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라운드의 지배자-164화 (164/262)

제3장. 급하게 할 필요가 있을까요? (3)

『골대를 맞혔습니다! 자라테! 헤더!』

골대를 맞고 높다랗게 떴다가 떨어지는 공을 향해 웨스트햄의 자라테가 힘껏 뛰어올랐다.

라파엘이 악착같이 그의 곁에서 몸을 띄웠고, 데이빗이 뒤늦게 달려들었다.

터엉!

화아아악!

정지우는 왼편을 향해 몸을 날렸다.

다행이라면 강하게 날아오지 않았다는 거였다.

터억!

밖으로 쳐 냈어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손가락 절반쯤이 겨우 공에 닿아서 그런 건 생각하지도 못했다.

털썩!

정지우가 다시 바닥에 떨어진 다음이었다.

『노블! 노블 슈웃!』

퍼어엉!

노블이 달려들며 날린 공이 정지우의 위로 날아왔다.

오른손으로 바닥을 짚어 몸을 올린 정지우가 공을 할퀴듯이 왼팔을 커다랗게 휘둘렀다.

터어억!

벤치는 물론이고, 관중들이 모두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홈팀 관중들은 골을 기대했고, 원정팀은 막아 내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오오! 기가 막힌 선방입니다! 공은 사코에게!』

앵커가 비명처럼 탄성을 토해 낼 때 공은 다시 정지우의 오른쪽 안쪽으로 흘렀고, 그 공을 사코가 잡았다.

『걷어 내야죠!』

신준석이 달려드는 것을 본 사코가 발등에 공을 얹어 페널티킥 지점으로 띄워 올렸다.

와락! 와라락!

데이빗과 라파엘이 공을 향해 움직인 다음이었다.

휘이익!

웨스트햄의 27번 파예가 데이빗의 어깨를 누르며 공을 따냈다.

그는 골대가 아니라 정지우의 왼편에 있던 10번 자라테에게 공을 떨궈 주었다.

정지우가 있는 힘껏 달려 나간 직후에,

퍼어엉!

자라테가 떨어지는 공을 그대로 강하게 날렸다.

터어억!

솔직히 눈에 제대로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래서 가슴에 공을 세게 맞았을 때 거의 무방비 상태에서 쇠망치로 얻어맞은 것 같았다.

『정지우! 또 막았습니다!』

『잡아야죠! 잡아내야죠!』

골대 앞에 뒤엉켜 있는 선수들이 악착같이 공에 발을 뻗었다.

퍼엉!

그리고 14번 오비앙이 강하게 찬 공이,

티잉!

신준석의 몸에 맞고 높다랗게 떠올랐다.

휘이이익!

공은 회전에 걸려 골대를 파고들었다.

화아아악!

정지우가 몸을 날렸고, 무둔바와 자라테, 파예, 사코가 동시에 공을 향해 몸을 띄웠다.

터억!

정지우의 손에 공이 걸린 순간이었다.

콰아악!

누군가의 어깨가 정지우의 가슴을 세차게 들이받았다. 그리고,

삐이이익!

휘슬이 울릴 때 바닥으로 떨어지던 공이 골대 앞에 있던 파예의 발에 맞았다. 그도 아마 공이 맞은 것을 몰랐을 정도로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리고 그 공이 정지우의 머리 쪽으로 굴러왔다.

털썩!

바닥에 떨어진 정지우는 악착같이 손을 뻗었다.

목표를 이룰 때까지 무슨 일이 있더라도 골대 안으로 공이 들어가게 두면 안 되는 거다.

가슴이 부서져도, 숨이 막혀서 목과 폐가 타들어 가는 것 같아도 골대는 지키고 봐야 하는 거다.

터억!

악착같이 뻗어 낸 정지우의 손에 맞은 공이 오른쪽 골포스트 바깥으로 빗겨 나갔다.

“우우-!”

아쉬움과 염려가 뒤섞인 탄성이 불린 그라운드를 가라앉힐 것처럼 쏟아졌다.

정지우는 가슴을 웅크린 채로 그라운드에 엎어졌다.

가슴 전체에 뻐근한 통증이 훅 달려들면서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삐익! 삑! 삑!

주심의 급한 휘슬 소리가 저 멀리서 부는 것처럼 들렸다.

『정지우 선수! 정말 굉장합니다!』

『마지막까지 공을 막아 냈어요! 심각한 부상이 아니었으면 싶습니다!』

TV로 정지우가 공을 막아 내는 장면이 연속해서 나왔다.

토요일 자정에서 일요일로 넘어가는 시간이었다.

호프집에서 응원하던 20대 중반 여자 두 명이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시선을 주고 있었다.

파예의 어깨에 부딪혀 바닥에 떨어진 정지우가 마지막 순간까지 공을 쳐 내는 장면이 느리게 화면에 펼쳐졌다.

『파예의 어깨에 부딪혔었네요!』

『저 상태에서 떨어져서 마지막 슈팅을 또 막아 냈습니다. 오늘 정지우 선수! 프로 선수가 줄 수 있는 감동을 우리에게 제대로 선사해 주고 있습니다!』

“너무해!”

“휘슬을 못 들었었나 봐!”

“두 골이나 앞서고 있었던 거잖아! 정지우는 왜 저렇게까지 절박하게 하는 거지?”

TV는 잠시 팀 닥터가 상체를 안고 있는 정지우를 보여 준 뒤에, 이어서 선방이 시작되는 순간부터를 다시 보여 주었다.

『이걸 오른발로 막아 냈구요, 다시 일어서서 자라테의 헤더를 걷어 냈구요.』

해설자가 정지우의 선방을 화면에 따라 설명해 주었다.

데이지는 자리에서 일어나 팀 닥터에게 기댄 정지우를 바라보았다.

저 정도라면 당장 호흡이 막혔을 거다.

그리고 불행한 경우라면 갈비뼈에 금이 갔을 수도 있다.

그렇게까지 막을 필요가 있었어요?

정지우에게 묻고 싶었다.

지금 옆자리에 있다면 말이다.

릴리를 지켜 달라는 의지를 온몸으로 골대를 지키며 전하고 있는 건가 싶기도 했다.

그때 팀 닥터가 정지우와 이야기를 나누더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쿵. 쿵. 쿵. 쿵. 쿵. 쿵.

“유니온 시티에는 두 사람이 살지!”

원정 관중들이 정지우를 향해 양팔을 뻗은 채 그 유명한 유니온 시티의 응원가를 불러 대기 시작했다.

쿵. 쿵. 쿵. 쿵. 쿵. 쿵.

“레드와 Ji가 사이좋게 지냈지!”

정지우가 허리를 숙이는 자세로 몸을 움직이고는 상체를 세웠다. 그런 다음이었다.

그가 데이지가 있는 곳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쿵. 쿵. 쿵. 쿵. 쿵. 쿵.

“Ji가 경기에 나가면 레드는 이렇게 말했어!”

저 남자! 참 멋있다.

저렇게 당당한 모습으로 서 있는 남자는 처음 봤다.

데이지는 이상하게 웃음이 나왔다.

그래서 환하게 웃었다.

쿵. 쿵. 쿵. 쿵. 쿵. 쿵.

“Go, Go, Go my Ji! Go, Go, Go my Ji!”

정지우의 응원가가 힘차게 나오는 동안, 화면 가득 데이지의 얼굴이 나왔다.

『관람객인 것 같습니다! 방송 카메라가 잡아 줬는데요.』

『그러네요! 아무래도 우리 선수들이 많으니까 카메라가 동양인 관중을 찾아서 보여 주는 것 같네요.』

호프집에서 ‘우리도 휴가 내서 영국 가자!’ 하는 여자 손님들의 다짐이 나오는 바람에, 남자 손님들의 웃음이 터져 나왔다.

정지우는 동료들과 하이파이브를 마치고 장갑을 좀 더 단단하게 끼웠다.

“레믹! 수비 고마워!”

“맡겨 두라고!”

“Lee가 첫 경기라 긴장했나 봐! 좀 봐줘!”

레믹이 알았다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동료들이 모두 들었다.

정지우가 이런 식으로 부탁한 것이 처음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웨스트햄의 파울이어서 골대 바로 앞에 공을 세운 정지우가 오른발로 바닥을 콕콕 찍었다.

시간이 제법 흘렀다.

물론 쓰러져 있는 동안을 계산해서 추가 시간에 반영하겠지만, 웨스트햄 선수들은 전체적으로 라인을 올려놓고 있었다.

투우욱!

정지우는 멀리 찰 것처럼 움직이다가 스웰던을 향해 공을 차 주었다.

툭툭!

스웰던이 두어 번쯤 공을 몰고 올라가다가 얼른 데이빗에게 넘겨주었다.

데이빗이 카알에게, 카알이 다시 오른쪽에 있는 데니에게 공을 주었다.

와락! 콰악!

웨스트햄은 조금 전 골을 못 넣은 것이 마치 데니 때문인 것처럼 그에게 거칠게 달려들었다.

투우욱!

데니는 아예 정지우를 향해 공을 길게 빼 주었다.

자라테가 정지우에게 이를 악물고 달려들었지만, 공보다 빠를 수는 없었다.

투욱!

정지우는 다시 앞쪽에 있는 카알을 향해 공을 주었다.

퍼어엉!

카알은 꼼빠니에게 기다랗게 공을 차 주었다.

툭!

가슴으로 공을 받은 꼼빠니가 그대로 웨스트햄 진영을 향해 달렸다. 그러고는 오른쪽을 함께 달리는 레믹의 앞으로 공을 밀어 주었다.

“우와- 아!”

레믹은 웨스트햄의 왼쪽 페널티 에어리어를 그대로 파고들었다.

웨스트햄의 수비수 리드와 옥보나가 레믹에게 달려든 직후였다.

투우우욱!

레믹이 왼발로 공을 밀었다.

리드를 지나친 공이 옥보나의 다리 사이를 빠져나갔고,

“예에-!”

달려드는 이정렬의 앞으로 흘렀다.

골키퍼 아드리안까지 완벽하게 레믹에게 쏠린 상태였다.

그냥 발만 대면 들어가는 찬스!

벌떡!

벤치에 있던 스태프와 서브 선수들이 모조리 일어났고, 골대 뒤편에 있던 관중들까지 엉거주춤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휘이익!

그런데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

빠르지도 않은 공을 향해 달려들던 이정렬이 헛발질을 하며 공을 그대로 흘려버린 거였다.

“우우우-!”

관중들이 고통에 찬 표정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고, 골라인 바깥까지 달려 나갔던 레믹이 기가 막힌 표정으로 이정렬을 바라보았다.

마틴은 얼굴을 쓸며 표정을 감추려 애썼다.

저 선수가 커뮤니티 실드에서 골을 넣었던 그 선수가 맞는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만약 박용근을 믿지 않았다면 당장 아웃시켜서 리저브 팀으로 던져 버렸을 거였다.

공은 터치라인 바깥으로 나갔다.

삐이익!

주심이 휘슬을 불어 웨스트햄의 선수 교체를 알려서 잠시 감정을 추스를 시간이 있었다.

『후반 75분입니다. 웨스트햄이 쿠야테 선수를 빼고 28번 란지니 선수를 넣었습니다.』

『선수들이 지쳐 있을 시간이거든요. 좀 더 많이 뛸 선수를 투입해서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의도인 것 같네요.』

『이정렬 선수가 골을 넣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요.』

『두 골 차와 세 골 차이는 더 설명할 필요가 없지요. 완벽하게 경기를 마무리 지을 기회였는데, 아쉽습니다.』

『카메라가 마틴 감독과 박용근 감독을 교대로 보여 주는 게 아무래도 이정렬 선수를 기용한 배경을 설명하는 것 같은데요? 박용근 감독, 표정의 변화가 없습니다만, 속은 좀 타겠죠?』

『정말 답답하겠죠. 이정렬 선수, 리그 첫 경기에서 완벽하게 눈도장을 찍을 기회이기도 했는데요. 이런 기회를 놓치면 앞으로 한동안은 밤에 이불을 차게 될 겁니다.』

웨스트햄의 스로인으로 경기가 시작되었다.

이정렬은 실수를 만회하려는 것처럼 설쳤는데, 오히려 자신이 지켜야 할 자리만 비우는 꼴이었다.

이정렬의 부친은 조바심 나는 얼굴로 신준석의 가족들을 힐끔거렸다. 다른 건 몰라도, 조금 전의 슈팅을 놓친 것만은 정말이지 아쉬웠다.

저걸 멋지게 넣었더라면!

이정렬이 밉기도 했지만, 반대로 커뮤니티 실드 이후에 한 경기를 거르는 바람에 폼이 떨어진 거란 생각도 들었다.

지금도 봐라.

이정렬이 얼마나 악 받치게 뛰는지를 말이다.

솔직히 기회가 올 때마다 다 골을 넣는다면, 그런 선수가 유니온 시티에 왜 있겠나.

이정렬의 부친은 축구 선수를 아들로 두었다.

그래서 유니온 시티 선수들이 이정렬을 바라보는 시선의 의미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렇더라도 이 팀에 당장은 레믹과 이정렬을 대신할 스트라이커가 없다. 그리고 스트라이커는 골을 넣으면 앞의 실수한 것쯤 다 잊힌다.

이정렬의 부친은 진심으로 간절하게 아들이 골을 넣기를 바랐다.

경기는 계속 진행되었다.

홈 관중들 앞에서 한 골이라도 만회하겠다는 것처럼 웨스트햄 선수들이 무지막지하게 달려들고 있었다.

특히나 후반에 들어온 오비앙과 란지니는 홈 관중들이 손뼉을 쳐 줄 정도로 악착같이 뛰고, 또 뛰었다.

터어억!

유니온의 데니가 공을 잡았을 때 란지니가 거친 태클을 날렸고,

삐이이익!

주심이 휘슬을 불었다.

삐이익!

카알이 공을 세우고 차려는 순간이었다.

주심의 휘슬 뒤로 웨스트햄이 마지막으로 선수를 교체했다.

10번 자라테를 빼고 20번 마이가를 투입한 거였다.

『사코의 짝으로 10번 자라테를 20번 마이가로 바꿨습니다. 이로써 웨스트햄은 세 장의 교체 카드를 모두 사용했습니다.』

『오늘 자라테 선수, 정말 많이 뛰었습니다. 추가 시간을 계산하면 대략 15분가량 남았는데요, 웨스트햄은 완전히 승부를 거는 느낌입니다.』

『후반에 교체해서 들어간 선수들이 좀 더 뛰어야겠지요?』

『그렇습니다. 만약 이 상태에서 웨스트햄이 한 골을 만회한다면 분위기가 확실히 달라질 겁니다.』

『유니온 시티는 아직 교체 카드를 한 장밖에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마이가가 들어오고 경기가 다시 시작되었다.

투욱!

카알이 데이빗에게 공을 넘겨주었다.

퍼어어엉!

그런데 마이가가 제대로 달려 보기도 전이었다.

데이빗이 자신을 향해 오는 공을 그대로 길게 앞으로 차 주었다.

『데니! 웨스트햄의 오른쪽에서 공을 받았습니다! 데니! 안으로 파고든 데니! 이정렬, 레믹이 골대 안에 있습니다!』

데니는 공을 오히려 뒤쪽으로 빼 주었다.

『공 잡은 카알!』

『넘기겠죠!』

퍼어엉!

해설자의 짐작대로 카알이 골대를 향해 기다랗게 공을 넘겼다.

휘이익!

이정렬이 골대 앞에서 높다랗게 몸을 솟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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