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이제 좀 제대로 보인다. (1)
전반전의 하이라이트를 보여 준 뒤, TV는 계속해서 ‘앙까라 메시! 앙까라 메시!’를 외치는 광고와 이미 보았던 광고들을 연달아 내보냈다.
평택에 있는 작은 빌라의 시계가 12시를 살짝 넘어서고서야 TV는 다시 후반전을 보여 주었다.
선수들이 이미 중앙선을 중심으로 나뉘어 서 있었다.
『유니온 시티에 선수 교체가 있는 것 같습니다. 공격수 맥슨이 안 보이는데요? 아! 우리 선수네요! 유니온 시티, 박상민 선수를 투입했습니다.』
화면에 입을 둥그렇게 만들고 숨을 훅훅 토해 내는 박상민의 얼굴이 커다랗게 잡혔다.
『유니온 시티도 4-2-3-1로 변화를 준 것으로 보입니다. 박상민 선수는 데니, 꼼빠니와 함께 레믹의 바로 아래 공격형 미드필더 역할을 맡았다고 봐야겠네요. 지금 위치가? 네! 맞습니다. 확실히 그렇게 서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삐이이이익!
주심의 휘슬 소리가 들리고, 첼시의 파브레가스가 공을 옆으로 굴려 주었다.
박상민이 달려들었다가 뒤로 물러났다.
큰 실수를 하지는 않을지? 결정적인 순간을 놓쳐서 욕을 먹거나 비난받는 건 아닌지?
박상민의 모친은 가슴이 두근거려서 차마 화면을 보기 어려웠다.
『미드필드에서 공을 간직해 줄 선수가 필요했는데요, 박상민 선수가 그런 역할을 맡은 것으로 보입니다.』
『박상민 선수는 한동안 소속팀이 없었습니다. 이 경기가 새로운 출발이자 영국 리그 데뷔전이기도 합니다. 큰 경기라 상당한 부담을 안고 시작할 텐데요, 잘해 내기를 바랍니다.』
첼시는 중앙선을 중심으로 천천히 공을 주고받으며 유니온 시티 진영으로 넘어오고 있었다.
『포메이션을 바꾸면서 유니온 시티가 라인을 올렸네요. 첼시가 전반전과 다르게 쉽게 넘어서기는 어렵겠어요.』
『뒷공간이 뚫리면 더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죠. 하지만 전반처럼 계속 밀리기만 해서는 곤란하니까요. 후반에는 어떤 형태로든 승부수를 띄워야겠지요. 현재까지는 나쁘지 않아 보입니다.』
『첼시! 유니온 시티 진영에서 천천히 공을 돌리고 있습니다. 아자르! 마티치에게 패스! 마티치, 윌리안에게! 윌리안! 박상민 선수를 피해 공을 옆으로 돌립니다.』
『확실히 올라왔네요! 페널티 에어리어 앞까지 분명하게 라인을 올렸습니다. 후반은 골이 일찍 나올 수 있겠어요.』
앵커와 해설자의 설명이 끝난 직후였다.
퍼어어엉!
마티치가 유니온 시티의 오른쪽을 향해 공을 길게 넘겼다.
“우와아-!”
윌리안이 무섭게 달려들었는데 이번은 스웰던이 좀 더 빨랐다.
『스웰던이 걷어 낸 공이 윌리안의 발에 맞고 아웃됐습니다.』
『첼시는 계속해서 뒷공간을 노릴 겁니다. 조심해야 돼요.』
터치라인에 선 스웰던이 공을 높이 든 채로 동료들을 찾아 몸을 이리저리 틀었다.
데이빗과 박상민, 카알이 주변을 뛰어다녔는데, 첼시 선수들이 악착같이 따라붙어서 공을 받기가 쉽지 않았다.
휘이익!
틈을 보던 스웰던이 박상민에게 공을 던져 주었다.
투욱!
박상민이 곧바로 스웰던에게 공을 차 주고 중앙선 쪽으로 움직였다.
투우욱!
스웰던이 카알에게 공을 넘겼고, 카알은 달려드는 첼시 선수들을 피해 박상민에게 공을 패스했다.
터억!
박상민이 공을 잡자 단박에 파브레가스, 윌리안, 하미레스가 그를 둘러쌌다.
툭! 툭!
통뼈다. 그리고 힘이 장사다.
박상민은 첼시의 선수 2명을 등으로 막아서고, 터치라인에 붙어서 공을 지키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박상민, 세 명의 첼시 선수에게서 공을 지키고 있습니다.』
『패스를 받아 줄 선수가 없어요! 받아 줘야죠!』
『박상민! 아직은 공을 지켜 내고 있습니다!』
뒤에서 하미레스가 밀치는 바람에 상체가 훅 기울었는데도 박상민은 끝끝내 공을 지켜 내고 있었다.
투욱!
그러고는 근처로 달려온 데이빗에게 공을 차 주었다.
『박상민! 결국 공을 지켜 냈습니다!』
『나와 줘야죠! 이럴 때 주변에서 저렇게 서 있어서는 곤란합니다! 공을 받을 자리로 움직여 줘야 합니다.』
데이빗이 넘겨준 공을 카알이 곧바로 박상민에게 차 주었다.
콰아악!
하미레스가 어깨로 박상민의 어깨를 들이받았다.
“우-!”
심지어 손으로 팔을 잡아챘는데도 박상민은 꿋꿋하게 공을 지켜 냈다.
투욱!
『박상민! 공을 뒤로 돌렸습니다.』
『미드필드에서 저렇게 버텨 줄 선수가 있다는 게 중요합니다. 박상민 선수! 짧은 시간이지만 충분히 제 몫을 해내고 있습니다.』
후반이 시작되고 화면에 가장 많이 나온 유니온 시티 선수가 바로 박상민이었다.
『이렇게 되면 유니온 시티의 점유율이 상당히 올라갑니다. 보세요. 라인이 정비되지요. 공을 지켜 주는 선수가 있다는 건 이런 의미입니다. 자! 과연 첼시가 어떻게 대응할까요?』
수비수 라파엘에게까지 내려갔던 공이 다시 웨스 모건을 통해 데니에게 연결되었다.
정지우는 후반전 시작과 동시에 박상민을 줄곧 지켜보았다.
미드필드에서 숨통을 틔워 주는 역할이었는데 만족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분명하게 효과는 있었다.
지금처럼 확실하게 공을 소유해 주면 중앙 지역을 조금씩이나마 차지할 수 있고, 거기에서부터 공격이 시작될 수 있다.
투욱!
공은 계속해서 박상민에게로 넘어왔다가 다시 돌아가기를 반복했다.
첼시 선수들이 박상민에게서 공을 뺏으려 달려들곤 했는데 지금까지는 잘 지켜 내고 있었다.
그렇다고 첼시가 이대로 당하고만 있을 거라고 믿어선 곤란하다.
분명 박상민을 누를 대책을 세울 거고, 유니온 시티의 빈 곳을 한 방에 파고들어 골을 만들 계획을 세울 거였다.
분위기를 이어 가야 했고, 실마리를 풀어야 하는 시간이었다.
지금쯤은 레믹이든, 꼼빠니든 첼시의 골대를 향해 중거리 슈팅 하나쯤 날려 줘야 했다. 그렇게 해서 상대의 수비 라인이 함부로 올라오지 못하게 만들 필요가 있었다.
투욱! 툭!
공은 아직 뺏기지 않았다.
“우와!”
아자르가 공을 가로채기 위해 뛰어들었는데, 그의 발에 걸려서 튀어나온 공을 라파엘이 재빨리 잡아냈다.
유니온 시티가 수비 라인을 올린 덕분이었다.
꽉 막혔던 중앙 지역에 공이 지나갈 길을 뚫어 내는 역할, 그것이 후반전에 투입된 박상민의 임무였다.
일단 박상민까지는 공이 무사히 갔다가 뺏기지 않고 돌아온다.
정지우는 입술에 힘을 잔뜩 준 얼굴로 박상민을 보았다.
뺨을 한 대 갈겨 줄 걸 그랬나?
공을 지켜 내기는 하는데 아직은 시야가 좁아서 앞으로 뿌려 주지는 못하고 있었다.
긴장이 다 풀리지 않은 거였다.
그래서 공을 잡았을 때 멀리 있는 레믹이나 앞에서 기회를 노리는 꼼빠니를 제대로 살피지 못하는 거였다.
투욱!
박상민이 다시 뒤편에 있는 스웰던에게 공을 넘겨주었다.
반대편에 있는 데니가 좋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이번 역시 그를 확인하지 못했다.
그래서 후반 시작부터 지금까지 박상민은 자꾸만 공을 뒤로 돌리고 있었다.
스웰던이 데이빗에게 공을 차 주었다.
그런데 속도가 너무 느렸다.
파브레가스가 달려드는 순간이었다.
“우와- 아!”
데이빗이 몸을 날리다시피 걷어 낸 공이 높다랗게 떠서 중앙 지역으로 날아갔다.
와락! 와라락!
박상민은 공이 떨어지는 지점에서 등과 어깨로 첼시 선수 2명을 밀쳐 내며 버텼다.
휘이익! 휘익!
그리고 떨어지는 곳을 노리고 높다랗게 몸을 띄웠다.
분명 첼시의 선수 한 명이 동시에 떴다.
‘잡는다! 잡을 거다!’
이를 악물고 뛰어오른 박상민이 공을 받기 직전이었다.
퍼어억!
세상이 시커멓게 변하면서 별이 번쩍번쩍 보였다.
“우우-!”
삐이이익!
벤치에 있던 마틴과 박용근, 정지우를 비롯한 서브 선수들, 그리고 그 뒤에 있던 신준석과 이정렬의 가족들이 모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공을 따내기 위해 솟구쳤던 박상민이 하미레스의 팔꿈치에 얼굴을 얻어맞고 등으로 커다랗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동료들이 달려들었다.
그사이에 고개를 디밀었던 주심이 빠르게 유니온 시티를 향해 손짓했다.
TV 화면에 얼굴을 얻어맞는 장면이 느린 그림으로 나왔다.
박상민의 모친은 왈칵 쏟아진 눈물을 훔치며 힘겨운 얼굴로 TV를 바라보았다.
대신 얻어맞을 수 있는 거라면, 얼굴이 아예 무너지는 한이 있어도 그렇게 하고 싶었다.
고생만 하다가 겨우 간 아들이다.
그런 아들이 얼굴을 얻어맞고 바닥에 널브러져서 얼굴을 싸매고 있었다.
『아!』
앵커가 말을 잇지 못했다.
선수들 틈에서 손을 내린 박상민의 코 아래와 입가가 시뻘건 피로 흥건했기 때문이다.
『한눈에도 출혈이 심해 보이는데요. 큰 부상이 아니길 바랍니다.』
『겨우 숨통이 트인 유니온 시티도 그렇고, 박상민 선수 개인적으로도 큰 부상이 아니었으면 싶네요.』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고 있었지만, 박상민의 부친은 이불을 꽉 움켜쥐고 있었다.
팀 닥터가 코와 입 주변을 닦아 주고 나서야 박상민은 겨우 몸을 일으켰다.
응급처치가 끝났으니 밖으로 나가서 치료를 마쳐야 한다.
짝짝짝짝짝짝짝짝짝.
유니온 시티 관중들이 모두 일어나 그를 격려하는 의미로 박수를 쳐 주었다.
정지우는 박상민과 함께 나오는 팀 닥터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저 상태에서 마틴에게 검지를 돌리거나, 고개를 가로저으면 교체해야 한다는 뜻이다.
서 있는 박상민의 콧등을 이리저리 만진 팀 닥터가 유정호를 통해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그런 다음 마틴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경기를 계속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다행이다. 크게 다치지 않은 것과 그래서 경기를 계속할 수 있다는 것이.
유정호가 뭐라고 질문을 던지는 것 같은 직후였다.
박상민이 힐끔 정지우를 돌아보았다.
‘힘드냐?’
‘이제 좀 제대로 보인다.’
정지우가 픽 하고 웃었다.
확실히 박상민은 좀 더 편안해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화면에서 팀 닥터는 계속 박상민의 코밑을 닦아 냈다.
『일단 교체는 안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박상민이 쓰러졌던 지점에 공을 내려놓은 꼼빠니가 뒤로 물러서서 동료들을 향해 팔을 벌려 보였다.
『박상민 선수! 그라운드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닌 것 같네요. 팔꿈치에 맞은 것 같았는데 정말 다행입니다.』
박상민이 그라운드에 완전히 들어오고 나서야 꼼빠니는 세워 놓은 공을 향해 움직였다.
부상 때문인지 화면은 잠시 박상민의 얼굴을 커다랗게 잡아 주었다. 한쪽 코에 솜을 끼워 넣었는데 코언저리가 분명하게 부어 있었다.
투욱!
꼼빠니가 카알에게 차 준 공을 데이빗이 받아 다시 박상민에게 넘겨주었다.
와락!
하미레스가 그 틈을 노리고 빠르게 달려들었다.
공을 빼앗길 수밖에 없는 타이밍이었다.
“우- 와아!”
그런데 박상민은 공을 받는 방향 그대로 반 바퀴를 돌아 달려드는 하미레스를 벗겨 냈다.
짝짝짝짝짝짝짝!
유니온 시티 관중들이 멋진 플레이에 박수로 답했다.
부상을 치료하고 막 들어간 박상민이다. 그런데도 오히려 부상 이전보다 날렵한 동작으로 하미레스를 해결하고 공을 지켜 내고 있었다.
박수와 함성이 웸블리를 메울 때,
퍼어어엉!
박상민은 건너편에 있던 데니를 향해 길게 공을 날려 주었다.
혼자 있다시피 한 데니에게 정확하게 공이 날아갔다.
“우와아- 아!”
빠르게 날아간 것도 그렇지만, 살아 있는 것처럼 중간에서 멋지게 휘어 떨어지는 패스여서 벤치에서도 탄성이 터져 나왔다.
툭툭!
데니가 앞으로 치고 달리다가 꼼빠니에게 공을 넘겼다.
투우욱!
“우와아아아-!”
꼼빠니는 치고 달리는 박상민의 앞으로 공을 흘려주었다.
콰아악! 콰악!
첼시의 수비진은 당황한 게 분명했다. 그래서 박상민을 향해 거칠게 달려들었다.
하미레스와 이바노비치를 뿌리치고 앞으로 달려 나가는 박상민은 완전히 그라운드에 풀어놓은 미친 황소처럼 보였다.
콰다당!
손을 뻗었던 이바노비치가 오히려 커다랗게 넘어졌는데, 주심은 두 팔을 앞으로 뻗은 자세로 경기를 계속하라고 알려 주고 있었다.
투우욱!
박상민은 페널티 에어리어 앞 라인을 타고 가는 것처럼 공을 안쪽으로 밀어 주었다.
꼼빠니가 그대로 달려들었다.
케이힐과 존 테리가 엉덩이와 등을 들이대는 순간,
투욱!
꼼빠니는 오른쪽에서 뛰어드는 레믹의 앞으로 공을 차 주었다.
“우와아아아아-!”
퍼어어어엉! 화아아악!
레믹이 왼편 골대를 향해 슈팅을 날렸고, 거의 동시에 첼시의 골키퍼 쿠르투아가 몸을 날렸다.
터어억!
“이예에에-!”
슈퍼 세이브였다.
쿠르투아의 손에 걸린 공이 왼편 골대 앞으로 흘러나왔다.
와락! 와라락! 와락!
첼시의 존 테리와 케이힐, 유니온 시티의 꼼빠니와 박상민이 동시에 달려들었고, 그때 쿠르투아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투욱!
공은 꼼빠니가 먼저 건드렸다. 그러나 앞을 막은 케이힐의 발에 맞고 옆으로 튀어 올랐다.
와락! 터어억!
박상민은 가슴으로 공을 받았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케이힐과 존 테리가 달려들었다
골대 바로 앞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콰아악! 콰다당! 콰당!
세 선수가 뒤엉켜 첼시의 골대 안에 처박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