은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고생했다. 일단 앉자.”
박용근의 말이 마법의 주문이라도 되는 것처럼 셋이서 주르륵 움직여 소파에 앉았다.
“다른 이상은 없고?”
“예. 검지에도 약간 충격이 있는데 걱정할 정도는 아니랍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박용근은 못 속인다.
정지우가 박용근의 얼굴만 봐도 속마음을 헤아리는 것처럼 말이다.
“축구 선수란 언제고 부상을 당할 수 있는 거다. 너무 크게 상심하지 마라.”
“후유증 같은 건 없다니?”
“충격을 받으면 아무래도 통증이 있을 거라고 하던데요, 그건 6주 뒤에 봐야 하는 거라서 미리 걱정할 정도는 아닌가 봐요.”
박상민이 먹먹한 얼굴로 정지우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배고프지는 않냐?”
“예.”
“그래. 그럼 오늘은 이만 자고, 나머지는 내일 이야기하자.”
경기 당일은 일찍 잠자리에 들던 정지우다.
박용근이 몸을 일으키는 것으로 짧은 이야기가 끝났다.
“들어가겠습니다, 감독님. 편히 쉬세요. 상민아, 들어간다.”
방으로 들어온 정지우는 옷을 갈아입고 침대에 누웠다.
오늘 있었던 경기가 자꾸만 눈에 아른거렸다.
아스널은 대단했고, 정지우는 부족했다.
수비가 단단했다면 박상민이나 데이빗, 카알이 뒤를 염려하지 않고 보다 마음껏 뛰었을 거다.
어떤 점이 문제였을까?
신준석과 스웰던을 앞으로 내보내면서 리듬이 흩어졌고, 라파엘과 무둔바는 위치를 잃고 허둥댔다.
이불을 걷어차고 싶을 정도로 전반은 부끄러운 모습이었다.
수비수들을 지휘하며 골문을 지켰어야 할 골키퍼가 고작 한다는 짓이 라커룸에서 장갑을 던지고 있었다니.
라파엘과 무둔바가 허둥댔다는 것은 정지우의 지휘가 부족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어렵게, 그리고 꾸역꾸역 지지 않고 있지만, 아직은 부족한 것이 많음을 알려 준 경기였다.
오늘 경기를 참고로 앞으로 만날 팀들은 유니온 시티를 이길 방법들을 더 많이 준비할 거다.
이기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좀 더 완벽한 골키퍼가 되고 싶다. 미드필더들이, 스트라이커가 믿고 의지하며 온전히 득점에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받쳐 주는 골키퍼.
***
한국에서는 인터넷 포털에서 가장 먼저 보도했고, 다음으로 아침 뉴스에 정지우의 부상 소식이 실렸다.
『우리 시간으로 오늘 새벽에 있었던 유니온 시티와 아스널의 경기에서 정지우와 신준석, 박상민 선수가 선발로 나선 유니온 시티가 2 대 1로 승리했습니다.』
화면에 경기장에 등장하는 양 팀 선수들의 모습이 나왔다.
『이 경기에서 박상민은 후반 35분경 결승골을 기록해 팀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그러나 정지우 선수는 이날 팀 동료 카알의 자책골로 리그 무실점을 마감했고, 손가락 부상을 입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카알의 가슴에 맞은 공이 골대로 들어가는 장면과 박상민의 슈팅이 골로 연결되는 장면이 연달아 나왔다.
『아직 유니온 시티 구단의 공식적인 발표는 나오지 않고 있지만,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3개월가량 경기에 나서지 못할 거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정지우가 높다랗게 떠서 공을 낚아채는 장면이 화면에 이어졌다.
『아스널을 상대로 귀중한 승점 3점을 획득한 유니온 시티는 초반 돌풍을 확실하게 이어 가고 있습니다. 다만, 무실점으로 팀을 지켜 주던 정지우 선수의 부상이 길어질 경우, 선두 자리가 위태로울 수도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유니온 시티와 정지우에 관한 기사는 거기까지였다.
정지우의 부상에 관한 인터넷 기사들이 줄을 이었고, 그 기사마다 수천 개의 댓글이 달렸다.
아스널전에서도 활약이 대단했다는 내용, 정지우의 쾌유를 기원한다는 내용이 주를 이뤘고, 박상민의 결승골이 멋졌다는 반응도 많았다.
물론 설칠 때 알아봤다는 둥, 무실점이 깨지니까 실력이 들통 날까 봐 꾀병을 부리는 게 아니냐는 이상한 댓글도 군데군데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