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라운드의 지배자-176화 (176/262)

제7장. 팀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3)

『느린 그림으로 봐서는 동일 선상이거나, 오히려 레믹이 수비수 안쪽에서 출발한 것 같은데요?』

박상민이 발뒤꿈치로 공을 차는 순간에 화면이 정지되어서 토트넘의 수비수들과 레믹의 위치를 선으로 길게 그어 보여 주었다.

『이번은 선심이 잘못 판단한 거 같네요. 오심도 경기의 일부이긴 한데, 오늘 오프사이드 판정에 관해서는 경기 끝나고 아무래도 말이 많이 나올 것 같은데요.』

『유니온 시티! 골대의 선방과 주심의 깃발에 골을 넣지 못하고 있습니다! 박상민! 공격 포인트를 빼앗긴 상황에서도 오히려 레믹을 달랩니다!』

『박상민 선수를 발견한 건, 우리 축구에도 굉장히 긍정적인 일입니다. 그 외에도 오른쪽 수비수 신준석까지. 앞으로 우리 선수들을 바라보는 세계 축구의 시선이 달라질 수 있어요.』

요리스가 공을 바닥에 놓았을 때 토트넘이 마지막으로 선수를 교체했다.

『토트넘이 선수를 교체합니다. 8번 메이슨을 빼고 6번 벤탈랩을 넣습니다. 사실 박상민과 신준석을 발견한 데는 정지우의 활약 덕분 아니겠습니까?』

『그렇죠! 정지우 선수가 있어서 박상민과 신준석이 나온 거죠! 이제 박상민과 신준석을 본 다른 팀들이 우리 선수들을 좀 더 긍정적으로 보게 될 겁니다. 이게 중요한 거죠!』

요리스가 공을 차면서 경기가 다시 시작되었다.

정규 시간이 3분밖에 남지 않았다.

추가 시간이라야 2분에서 3분일 게 분명했다.

유니온 시티 선수들은 라인을 내린 채로 토트넘이 길게 넘길 공에 대비했다. 거기에 앞쪽에서 중앙선 부근을 단단하게 지키고 있어서, 토트넘은 쉽게 넘어오지 못하고 자기 진영에서 공을 돌렸다.

몇 번이나 실점과 다름없는 위기를 넘겼고, 솔직히 오심의 덕도 봤다. 그래서인지 토트넘은 이대로 경기를 마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눈치였다.

중앙선으로 나왔던 공이 다시 토트넘의 후방으로 움직였다.

저들이 골대 앞에서 저렇게까지 공을 돌리는 이유는 유니온 시티의 선수들을 끌어내기 위한 거였다.

유니온 선수들이 달려드는 순간, 토트넘의 기습이 이루어질 게 분명해서 이쪽도 단단하게 수비를 하며 함부로 움직이지는 않았다.

대기심이 추가 시간 2분을 알리는 패널을 높게 들었다.

빠르면 두 번, 아니라면 한 번쯤 공격을 전개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투욱!

토트넘의 다이어가 공을 받은 순간이었다.

확 달려든 박상민이 악착같이 그에게 따라붙었다.

“와아- 아!”

이제는 박상민이 달려들기만 해도 함성이 나온다.

뒤로 물러난 다이어가 공을 빼 준다는 것이 발에 잘못 맞은 모양이었다.

“예에-!”

툭 하고 흘러나온 공을 꼼빠니가 잡았고, 그와 동시에 유니온 시티 선수 전체가 토트넘의 진영을 향해 밀고 올라갔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과 이전 기회에서 압박하던 게 효과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건 아니다.

“헤이! 라파엘! 헤이!”

정지우가 올라간 수비 라인을 뒤로 빼기 위해 라파엘을 부르는 순간이었다.

콰다당!

꼼빠니가 왼편 페널티 에어리어를 치고 들어가다가 뒤에서 달려든 캐롤에게 밀려 넘어졌다.

“우우-!”

주심이 휘슬을 불지 않았다.

퍼어어엉!

그리고 캐롤이 길게 넘겨준 공이 그대로 중앙선 앞에 있는 알리에게 날아갔다.

무둔바가 그의 바로 뒤에 있었다.

알리는 무둔바를 등지고 날아오는 공을 향해 발을 뻗었다.

투우욱! 휘이익!

알리의 발끝에 걸린 공이 높다랗게 튀어 올라서 무둔바를 훌쩍 넘었다.

당황한 무둔바가 붙들려고 했으나 알리가 좀 더 빨랐다. 알리는 삽시간에 몸을 틀면서 무둔바의 손을 뿌리쳤고, 이어서 공을 치고 달렸다.

“와아-!”

지금껏 침묵하던 토트넘 원정 팬들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중앙선 지역이었다.

당연하게 알리의 앞에는 정지우밖에 없었다.

추가 시간조차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러니 지금은 퇴장을 당하더라도 알리를 붙잡아야 할 상황이었다.

홰액!

실제로 무둔바가 다급하게 손을 또다시 뻗었는데 이번에도 알리가 좀 더 빨랐다.

그는 공을 툭 차 놓고 미친놈처럼 달려왔다.

『델리 알리! 텅 빈 유니온 시티의 진영을 똑바로 달립니다!』

『끊어야죠! 파울을 하더라도 저기서 끊어야 해요! 아!』

악착같이 따라붙은 무둔바가 다시 팔을 뻗었는데 알리의 등을 잡지 못하고 휘청이고 말았다. 알리의 뒤로 박상민과 라파엘이, 좌우로 스웰던과 신준석이 토트넘의 캐롤과 벤탈랩을 막기 위해 악착같이 뛰었다.

『정지우! 주춤주춤! 알리! 정지우와 일대일! 알리! 알리!』

후욱! 후욱!

정지우는 알리의 발과 공만 보았다.

각도와 속도, 그리고 타이밍의 싸움이었다.

『알리! 페널티 에어리어를 지납니다! 캐롤과 벤탈랩! 스웰던과 신준석이 달려듭니다! 알리! 정지우 앞으로 성큼성큼! 알리!』

콰아악!

라파엘이 퇴장을 각오하고 백태클을 시도했는데 달리는 중이라 제대로 걸리지 않았다.

『라파엘의 태클을 벗어나는 알리!』

정지우는 양팔을 아래로 뻗은 자세에서 가슴을 쭉 펴고 조금씩 앞으로 나갔다.

“와아- 아!”

원정 팬들의 함성이 귀를 파고들었지만,

“허억! 허억!”

정지우에게는 알리의 거친 호흡과,

파악! 파악! 파악! 파악!

그라운드를 밟는 그의 스파이크 소리만 들렸다.

주춤주춤!

정지우는 페널티킥 지점과 골대의 중간을 목표로 걸어 나갔다.

『정지우와 마주 선 알리! 어떻게? 정지우가 빠르게 알리의 앞을 막아섭니다!』

알리가 거친 호흡을 내쉬며 정지우의 오른쪽을 힐끔 보았다. 뒤를 노리고 달려오는 박상민의 거친 호흡 소리, 무둔바의 일그러진 얼굴, 태클에 실패하고 뒤늦게 따라오는 라파엘, 신준석과 스웰던, 모두 골을 지켜 내려는 몸부림이었다.

“허억! 허억!”

알리는 정지우의 불과 2미터 앞에 있었다.

수비수들이 달려오고 있어서 알리에게도 여유는 없었다.

정지우는 다리 사이로 날아올 슈팅에 대비해 정강이를 좁히고 무릎을 최대한 구부렸다. 이래야 알리가 다리 사이로 닐린 슈팅을 주저앉으며 막을 수 있다.

후욱! 후욱!

달려들고 싶다.

하지만 알리가 정지우를 제치고 슈팅을 날릴 가능성 때문에 그러지는 못한다.

알리의 호흡이 바로 앞에서 들렸고, 그의 허벅지, 정강이를 감싼 스타킹, 스파이크, 그리고 공이 바로 앞에 있었다.

파아악!

알리의 왼발 스파이크가 그라운드를 파고드는 순간에, 그의 몸이 스키를 타는 사람처럼 왼편으로 기울어졌다.

정지우가 보기에 오른쪽이었다.

알았다. 알 것 같았다. 알리는 분명 정지우의 왼편으로 공을 넘겨서 감아 차려는 거다.

먼저 몸을 움직이면 알리에게 빈 곳을 준다.

기다린다. 그가 왼편으로 확실하게 공을 찰 때까지!

정지우가 자세를 더욱 낮추며 이를 악무는 순간이었다.

투우욱!

스키 선수처럼 몸을 완전히 기울인 알리가 공의 밑부분을 빗겨 찼다.

화아아아악!

정지우는 쪼그려 있던 상태에서 있는 힘껏 몸을 띄웠다.

멋진 슈팅이었다. 저렇게 날아간 공은 반드시 커다란 궤적을 그리며 골대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 골이 토트넘에게 승리를 선사한다.

박상민이 그렇게 열심히 뛰며 누구보다 발전한 모습을 보였던 경기다. 이기지는 못하더라도 그런 경기를 패배로 끝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늘, 그리고 회전하는 공만 보였다.

허리와 상체를 쭉 폈고, 어깨까지 틀었는데도 공은 아직 손에 걸리지 않았다.

‘끄으으!’

정지우는 허리를 뒤로 젖히며 악착같이 손을 뻗었다.

10센티미터의 점프를 더 하기 위해 밴드를 양쪽 어깨에 걸고 뛰고, 또 뛰었었다. 점프하는 속도를 0.1초라도 더 줄이기 위해 주 중에 ‘청기 백기 놀이’보다 재미없는 훈련을 그렇게 했었다.

더는 몸이 휘지 않는다. 그리고 더 이상 중력을 이기지도 못한다.

스으윽!

정지우의 손끝이 아슬아슬하게 공을 스쳤고,

털썩!

몸을 완전히 뒤로 젖힌 정지우가 바닥에 떨어졌다.

홱 고개를 돌렸을 때 정지우의 손에 걸린 공이 골포스트를 맞고 튀어나왔다.

“예에에에-!”

『슈퍼세이브! 정지우! 공을 향해 달려드는 캐롤과 스웰던! 캐롤이 한 발 먼저! 정지우가 일어납니다! 캐롤! 슈웃!』

벌떡 일어선 정지우는 다시 한 번 몸을 날렸다.

각도가 워낙 없었고, 양팔을 충분히 뻗은 상태여서 이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화아악! 터억! 털썩!

비스듬하게 날아온 공이 정지우의 손에 걸렸다가 그대로 크로스바를 넘어갔다.

『미친 선방! 미친 슈퍼 세이브! 정지우! 유니온 시티의 승점 1점을 확실하게 지켜 냅니다! 오늘 레드 블레이트 극장의 주인공은 단연코 정지우입니다!』

『완벽한 재능! 끝없는 훈련이 만들어 낸 최고의 경기입니다! 굉장합니다! 정지우! 소름 돋는 경기를 선사합니다!』

벌떡 일어난 정지우를 향해 스웰던이 씩씩거리며 다가왔다.

둘이서 비슷한 눈빛으로 거칠게 손바닥을 마주친 다음이었다.

“허억! 허억! 고마워! Ji!”

무둔바가 하얗게 번들거리는 눈으로 달려왔고, 박상민, 라파엘이 골대 앞에서 무릎에 손을 짚고 몸을 구부린 채 거친 숨을 내쉬었다.

알리와 캐롤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둘 다 머리통을 감싸고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동료들을 돌아보았다.

아직 경기가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토트넘의 코너킥이었다.

“카알! 헤이!”

정지우가 고함을 버럭버럭 지르며 동료들의 위치를 잡아 주었다.

퍼어어엉!

공이 휘면서 골대 앞으로 날아왔다.

시간이 없어서 서둘렀고, 그만큼 거칠게 날아온 코너킥이었다.

화아아악!

정지우는 앞으로 달려 나간 뒤에 높다랗게 몸을 띄워 공을 잡았다. 시간이 정말 아쉬웠다.

“뛰어!”

한국말이다. 박상민과 신준석이 미친놈처럼 앞으로 달려 나갔고, 레믹과 꼼빠니가 뒤늦게 뛰기 시작했다.

휘이이익!

정지우가 페널티 에어리어 끝까지 달려가 공을 던진 직후였다.

삐이익! 삐이익! 삐이이이익!

주심이 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을 길게 불었다.

“와아아-!”

짝짝짝짝짝짝짝짝!

공을 던진 탄력에 휘청였던 정지우가 몸을 세웠을 때, 관중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손뼉을 쳐 주었다.

정지우의 활약에 박수를 쳐 대는 호프집의 주인을 손님들이 완벽하게 미안한 얼굴로 돌아보았다.

‘정지우 타임’이라는 이름의 이벤트에 네 번째 슈퍼 세이브가 나올 경우, 4명이 앉은 테이블에는 안주까지 준다고 나와 있었다. 그런데 조금 전 두 개의 슈퍼 세이브가 연속으로 나왔으니 왜 미안하지 않겠나.

“종 울려!”

주인이 얼굴이 붉게 상기되어서 고함을 질렀다.

땡. 땡. 땡. 땡.

“우와아아아-!”

저런 축구를 보고 피가 끓었는데 맥주 두 잔씩과 테이블 하나에 그깟 닭 한 마리쯤……? 슬프지만 견딜 만했다.

손님들이 미안했던 모양이었다.

“사장님! 내가 여기 이벤트 내용과 오늘 먹은 맥주랑 닭, 지금 실시간으로 글 올렸거든요! 다음 주에 자리 좀 더 만드셔야 할 거예요!”

누군가 안쪽에서 소리를 질러 주었다.

좋았다! 살면서 이렇게 제대로 장사해 본 거 처음이다.

‘정지우 선수! 다음 주에는 두 번까지만 부탁합시다! 그리고 언제고 한번 들러 줘. 내가 당신은 죽을 때까지 무료로 대접할 테니까!’

그는 진심으로 세상 그 어떤 운동선수보다 정지우가 좋았다.

최선을 다했지만, 승점 1점을 나누어 가지는 것으로 경기가 끝났다.

알리가 가장 먼저 달려와 정지우에게 손을 내미는 게 좀 신기했지만, 이쪽 선수들이 원래 자기감정에 충실한 면이 있으니까.

“몸놀림이 좋던데?”

정지우가 손을 잡아 주며 건넨 말에,

“다음번에는 실수하지 않을 겁니다.”

알리가 웃으면서 답을 했다.

신준석이 다가와서 손을 마주 잡았고, 박상민과 하이파이브를 나눴다.

“이 자식이 언제 이렇게 늘었지? 기특한 녀석!”

신준석이 대견한 얼굴로 바라볼 때, 레믹이 다가와 박상민의 손을 꼭 잡고 오른쪽 어깨를 부딪쳤다. 제 딴에는 계속 밀어준 게 고마웠던 모양이었다.

『이렇게 양 팀 승점 1점씩을 나눠 가집니다!』

『오늘은 완벽하게 정지우와 박상민의 활약이 돋보이는 경기였습니다. 후반에 박상민 선수가 분위기를 완전히 바꾸었구요, 정지우 선수가 믿기 어려운 선방으로 경기를 지켜 냈습니다.』

후회 없는 경기였다.

홈 관중들이 양팔을 앞으로 뻗고서 응원가를 불러 주는 동안, 토트넘 선수들과 인사를 마친 정지우는 동료들과 함께 벤치 앞으로 움직였다. 데이빗이 있는데도 동료들은 정지우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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