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그렇게 하면 방법이 있겠소? (1)
기자회견을 마치고 돌아온 조동익은 만족한 표정이었다.
“다른 문제는 없지?”
“보시면 바로 아실 겁니다. 계속해서 분위기를 유도하고 있고, 박 감독을 비난하는 내용이 모두 베스트로 올라와 있습니다.”
마주 앉은 한승관의 보고 역시 그를 기쁘게 만들었다.
‘무서운 인간.’
조동익은 차갑고 잔인하던 허양수의 얼굴을 떠올렸다.
기자회견과 댓글 조작을 통해 박용근을 제물로 삼겠다는 그의 판단이 이처럼 효과를 낼 줄은 몰랐다.
인터넷 기사마다 ‘박용근은 이제라도 정지우와 함께 국가대표로 실력을 보여야 한다’라는 댓글이 가장 상위에 올라와 있었다.
물론 ‘이렇게까지 만들어 놓고 왜 박용근 감독에게 모든 짐을 지우느냐’는 댓글들이 있기는 했지만, 의도적으로 만드는 댓글을 이기지는 못하고 있었다.
“방심하지 말고. 이 말이 밖으로 새 나가는 일이 없도록 철저히 지켜봐.”
“안심하십시오.”
모처럼 한승관의 자신에 찬 답을 들으며 조동익은 엄지와 검지를 문질렀다.
‘어떻게 나올 거냐? 박용근?’
안 나오면 돈을 택한 사람이 되는 거고, 나와도 사우디아라비아를 4점 차로 이기기는 어려울 거다.
만에 하나, 사우디아라비아를 4점 차로 이겨서 월드컵 예선을 따낸다면?
그건 그 나름대로 방법이 있는 거다.
“기자들 동향 잘 챙겨. 장진모 기자가 엉뚱한 기사 올릴지 모르니까 그쪽 기사들 유심히 살펴 주고.”
“예.”
조동익은 기다란 숙제를 마친 사람처럼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
장진모가 신문사로 돌아왔을 때 부장은 예상했던 표정 그대로 책상에 있었다.
“고생했다. 내용은 기사로 봤고. 그보다는 이게 아무래도 좀 수상하다.”
부장이 손짓으로 장진모를 불렀다.
책상을 돌아 다가가자 부장은 검지로 모니터를 가리키고는 마우스 휠을 천천히 내렸다.
“이게 뭐야?”
“너도 좀 이상하지? 느닷없이 박 감독이 경기에 나와야 하고, 그러지 않으면 비겁한 거라는 내용이 주르륵 달린다. 정지우도 결국은 돈 때문에 움직인 거 아니냐는 말이 다시 나오고.”
5분가량 댓글을 확인한 뒤에 두 사람은 탁자로 자리를 옮겼다.
“협회를 비난하는 댓글이 계속 뒤로 밀려. 누군가 조직적으로 답을 만드는 것 같은데.”
“젠장!”
“박 감독에게 연락 한번 해 보면 어떠냐?”
“안 그래도 올 때 전화했었거든요. 꺼져 있어요.”
“그렇겠지.”
부장이 답답한 것처럼 창밖을 바라보았다.
“기사는 아직 못 올렸어. 오늘따라 데스크가 불난 집처럼 바빴거든.”
“하루쯤 늦어도 돼요. 급할 것도 없고.”
“아, 씨! 이럴 때 박 감독이나 정지우 선수가 확 나온다고 인터뷰해 주고, 정말 4점 차로 이겨 주면 얼마나 시원하겠냐?”
“그것도 우리랑 독점 인터뷰!”
“카흐! 듣기만 해도 속이 뻥 터지는 것 같다. 그렇게만 해 주면 조동익이 절대 딴소리 못하게 아예 못질을 해 버릴 텐데. 거기에 덤으로 우리가 준비한 기사 끼워서 스삭!”
부장이 손바닥을 쭉 내미는 동작이 웃겨서 장진모가 커다랗게 웃었다.
***
박용근은 리저브 팀 전술 훈련 때문에 자리에 없었다.
정지우는 우선 식당으로 움직여서 동기 둘, 그리고 동료들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
“정렬이는 아직도 인터뷰, 그거 하냐?”
“오락 프로인 모양이던데? 여자 연예인 몇 명이 함께 온 거 같더라구.”
신준석이 문을 바라보며 건넨 답이었다.
“정신 차려. 감독님께서 해 주셨던 말씀 기억하고.”
“당연합지요!”
신준석의 넉살 좋은 대답에 셋이서 함께 웃었다.
연예인?
정지우에게 그런 건 전혀 다른 세상의 이야기였다.
정지우는 화제를 바꿀 겸 해서 신준석을 향해 시선을 주었다.
“너희 한국에서 있었던 기자회견 들었냐?”
“기자회견? 무슨 기자회견?”
두 녀석 모두 제대로 듣지 못한 게 분명했다.
밥을 먹으면서 정지우는 새벽에 있었던 박용근과의 대화 내용을 두 녀석에게 들려주었다.
“미쳤다! 미쳤어! 왜 그렇게 감독님을 물고 늘어지는 거지?”
“생각할 게 뭐 있냐? 감독님 핑계로 예선 탈락의 책임을 피하려는 거겠지.”
신준석이 고개를 기울여 정지우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너, 혹시 예선전 나갈 생각인 거야?”
“감독님께 먼저 의논해 보고.”
입에 남았던 음식을 삼킨 신준석이 고개를 갸웃했다.
“사우디아라비아를 4점 차로 이긴다는 것부터 만만치 않은 일일 테고, 귀신이 도와줘서 우리가 그걸 이뤄 낸다고 해도 그 사람들 절대 안 물러날 거다.”
“물러나게 해야지.”
“예선 통과 못하면?”
“손해 볼 거 없잖아?”
신준석이 ‘그렇게 되나?’ 하면서 허공에 시선을 던졌다.
“일단 저녁에 감독님과 의논해 볼 테니까 그때까지 부모님께 말씀드리지 말고 있어.”
“알았어.”
그 뒤로 점심을 먹는 동안 내내 박상민은 영상을 봐야 한다고 신준석을 몰아붙였다.
“여기만 그런 게 아냐. 포르투갈에서도 다른 팀 영상 놓고 분석해.”
“그러니까! 거기엔 감독님 같은 분이 안 계신 거잖냐! 준석아! 저녁마다 와서 다음 상대할 팀 영상 같이 보자. 효과가 죽인다니까!”
신준석이 가도 되겠냐는 것처럼 시선을 돌렸다.
“와. 그러려고 영국에 오고 싶어 했던 거 아냐?”
“역시! 이래서 내가 널 떠날 수 없다는 거 아니냐?”
신준석의 넉살과 함께 점심이 끝났다.
식당을 나선 후에 동기 둘은 먼저 집으로 향했고, 정지우는 골키퍼 코치를 만나기 위해 움직였다.
그의 사무실에 들어갔을 때 스태프 두 명이 함께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부를 참이었어. 이리 앉지.”
골키퍼 코치가 정리된 자료들을 정지우에게 건네주었다.
“프리미어리그 연속 무실점 기록으론 2008, 2009 시즌에 맨유의 반데사르가 기록한 11게임이 최고다. 무패 기록은 2003, 2004 시즌에 아스널을 무패 우승으로 이끈 옌스 레만의 기록이 가장 뛰어난 거고.”
정지우는 받아 든 자료들을 천천히 뒤로 넘겼다.
“비교해 보면 옌스 레만과 자네의 수치가 대개 비슷하지. 특히나 위치 선정과 반응속도, 몸싸움은 거의 수치가 일치할 정도다. 골키퍼 스로인만큼은 자네의 수치가 월등히 높고.”
지금은 선수들의 능력을 항목별로 분류해서 수치로 증명하는 세상이었다.
“솔직히 이 상태에서 더 훈련을 할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해. 점프 수치를 보면 옌스 레만이 67인데 자네는 83까지 올라왔거든. 이 정도의 수치를 단기간에 늘릴 훈련은 없어.”
“그럼 할 수 있는 훈련이 없다는 말입니까?”
“그래서 우리가 찾아낸 것이 반응속도일세. 우리는 점프력보다 자네의 반응속도 76을 85까지 올려볼 생각이다.”
정지우는 자료를 들춰 보았다.
반응속도가 옌스 레만이 73, 정지우가 76으로 되어 있었다.
“내가 느끼는 것과 다르네요. 난 내 반응속도가 점프 능력보다 훨씬 뛰어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요.”
“우리도 그렇게 생각했었지.”
골키퍼 코치가 당연하다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의 GK 반응속도는 독보적이야. 93이 나왔으니까. 그런데 일반 반응속도는 76로 나왔어. 물론 다른 골키퍼들과 비교하면 대단한 수치이긴 하지만, 그래도 무언가를 보완해야 한다면 지금은 일반 반응속도를 보강하는 게 가장 현명해.”
“훈련 방법은요?”
“여기에 문제가 하나 있어.”
정지우는 서류에서 고개를 들어 골키퍼 코치를 보았다.
“반데사르부터 체흐, 데헤아까지, 동물적인 반응을 보인다는 골키퍼들은 모두 일반 반응속도가 70대의 수치를 보여.”
“페인트 모션에 너무 일찍 반응할 수 있다는 거죠?”
골키퍼 코치가 고개를 끄덕이며 ‘알고 있었군.’이라고 답을 했다.
“실제로 1점대 실점률을 기록하는 골키퍼들이 일반 반응속도가 높다는 보고도 있으니까. 이건 함부로 무시할 건 아닌 거다.”
골키퍼 코치가 무거운 눈빛으로 정지우를 바라보았다.
“무패 우승은 몰라도 무실점 우승은 누구도 이루지 못한 일이니까 물론 모험이 필요하지. 하지만 자칫하면 자네의 장점을 깎아 버릴 수 있어. 그 점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GK 반응속도를 믿고 한번 해 보죠. 훈련은요?”
골키퍼 코치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자네는 뭔가를 이뤄도 이룰 거 같군. 좋아.”
그러면서 그는 훈련 내용이 담긴 A4 용지를 건네주었다.
“경기 간격이 5일 이상일 때 2회 훈련이 가능한데, 만약 경기 간격이 그 이하가 된다면 그 주는 훈련을 할 수 없어.”
“알았어요.”
“기예르모를 훈련에 참여하게 할 생각이다.”
“그렇게 알고 있을게요.”
정지우는 골키퍼 코치와 스태프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방을 나섰다.
복도를 걸어 나간 정지우는 클락을 찾아 자동차를 준비할 수 있는지를 확인했다.
“앤디 킴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어. 혹시 원한다면 내 차로 움직여도 돼.”
“그럴 필요 없어. 그럼 관중석에 있을 테니까 앤디가 오면 연락 부탁해.”
“오케이.”
여름이다.
그러나 영국의 어설픈 더위보다 강렬하게 내리쬐는 햇볕이 주는 위로가 더 좋아서 정지우는 관중석을 찾았다.
벤치 바로 옆의 관중석에 앉아서 훈련 내용을 천천히 살필 때였다.
통로를 통해 들어온 관광객들이 사진 찍는 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저녁을 먹은 다음이었다.
“감독님,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박용근, 박상민과 함께 소파에 앉아 있던 정지우는 생각했던 바를 꺼내 들었다.
“저, 감독님 모시고 월드컵 예선에 나가고 싶습니다.”
박용근은 멍한 얼굴이었다.
“처음엔 무조건 피하는 게 잘하는 짓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렇지만 더는 이용당하고 싶지 않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전에 나가자는 말이냐?”
“예.”
박용근은 팔짱을 낀 채 잠시 말이 없었다.
“예선에 나가는 것 자체가 이용당하는 게 아니겠냐? 우리가 지면 완벽하게 명분을 주는 거고, 이기면 그 분위기에 어물쩍 넘어가려고 할 거다. 그러니 이럴 땐 아예 모른 척하는 게 좋다.”
“장 기자님께 도움을 청하면 어떻겠습니까?”
박용근이 정지우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았다.
“축구가 몇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란 걸 분명하게 알려 주고 싶습니다.”
“잃는 게 많을 수도 있어. 이제 겨우 자리 잡은 네가 굳이 사람들의 비난과 맞설 이유도 없고. 더구나 이곳에서 이뤄야 할 목표가 분명한데, 아무리 한 게임이라고 하더라도 체력적으로 부담도 많을 거다.”
“감독님만 나서 주신다면 해 보고 싶습니다.”
전은주가 다가오지 못하고 식탁에서 지켜보는 앞이었다.
“이대로 물러난다면 앞으로 곤란해질 때마다 협회는 감독님을 물고 늘어질 겁니다. 제가 이곳에서 무실점 우승을 이루고 싶다고 했던 것은 사람들에게 제가 배운 것을 알려 주고 싶어서였습니다.”
정지우는 나직하지만 단단하게 뜻을 밝혔다.
“감독님과 경기에 나서고 싶습니다. 이곳에서 얻은 것들이 운이 아니라 실력이었음을 증명하고 싶습니다. 4점 차로 이기지 못하더라도 감독님의 축구가 어떤 것인지는 보여 주고 싶습니다.”
박용근이 시선을 돌렸을 때였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에 전은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우 말대로 그 사람들에게 당신 축구를 보여 줘. 그래서 다시는 당신을, 그리고 지우를 걸고넘어지지 못하게 해 줘.’
전은주의 눈이 말하는 바는 분명했다.
“이거야, 원.”
박용근은 쉽게 답을 하지 못했다.
오늘 댓글들을 모두 보았다.
그래서 그걸 본 정지우가 상처받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었더니, 훌쩍 커 버린 제자는 오히려 한술 더 뜨고 나온다.
솔직히 붙어 보고 싶다.
이대로 달려가서 최선을 다한 경기가 어떤 것인지를 고국의 축구 팬들에게 보여 주고 싶다.
국가대표로 뛰면서 못다 했던 꿈.
정지우라면, 박상민이라면, 신준석과 이정렬, 그리고 그동안 지도했던 아이들과 함께라면 한 번쯤 도전해 볼 만하지 않을까?
“흠!”
박용근은 나직하게 숨을 토해 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절대 만만한 팀이 아니다. 네가 있으니까 무실점을 기록한다고 해도 골키퍼인 네가 득점까지 만들 수는 없는 일이고.”
“감독님.”
그때 박상민이 얼굴이 붉어진 채로 박용근을 불렀다.
“저를 데려가 주십시오. 감독님께 배운 것이 어떤 것인지, 저도 보여 주고 싶습니다.”
축구를 그만둘 뻔해서였을까?
박상민은 눈까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이런 녀석들과 함께라면 그 어떤 경기가 무섭고, 두렵겠나.
박용근이 입술을 길게 늘이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