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라운드의 지배자-123화 (123/262)

제4장. 목표가 아무래도 또 우승 같지? (1)

삐이이익!

휘슬이 울렸다.

투우우욱!

골키퍼 코치가 곧바로 신준석의 앞으로 공을 차 주었다.

와라락! 퍼어어엉!

공을 향해 달린 신준석이 기다랗게 앞으로 찼다.

그러나 박상민은 공을 잡지 못했다.

패스가 너무 정직하게 가는 바람에 유정호가 먼저 걷어 냈기 때문이었다.

삐이익! 투우욱!

두 번째 휘슬이 울린 순간에 골키퍼 코치가 다시 공을 차 주었다.

와라락! 퍼어어엉!

이번 공은 유정호를 넘길 의도가 분명해 보였다. 그러나 너무 길어서 박상민이 채 따라가지 못했다.

삐이이익!

박용근은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연달아 휘슬을 불었다.

투우우욱!

골키퍼 코치가 고지식할 정도로 같은 코스로 공을 차 주었다.

와라락! 퍼어어엉!

그래도 프로 선수다. 이번엔 신준석이 유정호를 살짝 넘기는 멋진 패스를 날려 주었다.

힘껏 달려간 박상민이 공을 잡았다.

퍼어엉!

그러고는 곧바로 이정렬을 향해 공을 차 주었다.

터억! 콰다당!

이정렬은 작은 덩치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무둔바가 어깨로 툭 밀자 그대로 바닥에 처박히고 말았다.

“그 정도는 여기서 절대 파울을 주지 않아!”

박용근이 커다랗게 고함을 지르고 다시 휘슬을 입에 물었다.

삐이이익!

골키퍼 코치가 건네준 공을 신준석이 차 주었고, 박상민이 넘겨주었다.

그러나 이정렬은 이번에도 슈팅을 날리지 못했다.

무둔바가 골대 앞의 각도를 정확하게 막아서고 있어서였다.

주춤주춤!

이정렬이 무둔바를 제치기 위해 페인트 모션을 펼치는 순간이었다.

삐이이익!

6초가 지나서 박용근이 다시 휘슬을 불었다.

공이 20개가 넘어가도록 이정렬은 하늘 높이 날아가는 슈팅 하나만 겨우 날렸다.

“헉헉! 헉헉!”

불쌍한 사람은 유정호였다.

한동안 운동과 떨어져 있던 사람이 느닷없이 박상민을 상대로 이리저리 뛰어다녀야 했으니 말이다.

삐익! 삐익! 삐이이익!

박용근이 휘슬을 길게 불어 훈련을 잠시 중단했다.

“유 대표! 어시스턴트와 교대해!

박용근의 지시에 유정호가 죽을 것 같은 얼굴로 벤치를 향해 달려 나왔다.

정지우는 공을 잡을 기회도 없었다.

그래서 훈련 내용과 동기들의 단점, 장점, 그리고 표정들을 살폈다.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3명 모두 분하고, 자존심 상하고, 놀라고, 당황한 얼굴이었다.

삐이익!

어시스턴트가 들어가자 박용근이 다시 휘슬을 불었다.

투우욱! 퍼어어엉!

박상민은 다시 공을 제대로 잡지 못했다.

아무래도 어시스턴트가 유정호보다 훨씬 빠르고 집요하게 달라붙었기 때문이다.

삐이익! 투우욱! 퍼어어엉!

50개쯤 공을 더 찬 뒤에 박용근은 휘슬을 불어 모두를 벤치로 불러들였다.

“골키퍼 코치와 어시스턴트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해 주겠나.”

유정호가 박용근의 말을 전하자 골키퍼 코치는 ‘흥미로운 훈련이었습니다. 덕분에 좋은 경험을 했습니다.’ 하는 답을 하고 어시스턴트와 골대 쪽으로 움직였다.

“유 대표, 무둔바에게 이정렬을 평가해 달라고 해 줘.”

“중심이 없고, 몸싸움을 피하려고 합니다.”

박용근의 요청에 무둔바가 서양인들 특유의 냉정한 평가를 곧바로 전해 주었다.

“지우야, 정렬이의 동작을 보며 장점이 있다면 뭐였을까?”

“순간 동작이 빨라서 수비수들이 따라잡기 어렵습니다.”

“그런데도 제대로 된 슈팅이 한 번도 안 나왔다.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냐?”

“공을 잡으려고 합니다. 바로 때릴 찬스가 꽤 있었는데, 정렬이는 꼭 공을 확보하려는 버릇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정렬이 이를 꽉 깨물며 시선을 떨궜다.

“상민이의 장점은?”

“체력이 좋아 보였습니다. 감각도 있어 보였구요.”

“단점을 지적한다면?”

“공을 받았을 때 반동이 너무 큽니다.”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 주겠냐?”

“상민이는 패스를 받은 직후에 공이 1미터 이상 몸에서 떨어질 때가 많습니다. 챔피언십에서도 그런 식으로 공을 받으면 절반 이상은 바로 뺏길 겁니다.”

박상민이 얼굴을 쓸어내리며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오늘은 이만하면 됐다. 무둔바에게 내가 훈련 도와줘서 고맙다고 전해 다오.”

“예, 감독님.”

정지우가 무둔바에게 말을 전하자 그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천만에. 나도 좋은 경험이 됐어.’ 하는 답을 했다.

“훈련 더 할 거냐?”

“아직 개인 훈련이 좀 남았습니다.”

“그래. 그럼 가서 훈련해라.”

“예.”

정지우는 무둔바와 골대로 움직였다.

“너희는 이제 가서 씻어라.”

“감독님, 저는 왜 안 물어보셨습니까?”

박용근의 지시가 내린 직후였다. 신준석이 궁금하고 억울한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넌 공을 받아서 바로 패스만 했다. 수비수로 그 정도면 나쁘지 않았다. 거기에서 더 뭘 찾아내겠냐?”

박용근은 두 번 생각할 것도 없다는 것처럼 바로 답을 주었다.

“너희가 아는 축구는 버려라. 영상에서도 봤듯이 핸드볼 경기나 농구처럼 빠르게 공수를 교대하고, 무둔바 같은 선수가 어깨로 들이받고 손으로 미는 것쯤 그러려니 하는 리그다.”

박용근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말을 전하고 있었다.

“거저먹을 자리에 너희를 불렀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내 힘으로 너희를 리저브 팀에 넣어 줄 수는 있을 것 같다만, 살아남는 걸 보장하는 건 오직 너희의 땀밖에 없다.”

골대 쪽에서 골키퍼 코치와 어시스턴트들이 공을 차는 소리와 정지우가 몸을 날렸다가 떨어지는 소리가 반복적으로 들려오고 있었다.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 그리고 그 도전이 이런 리그라는 것 자체가 엄청난 행운이다. 세계적인 선수가 돼 보고 싶다는 그 말을 기억해서 너희를 불렀던 거지, 설렁설렁해서 거저먹으라고 부른 건 아니었다.”

3명의 제자들이 입술에 힘을 꾹 준 채로 박용근의 말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리저브 팀에서 1군에 오르려고 벼르는 이곳 선수들 수준의 실력에, 그들보다 못한 노력에 지쳐 한다면.”

박용근이 매서운 눈으로 제자들을 둘러본 후에 무겁게 입을 열었다.

“내가 너희를 잘못 가르쳤거나, 아니면 너무 큰 기대를 했던 걸 거다. 오늘 훈련은 여기까지다.”

말을 마친 박용근이 뒤를 볼 것도 없다는 것처럼 라커룸을 향해 움직였다.

퍼어엉! 화아악! 터억! 털썩!

공을 막아 낸 정지우가 벌떡 일어나 자세를 잡는 것을 3명의 제자들이 멍하니 바라보았다.

퍼어엉! 화아악! 터억! 털썩!

또다시 벌떡 일어선 정지우의 몸에서 절대 골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각오와 독기가 뚝뚝 떨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고등학교 때 같았으면 부천 미친개가 오늘 꽤 왈왈거렸겠지?”

“왈왈거리기만 했겠냐? 아마 우리 셋 중 하나는 물리고 남았을 거다. 전국대회 생각 안 나냐?”

퍼어엉! 화아악! 터억! 털썩!

“지우 눈 좀 봐라. 목표가 아무래도 또 우승 같지?”

“그런 거 같다. 난 또 지우가 막아선 골대에 골을 넣을 때까지 죽어라고 뛰어야 할 건가 보다.”

이정렬이 고개를 저으며 무둔바를 바라보았다.

“뭔 놈의 인간이. 지우 말대로 정말 트럭이 와서 들이받는 것 같더라.”

“포르투갈 리그에도 그런 놈들 많았어. 몸뚱이가 돌덩이 같은 놈들.”

신준석과 이정렬의 대화가 이어지는 동안에도 박상민은 정지우만 바라보고 있었다.

“시간 아깝다. 훈련하자.”

그리고 그가 입을 열며 두 동기를 번갈아 보았다.

“우리 어머니, 지금 일 나가고 계실 거다. 잠깐 잊었는데 지금 생각났다. 내가 얼마나 그라운드에 서고 싶었는지. 앞으로 난 그것만 생각할란다. 그라운드의 미친개가 될 때까지.”

“젠장! 선수 뺏겨서 난 그라운드의 2번 개네.”

“별걸 다 순서를 정해.”

신준석과 이정렬이 박상민의 뒤를 따라 그라운드로 들어섰다.

한 시간쯤 더 훈련했다.

정지우가 시선을 돌린 곳에서 3명이 조금은 독기 오른 얼굴로 뜀틀을 뛰고, 고깔 사이를 누비고 있었다.

무둔바를 제치려 좀 더 악을 쓰는 3명의 동기와 그들에게 지지 않으려고 땀을 뻘뻘 흘리는 무둔바.

고맙다. 그리고 피식 웃음이 나왔다.

저런 동기들과 함께 훈련하는 거였다.

삐이이익!

길었던 하루 훈련이 끝났다.

“에고고!”

라커룸에서 신준석은 특유의 과장된 신음을 털어놓았다.

“빨리 씻지?”

“예예! 그렇지 않아도 얼른 씻을 참이었습니다.”

샤워실을 힐끔 본 신준석이 고개를 저어 댔다.

“왜?”

“솔직히 난 무둔바 옆에서 샤워할 자신이 없어. 조금만 있다가 들어갈게.”

정지우는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영국이라고 해서 시기와 질투가 없는 건 아니다.

“바튼, 문화가 달라서 그런 건데, 혹시 스태프 중에서 감독님께 불만이 있다는 말이 들리는 거 있어?”

“그런 말은 아직 못 들었고, 오히려 오늘 훈련했던 내용에 흥미롭다는 말을 하는 건 들었습니다.”

“나중에라도 문제가 보이면 내게 먼저 말을 해 줄래?”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런데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은데요? 마틴 감독이 워낙 존중하는 분위기라서요.”

영어로 나눈 대화라 유정호만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가장 뒤에서 파김치처럼 늘어져 있는 그가 당장 대화에 귀를 기울이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집에 도착하자 유정호가 휘청휘청 걸어가 소파에 축 늘어졌다.

“훈련을 좀 도와줬어요.”

무슨 일이냐는 신윤희에게 정지우가 변명처럼 전해 준 말이었다.

다음 날부터 독기 오른 훈련이 계속되었다.

하루에 한 시간씩, 체력이 거의 방전되었을 때 박용근은 신준석에서 박상민, 그리고 이정렬로 이어지는 패스와 슈팅 연습을 계속해서 시켰다.

“늦어!”

“박상민! 공을 받는 순간에 패스할 방향으로 흘렸어야지!”

“정렬아! 바로 쏴!”

그렇게 닷새가 지나고 나서였다.

퍼어엉!

신준석이 차 준 공을 박상민이 오른발로 툭 흘렸다.

제법 이력이 난 유정호가 달려드는 앞에서,

퍼어어엉!

박상민은 그를 제치고 골포스트 앞으로 휘어 떨어지는 멋진 패스를 날렸다.

그리고,

퍼어엉!

이정렬은 그라운드에 공이 떨어지기 직전에 몸이 붕 뜰 정도로 강력한 슈팅을 뿜어냈다.

눈 깜짝할 사이 공이 빨랫줄처럼 골대 끝을 향해 날아왔다.

화아아아악! 터억! 티잉!

정지우는 겨우 막았다.

슈팅이 얼마나 강력했는지, 쳐 낸다고 쳐 낸 공이 크로스바 끝을 맞고 골키퍼 에어리어 안에 떨어질 정도였다.

털썩!

바닥을 구른 정지우가 벌떡 일어났을 때,

“그래! 지금처럼! 5초가 안 걸렸다!”

박용근의 고함이 들렸고,

짝짝짝짝짝짝짝짝짝!

골키퍼 코치와 어시스트, 유정호가 손뼉을 치고 있었다.

정지우 역시 엄지를 치켜들 정도로 멋진 연결이었고, 환상적인 마무리였다.

2주가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게 훌쩍 지나 버렸다.

휴식 없는 운동이 얼마나 독이 되는지를 잘 아는 프로 선수들이다.

그래서 일주일에 하루는 반드시 쉬었다.

오전부터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끙끙대는 유정호를 위해 신윤희를 밀어내다시피 내보낸 정지우는 동료들과 함께 식사를 해결하며 하루를 보냈다.

그렇다고 나무늘보처럼 늘어져 하루를 보내지는 않았다.

쭉 둘러앉아 지난 경기와 앞으로 상대해야 할 팀들의 영상을 쉬는 내내 살피며 시간을 보냈다.

“5초 안에 저 라인을 뚫지 못하면 골을 넣기가 어렵다는 뜻인 거지?”

“무둔바 같은 선수를 힘으로 이겨 내는 것보다는 스피드가 유리하다고 판단하신 거 같아. 리저브 팀만이 아니라 다음 시즌 우리 팀 전체 목표가 5초 이내 슈팅으로 마무리하는 역습 같다.”

정지우의 말을 듣는 동기 셋의 눈빛이 확실히 달라져 있었다.

원래 재능과 실력이 있던 동기들이었다.

꺾였던 의지와 투지를 바로잡자 하루가 다르게 실력을 되찾고 있는 거다.

월요일에 레드 블레이트로 도착했을 때, 뜻밖에도 얀센과 기예르모가 라커룸에 있었다.

“벌써 훈련해도 되는 거야?”

“코에 마스크를 쓰긴 하지만 훈련에는 지장 없다는 진단을 받았지. 와 보니까 이 친구가 나와 있던데?”

“나는 일찍 돌아왔습니다.”

말을 건넨 기예르모가 정지우의 동료들을 살폈다.

“인사해. 리저브 팀에서 테스트 중인 선수들.”

이름을 알려 줄 때마다 돌아가면서 악수를 하는 것으로 인사가 끝났다.

다 함께 그라운드로 나가 몸을 풀었고, 다시 가볍게 뛰었다.

골키퍼 훈련은 필드 선수 훈련과 확실히 다르다.

얀센과 기예르모는 첫날이라 가볍게 몸을 푸는 수준이었는데, 정지우의 훈련을 도우면서 무척이나 놀라는 얼굴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신준석, 박상민, 이정렬로 이어지는 역습 훈련과 그들이 기본적으로 소화하는 엄청난 훈련량을 보면서는 아예 넋이 나간 얼굴이었다.

물론 무둔바도 빼놓을 수는 없어서, 심지어 얀센이 ‘시간도 별로 지나지 않았잖아? 그동안 무둔바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라며 감탄을 토해 낼 정도였다.

삐이익!

길었던 하루 훈련을 마치는 휘슬이었다.

“Ji! 저 선수들이 정말 리저브 팀 연습생이라는 거야?”

얀센이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동기 셋을 바라보았다.

정지우는 웃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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