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그것도 나쁘지 않겠다! (3)
공을 차기 직전이었다.
바넷의 선수 두 명이 거칠게 달려들었다.
당연하게 공을 뺏을 수 있다고 여기는 눈치였다.
그래서 흘러나온 공을 잡겠다는 것처럼 그 뒤를 따라 또 한 명이 달려오고 있었다.
이정렬과 데이빗, 신준석이 공을 받아 주기 위해 뛰어오는 순간이었다.
콰악!
바넷 FC의 8번 선수가 어깨로 박상민을 들이받았다.
‘계속 당할 것 같아!’
콰아악!
박상민은 거칠게 어깨로 달려드는 선수를 들이받았다.
철퍼덕!
바넷 FC의 8번 선수가 그라운드에 요란스럽게 처박혔다.
보인다! 여유도 생겼다.
자신의 몸뚱이가 타고난 통뼈에 힘이 장사라는 것도 떠올랐다.
투욱!
박상민은 바넷 진영에서 달려온 이정렬에게 공을 넘겨주고 빠르게 안으로 달렸다.
“헤이!”
심지어 레믹에게 안으로 뛰라고 눈짓도 주었다.
투우욱!
이정렬은 스트라이커다. 그는 센스 있게 박상민이 달리는 앞을 향해 공을 넘겨주었다.
“우와- 아!”
그 2 대 1 패스 한 방에 바넷 미드필드가 단숨에 뚫렸다.
당연하게 수비수 둘이 박상민의 앞을 가로막았다.
툭!
또다시 2 대 1 패스다.
박상민은 옆을 달리던 레믹에게 공을 넘겨주었다.
이런 게 알면서도 당할 수밖에 없는 타이밍이란 거다.
투우욱!
레믹은 공을 받자마자 수비수 사이를 뚫고 박상민의 앞으로 공을 돌려주었다.
“우와아아-!”
수비수 한 명, 그리고 그 바로 뒤에 골키퍼가 전부였다.
박상민은 공을 잡으며 골대를 향해 몸을 틀었다.
완벽한 슈팅 찬스였다. 그래서 멋진 슈팅이 나올 줄 알았다.
바넷 FC의 수비수와 골키퍼, 지켜보던 유니온 시티의 선수와 스태프, 그리고 레드 블레이트를 가득 메운 관중들, 심지어 날카롭게 분석하던 정지우까지!
그래서 바넷의 수비수와 골키퍼는 박상민을 따라 왼쪽으로 몸을 틀었다.
‘내가 만만하지?’
투우욱!
그런데 박상민은 발뒤꿈치로 공을 툭 차서 뒤로 보냈다.
기가 막힐 정도로 환상적이고 창의적인 패스였다.
“예에에-!”
짧은 함성이 터져 나왔다.
저런 거 주워 먹는 데 레믹만 한 선수는 없다.
투욱!
그가 빠르게 달려들어 가볍게 공을 차 넣고는,
철렁!
“이예에에에에-!”
박상민을 향해 달려갔다.
두 놈이 머리를 움켜쥐고 소리를 질러 댔다.
동료들이 달려가 레믹만큼이나 박상민의 머리를 두드려 주었는데, 이번 골의 일정 부분이 그의 공이라는 것을 인정한다는 의미였다.
수비수 신준석은 정지우를 돌아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허리에 손을 올린 자세로 피식 웃고 있었는데, 마치 곧 벌어질 싸움을 기다리는 듯한 눈빛이었다.
저런 눈빛일 때는 팔꿈치로 맞았던 눈과 볼이 욱신거린다고 말해 봐야 본전도 안 나온다.
신준석은 달려가서 박상민과 레믹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잘했다. 진짜 잘했어!”
박상민은 제대로 적응한 것처럼 보였다.
집안이 원래 통뼈에 타고난 힘이 좋았기 때문에 빨리 적응할 줄은 알았다.
그러나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다.
그냥 뭐, 부럽고 부러운 일이었다.
삐이익!
중앙선에서 바넷 FC의 선공으로 경기가 시작되었다.
바넷 FC는 미드필드에서 빼앗긴 우위를 되찾으려는 것처럼 좀 더 거칠게 나왔다.
미드필드에서 양 팀 선수들이 치열하게 맞붙었을 때,
“헤이! Jun! Jun!”
라파엘이 수비 라인을 맞추라는 의미로 팔을 들어 보였다.
달라졌다.
유니온 선수들은 골을 넣기 이전과 분명하게 달라진 모습으로 치열하게 뛰고 있었다.
“헤이! 볼! 볼!”
박상민의 고함이 그라운드에 울려 퍼졌다.
놈은 뜨거운 사우나를 거쳐 온 놈처럼 후끈 달아오른 얼굴로 미드필드 지역을 휘저었다.
완전히 미친 말 한 마리를 그라운드에 풀어 놓은 꼴이었다.
달려드는 상대 선수를 보면 번들거리는 눈으로 어깨부터 디밀었는데,
콰아악! 콰다당!
놈과 부딪친 바넷 FC 선수들이 그라운드에 보기 좋게 나가떨어지곤 했다.
삐이이익!
휘슬을 날카롭게 분 주심이 박상민을 향해 양손을 아래로 내려 보였다.
이 정도까지만 하고, 그만 설치란 뜻인 거다.
미친놈처럼 들이받고 다니던 박상민의 파울로 바넷 FC가 프리킥을 얻었다.
중앙선과 페널티 에어리어의 딱 중간 지점이었다.
“준석아! 야!”
신준석이 뒤를 돌아보았을 때, 정지우가 손짓으로 바넷 FC의 10번 선수를 가리켰다.
고개를 끄덕인 신준석은 골대를 향해 뛰어오는 10번 선수의 옆에 달라붙었다.
‘젠장!’
그러지 않으려고 애쓰는데도 자꾸만 시선이 팔꿈치로 향했다.
“무둔바! 무둔바!”
정지우의 고함이 터진 직후였다.
삐이이익!
주심의 휘슬이 울렸고,
퍼어어엉!
바넷의 11번 선수가 골대를 향해 기다랗게 공을 날렸다.
와라락! 와락!
수비수와 공격수들이 뒤엉켜 골대로 뛰어들었고, 몇 명이 동시에 솟구쳤다.
신준석 역시 골대 앞으로 달렸다.
그러나 10번 선수에게 상의를 잡히고 말았다. 그래서 제대로 뛰어오르지 못했다.
휘이이익!
혼자서 떠오르다시피 한 10번 선수를 향해 공이 날아왔다.
이런 건 거의 골로 연결된다.
‘빌어먹을!’
신준석이 욕을 삼키는 순간이었다.
화아아악!
시커먼 그림자가 10번 선수와 신준석을 덮쳤다.
터어엉!
정지우였다.
높게 떠오른 정지우가 공을 쳐 냈다. 그러고는 10번 선수와 뒤엉킨 채로 신준석을 덮쳤다.
콰다당!
셋이 바닥에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퍼어억!
신준석은 10번 선수가 팔꿈치로 정지우의 옆구리를 치는 것을 분명하게 보았다.
이럴 필요까지 있을까?
삐이이익!
주심이 분 휘슬 소리를 들으며 신준석이 바닥에서 상체를 일으킬 때였다.
콰아악!
무둔바가 슬쩍 일어선 바넷 FC의 선수를 거칠게 밀었다.
“뭐야!”
바넷의 선수들이 무둔바를 에워싸자, 또 유니온 시티 선수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그들을 막았다.
삑! 삑! 삑!
주심의 휘슬도 먹히지 않았다.
“일부러 그런 거 아냐! 평가전에서 무슨 짓이야! 그따위로 골을 넣어서 뭐하려고!”
무둔바가 검지로 바넷의 10번 선수를 가리키며 으르렁거렸다.
그라운드에서 주저앉은 정지우는 아직도 옆구리를 잡고 있었다.
“괜찮냐?”
신준석은 정지우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자세를 낮췄다.
심하게 맞았다.
이런 게 잘못돼서 갈비뼈가 나갈 때도 있다.
“뭐가 그렇게 겁나?”
정지우가 있는 대로 인상을 구긴 얼굴로 신준석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골을 먹는 거보다 더 겁나는 게 있어?”
수비수가 가장 무서운 거?
골 먹는 거.
신준석은 뒤통수를 제대로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팀 닥터가 달려왔고, 주심이 바넷의 선수와 무둔바를 불러 주의를 주고 있었다.
“괜찮아요. 그냥 옆구리를 얻어맞은 거라 할 만해요.”
정지우가 옆구리를 움켜쥐고 몸을 일으킬 때, 주심이 무둔바를 향해 옐로카드를 번쩍 들었다.
“우우우!”
관중들이 야유를 퍼부었는데 이런 게 판정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너무 일방적이잖아! 내가 옆구리 맞은 건?”
정지우는 주심에게 다가가 오른손을 내밀며 대놓고 항의했다.
“이러지 마! 보복 행위는 원래 퇴장인데 그나마 옐로카드로 봐준 거야.”
“저쪽이 너무 거칠게 나오니까 그렇지!”
“Ji, 평가전답게 쉽게 쉽게 가자고.”
주심이 달래는 것처럼 말을 건네고는 무둔바의 등번호를 적은 옐로카드를 주머니에 넣었다.
정지우가 공을 골키퍼 에어리어 라인에 놓으면서 선수들이 자리를 찾았다.
투욱!
정지우는 대놓고 신준석에게 공을 차 주었다.
툭!
신준석이 데이빗에게, 데이빗이 카알에게, 카알이 다시 라파엘에게 공을 돌리는 동안이었다.
삐익! 삐이이익!
주심이 전반전 종료를 알리는 휘슬을 길게 불었다.
정지우는 다가오는 무둔바의 뒤통수를 툭 쳐 주었다.
“어째서 스웰던보다 더 거칠어지는 거 같지?”
“내가?”
무둔바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것처럼 웃었다.
박상민은 활력을 찾았고, 이정렬은 스트라이커로 자리 잡는데 아직 신준석이 문제였다.
“준석아!”
정지우는 걸어가면서 신준석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눈과 코언저리가 부어오른 신준석이 정지우를 바라보았다.
“많이 힘드냐?”
신준석은 답이 없었다.
그냥 통로를 향해 걷기만 했다.
영국 관중 한 명이 기차 화통을 삶아 먹은 것 같은 음성으로 소리를 버럭버럭 질러 댔다.
“아까 그놈을 아예 박살 내란다.”
정지우는 신준석의 뒤통수를 툭 쳐 주고 팔을 내렸다.
자그락, 자그락.
통로를 걸어 라커룸으로 들어갔다.
자리에 앉아 물을 마셨을 때였다.
“저 친구 위험한 거 아냐?”
데이빗이 슬쩍 눈으로 신준석을 가리키며 질문을 던졌다.
영어다. 그래서 한국에서 온 동기 3명은 알아듣지 못했다.
“리그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좀 필요한 모양이야.”
“거친 플레이에 주눅 든 거 같은데, 저 상태로 몇 경기 더 가면 못 견딜 거야.”
영어로 나누는 대화라 반대로 다른 동료들은 모두 알아듣고 있었다.
“교체 아웃까지 되면 위험해. 그러니까 경기 끝나고라도 다독여 줄 필요가 있어.”
“알았어. 고마워, 데이빗.”
정지우는 나직하게 숨을 내쉬며 물을 마셨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고 있지만, 신준석의 상태를 동료들이 모두 알고 있었다.
그때 마틴이 유정호와 함께 들어왔다.
정지우가 통역할 수 있음에도 그가 유정호와 함께 왔다는 건 분명하게 동기 셋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의미였다.
‘교체만 하지 맙시다.’
정지우는 마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평가전이다. 이럴 때 온전하게 기회를 주지 않으면 신준석은 정말 적응하기 어려워진다.
“후반전에는 그동안 연습했던 역습을 훈련한다. 데이빗.”
“얍!”
“미드필드 진영에서 역습 상황이 나오면 레믹이나 Lee에게 공이 넘어갈 수 있도록 리드해.”
“알았습니다.”
마틴의 지시를 유정호가 한국말로 빠르게 전해 주었다.
“수비 라인에서도 마찬가지다. 공을 잡으면 꼼빠니나 Sang에게 바로 연결하도록.”
수비수들이 고개를 끄덕인 다음이었다.
“이 경기를 끝으로 우리는 첼시와 커뮤니티 실드를 치러야 한다. 그러니 후반전에 확실하게 역습을 점검했으면 싶다. 다들 부상 조심하고.”
말을 마친 마틴이 유정호와 함께 라커룸을 나섰다.
일단 교체가 없다는 게 다행이었다.
정지우가 수건을 던져 놓고 장갑을 잡을 때였다.
“지우야.”
신준석이 나직하게 정지우를 불렀다.
“날 교체하지 않은 게 네 덕분인 거냐?”
“뭔 소리야?”
“그냥. 어쩐지 교체될 거 봐준 느낌이라서.”
정지우는 피식 웃으며 신준석을 향해 입을 열었다.
“유니온 시티는 챔피언십에서 13년을 있었어. 재정이 별로일 수밖에 없는 거지. 막말로 너랑 상민이, 정렬이 싸게 얻은 거고, 특히 수비 쪽이 약해서 지금은 한 명이 아쉬워.”
“괜히 듣기 좋은 소리 하는 거 아니지?”
“뭐가 이렇게 어려워? 너, 브라질 공격도 무실점으로 막았던 수비수 아냐? 거친 것만 가지고 이럴 네가 아닌데, 정말 뭐가 문제인 거야?”
“그냥.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자꾸 폼이 안 올라온다.”
정지우는 대꾸하지 않았다.
이 상태라면 슬럼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풀기 어려운 문제였다.
슬럼프는 훈련을 열심히 한다고 해서 벗어날 수 있는 게 아니고, 얼마가 지나야 풀릴지 누구도 알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띵동! 띵동! 띵동!
후반전 시작을 알리는 벨이 울렸다.
정지우를 비롯한 선수들이 모두 일어나 어깨를 두드리며 그라운드로 나섰다.
신준석에게는 외로운 싸움일 거였다.
그러나 누구도 당장 도움을 주기 어려운 자신과의 싸움이기도 했다.
자그락, 자그락.
통로를 지나 그라운드로 나서자 관중들이 함성과 박수로 선수들을 맞았다.
정지우는 골대로 향해서 수건을 던져 놓고 포스트와 포스트를 걸은 다음, 크로스바를 툭 쳤다.
“이예에에에-!”
골대와 친해져야 한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행동이 이제는 정지우의 트레이드마크가 돼 버렸다.
삐이이이익!
주심이 커다랗게 휘슬을 불었다.
투우욱!
데이빗이 앞에서 기다리던 레믹에게 공을 차 주며 경기가 시작되었다.
역시나 미드필드 진영에서 치열한 접전이 벌어졌다.
바넷 FC는 정규 리그에서 강등을 면해야 하는 팀처럼 악착같이 달려들었다.
몸싸움과 거친 태클이 이어졌고, 심판의 휘슬이 점점 날카롭게 울려 댔다.
4부 리그라고 해서 단 한 번도 공격하지 않는 건 아니다.
게다가 이 경기에서 이기면 프리미어 승격 팀을 잡는 거고, 져도 손해 볼 게 없는 바넷 FC인 거다.
미드필드에서 공을 잡은 바넷 FC는 때때로 수비를 포기한 것처럼 밀고 들어오곤 했다.
“라파엘!”
정지우가 악을 쓰며 수비를 지시했는데, 아직 몸을 날릴 만한 슈팅은 없었다.
후반이 30분쯤 지났을 때였다.
바넷 FC가 몰고 내려와 길게 날린 센터링을 정지우가 높게 떠서 가로챘다.
완벽한 역습 타이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