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라운드의 지배자-150화 (150/262)

제6장. 응원할 거예요! (2)

레드 블레이트에 퍼지는 음악, 기대에 찬 관중들의 박수.

그 속에서 정지우는 어린아이의 손을 잡고 오른쪽으로 걸어서 데이빗의 옆에 섰다.

가장 먼저 벤치에 있는 박용근이 보였다.

‘지켜봐 주세요, 감독님.’

박용근은 엄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안다. 저런 얼굴은 울컥하는 감정을 감추기 위해 억지로 만들어 낸 것임을 말이다.

‘잘할 겁니다.’

정지우는 박용근에게서 천천히 시선을 들었다.

‘어머니!’

‘우리 아들! 멋있다!’

벤치 바로 위에 앉은 전은주가 얼굴 앞에 손을 올리고 물개 박수를 보내 주고 있었다.

“Ji! Ji!”

한복을 입은 릴리가 손을 뻗어서 정지우의 시선을 붙잡고, 그 옆에 있는 메기가 눈가를 닦아 내는 것이 보였다.

데이지가 메기를 바라보았던 시선을 정지우에게 돌렸다.

틀림없이 수술비 이야기를 전해 주었고, 그걸 들은 메기의 감정이 북받쳐 오른 모양이었다.

이긴다! 아니, 지는 경기는 없다!

막을 거다.

릴리를 지키고, 박용근, 전은주와 힘겹게 잡은 행복을 지켜 낼 거다.

정지우가 천천히 숨을 들이마실 때였다.

“Ji! 난 앞으로 Ji를 향한 응원을 멈추지 않을게요.”

이제는 들어가야 하는 아이가 정지우를 향해 또렷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고마워.”

정지우는 골키퍼 장갑을 낀 손을 꽉 쥐고서 아이 앞에 내밀었다.

툭!

부끄러운 얼굴을 하고서도 톰은 정지우가 내민 주먹을 고사리 같은 주먹으로 부딪쳐 주고 라인 바깥으로 움직였다.

『우리나라의 정지우 선수가 리그 개막전과 프리미어리그 선발 골키퍼로 당당하게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감격적인 순간입니다.』

『그렇습니다. 인터뷰에서도 나왔지만, 유니온 시티 홈 관중들이 가장 기대하는 선수로 정지우 선수를 꼽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벤치에 우리 선수가 세 명, 그리고 박용근 감독까지 있습니다.』

『이 정도면 당분간 유니온 시티 경기에 대한 응원이 계속되겠는데요? 아! 지금 화면에 나온 분이 유니온 시티의 쥬피터 회장이구요, 그 옆이 이사진인 거 같네요.』

TV 화면에 정장 차림의 쥬피터가 가득 나왔다.

동전을 던진 주심이 선덜랜드의 데포를 바라보았다.

그가 오른쪽 골대를 가리키고는 주심, 부심과 악수를 나누었고, 이어서 선덜랜드 동료들과 함께 차례로 걸어왔다.

“Good luck.”

인사말을 건네는 선수, 그도 아니면 고개를 끄덕이며 선덜랜드 선수들이 지나쳤다.

악수를 마친 선수들이 그라운드로 들어서자 단박에 함성이 터져 나왔다.

정지우는 골대를 향해 느긋하게 달렸다.

터억!

골포스트 한쪽을 발로 차고 반대편으로 움직여 그쪽에 있는 골포스트를 또 발로 찼다.

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너를 지킬 거다.

부탁한다!

혹시라도 골포스트나 크로스바에 맞는 공이 있다면 밖으로 나가게 해 다오!

정지우는 골대 중앙에 서서 풀쩍 뛰어 크로스바를 건드렸다.

투욱!

“예에에-!”

느닷없이 터지는 함성에 주심과 선덜랜드 선수들이 주변을 둘러보았는데 그건 상관없었다.

이 함성이 유니온 시티 동료들에게 힘이 되고, 오늘 이 자리를 지켜 주는 홈 관중들의 기운을 북돋워 줄 수 있다면 말이다.

『프리미어리그 유니온 시티와 선덜랜드의 개막전입니다.』

삐이익!

『유니온 시티의 선공으로 경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맥슨이 꼼빠니에게 공을 넘겼습니다. 꼼빠니,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다 뒤로 넘깁니다. 공을 잡은 데이빗.』

『선덜랜드가 초반부터 압박을 시작하는 것 같네요. 보세요. 존슨, 로드웰, 플레처, 라르손까지 전부 중앙선을 넘어와 있어요. 초반에 강하게 밀어붙이겠다는 의지가 보이네요.』

짝. 짝. 짝. 짝. 짝. 짝. 짝. 짝.

홈 관중들이 빠른 템포로 박수를 쳤다.

“유니온 시티는 지는 경기가 없지! 세상에서 제일 강하지!”

그러면서 ‘오블라디 오블라다’란 곡에 가사를 붙인 응원가를 불러 댔다.

정지우가 느끼기에 관중들도 긴장한 느낌이었다.

프리미어리그에서 유니온 시티가 얼마나 잘해 낼 수 있을까, 개막전에서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짝. 짝. 짝. 짝. 짝. 짝. 짝. 짝.

“오늘 승리하는 팀은 유니온 시티! 이건 절대 변하지 않지!”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는 11명이다.

이 11명을 위해 벤치에 적지 않은 서브 선수들과 스태프들이 대기하고, 엄청난 숫자의 관중들이 자신이 직접 뛰는 것 이상으로 응원을 건네준다.

짝. 짝. 짝. 짝. 짝. 짝. 짝. 짝.

“유니온! 유니온! 유니온 시티! 세상에서 제일 강한 팀!”

오늘의 승리로 일주일을 살아갈 힘을 얻는 관중들, 오버하는 것 같지만, 저들의 행복을 지킬 의무가 정지우에게 분명하게 있는 거였다.

『초반부터 굉장히 치열한 격돌입니다.』

『그러네요. 개막전이라 조심스럽게 경기를 풀어낼 거라 예상했는데, 초반에 아예 승부를 가르겠다는 것처럼 보입니다.』

『코아체스! 거친 태클입니다.』

『데니 선수죠. 심한 부상이 아니었으면 싶은데요!』

선덜랜드의 22번 코아체스가 거친 태클을 날렸고, 데니가 발목을 부여잡고 바닥을 굴렀다.

『경기 시작 5분 만에 유니온 시티, 선덜랜드의 페널티 에어리어 왼쪽에서 파울을 얻어 냈습니다.』

『저 자리면 직접 쏠 거예요. 오른발로 차야 하는 자리니까 레믹이나 꼼빠니가 대기할 거 같구요, 혹시 맥슨이 반대편을 노릴 수도 있겠네요.』

몸을 일으킨 데니가 상체를 기울여 발목을 주무르는 동안, 주심은 공 앞에 거품으로 라인을 그어 주고, 골대 방향으로 아홉 걸음을 걸어갔다.

선덜랜드의 골키퍼 판틸리몬이 네 손가락을 위로 치켜든 다음, 옆으로 뉘인 엄지로 방향을 조절했다.

“웨스! 웨스!”

정지우는 프리킥을 우두커니 바라보는 웨스 모건을 불렀다.

“자리 잡아! 저게 골로 연결되지 않으면 무조건 역습이 온다! 스웰던! 헤이!”

선덜랜드의 수비수들이 자리를 잡는 그 짧은 동안 정지우는 다시 스웰던을 불렀다.

“저쪽에 존슨을 놓치지 마!”

스웰던이 고개를 끄덕인 다음이었다.

“무둔바! 라르손! 7번! 라르손!”

어쩌면 너무 경계하는 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이렇게 수비수들을 들쑤셔 놓으면 적어도 방심해서 당하는 일은 없다. 수비란 그런 거다.

삐이익!

그때 주심이 휘슬을 불었다.

주춤주춤!

맥슨이 움직이는가 싶더니 꼼빠니가 공을 향해 달려들었다.

퍼어어엉!

공은 정확하게 골대 왼쪽 구석을 파고들었다.

화아아악!

그러나 공이 빠르지 못한 데다, 상대 팀 골키퍼 판틸리몬이 이미 방향을 예측했던 모양이었다.

터억!

그의 손에 걸린 공이 골대를 넘어 밖으로 날아갔다.

“우우-!”

홈 관중들의 탄성이 그라운드를 덮칠 때 꼼빠니는 얼굴을 쓸어내렸다.

『골키퍼 판틸리몬이 슈퍼세이브로 팀을 구해 냅니다!』

『판틸리몬은 지난 프리미어리그 시즌 골키퍼 선방율 1위 선수죠. 참고로 2위가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의 아드리안, 3위가 스완지 시티의 루카시 파비안스키입니다.』

『아무래도 성적이 떨어지는 팀이다 보니 공격을 많이 당해서 그런 걸까요?』

『그런 면이 없잖아 있겠는데요, 아무튼 판틸리몬은 세계적인 팀들이 눈여겨보는 골키퍼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유니온 시티의 코너킥이었다.

‘쉽게 가지 않겠다는 거지?’

정지우는 피식 웃으며 선덜랜드의 골대를 바라보았다.

코스텔 판틸리몬은 지난 리그 28경기에서 139회의 슈퍼 세이브를 기록했고, 선방율도 78.4퍼센트로 프리미어리그 전체 순위 1위인 골키퍼였다.

『유니온 시티, 코너킥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지우 선수 역시 지난 시즌에 무실점을 기록하지 않았습니까?』

『그렇죠. 그래서 이번 시즌 정지우 선수의 활약이 그만큼 중요합니다. 작년 시즌이 단순한 거품이었는지, 아니면 제대로 된 실력인지를 평가하게 되니까요.』

양손을 높이 든 꼼빠니가 프리킥을 위해 달렸다.

수비수 매튜스와 카불을 뿌리친 레믹과 데이빗이 골대를 향해 움직인 순간이었다.

퍼어어엉!

꼼빠니가 찬 공이 높다랗게 떠서는 골대를 지나쳐 버렸다.

투욱!

오른쪽 끝에서 공을 잡은 선덜랜드의 수비수 반 아놀트가 앞쪽에 있던 렌스에게 공을 넘겼다.

퍼어엉!

렌스는 중앙선에서 달리는 로드웰을 향해 단박에 공을 넘겨주었다.

“우와- 아!”

선덜랜드 특유의 빠르고 기운찬 역습이었다.

원톱 데포를 비롯한 미드필더 5명이 일제히 유니온 시티 진영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라파엘! 나가! 나가!”

정지우가 고함을 질렀고, 라파엘이 1차 저지를 위해 뛰어나갔다.

투우욱!

“헤이! 야!”

정지우는 웨스 모건을 향해 고함을 버럭 질렀다.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할 놈이 라파엘과의 동선을 맞추겠다는 것처럼 앞으로 달려 나가서였다.

달려오던 렌스가 그걸 놓칠 리 없었다.

퍼어엉!

그가 웨스 모건을 훌쩍 넘겨 유니온 시티의 오른쪽 공간에 공을 차 넣었다.

“와아아-!”

뛰어나가던 웨스가 몸을 돌렸지만 아무래도 늦을 수밖에 없었다.

라르손이 웨스를 휙 지나쳐서 쏜살같이 공을 향해 달려들었다.

텅 비어 버린 오른쪽을 향해 무둔바가 뒤늦게 달렸다.

정지우는 오른쪽 골포스트에서 1.5미터 떨어진 곳에서 자세를 낮췄다.

데포와 플레처, 로드웰이 골대를 향해 달려들고, 데이빗과 카알이 그들에게 바싹 붙었다.

무둔바는 선이 굵은 수비수다. 그래서 함부로 달려들지 못했다.

라르손의 동선을 계산해서 일단 앞을 막는 것이 최선이었다.

툭툭!

『라르손, 무둔바를 앞에 두고 시간을 벌고 있습니다.』

『더 밀리면 위험해요! 지금은 달려들어야 합니다!』

라파엘이 다시 돌아왔고, 데이빗이 골대 정면을 지키기 위해 로드웰과 몸싸움을 벌이는 사이,

투욱!

“우와- 아!”

몸이 느린 무둔바를 제친 라르손이 골라인을 향해 치고 달렸다.

투우우욱!

그러고는 무둔바를 피해 골대 정면을 향해 낮은 패스를 날렸다.

정지우는 공을 따라 빠르게 골대 중앙으로 몸을 옮겼다.

콰악! 와락! 와락!

라파엘과 데포가 뒤엉켜 달려들었고, 스웰던이 공을 향해 뛰어들었으며, 어느 틈에 돌아온 렌스가 발을 뻗고 있었다.

누구의 몸에 공이 걸릴지 모른다. 그래서 어디로 튈지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다.

후욱! 후욱!

정지우는 자세를 있는 대로 낮추고 양팔을 쭉 뻗었다.

하얀 선처럼 날아온 공이 태클처럼 몸을 날린 렌스의 발에 걸렸다.

티잉!

공은 정지우의 왼편으로 바로 떠올랐다.

화악!

보고 판단한다고?

아니! 이런 건 그동안 수없이 연습했던 대로 손이 알아서 나가는 거다.

미친놈처럼 하루에도 골백번씩 던져 주는 핸드볼 공, 테니스공을 향해 팔을 휘두른 훈련, 그것들이 이런 단 한 번의 상황에서 효과를 발휘하는 거다.

정지우는 반사적으로 왼손을 위로 들었다.

터억!

손에 맞았다.

일단 막은 거였다.

공은 허공에 떠서 왼편으로 커다랗게 튀어 나갔다.

와락!

자세를 세운 정지우는 게처럼 옆으로 걸어 왼편으로 움직였다.

자세를 낮추고 양팔을 벌리며.

공은 하필이면 선덜랜드 존슨의 가슴에 맞았다.

알고 잡은 것이 아니다. 그냥 그가 있는 곳으로 튀어 가서 정말 맞은 거였다.

이래서 골대 앞에는 무둔바 같은 선수가 위치를 차지하고 있어야 하는 건데!

와락! 와락!

존슨의 발아래로 공이 떨어질 때 스웰던이 급하게 달려들었다.

터엉!

계산하지 못한 슈팅이었다. 가슴에 맞아 떨어지는 공을 욱여넣듯이 날린 거였다.

공은 그라운드를 타고 날아왔다.

워낙 가까운 거리인 데다 짐작조차 못했던 슈팅.

골포스트에 맞나 싶을 정도로 구석을 파고든 슈팅이기도 했다.

화아아악!

정지우는 그라운드에 처박히는 것처럼 몸을 날렸다.

공만 보였다.

저 공이 골포스트를 잇는 선 위를 지나면 모든 것이 끝난다.

무실점도, 박용근의 실력을 알리는 것도, 그리고 릴리, 겨우 잡은 행복을 지키는 것도.

‘오랜 기간 골키퍼들을 훈련하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무실점을 목표로 훈련한 적은 없었다.’

공이 라인의 끝 부분에 닿고 있었다.

‘으아아!’

정지우는 왼쪽 어깨를 있는 대로 비틀었다.

손가락이 조금만 더 길었다면!

키가 1센티미터만 더 컸더라면!

“이아아!”

정지우는 이를 악물고 어깨를 좀 더 비틀었다.

등 근육이 뒤틀렸는지 찢어지는 통증이 느껴졌다.

‘막을 거다! 지켜 낼 거라고!’

어머니, 감독님, 릴리!

터어어억!

정말이지 손끝에 공이 걸렸다. 그래서 마치 손가락 끝으로 공을 찌르는 느낌이었다.

짜가락!

공에 맞아 뒤틀린 손가락이 비명을 질러 댔다.

아픈 건 모른다!

막는다! 지금은 그것밖에 모른다!

털썩!

바닥에 떨어진 정지우는 가장 먼저 골대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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