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저놈들 좀 챙겨줘라. (1)
훈련을 끝낸 정지우는 3명의 동기들과 샤워를 마치고 함께 주차장으로 향했다.
박용근은 차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바튼이 운전하는 밴은 바로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오늘은 뭐가 왔나?”
신준석이 뒷자리에 실려 있는 작은 상자와 주머니에 관심을 보였다.
FA컵 우승 이후로 쇄도하던 선물과 편지가 많이 줄었는데, 그렇더라도 아직 하루에 서너 개의 과자가 도착하고 있었다.
“보자.”
안을 뒤적이던 신준석이 엽서를 하나 꺼내 들었다.
그동안 제법 많은 팬레터를 받았는데 엽서는 처음이었다.
엽서를 읽던 신준석이 웃음을 터트렸다.
“뭔데?”
“이거 좀 봐.”
질문은 박상민이 던졌는데 신준석은 엽서를 운전석 옆에 앉은 정지우에게 넘겨주었다.
정지우는 신준석이 건네준 엽서에 시선을 주었다.
<정지우 오빠, 잘 지내시나요? 우리나라 대표팀은 이제 망했어요. 우리나라 대표팀을 살려 주세요. 국가대표팀에 돌아와 주시면 안 되나요? 월드컵 본선에 못 나가면 나는 울음이 나온단 말이에요. 정지우 오빠, 왜 국가대표팀을 관두셨어요? 이제 대한민국 대표팀은 어쩌란 말이에요? 돌아와 주세요. 나는 우리나라 대표팀이 본선에 나가는 꿈만 꿔요. 얼른 대표팀에 돌아와 주세요.>
삐뚤빼뚤했지만 꼭꼭 눌러쓴 글씨였다.
솔직히 무심코 받아 든 엽서였다.
그런데 글을 읽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다.
축구를 사랑하는 어린 소녀의 간절한 바람이 그대로 전해져서였다.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어른들의 욕심이 어린 소녀의 소망과 꿈을 망치고 있었다.
“감독님, 이거 한번 보세요.”
정지우는 상체를 뒤로 돌려 엽서를 박용근에게 건네주었다.
엽서를 읽고 난 박용근이 씁쓸하게 웃었다.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었다.
신윤희는 월급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동생 하나 챙기겠다는 마음과 유정호를 믿고 날아와 애꿎게 주방 일을 도맡고 있는 거였다.
그래서 식사를 마치고 나면 죄 달려들어 설거지를 도왔는데, 특히 유정호가 열심이었다.
소파에 앉아서 죄 홍삼을 입에 물었을 때였다.
“훈련을 마치고 마틴 감독에게서 너희의 영입 제안이 있었다. 구단주가 먼저 제시했다고 하더구나.”
박용근이 뜻밖의 이야기를 꺼내 들었다.
다른 말도 아니고 영입 제안이라고 했다.
평소 같으면 대화를 방해하지 않으려 식탁에서 책을 읽거나 일찍 올라갔을 신윤희가 쪼르르 달려와 소파 뒤에 섰다.
“말이 나왔던 거라서 아예 연봉에 대해서 내가 일방적으로 의논했다.”
어차피 박용근에게 전권을 위임했던 일이라 딱히 문제 될 것은 없었다.
박상민의 얼굴이 붉게 물들어 있었고, 소파의 등받이에 올린 신윤희의 손이 긴장으로 하얗게 변해 있었다.
일단 달려왔다.
연습생 신분이란 말도 들었다.
이렇게 있다가 허망하게 돌아갈지도 모른다.
그런데 영입을 의논했고, 연봉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단다.
이렇게 빨리 말이 나올 줄은, 성과가 있을 줄은 기대하지 못했었다.
“박상민.”
“예, 감독님.”
박용근은 박상민을 먼저 불렀다.
“우선 2년 계약이다. 1년 활약을 지켜보고 구단이 계약을 연장할 수 있다는 조건이 달렸다. 무적 선수라서 그 정도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예.”
대답을 하면서 박상민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평택의 낡은 빌라에서 박용근이 건네준 봉투를 어머니는 장롱 서랍 옷 밑에 묻어 두었다. 그러고는 건물 계단과 화장실을 치우며 버티고 있는 거다.
그 고된 몸으로 아버지의 병수발을 들면서 말이다.
많이 바라지 않는다.
축구할 수 있는 것이 어딘데?
그저 나이트클럽에서 일하며 벌었던 월 300만 원만 되면…….
“연봉은 2억이다. 선발과 승리 수당은 별도 받기로 했고, 계약 시에 계약금 20퍼센트, 나머지는 주급 형태로 받기로 했다. 세금이랑 이것저것 제하면 실수령액은 그 절반쯤 될 거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동안 박상민은 박용근의 말을 되새기는 것처럼 삽시간에 벌겋게 변한 눈만 껌벅였다.
그리고,
“고맙습…….”
분명 고맙다는 말을 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녀석은 바보처럼 울음을 터트려서 뒷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잘됐다, 상민아. 정말 잘됐다. 고생했어.”
정지우가 박상민의 어깨를 안으며 옆에 두었던 운동복 상의로 머리를 덮어 주었다. 동기와 유정호, 신윤희가 보고 있는 앞에서 우는 얼굴을 가려 주고 싶어서였다.
신윤희는 훌쩍이며 두 손으로 얼굴을 쓸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봐 왔던 동생의 친구들이다.
성격, 속사정까지 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여서, 그녀는 박상민이 왜 저렇게 서럽게 우는지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이정렬.”
“예, 감독님.”
“너는 구단에서 이적료로 물고 늘어지는 모양이다. 그 부분은 여기 유 대표가 5억 안쪽에서 해결하는 것으로 하고, 일단 연봉 4억에 계약 기간부터 나머지 조건은 모두 상민이와 같다.”
“감사합니다, 감독님.”
이정렬의 입술 끝이 잘게 떨렸다.
그 역시 이렇게 빨리, 그리고 이렇게 많이 받을 줄은 몰랐다.
프리미어리그 소속 구단의 급여가 얼마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연봉 6천만 원에도 자릴 잡았다고 좋아하시던 부모님 생각이 떠올라서 이정렬은 떨리는 가슴을 가라앉히기 어려웠다.
“일단 너희 셋의 계약에서 연봉은 양측 합의로 비공개로 하기로 했다. 가족들끼리는 알더라도 다른 곳에서 연봉에 대해 짐작할 수 있는 말은 절대 하지 마라.”
그사이 마음을 진정시킨 박상민이 작게 숨을 내쉬며 ‘예.’ 하고 답을 했다.
박용근이 힐끔 신준석을 보았다.
“너는 이적료가 없고, 포르투갈 리그에서 뛰었다는 경력을 인정받아서 연봉 5억. 아까도 말했지만 다른 조건은 다 같다.”
“감사합니다, 감독님.”
“고맙습니다, 감독님.”
신준석의 인사 뒤에 신윤희가 얼른 고개를 숙였다.
설마하니 이렇게까지 될 줄 몰랐다.
그래서 신윤희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바라보며 자꾸만 코를 훌쩍였다.
“계약은 정렬이의 이적 문제가 해결되면 한꺼번에 하기로 했다.”
박용근이 정지우를 슬쩍 보고 다시 말을 이었다.
“내일부터 리저브 팀 훈련이다. 난 너희가 서브로 남는 한이 있더라도 바로 1군에 포함되기를 바란다.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 지금처럼 방심하지 말고 열심히 해라.”
“예, 감독님.”
다 함께 답을 하고 난 다음이었다.
신윤희가 조용하게 2층으로 올라갔다.
서울은 새벽 5시쯤이겠지만, 이 소식을 바로 알릴 생각인 것처럼 보였다.
“상민아, 올라가서 전화드려. 지금 새벽 5시쯤일 테니까 어머니 일어나실 시간이잖아.”
“미안하다.”
“뭐가? 얼른 올라가. 가서 어머니께 전화드려.”
박상민의 시선을 받은 박용근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3명의 동기가 주춤거리며 2층으로 올라갔다.
“고맙다.”
“감독님께서 애쓰신 건데요.”
기쁜 소식을 알릴 곳 없는 제자와 이런 순간에도 맘 편히 웃지 못하는 스승이 비슷한 웃음을 주고받았다.
“내일부터 저놈들 좀 챙겨 줘라.”
“예, 감독님. 최선을 다할게요. 그런데 어차피 여긴 실력으로 평가받는 곳이라 금방 제자리 찾을 겁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 그렇더라도 너랑 달라서 저 녀석들은 어쩐지 자꾸 손이 가는 느낌이다.”
“제가 좀 실력이 되잖습니까?”
박용근이 너털웃음을 터트렸고, 정지우가 따라 웃었다.
“이 녀석이 왜 이렇게 갑자기 넉살이 늘었지?”
박용근이 팔을 뻗어 정지우의 목을 왼팔로 잡아당겼다.
느껴진다.
혹시나 부상을 염려해서 목을 졸라야 할 팔에 힘이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는 것을 말이다.
정지우는 전보다 훨씬 얇아진 박용근의 몸통을 꽉 끌어안았다.
“감독님! 함께 계셔서 정말 좋아요!”
“이 녀석이 이젠 징그러운 말도 잘하네!”
박용근이 왼팔로 잡아 둔 정지우의 머리를 오른손으로 쓸듯이 헝클어트렸다.
다음 날 아침.
7시가 아침 식사 시간이었는데 박용근과 정지우는 제대로 식사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신준석과 이정렬의 부친이 순서대로 전화를 걸어와서 연신 감사의 인사를 전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명의 부친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정지우를 바꿔 달라고 부탁했다.
“여보세요?”
[지우야! 내가 이 고마움, 평생 안 잊으마. 고맙다.]
“저는 한 거 없어요. 감독님이 애쓰셨지요.”
[안다. 너 그런 마음 내가 다 알아. 고맙다.]
두 양반은 통화 내용까지 거의 비슷했다.
전화를 마치고 막 식사를 하려던 참이었다.
띠리리리! 띠리리리! 띠리리리!
다시 벨이 울리자 박상민이 죄송한 얼굴로 박용근의 눈치를 살폈다.
틀림없이 박용근에게 전화하기 편한 시간을 물었을 테고, 3명 모두 공교롭게 아침 식사 전을 알려 준 것이 분명했다.
“여보세요? 아, 네. 어머님.”
박상민의 시선이 식탁을 향해 떨어진 다음이었다.
“아닙니다, 어머님. 상민이가 잘해 내서 이룬 겁니다.”
박용근이 박상민의 모친을 다독이는 것처럼 말을 건넸다.
“예. 잠시만 기다리세요.”
그리고 박용근은 전화기를 정지우에게 건넸다.
“여보세요?”
[지우야, 나다. 상민이 엄마.]
“예, 어머니. 안녕하셨어요?”
[고맙다.]
박상민의 모친은 목이 메는지 고맙다는 말 한마디를 전하고는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어머니, 상민이 여기서 잘하고 있어요. 준석이, 정렬이도 함께 있어서 서로 의지도 되구요. 그러니까 아무 걱정하지 마세요. 상민이 와서 제가 더 의지가 돼요. 잘 지낼 테니까 정말 염려하지 마세요.”
[고맙다, 지우야. 내가 이 고마움을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다.]
“어머니도 참. 왜 그런 말씀을 하세요.”
정지우가 5분쯤 다독이고서야 통화가 끝났다.
아무튼, 식사가 15분 정도 늦어졌다.
“얼른 먹자.”
박용근을 시작으로 다들 밥을 먹기 시작했다.
워낙 일찍 먹는 식사라 15분쯤 늦었다고 급할 것은 없었다.
“왜 그래?”
자꾸만 입에 힘을 준 얼굴로 밥을 못 먹는 박상민을 보며 정지우가 슬쩍 던진 질문이었다.
“고맙다, 지우야.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 사시는 거 걱정 안 하게 해 준 거. 내가 절대 안 잊을게.”
박상민이 코를 훌쩍이며 꺼낸 말이 식탁의 분위기를 숙연하게 가라앉혔다.
정지우는 박상민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에 픽 하고 웃었다.
“오늘부터 리저브 팀 훈련이다. 정신 바짝 차리고 1년 이내에 다른 팀에서 서로 데려가려고 탐내는 선수가 돼 주라. 그래서 구단주가 감독님 발목 붙잡고 늘어지게 해 줘.”
“그래.”
박상민이 고개를 끄덕인 다음이었다.
“우리 에이전시가 정호 형인 건 알지?”
무슨 소리를 하려고 그러나 하는 표정들로 식탁에 앉은 이들이 전부 정지우에게 시선을 돌렸다.
“대박 한번 쳐라. 그래야 윤희 누나 결혼하지? 지금 수당 가지고 어디 전셋집이나 얻겠냐?”
“지우야!”
신윤희의 반응이 웃겼다.
아침 식사 시간이 제법 길어졌다.
리저브 팀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몸을 푸는 동안, 정지우는 2층의 피트니스실로 향했다.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달리는 것도 러닝머신을 이용했다.
얀센과 기예르모는 정지우의 훈련을 보고 나서 느낀 바가 컸던 모양이었다.
운동 중간중간에 라텍스 밴드를 이용한 훈련과 다 아는 수비수와의 동선에 관해 질문을 던졌다.
“오후에 자체 평가전 한다는데?”
“경기 뛸 수 있겠어?”
“아무렴. 공을 코에 맞지는 않을 거 아냐?”
얀센이 아무렇지도 않은 척 답을 했지만, 골키퍼라고 해서 얼굴에 공을 맞지 말라는 법은 없는 거였다.
말리고 싶기도 했는데 무엇보다 팀 닥터가 허락한 일이고, 다음으로 빨리 훈련하고 싶어 하는 선수의 심정을 이해하고 있어서 다른 말을 하지는 않았다.
“무둔바! 우리 와이프도 초대해 줄 수 있어?”
“오우! 그렇다면 내가 오늘 가서 바로 알려 줄게.”
얀센의 질문에 무둔바가 기쁜 얼굴로 답을 했다.
저놈이 혹시 집에 금송아지 같은 걸 숨겨 놔서 자랑하고 싶은 건가?
정지우의 시선 앞에서 무둔바는 묵직한 덤밸을 연신 들어 올리고 있었다.
점심을 먹은 후에, 잠시 휴식을 취한 선수들이 그라운드로 모였다.
박용근이 호명하는 대로 선수들이 노란 조끼와 파란색 조끼를 차례로 받아 들었다.
정지우는 모처럼 훈련을 포기하고 사이드라인에 서서 경기를 주시했다.
말도 통하지 않는 동기들이다.
게다가 바로 자체 평가전에 뛰어들었다.
분명 계산이 있어서 이 경기를 준비했겠지만, 동기 셋을 위해서 이번만큼은 박용근을 말리고 싶었다.
이런 평가전에서 너무 돋보이거나, 혹은 위축된 플레이를 펼치는 것으로도 셋 모두 따돌림을 당할 수 있어서였다.
중앙선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나뉘어 섰는데, 동기 셋은 노란색 조끼를 입은 팀에 있었다.
삐이이익!
박용근이 커다랗게 휘슬을 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