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라운드의 지배자-120화 (120/262)

제3장. 정말 돼가는 거 같다. (1)

체력 훈련과 기본적인 캐치볼 훈련을 한 다음 날은 본격적인 골키퍼 훈련이 잡혀 있었다.

물론 오전에 나가서 몸 풀고 그라운드를 달린 후, 근력 운동을 하는 것은 변함이 없다.

대신 점심을 먹은 뒤에는 골키퍼 코치와 두 명의 스태프가 달라붙어 훈련을 도와주었다.

축구공으로 시작해서 핸드볼 공, 마지막에는 테니스공으로 이어지는 훈련이 계속됐다.

멀리서 보면 완전 서커스의 한 장면 같았다.

휙휙휙휙휙휙휙!

어시스턴트 두 명이 번갈아 건네주는 공을 받아 든 골키퍼 코치가 기계적으로 정지우의 좌우 1미터 안쪽으로 던진다.

정말이지 눈이 홱홱 돌아갈 정도로 공이 날아오는데, 그걸 또 정지우는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막아 냈다.

구경하던 무둔바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20분 간격으로 숨 막히게 공을 막고 나서 5분간 휴식, 그렇게 3세트로 1시간을 마쳤다.

다음은 골대를 중심으로 20미터 라인에 공 30개를 놓았다.

그리고 양쪽에서 번갈아 골대를 향해 슈팅을 날리는 거였다.

퍼어엉! 화아악! 터억! 털썩!

퍼어엉! 화아악! 터어억! 털썩!

두 개를 연달아 막아 낸 다음이었다.

퍼어엉! 화야야약! 터억! 철렁!

정지우의 손에 걸린 공이 골대 안으로 들어갔다.

그 직후였다.

벌떡 일어선 정지우의 눈이 하얗게 번들거리고 있었다.

티이잉!

그 바람에 공을 차는 어시스턴트가 움찔해서 엉뚱한 곳으로 차고 말았다.

골키퍼 코치, 어시스턴트 두 명, 그리고 무둔바가 멍한 얼굴로 정지우를 바라보았다.

“왜?”

“잠깐이라도 쉬자.”

주변을 둘러본 정지우가 낮췄던 자세를 푼 다음이었다.

“이런 훈련에서 골이 들어갔다고 그렇게 흥분할 필요가 뭐가 있어?”

“내가 흥분했다고요?”

“눈빛이 사람 죽이고도 남겠다.”

골키퍼 코치가 웃으며 정지우의 등을 두드렸다.

“훈련이야, 훈련. 어시스턴트 기죽여서 좋을 것 없어.”

정지우가 픽 웃고는 골포스트의 양쪽을 움직이고, 다시 중앙에 돌아와 점프해서 크로스바를 건드렸다.

“시작하죠!”

“좋아!”

훈련이 이어졌다.

퍼어엉! 화아악! 터억! 털썩!

정지우는 정말이지 악착같이 막아 내고 있었다.

공을 막은 직후에 벌떡 일어나 다음 공을 향해 몸을 날렸는데, 온몸에서 독기가 뚝뚝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두고 봐! 반드시 보여 줄 테니까!

너희들이 어떤 지도자와 선수들을 내다 버린 건지!

정지우의 눈에 점점 더 독기가 올라왔고, 무둔바가 질린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박용근은 김문호와 둘이서 소주잔을 기울였다.

오늘의 종목은 돼지갈비였다.

숯 위에 걸쳐 놓은 철망에 먹기 좋게 잘라 놓은 고기들이 불을 피해 놓여 있었다.

“어떻게 하려고 그래?”

“별게 다 걱정이네. 자넨 애들 데리고 영국으로 가. 나머진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박용근이 픽 웃으며 고기를 집어 들었다.

뜨거운 탓에 입안에서 굴리는 것처럼 씹으면서도 그는 김문호를 바라보던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내가 언제 협회장에게 지랄해 보겠어? 미친개 성격 나왔을 때 한번 왈왈댄 거지. 자네가 싫다고 하더라, 그래서 나도 그만둘란다. 이거면 되지, 뭐가 또 있어?”

“참 속도 편하다.”

고기를 이리저리 뒤적인 김문호가 박용근을 흉내 내는 것처럼 웃었다.

“거 있잖아! 속은 더럽게 후련하더라고. 까불고 설치던 인간이 움찔하는 거 보는 것도 나쁘지 않던데? 자네가 봤으면 진짜 좋았을 텐데.”

김문호가 그때의 상황을 자세하게 설명하는 동안, 연신 킬킬거리면서 잔을 들었다.

한바탕 무용담이 지나간 다음이었다.

“박 감독.”

“왜?”

“지난번에 미안했어. 이번 일로 그거 까 줘.”

박용근이 무슨 소리냐는 투로 눈을 들었다.

“그때 말이야. 당장 내 목 보전하겠다고 자네 나가게 한 거. 이번에 미친 짓 한 거로 그거 까 줘.”

“미쳤다. 그때 자네가 축구 용품점 하자던 거 거절했던 건 나야!”

“아무튼, 까 주는 거다.”

시커멓게 그을린 데다 인상까지 곱지 않은 두 사람이었다.

그런 두 사람이 소주잔을 들고 떠들고 있는 거라서, 모르는 사람이 봐서는 딱 나이 든 놈팡이 둘이 모처럼 생긴 공돈으로 돼지갈비 먹고 있는 거였다.

“허양수, 그 인간이 얌전히 당하고만 있을 것 같지 않은데?”

“그래 봤자지. 축구 안 하면 그만인 건데, 뭘!”

김문호는 대수롭지 않다는 것처럼 말을 잘랐다.

“언제 출국해?”

“이틀 뒤에.”

“그렇게 빨리? 제수씨는?”

“두 달 정도 뒤에 들어오게 될 거 같은데? 꽃집 정리하려면 그 정도는 걸리지 않을까 싶어.”

“다른 건 몰라도 당분간 혼자 있는 거 하나는 부럽네. 전지훈련 때는 그렇게 집에 가고 싶더니, 나이 먹으니까 확실히 떨어져 있는 게 편해. 자네도 그렇지?”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잔을 비웠고, 고기를 먹었다.

“지우 그놈이 보물이다, 보물.”

김문호가 소주병을 들어 잔을 채워 주자 박용근이 얼른 병을 받아 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그 녀석에게 부담되는 건 아닌지 생각이 많았어.”

“어이구? 이제는 정말 내가 1번 개 해야 되는 거 아냐?”

가는 줄도 모르게 시간이 흘러갔다.

일주일이 번쩍 지나갔다.

프리미어 20개 팀이 확정되었고, 이번에 끝난 프리미어리그 우승팀은 첼시였다.

FA컵 우승팀과 프리미어리그 우승팀이 맞붙는 커뮤니티 실드의 날짜가 8월 2일, 그리고 프리미어리그 개막일은 8월 8일로 확정되었다.

커뮤니티 실드야 거의 친선전의 성격으로 변해 있어서 솔직히 중요한 경기는 아니었다.

훈련을 마친 정지우는 샤워를 한 후에 주차장으로 움직였다.

바튼이 낮에 박용근과 신준석, 박상민, 이정렬, 그리고 유정호, 마지막으로 신준석의 누나 신윤희를 픽업하러 다녀왔기 때문에, 집에 가서 반가운 얼굴들을 만날 생각에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바튼이 밴을 몰고 집으로 향했다.

“나는 골키퍼 안 하길 잘한 거 같습니다.”

“왜?”

“Ji의 훈련을 보고 깨달았습니다. 누군가 나에게 그런 훈련을 지시했다면 아마 도망갔겠구나 싶었습니다.”

바튼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과장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런데도 오늘 공항에 다녀오면서는 나도 다시 선수 생활을 해 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훈련은?”

“그걸 생각하면 안 하길 잘했구요.”

“뭐야? 하나만 택해야지.”

“그렇다는 겁니다. 그냥 훈련은 싫은데 선수 생활은 하고 싶은 거, 그런 마음입니다.”

제법 친해져서 바튼은 허물없이 정지우를 대하고 있었다.

“오늘 수고해 줘서 고마워.”

“나는 진심으로 Ji를 돕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힘들다고 느낀 적은 없었습니다. Ji의 의지대로 다가오는 시즌이 유니온의 전설로 남는다면, 난 그 한편에 이름 없는 영웅으로 기록될 겁니다.”

“이름 없는 영웅도 기록돼?”

“그럼 이름만이라도 남길 방법을 찾아볼까요?”

별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집에 도착했다.

정지우가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을 때 모두들 거실에 있었다.

“다녀오셨어요? 피곤하시죠?”

“그래, 훈련은 잘 마쳤냐? 어디 불편한 곳은 없고?”

“예.”

박용근에게 먼저 인사를 마친 다음이었다.

신준석과 이정렬, 박상민이 정지우에게 다가왔다.

“잘 왔다.”

“그래, 인마!”

신준석과 먼저 손을 잡았고, 이어서 이정렬, 박상민과 멋쩍은 얼굴로 인사를 나눴다.

반가웠다. 오는 길이 길게 느껴질 만큼 빨리 보고 싶었다.

그러나 어쩐지 서양 놈들이 하는 식으로 허그를 하기는 좀 낯간지러운 느낌이었다.

“지우 왔니?”

“누나!”

신윤희가 피곤을 못 이겨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정지우를 맞았다.

“방은요?”

“2층에 일단 잡았는데 괜찮을까?”

“누나만 괜찮다면 상관없어요.”

“고마워, 지우야. 배고프지?”

“아뇨. 저녁은 우리끼리 해 먹을 테니까 누나는 일단 쉬세요.”

“어떻게 그래?”

신윤희가 주방으로 움직이는 것을 정지우가 얼른 막았다.

“누나, 괜찮아요. 우리 다들 합숙하던 사이잖아요. 저녁은 비벼 먹으면 되니까 일단 쉬세요. 지금 무리하면 시차 못 이겨요. 저녁 먹고, 따듯한 물에 씻고, 일찍 자는 게 최고예요.”

“그래요, 윤희 씨. 오늘은 지우 말 들읍시다.”

유정호가 나서서 신윤희를 붙잡는 동안 정지우는 주방으로 움직였다.

“뭐해? 얼른 와서 도와줘.”

“알았어!”

“나도 좀 거들어 볼까?”

“감독님, 일 많아집니다.”

신준석의 대꾸를 들은 박용근이 ‘이 녀석이!’ 하며 녀석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커다란 프라이팬을 꺼내서 삼겹살을 굽는다.

기름이 자글자글 나온 상태에서 고기를 가위로 잘게 썬 다음, 거기에 밥을 먼저 넣어서 볶고, 다시 김치를 부으면 요리 끝이다.

전에 기름진 것이 먹고 싶을 때면 한 번씩 해 먹던 음식이었다.

박용근, 전은주와 함께했던 며칠이 푸근했다면, 동기들 3명이 합세한 지금은 어딘지 시끌벅적한 활력이 넘치는 느낌이었다.

“너 혼자 살더니 요리가 늘었다?”

“시끄러워! 밥 다 먹으면 설거지나 해!”

“예예! 불러 주셨는데 그 정도는 해얍지요!”

넉살 좋은 신준석.

“과일은 내가 깎을게. 난 그거 자신 있다.”

나이트클럽에서 일한 덕분에 과일을 예쁘게 깎는다는 박상민.

“서울은 지금 몇 시지? 전화 기다리실지 모르는데?”

효자인 척하는 이정렬.

그리고,

“형! 밥 좀 그만 흘려! 진짜!”

신윤희를 보느라 얼이 반쯤 빠진 유정호까지.

정지우의 음성이 평소보다 조금 더 커지고 높아졌는데, 누구도 탓하는 사람은 없었다.

두 번이나 밥을 더 비볐을 정도로 먹었다.

실제로 설거지는 신준석이, 그리고 과일은 박상민이 깎았고, 이정렬이 식탁과 뒷정리를 도왔다.

“참! 사모님께서 꼭 챙겨 가라고 하셔서 열 곽이나 사 왔다.”

그리고 푸짐하게 쌓인 홍삼 엑기스를 입에 물고 소파에 둘러앉았다.

“정렬이 너, 뒷일은 여기 유 대표에게 맡기는 거 맞지?”

“예, 감독님.”

“내일 하루는 쉬는 것으로 하자. 내가 내일 유니온 시티 감독님을 만나 뵙고, 훈련에 관해서 의논한 뒤에 구단의 방침에 따라 스케줄을 짜는 게 좋겠다.”

언젠가 합숙소에 둘러앉아서 하루를 정리하던 그날처럼 느껴졌다.

“너희 세 명은 당분간 훈련만 같이하는 거고, 그 실력을 놓고 리저브 팀에 입단할 수 있도록 할 참이다.”

시차와 오랜 비행의 피곤이 온몸에 덕지덕지 묻었는데도 박용근의 눈빛이 전에 없이 빛나고 있었다.

“프리미어리그다.”

그의 눈빛과 말투가 역시나 오랜 비행에 지친 제자 3명의 정신을 번쩍 깨워 놓는 것처럼 보였다.

“어설프게 할 생각이었으면 너희 세 명 부르지 않았다. 우리 여기서 다시 시작하자. 전국대회에서 우승컵을 들었던 것처럼 우리 프리미어리그 우승컵 한번 들어 보자.”

유정호가 슬쩍 눈치를 살피는 앞에서 박용근과 정지우, 그리고 3명의 제자들이 비슷한 모양새로 눈빛을 빛내고 있었다.

“보여 다오. 내가 너희를 어떻게 가르쳤는지. 정말은 너희가 어떤 실력을 지녔는지. 전국대회의 우승이 우연이나 행운이 아니었다는 것을 꼭 증명해 다오.”

박용근이 천천히 제자들을 돌아보았다.

“자신 있지?”

“예!”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답을 했다.

30분쯤 이야기를 나눈 뒤에 5명은 위층으로 올라갔다.

신윤희가 방 한 개, 그리고 신준석과 유정호가 한방, 이정렬과 박상민이 또 방 하나.

“감독님도 좀 주무셔야죠.”

“이제 정말 나이를 먹었나 보다. 아후! 비행이 정말 힘들다.”

말을 마친 박용근이 정지우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훈련은?”

“이제 몸이 조금 올라온 느낌입니다.”

박용근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이렇게 출발하마. 힘들더라도 이해해 다오.”

그러고는 그답지 않은 말을 던졌다.

“저 하나도 안 힘들어요. 오히려 힘이 나는데요.”

“그래. 그렇게 생각해 주면 고맙고.”

박용근이 길게 하품을 한 뒤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먼저 자마.”

“예. 편히 주무세요.”

박용근까지 방으로 들어가서 소파에 정지우 혼자 남았다.

정말 돼 가는 거 같다.

어떤 분에게 어떻게 배웠는지?

그래서 지금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르쳐 줄 준비가.

소파에 혼자 앉은 정지우가 위층과 박용근의 방을 둘러보고는 만족한 표정으로 씨익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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