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코리아상스(KoreaSangce) (1)
못 봤다! 앞에서 잘라먹고 들어온 데다 수비수들에게 가려서 정말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코너에서 공이 날아왔고, 이어서 선수들이 솟구치는가 싶더니 곧바로 오른쪽 골대를 향해 공이 꽂히는 것까지만 봤다.
오른쪽 골포스트와는 1.5미터 거리였다.
휘이익!
정지우는 느낌대로, 감각대로 팔을 휘저었다.
이런 때를 위해 그 멍청한 훈련을 했지만, 골을 먹으면 여기에서 모든 것이 끝난다.
박용근에게 어떤 것을 배웠는지, 그래서 우리 동기들이 어느 정도 실력인지, 얼마나 죽을힘을 다해 뛰었는지, 그런 것에 전혀 상관없이 관중들은 그저 네 골을 넣고도 마지막 그 짧은 코너킥을 못 막은 선수로만 기억하는 거다.
이번엔 정말 감각대로 손을 뻗었다.
그래서 자신할 수 없었다.
터어억!
공이 손바닥에 걸려 바닥에 튕겼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선수들이 달려들었고, 그보다 좀 더 빨리 정지우가 몸을 날렸다.
“와아아아아아아-!”
그리고 공은 그라운드에 엎드린 정지우의 품에 있었다.
『막았어요! 막았다구요! 정지우가 막아 냈어요!』
삐이익! 삑! 삐이이익!
『경기 끝났습니다! 대한민국! 월드컵 본선을 확정 지었습니다! 대한민국이 사우디아라비아를 4 대 0으로 누르고 월드컵 본선 티켓을 손에 쥐었습니다!』
“우와아아아아아-!”
들썩이는 관중석에서 화장지들이 기다랗게 날아와 그라운드로 떨어질 때였다.
몸을 일으킨 정지우는 공을 골대 바깥으로 집어 던지고 벤치를 향해 똑바로 달렸다.
“와아아아아-!”
선수들이 정지우를 따라 함께 달려왔다.
김문호가 슬쩍 옆으로 비켜서는 것이 보였다.
미안하지만, 그래도 오늘 경기는 박용근을 위한 것이었다.
벤치 위쪽에서 분명 전은주가 울고 있겠지만, 그래도 지금은 박용근을 위해 달리고 싶었다.
『본선 진출입니다! 정지우 선수! 벤치를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우와아아아아아-!”
엄청난 함성 속에서 박용근은 울컥한 게 분명했다. 그런데도 그는 억지로 표정을 지키려 애쓰고 있었다.
정지우는 정말이지 있는 힘껏 달렸다.
화아아악!
그러고는 박용근의 품으로 거칠게 달려들었다.
박용근에게 뛰어든 정지우를 다시 동료들과 스태프, 심지어 김문호까지 달려들어 끌어안았다.
“와아- 아!”
누군가 지른 고함이 지금 선수들의 심정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한 걸 거다.
“우리 해냈어! 우리가 해냈다고!”
박상민이 악을 써 댔고,
“혀- 엉! 우리 정말 이겼어요! 네 골이나 넣은 거예요!”
박상민을 부둥켜안은 김오영이 있는 대로 고함을 질러 댔다.
쿵. 쿵. 쿵. 쿵. 쿵. 쿵.
“오오- 오오- 오오오! 오오- 오오- 오오오!”
어깨를 부여잡은 관중들이 목청껏 응원가를 부르며 오늘의 승리를 기뻐했다.
입술을 억지로 물어 가며 버티던 전은주다.
그런 그녀도 눈이 퉁퉁 부은 정지우가 박용근을 향해 똑바로 달려오는 것을 보는 순간에 결국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마지막에 사우디아라비아 선수들의 발 앞으로 몸을 던질 때의 심정이 어땠을까?
‘고마워! 지우야! 정말 고마워! 내 아들아!’
두 손으로 연신 얼굴을 쓸어내리면서도 전은주는 정지우와 선수들, 그리고 스태프들을 위한 박수를 멈추지 않았다.
‘여보! 정말 잘했어! 당신 오늘 당당해도 돼! 당신이 자랑스러워!’
분명히 울고 있었다.
그런데도 누구 한 사람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는 이는 없었다. 곳곳에서 전은주처럼 눈물을 흘리는 관중들이 꽤 있었기 때문이다.
감동의 눈물이었다.
한데 뒤엉켜 기뻐하는 우리 선수들이 자랑스러워서 나오는 눈물이었다.
고수부지와 시청 앞에서는 오늘 경기의 하이라이트를 대형 화면을 통해 다시 보여 주고 있었다.
그러나 TV를 보는 사람들은 몇 명 되지 않았다.
가족 단위, 친구들끼리, 직장인들이 서로의 어깨를 붙들고 응원가를 부르고 있어서였다.
호프집은 계산대 카운터로 뛰어 올라가 날뛰는 사장을 직원들이 억지로 말려서 겨우 끌어내렸다.
마지막에 정지우가 공을 끌어안으며 그라운드에 엎어졌을 때 이미 이성을 살짝 잃고 날뛰던 사장은, 종료 휘슬이 불자 곧바로 계산대 카운터로 올라가 ‘대- 한민국!’이란 구호를 외쳐 댔었다.
“사장님! 계산 좀 하세요!”
보다 못한 직원이 악을 바락바락 쓰자,
“손님들이 안 내시면 어떻게 받아! 오늘은 믿자! 이런 순간에 뭐 계산 따위를 신경 쓰냐!”
하고 좀 더 큰 목소리로 고함을 질러 댔다.
술이 확 깬 얼굴의 한승관이 눈치를 살피는 옆에서, 조동익은 앞으로 기울인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있었다.
끝났다. 이제, 모든 것이.
관용차, 급여, 판공비, 마주치면 고개를 숙여 주는 부하 직원까지, 모두 다.
협회 경비로 적당히 가족들에게 베풀어 주던 값비싼 호텔 음식, 해외여행은 물론이고, 당장 외국에 내보낸 아들놈의 유학 경비도 생돈을 사용해야 하게 생겼다.
‘이럴 순 없어! 내가 우리 축구 발전을 위해 들인 공이 얼만데! 나를 이렇게 버려서는 안 되는 거야!’
연금이야 나오겠지만, 그따위는 호텔 커피값 몇 번 내고 나면 남는 게 없는 돈이다.
그것뿐이냐?
이제는 이충도 같은 거물이 자신을 만날 이유가 전혀 없는 거였다. 고급스럽고, 화려한 일식집의 그 비용을 어떻게 개인 돈으로 감당할 수 있겠나.
“후우-!”
한숨을 길게 내쉰 조동익이 자리에서 일어나려다가 느닷없이 휘청거렸다.
“부회장님?”
“치워!”
부축하려는 한승관의 손을 조동익이 대뜸 뿌리쳤다.
이 벌레만도 못한 인간이 모든 것을 망쳤고, 저 사악한 기회주의자 문광국이 판을 뒤엎은 거였다.
‘아니다! 이런 것들을 데리고 시작한 내가 잘못한 거지.’
애초에 한승관이 아니라 김문호를 끌어안았어야 했다.
명절에 찾아와 고개 조아리던 그 낯짝이 불쌍해서 베풀었다가 말년을 몽땅 날려 버린 꼴이었다.
‘아니야! 허 회장이 사표를 수리하지 않겠다고 했어!’
실낱같은 희망을 부여잡은 조동익이 호텔 방을 나서도록 문광국은 돌아보지도 않았다.
사우디아라비아 선수들은 그라운드에 무릎을 세운 자세로 앉아 넋을 잃은 표정으로 멍하니 있었다.
엉뚱하게 부상당한 척하다가 마지막 골을 허용한 사우디아라비아의 3번 오사마 하우사위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고, 사우디의 벤치는 아직도 대기심들을 붙잡고 억울함을 토해 냈다.
『사우디아라비아 선수들! 실망이 크겠습니다!』
『그렇죠! 아랍에미레이트와 우즈벡의 결과가 우즈벡의 승리로 끝나는 바람에 사우디아라비아는 본선에 진출하지 못하게 되었으니까요.』
『처음부터 제대로 경기를 운영했다면 어땠을까요?』
『글쎄요, 오늘 우리 선수들이 뛰는 것을 보면 사우디아라비아가 어떻게 나오든 우리 팀이 승리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김문호와 박용근을 시작으로 스태프, 선수들이 모두 서서 관중석을 향해 박수를 쳐 주었다.
“그댄 나의 챔피언! 너와 나의 챔피언!”
관중들은 또 그런 대표팀을 향해 응원가로 답을 했다.
수원월드컵경기장에 응원가가 메아리를 울리며 밤하늘 위로 높다랗게 날아갔다.
경기가 끝난 직후였다.
당연하게 맥주를 마시며 떠들고 있을 것 같은 두 사람이 눈빛을 빛내며 부장의 책상에 함께 앉아 있었다.
부장도 장진모처럼 노트북을 꺼내 놓고 연신 자판 위로 손가락을 놀리느라 바빴다.
경기 내용에 관한 기사는 벌써 10개쯤 올렸다.
그래서 지금은 벼르고 벼르던 허양수에 관한 기사를 마무리하는 중이었다.
띵동!
그때 장진모의 전화기에 메모가 도착했다는 문자가 올라왔다. 부장을 힐끔 본 장진모가 얼른 전화기를 들어 내용을 살폈다.
“야! 죽여주네!”
“뭔데?”
부장이 고개를 기울이는 앞으로 장진모가 전화기를 내밀었다.
“야! 가뜩이나 글씨가 작은데! 뭐라고 쓴 거야?”
장진모는 책상에 놓인 메모지에 전화기에 담긴 내용을 옮겨 적었다.
“유니온 이브닝에 올라갈 기사 제목이라네요. 3시간 뒤에 올라온다니까 우리가 가장 먼저 보도하는 거죠.”
“코리아상스?”
“한국의 부활을 이런 식으로 표현한 거 같은데요? 거기에 박상민을 의미하는 대문자도 넣었구요.”
“어메이징에는 정지우가 들었고, 코리아상스에는 박상민을 담은 거네! 이거 재밌다. 이거 먼저 하나 올려.”
“그럴게요. 바로 올리죠.”
장진모가 다시 노트북으로 고개를 디밀 때였다.
“유니온 시티의 그 에이미인가 하는 직원이 알려 준 거냐?”
“예.”
장진모는 기사를 작성하며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답을 했다. 그래서 그는 부장의 의심스러운 표정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라커룸으로 들어선 선수들이 모두 의자에 널브러졌다.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는 동안은 몰랐던 체력의 한계가 나타나서 김오영은 다리에 쥐가 났고, 이재범은 손을 떨고 있었으며, 강서준은 아직도 거친 숨을 계속 토해 냈다.
정지우는 의자에 앉아서 물을 시원하게 들이켰다.
“형! 이렇게까지 뛸 수 있다는 거, 오늘 처음 알았어요.”
그때 이재범이 반쪽이 된 얼굴로 정지우에게 말을 건넸다.
“우리가 이 정도로 잘할 수 있는 것도 처음 알았구요.”
정지우는 픽 하고 웃으며 시선을 돌렸다.
박상민은 허벅지에 양팔을 얹고 상체를 앞으로 숙인 자세로 꼼짝도 못하고 있었다.
“앞으로 힘들 때면 오늘 상민이 모습을 기억해.”
정지우의 말에 박상민이 고개를 들었는데, 누가 건드리기만 해도 바로 쓰러질 것처럼 지친 얼굴이었다.
“고맙다, 지우야.”
“갑자기 또 뭐? 회식비 내가 낸다니까.”
농담인 걸 알고 있어서 박상민은 먼저 힘겨운 웃음으로 정지우의 대꾸를 받아들었다.
“이렇게 좋은 축구를 너 아니면 못했을 거고, 또 네가 골대를 지켜 주는 게 아니었다면 오늘처럼 그렇게까지 뛰지 못했을 거야. 정말 뒤 걱정 없이 뛰었어.”
정지우가 픽 하고 웃었고, 박상민이 비슷하게 따라 웃었다.
“씻자. 기다리는 사람들도 생각해야지.”
“그래.”
정지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박상민의 팔을 잡아 주었다.
이정렬의 부친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병원으로 향했다.
‘멍청한 놈! 바보 같은 놈! 미련한 놈!’
아무리 속으로 욕을 퍼부어 봐도 답답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깟 한 골이 뭐라고 선수 생명을 걸어가며 발을 디미는 건지.
아버지라서 알 수 있었다.
그 위험한 순간에 이정렬이 망설임 없이 발을 뻗었다는 것을 말이다. 탁자에 머리를 찧을 때의 모습과 한 치도 다르지 않았다는 것도.
“후우!”
이정렬의 부친은 기다랗게 숨을 토해 냈다.
하고 싶은 축구를 한다더니!
발목 부러지는 게 그런 축구란 말이냐!
화가 치밀었지만, 이정렬의 부친은 고개를 젓고 말았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
저놈은 발목이 부러지는 꼴을 당하더라도 동기들과 함께 오늘 같은 축구를 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씻고 나온 선수들을 기다리는 것은 기자회견이었다.
박용근의 요청으로 김문호는 공식 기자 회견장에 박상민과 신준석, 두 사람과 함께 나섰다.
통로에서 직원이 다가와 첩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박용근과 정지우를 데리고 움직여 주었는데,
“감독님! 여기요!”
직원 전용 주차장에서 기다리는 사람은 유정호였다.
유리가 시커멓게 칠해진 승합차에 오르자 눈이 부은 전은주가 뒷좌석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어? 눈이 왜 그러세요?”
“아냐.”
“우셨어요?”
“아니라니까.”
표현하기는 미안한 일이지만, 민망해하는 전은주의 모습이 솔직히 귀엽게 느껴졌다.
“어? 어머니, 우셨네?”
“그래?”
“당신까지 왜 이래!”
“흠.”
박용근이 고개를 슬쩍 돌리는 척하는 동안 전은주는 정지우의 눈을 살폈다.
“안에 핏줄이 터졌나 본데 괜찮은 거니?”
“예. 며칠 지나면 가라앉을 거라고 하구요. 내일쯤 따로 검사하기로 했어요.”
주차장을 나선 승합차는 경기장을 빠져나가려는 차와 사람들 때문에 좀처럼 움직이지 못했다.
정지우가 자세를 잡고 의자에 기댔을 때였다.
전은주가 슬며시 손을 내밀어서 정지우의 손을 잡아 주었다.
알 것 같았다. 그리고 분명하게 느꼈다.
고맙다는 뜻을, 대견하다는 말을 대신해 잡아 주는 손길이라는 것을.
정지우는 의자에 머리를 기댔다.
“어? 여보? 얘 잠들었어.”
“팀을 혼자 이끌다시피 했으니까 힘들었을 거야.”
“그러게. 이 어깨에 짊어졌던 짐이 얼마나 무거웠을 거야. 난 그게 너무 안쓰러워서…….”
박용근이 정지우를 한 번 보고는 앞쪽 유리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고는 나직하게 숨을 내쉬며 올라온 감정을 차분하게 가라앉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