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정말 돼가는 거 같다. (3)
“무둔바!”
박용근이 훈련 중간에 무둔바를 불렀다.
“이 친구 말이야. 왼발로 공을 받을 때 자꾸 주춤거리거든. 속도를 늦추지 말라고 전해 줘.”
한 번은 왼쪽, 그다음 번은 오른쪽에서 달리게 되기 때문에 두 번 중 한 번은 왼발로 공을 넘겨줘야 한다.
유정호가 빠르게 말을 건네주었다.
“수비수는 어느 발로 공을 받든 타이밍을 놓치면 안 돼. 고깔을 넘어트리는 한이 있어도 패스를 바로 넘겨 버릇해야 한다고 말해 주고.”
땀이 솟아나기 시작한 무둔바가 박용근과 유정호를 번갈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Thank you, Coach(고맙습니다, 감독님).”
그러고는 엉성하게 상체를 숙여 인사하고, 고깔 앞에서 기다리는 신준석을 향해 움직였다.
한 시간이 훌쩍 흘렀다.
다음은 정지우가 사용한 뜀틀을 가져가서 똑같이 세우고 4명이 그것을 넘는 훈련이었다.
띠이이이!
타이머가 울리자 박용근이 바라보는 앞에서 4명이 그걸 뛰어넘었다.
정지우는 라텍스 밴드를 몸에 걸고 골대 앞에서 좌우로 움직이며 다리 근력과 탄력, 그리고 순발력을 키웠다.
“헉헉! 헉헉!”
단순한 훈련일수록 멈추고 싶다는 유혹이 강해진다.
잠시 쉬었다가 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러다가 부상이 오지 않을까 하는 염려까지.
멈추고 싶은 이유는 백 가지도 넘는데 같은 것은 없었다.
“박상민! 쉬고 싶어!”
“아니요!”
박용근의 고함을 박상민이 다부지게 받았다.
그렇지만 그는 자꾸만 왼발이 먼저 뜀틀을 건너고, 오른발이 뒤를 따르고 있었다.
“무둔바!”
박용근이 뛰고 있는 무둔바를 다시 불렀다.
“허억! 허억!”
무릎에 팔을 걸쳤는데도 무둔바는 박용근과 머리 높이가 비슷했다.
“이 훈련 얼마나 했었어?”
“Ji와 함께했으니까… 일주일 됐습니다.”
박용근이 고개를 끄덕였다.
“피트니스할 때 코어 운동을 좀 더 하고, 내일부터 가능하다면 함께했으면 좋겠는데?”
“내가 부탁하고 싶은 일입니다, 코치.”
“알았어. 그럼 가서 뛰어!”
박용근이 손짓을 하자 무둔바가 혀를 쑥 내밀었다가 다시 뜀틀로 움직였다.
이어서 정지우는 골키퍼 코치와 공을 가지고 훈련했고, 동기들과 무둔바는 박용근이 세운 고깔과 뜀틀 사이를 계속해서 뛰었다.
삐이이익!
첫날 훈련이 그렇게 끝났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5명이 그라운드에 벌러덩 쓰러졌다.
“오늘은 잘 버티던데?”
“코치가 보고 있는 데다 새로 온 친구들이 하는 걸 보니까 뒤지기 싫더라구. Ji의 친구들이라면 굉장하겠구나 싶었어. 저들만 이기면 내가 좀 더 발전할 수 있을 것 같았고.”
그라운드에 누운 채 무둔바와 주고받은 대화였다.
샤워를 위해 라커룸에 들어섰을 때 박상민은 무척이나 지친 얼굴이었다.
“힘들지?”
시뻘겋게 올라왔던 열기가 시커먼 색으로 변해 있어서, 박상민은 누가 건드리기만 해도 금방 쓰러질 것 같았다.
“영국으로 올 때는 어떤 훈련이든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아까는 포기할 뻔했어. 솔직히 내가 잘할 수 있을지, 감독님과 너, 그리고 우리 어머니를 실망시키는 건 아닌지 겁난다.”
정지우는 박상민의 어깨를 툭툭 쳐 주고 샤워실로 향했다.
집으로 돌아온 뒤에 저녁을 먹은 3명이 바로 침실로 들어갔다.
“무슨 일 있었니?”
“왜요?”
“저녁도 제대로 못 먹고 올라가니까. 표정들도 그렇고.”
박용근이 없는 틈을 타서 신윤희가 던진 질문이었다.
“오늘부터 훈련했거든요. 앞으로 열흘 정도는 저럴걸요.”
“너도 했을 거 아냐?”
“예.”
“상민이야 그렇다고 쳐도, 우리 준석이랑 정렬이는 선수 생활하다가 바로 왔잖아.”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바라보았던 신윤희가 궁금한 얼굴로 정지우를 보았다.
“안 하던 방식의 체력 훈련이라 그럴 거예요. 이쪽은 몸싸움이 심하기도 하고, 리그마다 훈련 방식이 좀 다르거든요. 거기다 첫날이잖아요.”
답을 한 정지우는 소파로 움직였다.
봐야 하고, 보고 싶은 영상들이 아직 많았다.
다음 날도 일정은 비슷했다.
그리고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지난 이틀과 다르게 그날은 2층에서부터 설렁설렁한 것이 느껴졌다.
하루, 이틀, 그리고 고작 사흘째였다.
한마디 할까 했던 정지우는 고개를 저으며 운동에 집중했다. 프로 선수 생활을 했던 두 놈도 그렇지만, 운동을 못했던 한 놈에게 근육의 피로도가 가장 심한 날이라는 생각에서였다.
박용근이 마틴과 이야기를 나누느라 점심은 무둔바와 동기들끼리 먹었다.
“아! 이거 정말 힘든데?”
“그러게. 집중이 잘 안 되지?”
신준석과 이정렬이 주고받는 대화를 들으면서도 정지우는 묵묵하게 음식을 입에 넣었다.
“난 우리가 프리미어리그에서 먹힐까 싶다. 솔직히 한국 프로팀에서도 선두에 서지 못했던 난데…….”
말을 하던 이정렬이 미안한 표정으로 박상민을 보았다.
“괜찮아! 사실 나도 그게 더럽게 불안하니까. 거기에 너희는 프로팀이나 해외 리그에라도 있었지. 나야 나이트에서 일하다가 왔는데 오죽하겠냐?”
3명의 동기들이 정지우를 힐끔거렸다. 표정이 싸하게 굳어 있는 것이 확연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다른 뜻 없어. 평소에 안 하던 체력 훈련이라 지쳐서 그런 거야. 그리고 우리는 너랑 달라서…….”
“됐으니까 밥 먹어.”
정지우는 신준석이 건네는 말을 단칼에 잘라 버렸다.
어지간하면 말 안 하려고 했었다. 그래서 입을 다물고 있었던 거였다.
그런데 신준석이 변명처럼 건넨 말이 정지우의 속을 제대로 긁어 놓고 말았다.
피곤한 건 인정한다. 그렇다고 훈련을 설렁설렁한 것까지 참기는 어려웠다.
딸각.
정지우는 포크를 식판에 올려놓았다.
“야! 뭐 이런 거에 인상을 그렇게 써?”
신준석의 볼멘소리에 정지우는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면 너무 큰 기대를 하고 있어서 동기들끼리 편하게 주고받은 말에 예민하게 반응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실망스러운 감정 역시 속일 수 없었다.
어떻게 고작 사흘 만에, 그것도 첫날은 오후부터 훈련했는데 벌써 불평을 토하고 늘어질 수 있는 건지.
정지우는 아무 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눈치를 살핀 무둔바가 조용하게 식판을 들고 정지우의 뒤를 따랐는데, 솔직히 그를 보기가 부끄러운 심정이었다.
오후 훈련이 시작되었다.
정지우는 골키퍼 코치와 함께 골대로 움직였고, 무둔바와 동기 3명은 박용근의 앞에 섰다.
“무둔바!”
오늘 박용근은 무둔바를 먼저 불렀다.
“저쪽에 고깔 보이지? 뜀틀을 앞으로 한 번 넘고 고깔까지 옆으로 움직여. 그리고 공을 찬 뒤에 뒷걸음으로 물러나.”
박용근은 무둔바에게 동작을 보여 가며 설명을 해 주었다.
“여기에서 다시 왼쪽으로! 뜀틀 넘어서 공 차 주고, 고깔 사이를 이렇게 통과해서.”
박용근이 천천히 고깔을 지나가며 알려 주는 말을 유정호가 영어로 전해 주었다.
“마지막에 여기로! 이걸 8초 안에 해야 돼. 알겠어?”
유정호의 말을 전해 들은 무둔바가 ‘알겠습니다, 코치.’ 하고 답을 했다.
“이 훈련은 순발력을 길러 준다. 네가 가장 안 되는 동작들을 모아 놓은 거니까 10분당 2분씩 휴식하면서 5세트를 해. 자네가 공을 받아 주고.”
유정호와 무둔바를 보낸 박용근이 제자 셋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힘들지?”
“아닙니다.”
박용근이 픽 하고 웃으며 풀 죽은 제자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얼굴에 다 쓰여 있구만. 너희 중 누가 불평했다가 지우와 투닥거린 모양인데?”
허리 뒤로 손을 돌린 제자 셋은 고개를 떨구고 바닥만 바라보고 있었다.
“저길 봐라.”
박용근이 고개를 돌린 방향을 향해 제자들이 시선을 들었다.
“저 선수는 타고난 순발력이 부족하다.”
무둔바가 유정호를 앞에 두고 뜀틀을 겅중 뛰어넘고 있었다.
“그런데 프리미어리그에 가면 탄력까지 갖춘 저런 선수들을 힘으로 이겨 내야 하고.”
박용근이 다시 정지우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골키퍼 코치가 휙휙 던져 주는 공을 독기 잔뜩 오른 얼굴로 막아 내고 있었다.
“저런 골키퍼들이 막고 있는 골대에 공을 넣어야 한다.”
박용근이 시선을 돌리자 제자 셋의 고개가 다시 뚝 떨어졌다.
“박상민.”
“예.”
“축구가 재미있냐?”
박상민은 답을 하지 못했다.
“재미없겠지. 경기를 뛰어야 하는데, 숨이 턱에 차도록 그라운드를 누벼야 하는데, 지난 몇 년간 이런 훈련만 했으니.”
말을 마친 박용근이 이정렬에게 시선을 주었다.
“너는? 너는 축구가 재미있냐?”
이정렬 역시 답을 하지 못했다.
“프로팀에 있다고 해도 서브에 주로 있었으니까, 그게 재미있었을 리가 없겠지. 준석이 너는?”
박용근은 잠시 고개를 떨군 제자 셋을 바라보았다.
“너희 셋은 각자 뾰족하게 느껴지는 재능을 지니고 있었는데, 최근에는 그 뾰족하던 재능을 다 깎아 내서 이리저리 뭉툭해진 선수가 된 거 같다.”
정지우와 무둔바가 있는 쪽에서 거친 호흡과 공을 차는 소리, 그리고 몸을 날리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오고 있었다.
“너희는 고등학교에 다니는 선수가 아니라 프로 선수들이다. 축구에 인생을 건 놈들인데, 시키는 것만 그냥저냥 하겠다면 그건 나도 더 뭐라 하지 않겠다.”
박용근은 훈련할 생각이 없는 것처럼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무둔바란 선수가 저렇게 악착같이 뛰고 있는데, 내가 부른 제자들이 고작 사흘 훈련에 축 처진 눈을 하고 있는 꼴을 보는 것도 싫다.”
신준석이 힐끔 눈치를 살폈다가 얼른 시선을 떨궜다.
“열흘 정도 남았다. 그때부터 리저브 팀에 섞여 훈련하고, 다시 한 달 뒤부터 유니온 시티 1군 팀과 연습 경기를 시작할 거다.”
정지우와 무둔바의 좀 더 거친 호흡이 들려왔다.
“1군이다. 다음 시즌 프리미어리그에서 뛸 선수들. 리저브 팀에 속할 너희가 저기에 있는 무둔바를 뚫고, 정지우가 막고 있는 골대에 골을 넣어야 하는 거다.”
띠이이이!
무둔바가 있는 쪽에서 10분이 지났다는 알람이 들려왔다.
“당장 그런 얼굴로 훈련을 했다가는 부상만 생긴다. 조금 쉬자.”
박용근은 제자 셋을 데리고 벤치로 걸어가 앉았다.
정지우는 미친 사람처럼 손을 뻗어 가며 숨 가쁘게 날아드는 공을 막아 대고 있었고, 무둔바는 커다란 덩치를 겅중거리며 박용근이 지시한 동작을 반복하고 있었다.
또다시 10분이 흘렀고, 20분, 30분이 지났다.
그런데도 박용근은 아무런 말도 없이 그라운드에서 훈련하는 정지우와 무둔바만 바라보았다.
“감독님,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게으름 피우지 않겠습니다.”
눈치를 살피던 신준석이 입을 열었고, 박상민과 이정렬이 비슷한 말을 박용근에게 전했다.
“쉬라니까 뭘 잘못해? 어디 그럼 너희 실력을 한번 볼까?”
박용근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휘슬을 입에 물었다.
삐이익!
얼추 1시간쯤 지난 시간이었다.
휘슬 소리를 들은 정지우와 무둔바가 동작을 멈추고 박용근을 바라보았다.
“지우야! 훈련을 좀 도와줬으면 싶은데!”
정지우가 빠르게 박용근의 앞으로 다가왔다.
거친 호흡을 연신 내뱉고 있었는데, 그만큼 눈에 독기가 가득했다.
“여기 세 명이 슈팅을 날릴 거다. 골대를 지켜 줄 수 있겠냐?”
“예. 저쪽에서 막으면 되나요?”
“그래. 그리고 무둔바에게 페널티 에어리어에서 정렬이를 막으라고 지시해 줘. 공이 오기 전에 얼마든지 몸싸움을 해도 된다고 전해 주고.”
“알겠습니다.”
정지우가 빠르게 달려가서 무둔바에게 박용근의 지시를 전했다.
“유 대표! 중앙선 부근에서 여기 상민이 좀 마크해 줘. 공을 못 받게 하거나, 아니면 바로 패스하지 못하게 시간만 끌어 주면 돼! 뛸 수 있겠어?”
“해 보겠습니다!”
골키퍼 코치와 어시스턴트들이 흥미롭다는 얼굴로 벤치로 다가왔다.
“유 대표! 이분들께 공을 좀 건네달라고 해! 반대쪽 골대에서 준석이에게 패스하면 되는 거야!”
고깔과 뜀틀을 가져온 유정호가 박용근의 말을 전해 주자 세 사람이 흔쾌히 반대쪽 골대로 움직였다.
“저쪽에서 패스가 시작되면 시간을 잴 거다. 준석이는 드리블을 할 수 없다. 그러니 공이 오는 대로 상민에게 패스해야 하고.”
박용근은 이어 박상민을 보았다.
“상민이는 유 대표를 제치고 정렬이에게 패스해라. 당연히 정렬이 너는 무둔바를 뿌리치고 슈팅을 날려야 한다.”
“예.”
3명의 제자가 답을 한 직후였다.
“준석이에게 공이 건너가는 순간부터 6초 이내에 슈팅이 끝나야 한다. 6초가 지나면 내가 휘슬을 불 거고, 준석이가 새로 공을 받는다. 알았지?”
“예.”
이번 대답은 어쩐지 자신 없게 들렸다.
유정호가 훈련 내용을 골키퍼 코치와 어시스턴트에게 다시 설명했다.
한 명은 정지우가 있는 골대에서 공을 보내 주고, 중앙선 터치라인 바깥쪽에 또 한 명이 있다가 골키퍼 코치에게 공을 전달해 주기로 했다.
정지우가 골대의 양쪽을 오간 뒤에 점프해서 크로스바를 툭 치고는 중앙에 섰다.
박용근이 입에 휘슬을 물자 묘한 긴장과 기대, 그리고 흥분이 그라운드에 깔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