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내가 공을 막아내는 것처럼. (1)
“예에에에에에에-!”
벌떡 일어선 정지우를 미친 듯한 함성이 덮쳤다.
“이 미친 골키퍼야!”
바로 앞에서 지켜보았던 스웰던이 당장에라도 주먹을 날릴 것 같은 표정으로 정지우에게 고개를 디밀었다.
“Nobody gets the goal on my game(누구도 내 경기에서 골을 넣지 못해)!”
정지우가 고함을 지르며 내민 이마에 스웰던이 ‘컴 온!’이라고 악을 쓰며 제 이마를 마주 댔다.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유니온에는 두 사람이 살지!”
흥분한 관중들이 결국 그 유명한 유니온 시티의 응원가를 목청껏 불러 댈 때쯤에는 라파엘과 무둔바, 데이빗이 달려와 정지우의 뒤통수를 두드렸다.
“꺄아악!”
공이 골대 끝을 파고드는 순간에 호프집에 있던 여자 손님이 지른 비명이었다.
맥주잔, 닭을 든 손님들이 마법에 걸린 것처럼 굳어 있다가 한순간 모조리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와- 아!”
“예!”
“와! 봤냐? 저거, 와! 나 미칠 것 같다!”
한쪽에 있던 손님들은 박수를 쳐 댔고, 반대쪽에 있는 손님들은 커다란 맥주잔을 들며 ‘건배!’라고 외쳐 댔다.
『기가 막힌 선방입니다! 슈퍼 세이브! 정지우! 완벽해 보였던 선덜랜드의 골을 강제로 끌어냅니다!』
정지우가 공을 건드리는 순간에 화면이 딱 멈추더니 갑자기 둥그렇게 움직였다. 그렇게 위쪽으로 올라간 카메라가 공과 라인만 진하게 보여 주었다.
공이 골포스트를 잇는 라인에 살짝 걸쳤던 게 또렷하게 확인되었다.
『골포스트와 워낙 붙어 있어서 밀려 나간 거네요! 이런 걸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하나요?』
『전화위복이겠지요. 대단합니다. 느린 화면으로 보니까 정말 말이 안 나오네요! 마지막 순간에 공을 밀어냈어요! 골포스트와 간격이 10센티미터만 더 있었어도 분명 골대로 들어갔을 겁니다!』
『전화위복이었군요!』
앵커가 엉뚱한 말로 감동을 확 깨고 들었다.
“저거 봐! 어떻게 해! 어떻게 해!”
비명처럼 터진 여자 손님들의 고함이었다.
TV에서 아까의 순간을 느린 그림으로 보여 주었다.
정지우가 반사적으로 왼손을 들어 공을 쳐 냈고, 곧바로 움직여 몸을 던지는 장면이 나왔다.
“와! 저게 정말 가능한가?”
“내가 말했었지! 정지우는 프리미어리그에서도 얼마든지 먹힌다니까! 이제 알았지? 한국 선수라고 떠벌리는 게 아니라고!”
“야, 이 씨! 그런데 왜 저런 선수를 월드컵 예선에 안 내보낸 거야! 이 개 삽살이들!”
“야! 야! 닭 맛 떨어지게 그 얘기는 왜 꺼내냐!”
선수들이 골대 앞에 뒤엉켰다.
데이빗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 것처럼 데포의 허리를 감싸고 따라붙었고, 무둔바는 체격 좋은 로드웰을 몸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헤이! 웨스!”
정지우가 다시 웨스 모건을 불렀다.
커뮤니티 실드에서도 뛰었던 놈이 개막전의 중압감에 잡힌 것처럼 자꾸만 상대 선수를 놓치고 있었다.
정지우가 라르손을 가리킨 직후였다.
삐이익!
주심이 휘슬을 불었고, 렌스가 공을 향해 움직였다.
퍼어어엉!
공은 골키퍼 에어리어 중간쯤으로 똑바로 날아왔다.
이런 때 뛰어나가는 건 정말 위험하다.
휘익! 휘이익!
선수들이 뒤엉켜 뛰어오르는 앞이다.
정지우는 공의 방향을 따라 몸을 틀었다.
공을 따낸 것은 무둔바였다.
터어엉!
그의 머리에 공이 맞는 순간, 정지우는 숨이 턱 막혔다.
왼쪽 구석을 날카롭게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잔인하지만, 경기 중에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화아아악!
정지우는 두 번째로 몸을 날렸다.
이런 슈팅은 허공에 떠서 허리를 최대한 뒤로 접어야 한다. 골대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쳐 내기 위해서였다.
데이지는 솜털이 바짝 서는 느낌이었다.
새를 낚아채기 위해 뛰어오른 고양이처럼 보였다.
‘왜? 뭣 때문에?’
‘내가 골대를 지키고 공을 막아 내는 것처럼 당신이 릴리를 지켜 줘요.’
저렇게까지 할 수 있다니!
아무리 축구를 몰라도 저건 막을 수 없는 공처럼 보였는데?
같은 팀 선수의 머리에 맞은 공이었잖아!
당신은 왜 그렇게 절박한 건데?
뭐가 당신을 그렇게 절박하게 하는 건데?
터억!
정지우의 손에 맞은 공이 골대 밖으로 날아가는 순간이었다.
데이지는 왼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바닥에 떨어졌던 정지우가 벌떡 일어나 가슴의 엠블린을 두드리며 벤치를 바라보고 있었다.
보라고? 이렇게 지키고 있는 걸 보고 힘을 내라고?
‘알았어요! 나, 릴리를 지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게요!’
미친 듯한 함성, 정지우를 향해 달려든 동료들.
그 순간이었다.
정지우가 양손 검지를 들어 벤치를 가리켰다.
“이예에에에에에에-!”
관중들은 정말로 미쳐 버린 사람들 같았다.
“마미! 마미! Ji가 여길 가리켰어요!”
릴리의 함성이 관중들의 고함에 묻혔을 때, 메기는 바보처럼 울고 있었다.
동양인 선수다.
병실에 와 달라고 부탁하는 것조차 미안했던 선수.
그가 상상도 못했던 수술 비용을 감당하겠다고 했단다.
그리고 저 멋진 선방 후에 릴리를 가리키며 힘을 실어 주고 있었다.
고마워! 고마워, Ji!
메기는 릴리의 작은 어깨와 머리를 꼭 끌어안았다.
이 아이를 살릴 기회를 줘서 정말 고마워!
“마미! 왜 울어요?”
“Ji가 너무 멋있어서!”
릴리가 작은 팔을 뻗어 메기의 얼굴을 감싸 주었다.
“내가 엄마를 지켜 줄게요! 그러니까 울지 마요.”
“고마워, 릴리.”
메기는 터져 나오는 울음을 억지로 삼켰다.
이 가냘픈 딸에게는 강한 엄마의 모습이 필요해서였다.
“야! 못 참겠다! 사장님! 테이블마다 닭 한 마리씩 돌려요!”
어지간하면 말려야 할 친구들이 아예 박수로 응원할 만큼 호프집의 분위기는 후끈했다.
“아흐! 피가 끓어서 미치겠네!”
“저거 보이냐? 우리나라 선수야! 저런 골을 막아 냈다고!”
“마시자! 정지우를 위해 건배다!”
같은 테이블에서 흥분하던 친구 한 명이 커다란 잔을 들었을 때였다.
“우리 다 같이 마셔요!”
여자 손님이 발갛게 변한 얼굴로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럽시다! 정지우를 위해 다 같이 건배합시다!”
닭을 돌렸기 때문인지 누구 한 사람 거부하지 않고 모두들 일어났다.
때마침 TV 화면이 높다랗게 떠오른 정지우의 모습을 보여 주기까지 했다.
“정지우를 위하여!”
“위하여!”
손님들이 일제히 잔을 비울 때, 호프집 사장만은 흡족한 표정으로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이건 뭐,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 선방입니다!』
『팀 동료가 날린 헤더거든요. 상대 팀의 슈팅보다 더 까다로웠을 텐데 정말 대단합니다.』
화면 가득히 정지우의 얼굴이 나오고 있었다.
『오늘 어느 팀이 승리할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정지우 선수의 활약만큼은 분명하게 기억될 겁니다.』
『혹독한 신고식을 치르는 유니온 시티! 정지우 선수의 활약으로 연속해서 위기를 모면합니다!』
무둔바가 독이 올라 하얗게 변한 눈을 하고 정지우에게 다가왔다.
“으아아!”
그러고는 의도를 알기 어려운 고함을 질렀다.
“얼마든지! 뒤는 내가 지킨다!”
미친놈처럼 고함을 지르는 정지우를 향해 무둔바가 가슴을 디밀었다.
쿵!
상대 팀이었다면 주심이 경고를 할 만큼 거칠게 둘이서 가슴을 부딪친 직후였다.
삐이익!
실제로 주심이 휘슬을 불어 선수들의 시선을 당겼다.
『신준석! 신준석 선수가 프리미어리그 개막전에 들어갑니다! 이렇게 되면 정지우와 함께 두 명의 우리 선수가 뛰게 됩니다!』
『웨스 모건과 교체네요. 아무래도 실수가 잦았거든요. 이렇게 되면 신준석 선수가 웨스 모건이 있던 오른쪽을 맡게 될 것 같습니다.』
양 손바닥을 위로 들고 있던 신준석이 웨스 모건과 손을 마주치고 빠르게 달렸다.
또다시 선덜랜드의 코너킥이었다.
“준석아! 7번! 7번 잡아!”
앞쪽 골포스트에는 맥슨을 붙여 놓았다.
그래서 고함을 지른 정지우는 골대 중심에서 좀 더 뒤로 물러났다.
삐이익!
선덜랜드의 26번 플레처가 공을 향해 움직였다.
퍼어엉!
그리고 공은 바로 정지우의 정면을 향해 날아왔다.
이런 걸 중간에서 잘라 헤더를 날리면 막을 방법이 없다.
와락!
정지우는 공을 향해 똑바로 달려 나갔다.
휘이이익!
그러고는 높다랗게 뛰어서 공을 잡았다.
홱!
몸을 돌린 정지우가 페널티 에어리어 끝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렸다.
“뛰어!”
한국말이다!
영국 유니온 시티의 홈구장 레드 블레이트에서 터진 정지우의 한국말 지시였다.
와락! 와라락!
유니온 시티 선수들이 살기 위해 달리는 것처럼 일제히 선덜랜드 진영으로 뛰고 있었다.
휘이이익!
있는 힘껏 던진 공이다.
페널티 라인의 바로 안쪽에서 몸을 기울여서 실제로 공을 던지고 나서 앞으로 엎어지기까지 했다.
낮고 빠르게 날아간 공을 신준석이 잡았다.
투욱!
녀석은 오른발로 공을 앞으로 흘렸고, 달리는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 그대로 길게 내찼다.
퍼어어엉!
“우와아- 아!”
역습이다.
소름 끼치게 빠른 역습!
반대편으로 길게 날아간 공을 레믹이 잡아서 선덜랜드의 골대를 향해 치고 달렸다.
페널티 에어리어 왼쪽에서 중앙으로 달리던 레믹이 수비수 한 명과 골키퍼를 앞에 두고 강한 슈팅을 날렸다.
퍼어어엉!
화아아악!
빨랫줄처럼 날아간 공을 향해 판틸리몬이 높다랗게 몸을 날렸다.
골대 오른쪽 구석을 정확하게 파고드는 멋진 슈팅이었다.
터어억!
“예아아-!”
그러나 2미터 가까운 키로 몸을 날린 판틸리몬이 공을 걷어 냈다.
레믹이 이를 악물고 욕을 뱉어 냈지만, 이미 골대를 벗어난 공을 다시 찰 수는 없는 거였다.
이번엔 유니온 시티의 코너킥이었다.
허리에 손을 얹은 채 앞을 노려보는 정지우가 고개를 갸웃했다가 피식 웃었다.
분명 판틸리몬은 정지우를 똑바로 노려보며 잠시 시간을 끌었었다.
해 보자고?
좋아!
정지우의 웃음을 확인한 판틸리몬이 못 본 거로 하겠다는 것처럼 시선을 공으로 돌렸다.
“무둔바! 중앙! 중앙 앞쪽을 지켜!”
“오케이!”
“라파엘! 라인을 조금 더 올려!”
“그러자! 해 보자!”
정지우의 지시에 따라 수비 라인이 움직인 직후였다.
삐이이익!
주심이 휘슬을 불었고, 꼼빠니가 신중하게 공을 향해 움직였다.
퍼어어엉!
공은 의외로 힘없이 날아갔다.
젠장!
판틸리몬이 뛰어나가는 것을 본 정지우는 욕을 꿀꺽 삼켰다.
“역습이다! 준비해!”
고함을 버럭 지른 정지우가 신준석을 바라볼 때였다.
퍼어어어어엉!
판틸리몬이 기다랗게 공을 찼다.
이번엔 선덜랜드 선수들이 꼬맹이의 돌 장난에 놀란 피라미들처럼 한꺼번에 유니온 시티 진영을 향해 달려 나왔다.
무둔바가 얼마나 이를 단단히 악물었는지 놈의 뒷모습을 보고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휘이이익!
그가 공을 향해 높다랗게 솟구쳤다.
아까의 실수를 갚겠다는 무둔바의 의지가 머리통, 어깨, 그리고 굵은 팔에서 뿜어져 나와 선덜랜드 선수들을 밀어내는 것처럼 보였다.
터어엉!
그는 결국 머리로 선덜랜드의 역습을 막아 냈고, 공은 높다랗게 떠서 선덜랜드 진영을 향해 날아갔다.
터어엉!
이번에는 선덜랜드의 15번 카불이 머리로 공을 밀어냈다.
휘이익!
다시 데이빗이 뛰어오르며 이마로 공을 받았다.
터억!
이번에 공을 잡은 것은 데니였다.
투욱!
놈은 신준석에게 공을 밀어 주고 빠르게 앞으로 달렸다.
투우욱!
신준석이 달리는 데니의 앞으로 공을 넘겨준 다음이었다.
퍼어엉!
데니는 그 공을 바로 선덜랜드의 페널티 에어리어 앞으로 날렸다.
“우와아아아-!”
레믹이 두 번째 찬스를 잡기 위해 악착같이 뛰었고, 라인을 올렸던 선덜랜드 선수 셋이 뒤늦게 그를 잡으려고 몰려들었다.
투욱!
공을 잡은 레믹이 오른쪽으로 몸을 틀었다.
와락! 와라락!
달려들던 선수들이 오른쪽을 향해 몸을 기울이는 순간이었다.
툭!
놈은 언젠가 정지우가 알려 주었던 대로 느닷없이 왼편으로 몸을 빼냈다.
코아체스가 급하게 몸을 돌리려다가 그라운드에 엎어졌고, 카불은 방향도 돌리지 못한 채 고개만 돌렸으며, 매튜스는 아예 레믹의 뒤에 있었다.
일대일의 찬스였다.
가슴을 활짝 편 판틸리몬이 팔을 아래로 펼친 채 주춤주춤 앞으로 나왔다.
골키퍼를 넘기는 슈팅? 아니면 강하게 차는 공?
레믹은 두 가지를 모두 버리고 오른발 바깥으로 공을 밀어냈다.
판틸리몬을 제치려는 동작이었다.
화아아악!
판틸리몬이 그라운드로 몸을 날려 공에 손을 뻗었고, 레믹은 공을 향해 달려들었다.
터억! 콰다당!
그리고 다음 순간, 레믹이 골대 앞에서 커다랗게 엎어졌다.
그 직후였다.
삐이이익!
주심의 휘슬이 날카롭게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