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라운드의 지배자-139화 (139/262)

제2장. 이제 좀 제대로 보인다. (2)

삐이이익!

골이야? 파울이야?

웸블리에 있는 관중, 선수, 스태프는 물론이고, 심지어 방송 카메라까지 골대 앞의 주심에게 집중했다.

그가 중앙선을 가리키면 골이고, 페널티 에어리어를 찍으면 페널티킥이다.

그런데 그 순간 주심은 골대 바로 앞을 가리켰다.

박상민의 파울이라는 의미였다.

“예에-!”

첼시 관중들이 안도의 함성을 질렀고,

“우우우-!”

유니온 시티 관중들은 야유를 퍼부었다.

마틴이 양팔을 높이 들고 벌떡 일어나 대기심에게 항의하는 동안, 그라운드에서는 데이빗이 주심에게 달려갔다.

“가슴으로 공을 받았을 때 저 두 선수가 들이받은 거잖아요! 파울을 했다면 우리 선수가 아니라 첼시의 파울이어야지! 그들이 들이받았는데!”

주심이 웃는 얼굴로 고개를 저으며 중앙선 쪽으로 움직였다.

이미 선언된 판정을 뒤집는 건 불가능했다.

중앙선으로 움직이던 데이빗이 골대에서 걸어오는 박상민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박상민이 웃으며 데이빗과 하이파이브를 나눈 후, 그의 뒤를 따라 움직였다.

레믹의 슈팅이 있었고, 다음으로 모양은 좀 빠졌지만, 어쨌든 박상민이 가슴으로 골을 시도했다.

“Go, Go, Go my red! Go, Go, Go my red!”

유니온 시티 관중들이 우렁찬 함성으로 지금까지 참아 왔던 응원을 펼쳐 냈다.

TV는 박상민이 가슴으로 공을 받는 장면부터 첼시의 선수들과 뒤엉켜 골대에 처박히는 모습까지를 느린 그림으로 보여 주었다.

『어느 부분 때문에 반칙이 선언된 건지 모르겠습니다.』

『주심이 뒤에서 봤거든요. 아마 손에 공이 닿았다고 본 것 같네요. 이 판정은 나중에 말이 나올 소지가 다분합니다.』

박상민의 모친은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연신 삼켰다.

같은 팀의 선수가 앞서 달리며 박상민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 뒤로 다른 동료들이 다가와서 어깨도 두드려 주고, 뒤통수도 쳐 주었다.

잘했다는 의미다.

됐다. 저렇게 동료들에게 인정받는 선수인 거로 충분하다.

저 많은 관중 앞에서 주눅 들지 않고 하고 싶었던 축구 하는 것만으로도 박상민의 모친은 더 바랄 것이 없었다.

첼시의 골키퍼 쿠르투아가 존 테리에게 공을 차 주었다.

“오오- 오! 오오- 오!”

유니온 시티의 관중들이 양팔을 뻗어 가며 고함을 지르는 반면에 첼시 관중들은 팔짱을 낀 채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박상민이 코를 얻어맞은 것으로 긴장을 털어 냈다면, 유니온 시티 선수들은 레믹의 슈팅과 박상민의 욱여넣기 이후로 자신감을 되찾은 것처럼 보였다.

공을 잡은 첼시의 마티치에게 데니가 거칠게 달려들어서 악착같이 매달렸다.

데니가 마티치의 소매를 잡아챘고, 그걸 거칠게 뿌리친 마티치가 홱 돌아서서 노려보는 바람에, 결국 두 선수가 얼굴을 마주 대며 으르렁거리고 말았다.

삐이익!

소매 좀 잡는 건 영국 리그에서 애교 수준이다. 그런데도 마티치가 저렇게 신경질적으로 반응한 것은, 후반전이 뜻대로 풀리지 않는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주심이 두 선수에게 구두로 경고하고는 공을 차라고 지시했다.

투욱!

데니가 물러서자 마티치는 곧바로 공을 옆으로 차 주었다.

하미레스가 받았고, 그가 파브레가스에게 연결했는데 박상민과 데이빗, 카알이 단박에 그를 감쌌다.

툭툭!

세계적인 선수는 확실히 다르다.

그 급한 순간에도 파브레가스는 두 번이나 공을 건드려 위기를 벗어났고, 오른쪽에서 기회를 노리던 윌리안에게 공을 넘겼다.

꼼빠니와 스웰던이 앞과 뒤에서 달라붙자 윌리안은 페널티 에어리어를 향해 치고 달렸다.

그러나 이미 유니온 시티 선수들이 빽빽하게 막아서고 있어서 바로 안쪽으로 치고 달리지는 못했다.

투욱!

윌리안은 기껏 페널티 에어리어 앞까지 몰고 왔던 공을 다시 뒤편에 있던 마티치에게 넘겼다.

툭툭툭!

마티치는 페널티 에어리어 왼편으로 움직였다.

그가 공을 띄우지 못하게 데니와 웨스 모건이 달려들었고, 반대로 공이 날아올 것에 대비해 골대 앞에서 선수들이 뒤엉켰다.

무둔바가 하미레스를 밀어내고, 레미가 파브레가스를 악착같이 따라붙는 사이,

투욱!

길게 찰 것처럼 모션을 취했던 마티치가 왼편 안쪽의 아자르에게 공을 찔러 주었다.

“우와- 아!”

첼시 팬들의 함성이 터져 나온 직후였다.

툭툭!

잘게 공을 몰고 들어온 아자르가 웨스 모건을 피해 골대 앞으로 센터링을 날렸다.

와락! 꽈악! 콰악!

옷과 팔을 붙잡은 선수들이 골대 앞에서 몸싸움을 벌였고, 그 틈에서 다른 선수들이 뛰어올랐다.

터어엉!

하미레스가 머리로 날린 슛이 얀센의 정면으로 날아갔다.

터억!

얀센은 배구에서 토스하는 동작처럼 반사적으로 팔을 들어 공을 쳐 냈다.

‘달려 나와야지!’

정지우는 이를 악물며 골대를 노려보았다.

높게 떠오른 공을 향해 아자르가 그림처럼 달려들고 있었다.

포물선을 그리며 부드럽게 떨어지는 공, 그리고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그 공을 향해 런닝 점프로 높다랗게 떠오른 아자르.

골대 앞에 몰려 있던 수비수들은 시야에서 공을 놓쳤고, 외곽에 있던 선수들은 달려드는 아자르를 놓쳤다.

“나와!”

정지우의 고함이 함성에 파묻혔지만, 바로 옆에 있던 신준석과 이정렬만큼은 분명하게 들었다.

터어엉!

다른 선수들보다 상반신이 위로 올라가 있을 만큼 높다랗게 솟구친 아자르가 얀센의 위치를 확인하며 헤더를 날렸다.

철렁!

얀센이 뒤늦게 팔을 뻗어 보았으나, 공은 이미 골 그물을 커다랗게 울린 다음이었다.

“이예에에에에-!”

9만 명이 들어찬 웸블리 스타디움이 첼시 팬들의 함성으로 날아갈 것만 같았다.

골을 넣을 찬스를 놓치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위기가 온다. 그리고 유니온 시티는 그 위기를 끝까지 견뎌 내지 못했다.

고개를 떨군 수비수들이 허리에 손을 올리고 있는 동안, 첼시의 관중석 앞으로 달려간 선수들이 아자르를 둘러싸고 골을 넣은 기쁨을 만끽했다.

얀센 대신 저기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만약 아자르가 날린 헤더 앞에 정지우가 서 있었다면?

아무리 생각해 봐도 고개가 절로 저어지는 일이었다.

FA컵에서 우승했고, 리그 승격을 따냈더라도 첼시와의 실력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실감한 골이었다.

세레머니가 끝났다.

첼시의 응원가가 커다랗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양 팀 선수들이 마주 섰다.

후반이 20분쯤 지나서 정규 시간 25분 남은 시점이었다.

삐이이익!

주심이 휘슬을 불기 무섭게 레믹이 박상민에게 공을 넘겨주었다.

골을 넣고 나서 첼시 선수들의 움직임이 달라졌다.

좀 더 과격해졌고, 좀 더 기운차며, 좀 더 활동적으로 보였다. 그래서 유니온 시티를 확실하게 압박했고, 급하게 뒤로 돌리는 공을 따라 일제히 몰려들었다.

터어엉!

다급한 얀센이 슈팅처럼 공을 걷어 냈다.

달려드는 첼시 선수의 가슴을 노렸다고 볼 정도로 낮게 날아간 데다, 중간에서 왼편으로 커다랗게 휘기까지 했다.

다들 아웃되는 줄 알았다.

휘이익!

그런데 터치라인에 있던 박상민이 몸을 솟구쳤다.

터억!

녀석이 가슴으로 공을 받았는데, 워낙 강하게 날아온 터라 보는 사람이 움찔할 정도로 충격이 있어 보였다.

와락! 와라락!

뒤늦게 달려드는 첼시의 선수들을 앞에 두고 박상민은 공을 강하게 내질렀다.

퍼어어엉!

반대편 터치라인 방향이었다.

길게 날아가던 공이 첼시의 골대 쪽으로 커다랗게 휘며 떨어졌다.

아름다운 궤적이었다.

“우와아아아-!”

골을 먹은 직후에 날아간 패스였고, 첼시 선수들이 유니온 시티 진영으로 일제히 달려든 상황에서 만든 기회였다.

레믹이 달려가 그 공을 살려 냈을 때, 골을 넣은 것만큼이나 커다란 함성이 웸블리를 가득 메웠다.

툭툭!

두 번 공을 차며 페널티 에어리어로 달리던 레믹이 골대 앞을 가로지르는 멋진 패스를 만들어 냈다.

와락! 와라락!

데이빗, 카알, 박상민이 첼시의 선수들과 함께 공을 향해 달렸다.

데이빗을 스친 공이 너무 빠르게 들어간 카알의 뒤를 지나 박상민의 앞에 떨어졌다.

터억!

박상민이 오른발 바깥쪽으로 툭 차서 공을 세웠다.

앞을 막았던 아스필리쿠에타의 몸이 왼편으로 쏠려서 완벽하게 골키퍼와 일대일로 맞선 상황이었다.

박상민이 슈팅을 날리려는 순간이었다.

콰아악!

케이힐이 슬라이딩 태클을 날렸다.

콰다당!

공은 골대를 벗어나 아웃됐고, 박상민과 케이힐이 한데 뭉쳐 그라운드를 뒹굴었다.

삐이이익!

유니온 시티 관중들과 선수들이 양팔을 위로 번쩍 들며 파울이라고 주장했고, 첼시 선수들이 손을 둥그렇게 움직이며 공을 먼저 건드린 거라고 강조했다.

주심이 오른손을 들어서 페널티 에어리어 한중간을 가리켰다.

“예에에-!”

첼시 선수들이 주심을 둘러싼 채로 억울함을 항변하는 동안, 몸을 일으킨 박상민을 동료들이 끌어안았다.

『박상민! 페널티킥을 만들어 냈습니다!』

『몸놀림이 정말 좋았거든요! 골을 만들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데뷔전에서 이런 활약 나쁘지 않아요! 오늘 박상민 선수! 유니온 시티 관중들과 마틴 감독에게 확실하게 눈도장을 찍습니다!』

『저런 선수가 왜 지금까지 소속 팀이 없었을까요!』

앵커의 질문에 해설자가 답을 하지 않아서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동안 박상민이 태클에 넘어지는 장면이 느린 그림으로 반복되었는데, 특히 골대 뒤에서 찍은 그림에 정확하게 발목이 먼저 걸리는 게 보였다.

“우우우-!”

야유가 퍼져 나오고, 주장 데이빗이 공을 세워 놓은 다음 뒷걸음질로 물러났다.

『동점 골을 넣을 절호의 기회입니다! 유니온 시티의 주장 데이빗이 공을 노려보고 있습니다.』

박상민의 모친은 고개를 모로 돌리고 얼굴을 손으로 가렸다. 손가락 사이로 화면을 볼 거면서 말이다.

유니온 시티?

처음 들어 보는 팀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반드시 저 골을 성공시켜서 절대 지지 않았으면, 아니 가능하다면 이겼으면 싶었다.

더 솔직히 말해도 된다면, 이 정도 활약했을 때쯤 슬쩍 아들이 교체 아웃 되었으면 싶기도 했다.

실수하는 것보다 그게 낫지 않겠나.

삐이이이익!

주심이 커다랗게 휘슬을 불었고, 데이빗이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공을 향해 움직였다.

몸 전체에 짜릿짜릿한 전기가 흐르는 것 같은 순간이 지나고,

퍼어엉! 화아악!

데이빗이 찬 공이 몸을 날린 골키퍼를 지나갔다.

철렁!

“이예에에에에에에-!”

솔직히 어디로 들어갔는지 못 봤다.

아니, 또 보고 싶지도 않다.

『골! 골입니다! 박상민이 얻어 낸 페널티킥을 주장 데이빗이 멋지게 넣었습니다! 오늘 유니온 시티! 승리의 파랑새는 박상민입니다!』

『살짝 위험했는데요, 강하게 잘 찼습니다.』

『유니온 시티 선수들이 우리 박상민 선수를 확실하게 챙겨 주고 있지 않습니까?』

『후반 분위기를 완전히 바꾸었고, 결정적인 장면 한 번 뒤에 다시 동점 골을 만들어 내는 페널티킥을 만들었으니까요. 굉장합니다. 정말 멋집니다!』

벤치에서 감독과 스태프, 서브 선수들이 환호하는 장면을 보여 준 TV가 ‘그래도 서운하지 않겠어?’ 하는 것처럼 느린 그림으로 골 장면을 다시 보여 주었다.

경기가 다시 시작되고 3분쯤 지나서였다.

터치라인 아웃된 틈에 첼시의 선수 교체가 있었다.

경기 내내 활약이 미미했던 아스필리쿠에타가 나가고, 그 자리에 퀴르 주마가 대신 들어온 거였다.

터치라인에 선 웨스 모건이 카알에게 기다랗게 공을 던져 주었다.

후반 정규 시간이 15분쯤 남았는데, 첼시가 좀 더 적극적으로 뛰었다.

하긴 첼시 입장에서야 승부차기로 가는 것은 어딘가 크게 손해 보는 느낌일 거다.

적극적으로 공격을 펼치는 첼시와 사기가 있는 대로 오른 유니온 시티가 중앙에서 계속 맞부딪쳤다.

이런 경기는 삐끗하는 순간 승부가 갈린다.

남은 시간이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어느 팀이든 골을 넣은 뒤에 악착같이 수비에 치중하면 만회하기가 정말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양 팀 선수들끼리 계속 부딪쳤다.

삐이익!

그리고 또다시 공이 터치라인 바깥으로 나갔을 때, 첼시가 2명의 선수를 동시에 교체했다.

하미레스를 대신해서 오스카가 들어갔고, 존 테리를 대신해서 모제스가 투입되었다.

남은 시간 동안 무언가 변화를 주겠다는 의미였다.

박상민의 부상을 치료하는 시간을 감안하더라도 추가 시간은 5분쯤이 적당했다.

그렇다면 실질적으로 남은 시간은 15분 정도인 거다.

무승부로 경기를 마치면 바로 페널티킥으로 승부를 가른다.

경기를 마치기 전에 골키퍼를 정지우로 교체할까, 아니면 끝까지 얀센에게 맡길까?

첼시의 마티치가 터치라인에서 길게 공을 던질 때였다.

마틴이 상체를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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