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라운드의 지배자-206화 (206/262)

제3장. Ji가 얼마나 위대한 선수인지를. (3)

툭! 투욱! 툭!

아스널의 패스는 확실히 이전에 상대하던 팀들과는 다른 호흡과 패턴이었다.

무엇보다 빠르고, 그 빠름에 정교함을 더한 느낌이었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서너 번의 패스가 연결되는 것을 볼 때면 숨이 턱턱 막히는 느낌이었다.

정지우는 골대에서 계속 움직였다.

관중석에서 보면 그저 반걸음 정도 좌우로 움직이는 것 같지만, 이렇게 각도를 잡는 것이 보는 것처럼 쉽지는 않다.

“준석아! 야! 신준석!”

게다가 계속 고함을 지르며 수비 라인을 조절해야 했는데, 그렇게 해도 안정을 찾지 못할 정도로 수비진 전체가 흔들리고 있었다.

툭! 툭! 투욱!

아스널은 유니온 시티의 페널티 에어리어를 단숨에 치고 들어왔다.

와락! 와라락!

꼼빠니, 데이빗, 카알, 데니가 중앙선 아래로 내려와 아스널의 정면 공격을 차단했다.

투욱!

외곽으로 밀어내라는 것이 벤치의 첫 번째 주문이었다.

그들이 페널티 에어리어 앞에서 짧게 짧게 잘라 들어오는 공격만큼은 무조건 막으라는 주문도 있었다.

콰악! 콰다당!

삐이이익!

데이빗이 페널티 왼쪽에서 공을 받은 램지를 거칠게 들이받았고, 주심이 곧바로 휘슬을 불었다.

동료들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전반 5분 만에 아스널, 좋은 위치에서 프리킥을 얻어 냅니다.』

『전체적으로 아스널의 리듬이 굉장히 좋네요. 지금까지 볼 점유율이 90 대 10으로 나올 만큼 일방적인 흐름이기도 하구요.』

워낙 위험한 자리에서 일어난 파울이었다.

이럴 때 정지우마저 흥분한 모습을 보이는 건 위험하다. 그래서 정지우는 별거 아니란 듯 행동했다.

우선 침착하게 벽을 쌓고.

“데이빗!”

정지우는 데이빗을 향해 엄지를 접어서 손가락 4개를 세웠다. 그러고는 오른손 엄지를 옆으로 뉘여서 왼쪽으로 두어 번 움직였다.

‘오케이!’

데이빗을 향해 손바닥을 보인 정지우가 허리를 잔뜩 낮춘 채로 좌우로 움직였다.

공이 보이는 자리가 있다.

벽을 세운 동료들의 머리 사이로 킥을 차는 선수의 발이 보이면 그 자리가 가장 위험하다는 의미였다.

“Arsenal, we're on your side(아스널, 우리는 너의 편이야)!”

“Our love we can not hide(우리의 사랑은 숨길 수 없어)!”

“Our hearts are open wide(우리의 심장은 열려 있어)!”

프리킥을 준비하는 동안 아스널 팬을 의미하는 ‘거너스’들이 골을 바라는 응원가를 힘차게 부르고 있었다.

“헤이! 카알! 카알!”

의도적인지는 모르지만, 거너스들이 부르는 엄청난 응원가가 선수들 간의 대화를 어렵게 만들었다.

“헤이!”

정지우는 카알을 불러 오른쪽을 가리켰다.

외질은 말할 필요 없는 유럽 최고의 패스 마스터다. 그가 공을 보내는 능력을 감안하면 신준석과 스웰던의 위치가 어정쩡했다.

“스웰던!”

정지우가 스웰던을 불렀을 때였다.

삐이익!

주심이 날카롭게 휘슬을 불었다.

시간이 없었다.

“후!”

정지우는 빠르게 숨을 토해 내며 자세를 낮췄다.

‘오른쪽을 봐! 외질! 오른쪽이 보이잖아!’

붙어 보고 싶다.

외질이 골대를 직접 노리는 골을 막아 보고 싶었다.

평소보다는 오른쪽을 살짝 비웠다.

다른 선수들이라면 몰라도 그는 알아차릴 것 같았다.

골대를 바로 노렸으면 싶고, 오른쪽 코너로 찼으면 싶었다.

휘슬이 울린 뒤에 외질이 공을 향해 달려들었다.

와락!

아스널 선수들이 수비 라인을 타고 뛰어들었고, 수비수들이 그들을 막아서며 정지우 앞에서 뒤엉켰다.

퍼어어엉!

외질이 공을 차는 순간이었다.

‘왼쪽?’

움찔!

정지우는 이를 악물고 반사적으로 튀어 나가려는 몸을 붙들었다.

각도는 분명 왼쪽이었다.

그러니 왼쪽으로 몸을 날려야 하는데, 마지막 순간에 외질의 몸이 바라본 방향은 오른쪽이었다.

왼발의 각도도 분명 오른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 공이 중간에서 완벽하게 휘었고,

‘오른쪽!’

분명하게 오른쪽이었다.

휘이익!

골대가 아니라 선수들이 뒤엉킨 틈으로 공이 빠르게 날아왔다.

터어엉!

산체스가 무둔바와 신준석 사이로 달려와 머리로 공을 따냈다. 서너 걸음 뒤에 있던 그를 수비수들이 완벽하게 놓친 거였다.

화아악!

정지우가 몸을 날렸을 때 공은 크로스바를 1미터쯤 넘어가 있었다.

털썩!

“우-!”

아스널 선수들이 아쉬운 얼굴로 물러서는 동안, 정지우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축구를 하면서 욕이 튀어나오려는 건 참 오랜만의 일이었다. 수비수들이 놓쳤다고 하지만, 정지우의 반응도 늦었다.

0.5초 안쪽에서 승부가 갈리는 프리킥 순간에 외질에게 제대로 한 방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공이 크로스바를 넘어가서 망정이지, 왼쪽 코너를 제대로 파고들었다면 이건 막기 어려웠을 것 같았다.

뒤로 물러나며 정지우를 바라보는 외질, 그리고 산체스와 차례로 눈이 마주쳤다.

‘무실점 우승? 그 정도로 떠들 실력은 아닌 것 같은데?’

그들을 비롯한 아스널 선수들의 눈에 자신감이 살며시 올라와 있는 느낌이었다.

왼쪽인 줄 알았던 공이 오른쪽으로 날아왔고, 커다랗게 휘어서 산체스에게 연결됐다.

허둥대는 모습을 보였으니 그렇게 생각할 만도 하겠다.

피식.

자존심이 상했고, 그 순간 눈이 번들거렸다.

“이런, 이 씨…….”

골대 뒤에서 건네준 공을 잡으며 정지우는 결국 나직하게 욕을 뱉었다.

다른 스포츠도 비슷하겠지만, 상대를 현혹하는 페인트 모션은 골을 만들어 내는 필수 요소다.

정지우도 공을 유도하기 위해 반걸음의 공간을 비워 주는 것이니까 그걸 탓할 이유는 없다.

정지우는 바닥에 공을 놓고 그라운드를 천천히 노려보았다.

왼쪽이 아닌 건 눈치챘으니까, 완벽히는 아니더라도 외질의 킥에 어느 정도는 당한 거였다.

세계적인 수준은 이런 건가?

그나마 왼쪽으로 몸을 날리지 않은 것과 오른쪽으로 튀어 나가지 않은 것이 다행일 정도였다.

꼼짝 못하고 골을 먹는 골키퍼를 보며 대개 어쩌면 저럴 수가 있냐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 짧은 순간에 공격수와 골키퍼는 페인트 모션을 주고받는다.

그것이 골인가, 아닌가를 결정하는 거였다.

투욱!

정지우는 라파엘에게 공을 차 주었다.

FA컵에서는 1.5군을 내세우며 방심했던 아스널이 오늘은 최고의 스쿼드로 달려들고 있어서 그날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교함을 갖추고 있었다.

“We're by far the greatest team(우리는 세계 최고의 팀)!”

아스널 팬들이 엄청난 응원을 그라운드로 퍼부었고, 홈 관중들은 팔짱을 낀 채로 경기를 지켜보았다.

유니온 시티의 패스는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아스널 선수들이 작정한 것처럼 밀착 마크를 하고 있었고, 특히나 박상민의 경우에는 플라미니와 코시엘니가 번갈아 가며 그림자처럼 따라붙고 있었다.

『유니온 시티! 자기 진영에서 공을 돌리고 있습니다.』

『지금껏 박상민 선수는 한 번밖에 공을 터치하지 못했어요. 벵거 감독이 이전 경기들을 참고했다는 것처럼 4-5-1의 포메이션을 선택했고, 박상민을 완벽하게 마크하고 있네요.』

“우-!”

레믹에게 넘어간 짧은 패스를 메르테자커가 가로챘다.

『공을 가로챈 아스널! 빠르게 앞으로 나섭니다!』

『아스널이 유니온 시티보다 더 빠르네요! 잘라야죠! 일단 막아야 해요!』

『램지! 플라미니에게! 램지는 앞으로 달립니다! 플라미니! 외질에게!』

퍼어어엉!

외질이 페널티 에어리어 왼쪽을 노리고 길게 패스를 넘겼다.

공은 뛰어나가기 가장 곤란한 골키퍼 에어리어 바로 앞쪽으로 날아왔다.

스웰던을 부를 틈이 없었다.

게다가 데이빗은 앞쪽에서 달려오는 선수에게 시선이 팔린 상태였다.

휘이익! 휘익!

램지가 높다랗게 뛰어올랐고, 라파엘이 그의 앞에서 함께 솟구쳤다.

터어엉!

램지의 머리에 맞은 공이 정지우의 오른쪽으로 날아갔다.

정지우는 빠르게 오른쪽으로 몸을 옮겼다.

휘이익!

이번에도 산체스였다. 그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은 채 허공에 높다랗게 떠서 텅 빈 오른쪽 골대를 향해 날아들었다.

심장이 쿵 하고 바닥으로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막는다! 막을 거다!’

터어엉!

그의 머리에 공이 맞는 순간에,

화아아악!

정지우가 몸을 날렸다.

‘이이익!’

털썩!

골대 오른쪽 그라운드에 떨어진 정지우는 얼른 시선을 뒤로 돌렸다.

공은 정말이지 손바닥 두께만큼 골대를 빗겨 나갔다.

“우-!”

홈 관중들은 우려의 의미로, 거너스들은 아쉬움에 탄식을 쏟아 냈다.

“후!”

정지우는 입을 꾹 다문 채 몸을 일으켰다.

기가 막혀서 웃음이 픽 나왔다.

이런 실력이 진짜일 거다.

언젠가 정지우가 브라질을 상대한 후에 염려했던 세계적인 선수들이 모인 팀의 무서움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싶었다.

제대로 맞았다면 벌써 두 골을 내주고 끌려간 경기였다.

이번에는 정말 욕도 나오지 않았다.

대신 자존심이 더럽게 상했다.

아무리 신준석과 스웰던을 앞으로 내보냈다고 하더라도, 골키퍼로서 두 골을 꼼짝 못하고 당하다니.

『유니온 시티의 수비 밸런스가 완전히 무너졌어요. 지금 느린 그림 보시면요, 라파엘이 함께 뛰었는데 그때 골대 앞에 아스널 선수가 세 명이나 있었거든요.』

화면에서 산체스의 머리에 맞은 공이 정지우를 지나 골대 오른쪽으로 날아가는 장면이 흘러나왔다.

『무둔바가 산티카솔라에 잡혀 있는 동안에 오른쪽이 완전히 비었거든요! 산체스를 이렇게 자유롭게 움직이게 두면 분명 실점할 수 있어요!』

화면에 정지우의 얼굴이 커다랗게 나왔다.

한 모금 마신 캔 맥주를 내려놓으며 장진모가 픽 하고 웃었다.

“어이그, 우리 정지우 선수가 독이 잔뜩 올랐구만. 이제부터겠는데? 그래! 원래 내가 응원하던 정지우는 그런 눈을 하고 있었어.”

장진모는 의자에 반쯤 눕다시피 등을 기댄 자세로 모니터를 노려보았다.

정지우는 이번에도 라파엘을 향해 공을 차 주었다.

길게 차 주었다가 바로 뺏길 바에야 차근차근 뒤에서부터 밀고 올라가는 것이 전반에는 훨씬 효과적일 수 있었다.

정지우는 목을 좌우로 꺾었다. 어딘가 나태해졌던 점을 아프게 지적당한 느낌이었다.

‘와라!’

정지우의 표정과 눈빛을 본 무둔바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 역시 자존심이 팍 무너진 얼굴이었다.

투욱! 툭!

공은 꼼빠니까지 나갔다가 다시 돌아왔다.

점유율을 높이고, 아스널의 빠른 리듬을 눌러 보겠다는 작전이어서 당장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투우욱!

그리고 박상민에게 공이 넘어갔을 때였다.

콰아악! 콰다당!

20번 플라미니가 거칠게 달려들어서 박상민과 함께 넘어졌다.

삐이익!

주심이 달려와 아스널 진영을 향해 손을 가리켰다.

당연하게 플라미니의 파울이란 뜻이고, 그래서 유니온 시티가 프리킥을 차라는 의미였다.

『박상민을 거칠게 막았던 플라미니가 오히려 일어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부딪치고 난 뒤에 무릎이 뒤틀린 것 같은데요? 아! 그런 것 같네요.』

아스널의 팀 닥터와 스태프가 달려와 그를 살피고는 교체란 의미로 양손 검지를 마주 대고 빙글빙글 돌려 보였다.

『아스널의 벵거 감독, 이렇게 되면 전반 20분 만에 교체 카드를 한 장 사용합니다.』

『지금까지 흐름이 좋아서 많이 아쉽겠어요. 교체로는, 아! 8번 아르테타 선수가 준비하네요.』

꼼빠니가 공을 바닥에 내려놓고 킥을 준비하는 동안, 아르테타가 빠르게 그라운드로 뛰어들었다.

『이렇게 되면 플라미니 자리에 아르테타가 들어온 것 말고는 다른 변화는 없을 것 같네요.』

삐이익!

중앙선을 살짝 넘어간 지점이라 위력적인 슛을 날리기는 거리가 너무 멀었다.

퍼어엉!

꼼빠니의 선택은 오른쪽에 있는 데니였다.

데니가 공을 받자 박상민은 오히려 왼쪽으로 뛰었다.

산티카솔라와 메르테자커가 박상민을 그림자처럼 따르며 악착같이 막아섰다.

투욱!

데니는 어쩔 수 없이 뒤쪽의 신준석에게 공을 넘겼다.

투욱!

신준석이 카알에게 패스했고, 카알이 바로 데이빗에게 공을 차 주었다.

연습했던 방식이었다.

맥슨의 자리에 들어간 박상민이 고립되면 데이빗과 카알이 스웰던과 신준석을 이용해 전진하는 전술이었다.

데이빗을 향해 아스널의 지루가 빠르게 달려들었다.

투욱!

카알에게 공이 넘어갔고, 다시 신준석에게 돌아왔다.

투우욱!

신준석은 공이 오는 순간에 바로 오른쪽 구석에 있는 데니에게 공을 찔러 주었다.

딱 거기까지였다.

무언가 돌파구가 필요한 유니온 시티였지만, 공은 억지로 오른쪽 구석까지 갔다가 다시 신준석이 있는 중앙까지 밀려 나오곤 했다.

『박상민이 중간에서 받아 주는 역할인데 지금 꽁꽁 묶였거든요. 그렇다면 신준석 선수가 좀 더 나와서 그 자릴 메워 줄 필요가 있어요.』

『신준석은 아무래도 수비를 신경 쓰느라 움직임이 자유롭지 않습니다.』

『그렇죠! 지금 유니온 시티는 그게 문제인 거죠. 신준석이나 스웰던이 자리를 비운 틈으로 아스널이 파고들거든요.』

투우욱!

공을 받았던 카알이 답답했던 모양으로 정지우를 향해 길게 차 주었다.

전반 30분이 다 돼 가도록 유니온 시티는 아직 슈팅이 하나도 없었다.

힘겨운 경기였다.

그리고 지금껏 리그에서 부딪힌 적 없었던 강팀의 실력을 확실히 알 수 있는 경기이기도 했다.

정지우는 힐끔 벤치를 보면서 공을 발로 세웠다.

평소라면 전혀 보이지 않았을 행동이었다.

“와아-!”

정지우가 양팔을 앞으로 밀어 보이자 홈 관중들이 커다랗게 함성을 터트렸다.

‘어떻게 하려고?’

‘나가! 골대는 내가 알아서 할게!’

신준석의 놀란 시선에 정지우가 분명하게 답을 주었다.

퍼어엉!

지루가 달려오는 것을 본 정지우는 데이빗을 향해 공을 차 주었다.

조금 전 정지우의 동작을 아스널이 모두 보았다.

단순히 길게 찰 테니까 달리라는 의미가 아니라 밀고 올라가라는 뜻인 건, 데이빗이 공을 받는 것으로 알 만했다.

투욱! 툭!

데이빗이 카알과 빠르게 공을 주고받으며 움직였고, 스웰던과 신준석이 그 근처로 좀 더 바싹 다가섰다.

“나가! 달려!”

정지우가 고함을 버럭 질렀다.

라파엘과 무둔바는 분명하게 들었고, 스웰던과 신준석은 힐끔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에 전염처럼 동료들이 정지우를 돌아보았다.

골대 앞에 선 그라운드의 지배자.

‘나를 믿고 달려!’

정지우가 번들거리는 눈빛과 온몸으로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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