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목표가 아무래도 또 우승 같지? (2)
호떡집에 불난 것처럼 시끄럽던 한국 축구는 결국 월드컵 대표팀 감독으로 김문호를 선임했다.
경력이 부족하지만 1급 지도자 라이센스를 가지고 있었고, 외국 감독을 초빙할 때까지 월드컵 예선 두 게임을 맡는 조건이었다.
하루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박용근은 영국 시간 밤 10시, 한국 시간으로 새벽 7시에 김문호와 통화했다.
“자네도 참! 어쩌려고 독을 마셔?”
[그럼 어떻게 해? 우리 축구판에서 벌어진 일인데. 모두 손사래만 치고, 문광국은 분당에 건물 받아먹은 거로 조사받고 있고. 자격증 가진 이들 중 누구도 나서질 않는 상황이거든.]
박용근은 뭐라고 말을 하지 못했다.
[내가 총대 멨다가 욕먹고 물러나면 된다고 생각했어. 마지막에 국가대표 감독 한번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고. 그보다는 허양수 그 인간 대단하더라.]
“왜? 지난번에 물린 거 복수라도 하던가?”
[아니! 죽어도 자네에게는 고개 못 숙이겠다고 버티던데? 물러나면 물러났지, 그것만은 못하겠다고. 그 인간하고 내가 모르는 일이라도 있었어?]
“얼굴 두 번 본 게 전부다. 상황도 그렇고, 그런 부류가 원래 자기보다 못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절대 고개 못 숙이는 거라서 그런 게 아닐까?”
박용근이 어처구니없다는 투로 웃자 김문호가 비슷하게 따라 웃었다.
[박 감독, 나 이거 절대 욕심나서 하는 거 아냐.]
“알아.”
[다들 피하는 자리여서, 그 바람에 한국 축구가 더는 국제적 망신거리가 되는 게 싫어서 내가 총대 멨다는 거. 자네만은 알아줬으면 싶다.]
“알았어. 혹시라도 도움 될 게 있으면 연락해. 자료라도 좀 챙겨 볼 테니까.”
[나머지는 천천히 전화로 의논하고. 당분간은 이 시간에 전화하는 거로 하세.]
“기운 내고.”
통화는 끝났다.
그런데도 박용근은 통화의 여운을 털어 내지 못해 두 손으로 얼굴을 쓸었다.
리저브 팀은 1군 팀에 비해 한 달 이상 일찍 훈련을 시작한다.
1군에서 폼이 떨어진 선수, 부상에서 회복했거나 서브로 오래 있어서 경기 감각이 필요한 선수들이 주로 리저브 팀에 내려와 경기를 하곤 했다.
그 외에도 유니온 시티는 유소년 팀에서 재능이 있다고 판단된 선수들을 리저브 팀에 올려서 능력을 시험하기도 했는데, 이번 시즌 리저브 팀 소속 선수는 전부 22명이었다.
거기에 아직은 테스트 중인 한국인 선수 3명을 포함하면 전체가 25명이 된다.
전임 리저브 팀 감독이 기술 위원으로 옮겨 갔고, 새로운 감독인 박용근이 선수들과 인사를 나눴다.
리저브 팀이라고 건성으로 넘어갈 거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마틴 감독부터 구단 스태프 전체가 참석했고, 박용근을 소개하는 것을 마틴이 직접 나섰을 정도로 구단에서 중요한 행사이기도 했다.
팀 스크립터 클락이 박용근의 계획을 컴퓨터에 담아서 그가 설명하는 뒤편에 띄워 주었다.
“질문 있나?”
기본적인 설명을 마친 박용근이 선수들을 둘러보았다.
모두 기회를 잡기 위해 기다리는 선수들이었지만, 아직은 훈련이 시작되지 않아서 당장 나서는 선수는 없었다.
“오늘은 몸을 푸는 수준에서 훈련을 마치고 내일부터 오전에는 전술 훈련, 오후에는 개인 훈련의 방식으로 진행하겠다.”
박용근의 설명이 끝나자 스태프들과 임원들이 가볍게 손뼉을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지우의 하루는 변함이 없었다.
리저브 팀의 인사가 있는 동안에도 2층에서 얀센, 기예르모, 무둔바와 함께 기구를 이용해 운동했다.
“Ji, 시즌 시작하기 전에 초대하고 싶다고 했는데 시간이 안 돼?”
세트를 끝낸 무둔바가 굵직한 음성으로 말을 건넸다.
“미안. 다음 주에 시간을 맞춰 볼게. 그런데 내 동기들하고 함께 가도 되나?”
“무둔바! 나도 초대해 줄 수 있어?”
물을 마시는 정지우의 옆에서 기예르모가 냉큼 끼어들었다.
“뭔데?”
“무둔바가 Ji를 초대한다고 하는데?”
“우릴 빼고?”
전혀 그럴 것 같지 않던 얀센까지 끼어들었다.
어째 좀 번잡스러워지는 느낌인데?
정지우가 기구에 손을 걸며 힐끔 보았을 때, 무둔바는 오히려 무척이나 반기는 얼굴이었다.
부인과 애까지 있다는 저 덩치가 외로웠을 리는 없을 거 같고, 사람들이 많이 가면 안사람이 불편해할 텐데 그 속이야 알 길이 없었다.
점심시간에 식당이 제법 붐볐다.
리저브 팀 선수들이 죄다 몰려왔기 때문이었다.
얀센은 물론이고, 리저브 생활을 제법 한 무둔바가 절반 가까운 선수들과 인사를 나누며 그들과 함께 앉았다.
정지우는 한쪽에 몰려 있던 동기들에게 걸어가 신준석의 옆에 앉았다.
“분위기는 어땠어?”
“첫날은 어디든 비슷하잖아.”
“솔직히 난 좀 긴장된다.”
그나마 해외 리그에 있었던 신준석의 반응은 좀 나았다.
대신 한동안 운동을 멀리했던 박상민은 제대로 긴장한 얼굴이었다.
동기들의 시선을 받은 정지우는 픽 하고 웃고 말았다.
“왜?”
“잘은 몰라도 리저브 팀에서의 경쟁에서는 자신 가져도 될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뜻밖의 후한 평가에 신준석이 고개를 기울여 정지우를 살폈다.
“포르투갈 리그까지 경험하신 선수가 왜 이래?”
“평가가 후하니까 그렇지? 이왕 립서비스 하는 거 좀 더 알기 쉽게 설명이나 해 주라.”
포크를 입에 물고 건네는 신준석의 요청이었다.
해외 리그가 처음인 이정렬, 아예 선수 생활을 접었었던 박상민은 평점을 기다리는 선수처럼 진지한 얼굴이었다.
“한꺼번에 돌아보지 말고 무둔바와 얀센 쪽을 살펴봐. 물 마시는 척하면서.”
정지우의 말이 끝나자 세 동기가 각각 포크, 물 잔, 그리고 음식을 넣으며 주변을 살폈다.
“너희는 리저브 팀 경계 대상이야. 얀센과 무둔바가 그러던데? 너희 정말 테스트 받으러 온 거냐고? 그러니까 실력에 자신 가져도 돼. 대신 부탁하고 싶은 건 있다.”
세 동기가 궁금한 얼굴로 정지우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점심 자리에서 이런 말 하기는 미안한데 감독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잘 가르치셨는지, 그리고 우리 진짜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이번 시즌을 통해 세상에 알리고 싶다.”
정지우는 아예 대놓고 주변을 둘러본 후에 말을 이었다.
“우선은 리저브 팀 선수들에게, 그리고 다음은 1군 선수들에게, 마지막으로 전 세계에서 프리미어리그를 지켜보는 축구 팬들에게 알려 주고 싶다. 감독님의 가르침과 우리 실력을.”
“우리가 잘해 낼 수 있을까?”
“지금처럼만 해, 상민아. 공을 몸에 붙이고 절대 빼앗기지 않도록 지켜 내. 패스 타이밍이나 각도, 높이까지 나무랄 데가 없다. 아직 체력이 부족해서 아쉬운데, 그건 지금처럼 꾸준하게 하면 리그 개막전에 올라온다.”
정지우는 이정렬에게 고개를 돌렸다.
“스트라이커는 욕심이 있어야 돼. 누가 뭐라든 욕심나면 날려. 알았지?”
“이번에도 나는 빼는 거냐?”
“넌 좀 다르잖아. 대신 미드필더와 수비수를 연결하는 공간을 늘 파악해 둬. 누군가 너에게 공을 주면 바로 미드필더에게 넘길 수 있도록. 그게 아니라면 바로 킬러 패스를 뿌려도 좋고.”
“그래! 그런 말을 좀 해 줬어야지!”
넷이서 다시 포크를 움직였다.
“그리고 다음 주부터 강사를 구할 것 같으니까 영어를 공부하자. 너희 정도라면 챔피언십에서 데려가도 데려간다.”
“차라리 그 말이 오히려 마음 편하다.”
신준석이 대꾸와 동시에 음식을 가득 입에 넣었다.
오후 훈련은 중앙선을 중심으로 그라운드를 양쪽으로 나눠서 이뤄졌다.
절반은 정지우를 비롯해 그동안 훈련했던 인원이, 반대쪽은 새로 시작하는 리저브 팀 선수들의 차지였다.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고, 가볍게 공을 주고받는 훈련의 맞은편에서 정지우와 얀센, 기예르모, 동기 3명, 무둔바가 거친 호흡을 토해 내며 그동안 해 왔던 훈련을 소화했다.
삐이이익!
두 시간에 걸친 훈련이 끝났다.
리저브 팀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물러나자 정지우와 동기 3명, 그리고 무둔바와 골키퍼 코치가 늘 하던 훈련을 위해 움직였다.
“기예르모!”
정지우는 기예르모에게 눈짓을 해서 골대를 지키게 했다.
그라운드를 벗어난 리저브 팀 선수들이 무슨 훈련인가 하는 눈으로 삼삼오오 모여 지켜보는 앞이었다.
골키퍼 코치가 고개를 끄덕이자 박용근이 타이머를 들고 휘슬을 입에 물었다.
삐이이익! 투우욱!
휘슬이 울리는 것과 동시에 골키퍼 코치가 공을 밀어 주었다.
퍼어어엉!
지금은 어시스턴트 두 명이 박상민을 마크하고 있었고, 이미 서로를 잘 아는 무둔바가 공이 넘어오기도 전에 이정렬을 막아 내려 거칠게 달려들고 있었다.
터억! 휘이이익!
가슴으로 공을 받아 낸 박상민이 붙잡고 매달리는 어시스턴트를 뿌리치고 공을 향해 달려들었다.
퍼어어엉!
“오우-!”
박상민의 패스를 본 리저브 선수들이 탄성을 터트렸다.
쭉 뻗어 가던 공이 중간부터 살아 있는 것처럼 휘어졌기 때문이었다.
콰아악!
무둔바를 등으로 버티던 이정렬이 순간적인 움직임으로 몸을 틀며 공을 향해 뛰었다.
터어어엉!
정말이지 굉장한 헤더였다.
무둔바를 뿌리치고, 순간적으로 몸을 틀었으며, 그 동작에서 몸을 앞으로 날려 다이빙하는 동작으로 공을 날렸다.
화아아악!
기예르모가 몸을 날렸지만,
철렁!
공은 곧바로 골대 구석을 파고들어 그물을 흔들었다.
“와우-!”
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
그라운드 주변에서 탄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삐이이익! 투우욱!
그런 것에 전혀 관심 없다는 것처럼 박용근은 휘슬을 불었고, 신준석은 박상민을 향해 패스를 뿌려 주었다.
그사이 기예르모의 뒤편에서 얀센이 공을 넘겨주었고, 정지우가 받아 골키퍼 코치에게 차 주었다.
터어어엉!
“오우-!”
이정렬의 멋진 슈팅에 또다시 탄성과 박수가 울려 나왔다.
리저브 팀의 훈련에 맞춰 레드 블레이트를 찾았던 쥬피터가 상체를 세우고 그라운드에서 펼쳐지는 훈련을 보고 있었다.
“저 훈련이 보고서에 있던 역습과 관련된 건가?”
“그렇습니다. 골키퍼 코치가 공을 넘겨준 순간부터 슈팅까지가 4초 정도 걸립니다. 새로운 리저브 팀 감독은 6초 이내에 슈팅을 마무리할 수 있는 역습 능력을 원합니다.”
“이보게, 마틴. 정말 리그 경기에서 저런 타이밍으로 골을 넣을 수 있을까?”
마틴은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 보시는 게 4초입니다. 여기에서 2초가량을 더 끌어도 슈팅 성공률은 90퍼센트에 이릅니다. 물론 박 감독의 보고서에 따르면 말입니다.”
그때 이정렬이 논스톱 슈팅을 날렸는데 쥬피터는 저도 모르게 상체를 뒤로 확 젖혔다.
그가 그렇게 놀랄 만큼 멋진 슈팅이었다.
“미안하네. 그래서 리그 경기에서 저런 환상적인 장면을 과연 우리 팀 선수들이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보나?”
마틴과 대화를 나누면서도 쥬피터의 시선은 자꾸만 그라운드로 향하고 있었다. 한 장면도 놓치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그래서 이번 시즌은 1군과 리저브 팀이 함께 훈련할 생각입니다.”
“오우!”
박상민이 어시스턴트 둘을 멋지게 뚫고 공을 날리자 쥬피터가 탄성을 터트렸다.
“그런데 저 세 명의 선수는 언제 계약하나?”
“구단의 판단이 설 때까지 기다리겠답니다.”
“무슨 그런 말을! 혹시 다른 팀으로 가려는 건……. 흠, 감독이 추천한 선수인데 내가 잠시 그걸 잊었네. 내일이라도 구단 이사회를 열어서 영입을 확정하기로 하지. 그런데 마틴.”
쥬피터가 마틴에게 온전히 시선을 주고 있었다.
“저 세 선수의 연봉 협상을 박 감독과 은밀하게 나눠 주겠나? 그리고 말이지.”
쥬피터의 시선이 그라운드로 향했다가 다시 돌아왔다.
“이왕이면 Ji와 함께 계약하는 게 더 보기 좋을 것 같은데?”
“박 감독과 의논해 보겠습니다.”
“그래 주게. 이왕이면 1군 훈련 전에 마무리했으면 싶군.”
“오늘 중으로 뜻을 전하겠습니다.”
원하는 답을 들은 쥬피터가 대놓고 그라운드로 시선을 돌렸다.
“환상적인 플레이군!”
마틴은 쥬피터가 주먹을 쥔 것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이 욕심 많은 영감이 전에 했던 말이 떠올라서였다.
‘나는 본능이 알려 줄 때가 있지! 저 선수는 잡아야 한다! 이번 시즌은 승부를 걸어야 한다라고 말이지. 그럴 때 정신 차려 보면 주먹을 꼭 쥐고 있더군.’
넋을 놓은 것처럼 그라운드를 바라보는 쥬피터를 보며, 마틴은 웃음을 삼켰다. 이렇게 욕심 많은 쥬피터에게 또다시 복 터지는 일이 생겼구나 싶어서였다.
마틴은 쥬피터를 따라 그라운드로 시선을 주었다.
그가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간에 박용근은 구단의 회장과 리저브 팀 선수들 앞에서 이 정도 수준은 되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었다.
그가 데려온 3명의 제자와 함께 말이다.
‘프리미어리그 우승이라!’
마틴은 어느새 주먹을 꼭 쥐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