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라운드의 지배자-141화 (141/262)

제3장. 그런 거 우리도 연습했어! (1)

하늘에서 떨어지는 공을 향해 정지우가 달려 나갔다. 이를 꽉 깨물고, 번들거리는 눈을 하고서 말이다.

못 잡았었다! 놓쳤다!

골을 먹었다고 해도 할 말이 없는 공!

승리를 놓칠 뻔했던 그 짧은 순간을 경험하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 필드 플레이어는 절대 모른다.

화아아악!

높다랗게 솟구친 정지우를 지켜 주기 위해 무둔바가 그 옆에서 버텨 주었고, 데이빗이 달려드는 선수들을 뿌리쳤다.

역습?

그런 거 우리도 연습했어!

아자르와 마티치가 동시에 뛰어올랐지만, 오스카와의 충돌이 있었기 때문인지 함부로 달려들지 못했다.

(수정했습니다! 이상하게 실수가 잦았네요. 고맙습니다.)

꽈악!

공을 잡은 정지우의 바로 앞에 무둔바가 있었다.

하얗게 번들거리는 정지우의 눈빛을 본 무둔바가 움찔한 순간이었다.

와라락!

정지우는 농구선수처럼 무둔바를 지나쳐 앞으로 달렸다.

페널티 에어리어 라인에 도착한 정지우가 있는 힘껏 공을 앞으로 뿌렸다.

역습을 눈치챈 파브레가스가 팔을 휘두르기까지 했지만, 그런 것에 걸릴 정지우는 아니었다.

휘이이이익!

낮고 빠르게 날아간 공이 데니의 앞에 떨어졌다.

정지우의 표정이 지시였고, 눈빛이 고함이었다.

터억!

공을 잡은 데니가 몸을 틀었을 때, 이정렬과 레믹은 이제 겨우 중앙선을 넘고 있었다.

퍼어어어엉!

데니는 반대편 첼시 진영을 향해 대각선으로 공을 날렸다.

“우와아아아-!”

전력질주였다.

공을 향해 박상민이 이를 악물고 달리고 있었고, 유니온 시티 진영에 있던 첼시 선수들이 다급하게 뛰어가고 있었으며, 그 사이에서 이정렬과 레믹이 첼시의 선수들을 앞서기 위해 악착같이 달리고 있었다.

“뛰어! 잡아!”

정지우가 고함을 버럭 질렀다.

공이 너무 깊게 떨어졌다. 그래서 첼시의 쿠르투아가 달려 나오고 있었다.

“박상민! 잡으라고!”

터억!

코너킥을 차는 곳 바로 앞에서 박상민이 공을 잡았다.

주춤!

뛰어나오던 쿠르투아가 움찔해서 뒤로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퍼어어엉!

박상민이 골대 앞쪽으로 센터링을 날렸다.

휘이이이익! 휘익! 휘이익!

첼시의 선수들 역시 유니온 시티에서 달려오던 참이었다.

달려드는 반동을 이용해 뛰어오르는 상황이어서 선수들의 점프가 평소보다 훨씬 높았다.

주마를 스친 공이 케이힐의 머리를 아슬아슬하게 지났다.

휘이이익!

그 바로 다음이 이정렬이었다.

허공에서 컴퓨터의 모니터를 들여다보는 것처럼 고개를 앞으로 뚝 떨어트린 이정렬이 공을 이마로 들이받았다.

터어엉!

머리에 맞은 공은 쿠르투아의 왼쪽 바닥에 처박혔다.

화악!

발과 손을 동시에 뻗어 냈지만, 공은 그 사이를 뚫고 골대 그물을 커다랗게 흔들었다.

“이예에에에에에에-!”

귀가 얼얼할 정도의 함성이었다.

바닥에 내려선 이정렬이 골대에 처박혀 있는 공을 확인한 후에야 벤치 앞으로 달렸다.

“히야- 호오!”

괴성을 터트리는 유니온 시티 관중들이 미친 사람들처럼 펄쩍펄쩍 뛰었고, 동료들이 이정렬을 잡기 위해 악착같이 달렸다.

마틴과 스태프들 역시 끌어안고 관중들처럼 껑충껑충 뛰고 있어서, 벤치 역시 제정신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감독니- 임!”

양팔을 벌린 채 달린 이정렬이 높다랗게 떠서 박용근에게 꽂혔다.

와락! 와라락! 와락!

이정렬 때문에 휘청한 박용근을 향해 유니온 시티 동료들이 연달아 뛰어들었다.

콰다당!

결국 한 덩어리가 된 박용근과 선수들이 벤치 앞을 뒹굴었다.

“예에에에에에-!”

정지우가 하늘을 향해 양손 검지를 든 것을 본 관중들이 또다시 함성을 터트렸다.

‘어머니, 보이시죠? 저놈들도 와 있어요.’

하늘은 맑기만 했다.

‘오늘 알았어요. 아직은 부족하다는 거요. 다음 경기에선 좀 더 달라져 있을게요.’

첼시는 확실히 달랐다.

이런 팀들과 매주 한 경기, 다른 컵 경기를 포함할 때는 두 경기를 해야 한다.

손을 내리고 벤치를 보았을 때 이정렬은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데니와 이마를 마주 대고 있었다.

치고받던 놈들이어서 그런가?

한 놈은 영어로, 또 한 놈은 한국말로 연신 대화도 주고받는다.

알아듣지도 못할 텐데?

멀리서 보면 이정렬이 영어를 정말 잘하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하여간 두 놈 모두 속없는 놈들인 것만은 분명했다.

『이정렬입니다! 박상민의 크로스를 이정렬이 골로 연결했습니다! 감격스러운 순간입니다!』

화면에 박상민이 공을 넘기는 장면부터가 느리게 올라오고 있었다.

주마와 케이힐의 뒤에서 허공을 나는 것처럼 높다랗게 뛰어오른 이정렬이 나왔다.

머리에 맞은 공이 바닥에 튕긴 후 골대에 들어갔을 때는 뒤편의 관중들이 벌떡 일어서는 모습도 분명하게 보였다.

이번엔 골대 뒤에서 잡은 장면도 나왔다.

『이런 순간을 직접 볼 줄은 몰랐습니다! 오늘 웸블리에서 어시스트와 골을 모두 우리 선수들이 만들어 냈습니다! 대한민국의 선수들이 첼시를 상대로 골을 만들어 냅니다!』

앵커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박상민의 모친은 이상하게 자꾸만 눈물이 나왔다.

아들이 공을 잡으러 달려갈 때 다리에 힘이 들어갈 정도로 애가 탔었다.

‘내 새끼! 얼마나 애가 타서 달렸었을까?’

그 공을 살려서 넘긴 것만도 그저 감사할 판인데, 이정렬이 악착같이 달려들어 골을 만들어 주었다.

박상민의 모친은 이정렬에게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입술을 삐죽이는 이정렬 모친의 등을 옆에 있던 남편이 조심스럽게 다독였다.

기쁘다!

생전 처음 들어 보는 이런 응원 속에서 아들이 골을 넣은 거다. 게다가 귀를 얼얼하게 하는 함성이 아들에게 향한 거란 생각이 들자, 지금 당장 세상 그 어느 것도 부러울 것이 없었다.

그러나 아직 벤치에 있는 신준석을 지켜보는 그의 가족들이 바로 옆에 있다. 이정렬의 부친은 그래서 이를 꽉 깨문 얼굴로 아들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이정렬 선수가 박용근 감독에게 안겼습니다. 마틴 감독이 서운해하지 않을까요?』

선수들이 중앙선으로 움직이는 것을 보며 앵커가 던진 농담이었다.

『데뷔전에서 골을 넣었으니까 이해해 주지 않을까요?』

『그래야 할 텐데, 마틴 감독이 속이 너그럽기를 바라 봅니다.』

주심이 곧바로 휘슬을 불었다.

『3분 남았습니다. 추가 시간에 추가 시간을 더 줄까요?』

『글쎄요. 골 세레머니 시간을 감안한다면 1분에서 2분가량 더 줄 수도 있겠습니다.』

첼시 선수들이 급하게 달려들고 있었다.

“무둔바! 자리만 지켜!”

정지우의 고함에 무둔바가 고개를 끄덕였다.

“헤이! 라파엘! 헤이!”

라파엘이 뒤를 돌아보고는 정지우가 가리킨 선수를 향해 움직였다.

“헤이! 헤이!”

웨스 모건과는 아직 손발이 맞지 않았다.

함성이 워낙 커서 놈은 정지우가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하고, 그저 라파엘을 따라 수비 라인을 맞추기에 바빴다.

“웨스! 헤에이!”

마침내 놈이 정지우를 힐끔 보았다.

“자리! 거기서 움직이지 마! 자리만 지켜!”

정지우는 페널티 에어리어 오른쪽 라인을 가리켰다.

저놈과 동선을 제대로 맞추지 못한 것이 아쉬웠지만, 지금은 그걸 따질 겨를이 없었다.

첼시가 기다랗게 공을 날렸다.

남은 시간을 계산하면 골대 앞으로 차 놓고 달려드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만큼 정확도는 떨어진다.

골대 앞에서 몸싸움이 더욱 치열해졌다.

날아오는 공을 머리로 따내기 위해서는 점프를 해야 하는데, 앞에 방해하는 선수가 있어서는 아무래도 곤란하기 때문이었다.

무둔바의 움직임이 확실히 달라졌다.

공이 오는 방향과 정지우의 위치에 따라 몸을 움직이며 거친 몸싸움을 버텨 냈다.

휘이이익!

높다랗게 뛰어오른 정지우가 무둔바의 앞에서 공을 잡았다.

털썩!

충분히 설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시간을 끌어야 할 상황이었다.

정지우는 공을 안은 채로 앞으로 엎어졌다.

첼시 선수가 다가오자 고개마저 공을 향해 푹 숙였다.

수비 라인, 미드필더, 그리고 공격수들이 최선을 다해 뛰어서 골대를 지키고, 상대보다 악착같이 뛰어서 골을 만든 거다.

이렇게 10초라도 버는 것이 그렇게 뛰어 준 동료들에 대한 존중이고, 더할 수 없는 응원을 선사해 주는 관중들에 대한 예의인 거다.

정지우는 느긋하게 일어나 공을 들고 페널티 에어리어 앞쪽으로 움직였다.

삐이익!

그때 주심이 휘슬을 불었다.

선수 교체였다.

시간을 벌겠다는 의미여서 정지우는 공을 안고 터치라인을 바라보았다.

웨스 모건이 걸어가는 저 앞에서 신준석이 몸을 풀며 서 있었다.

『신준석이 교체 투입됩니다! 커뮤니티 실드에서 우리 선수 네 명이 뛰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번 교체에서 신준석 선수가 활약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합니다.』

관중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웨스 모건을 박수로 칭찬했다.

『그렇더라도 이 경기를 중계하는 입장에서는 가슴 뛰는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세계에서 손꼽는 프리미어리그입니다. 우리 선수 네 명이 한 팀에서 뛰는 것도 그렇지만, 박용근 감독이 전술 부분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도 가슴 벅찬 일입니다.』

해설자까지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있었다.

신준석이 내민 손을 분명하게 때려 준 웨스 모건이 벤치로 움직였다.

마틴이 그의 등을 툭 쳐 주는 동안, 신준석이 빠르게 달려서 정지우의 오른쪽 페널티 에어리어에 도착했다.

경기 시작이다.

정지우는 바닥에 내려놓았던 공을 신준석에게 바로 차 주었다.

투욱!

『신준석! 교체로 들어오자마자 공을 받습니다.』

『정지우 선수의 배려 같네요. 원래 이 시간에 들어온 선수는 공을 한 번도 못 건드리고 경기가 끝날 때가 많거든요.』

관중석에서 주심의 휘슬을 흉내 낸 것 같은 휘파람 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첼시 선수들은 아예 수비를 포기한 것처럼 올라와 있었다.

『골키퍼까지 페널티 에어리어 앞까지 나와 있습니다.』

『지금은 한 골을 더 먹는다고 달라질 것이 없습니다. 어떡해서든 골을 넣어서 승부차기로 가는 게 가장 효과가 있지요!』

퍼어어엉!

라파엘과 공을 주고받았던 신준석이 첼시의 진영을 향해 기다랗게 공을 차 냈다.

시간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정렬과 레믹까지 중앙선에서 수비에 치중하고 있어서 공을 잡은 것은 첼시의 골키퍼 쿠르투아였다.

퍼어어엉!

날아오는 공을 쿠르투아가 있는 힘껏 걷어찼다.

높다랗게 뜬 공이 골대 바로 앞까지 날아왔다.

이렇게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공을 따내는 건 골키퍼가 백번 유리하다. 그것도 페널티 에어리어 앞이라면 더더욱.

무둔바와 데이빗, 스웰던이 첼시의 선수들을 몸으로 버텨 내는 동안 정지우는 위치를 가늠하며 주변을 빠르게 살폈다.

점프를 한 앞에서 누군가 잘라먹으면 그냥 골을 허용하기 때문이었다.

공이 떨어지는 곳을 향해 정지우가 빠르게 달려 나갔다. 그리고 있는 힘껏 몸을 띄워서 공을 잡았다.

털썩!

내려서면서 당연하게 바닥에 엎어졌다.

“우-!”

첼시의 관중들이 야유를 퍼부었지만, 그런 것은 신경 쓸 이유조차 없는 일이었다. 막말로 하미레스가 팔꿈치와 팔을 사용한 짓이 더 비겁한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엎드린 상태에서 좌우를 둘러본 정지우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숨이 턱턱 막힌다.

1초가 1분쯤 느껴지고, 혹시라도 작은 실수로 동점 골을 내주는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닌지 불안하다.

정지우는 공을 들고 앞으로 움직여서 높다랗게 차 냈다.

퍼어어어엉!

하늘 높이 떠오른 공이 아래로 꺾이는 순간이었다.

삐이이이익! 삐익! 삐이이이익!

“예에에에에에에에에에-!”

경기 종료를 알리는 주심의 휘슬이 기다랗게 들렸다.

이정렬과 박상민이 펄쩍펄쩍 뛰며 날뛸 때, 신준석이 다가왔다.

“여긴 미친 것 같다.”

“포르투갈도 비슷하지 않아?”

“이 정도는 아니거든.”

정지우는 신준석의 뒤통수를 쳐 주고 다가오는 무둔바, 라파엘과 손을 마주 잡았다.

정지우가 몸을 돌렸을 때였다.

아자르, 파브레가스, 윌리안이 다가왔다.

“멋진 경기였다.”

“운이 좋았어.”

교체로 들어와서 얼마 뛰지도 못했다. 하지만 정지우는 파브레가스와 손을 맞잡으며 다시는 이 선수의 공을 놓치지 않을 거라 결심했다.

그라운드에서 인사를 마친 정지우는 동료들과 함께 관중석 앞으로 걸었다.

이렇게 관중들 앞에서 박수를 치는 것이 유니온 시티의 전통인 거다.

교체 아웃 되었던 얀센과 웨스 모건, 꼼빠니, 맥슨까지 모두 나와서 승리의 기쁨을 함께 누렸다.

벤치에 박용근이 있고, 그 위로 신준석과 이정렬의 가족이 있는 곳,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경기가 끝난 직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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