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라운드의 지배자-110화 (110/262)

제8장. 내가 그만두라고 했었지! (1)

[온달진주] 아이고! 조동익 아찌! 혈압 올라가네. 김지훈 보내 줘야겠네.

[아미레] 그지 같은 시키들인 걸 구지 따질라 하요. ㅋㅋ 아, 취한다. ㅎㅎ 난 기사 통쾌하네요.

[냐아오옹] 아~ 조동익 씨~! 자꾸 그렇게 날로 먹다가는 크게 체해요~! 일본 기사 완전 속 시원함~!

[햇볕은쨍쨍] 미친 조동익-- 아, 정말 이제까지 니가 한 일을 생각해 봐. 뻔뻔한 얼굴 들이밀지 말고 그냥 조용히 찌그러져 있으시오.

[이지환영사술] 왘ㅋㅋㅋ 속 시원해 미치겠네. 일본 기자 대박 ㅋㅋㅋㅋ 너무 사이다라서 광대가 막 올라가요.

[...(-1)...] 조동익과 바퀴벌레들에게는 ‘레이드’를 뿌려야겠군(으흐흐흐흐흐흐흐~ 사악한 웃음!)

[세발로공차] 내가 낸 세금으로 삐까번쩍한 건물에서 돈 펑펑 쓰면서 고작 어머니 치료비를 안 줬단 말이냐! 에라이!

댓글 중에서 베스트를 차지한 글들의 느낌은 대강 이랬다.

그 외에는 대개 이번 기회에 쳐 죽일 놈들을 제대로 가려야 한다는 의견과 함께 조동익, 한승관의 이름을 바로 언급한 글들도 있었다.

런던 외곽에 있는 펍의 구석에서 장진모는 문제의 기사를 썼던 일본 기자와 마주 앉아 있었다.

탁자 위에는 반쯤 마신 생맥주 잔만 있을 뿐, 그 흔한 팝콘 하나 없었다.

꽤 늦은 시간이었다.

“후폭풍이 만만치 않은 모양이오.”

일본어 억양이 분명한 영어로 말을 건넨 기자가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장진모는 당연하지 않겠냐는 얼굴로 고개만 짧게 끄덕였다.

“덕분에 나야 굉장한 기사를 얻었는데, 장 기자님께 어떤 거로 갚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써 주신 기사 덕분에 협회가 조금이나마 바로잡힌다면 그것이 제가 받는 것입니다.”

“왜 직접 쓰시지 않구요?”

장진모가 쓰게 웃었다.

“혹시 압력이 심해서였습니까? 아! 언짢으셨다면 사과합니다. 장 기자님 말씀은 들었습니다. 내가 영국 축구만 15년째 담당하고 있는데, 미디어 담당관이 존경한다는 기자분은 처음이었거든요.”

“압력이라기보다는 내부적인 사정이 조금 있었습니다.”

“그렇군요.”

일본인 기자가 입맛을 다신 후에 다시 입을 열었다.

“정지우 선수, 정말 부럽습니다. 이쪽 기자들 사이에서는 신이 부여해 준 재능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입니다. 한국은 희한할 정도로 각 분야에서 세계적인 선수들이 나오는군요.”

“앞으로 정지우 선수를 많이 도와주십시오.”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제는 그를 취재하기 위해서라도 우리가 장 기자님께 부탁드려야 할 형편인데요. 받기만 할 수 없으니 저도 선물 하나를 드리겠습니다.”

장진모가 힐끔 시선을 든 앞에서 일본인 기자가 상체를 깊숙하게 숙여 왔다.

“나는 기자가 되고 15년을 계속 이곳에서만 있었습니다. 이 직업을 그만두게 되면 이곳에서 아예 축구 관련 일을 해야 먹고살 길이 있을 정도이지요.”

상체를 기울여서 한다는 소리가?

장진모가 의아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는 순간이었다.

“바르셀로나, 레알 마드리드, 파리 셍제르망의 세 곳 스카우트 팀이 모두 런던에 있습니다.”

설마? 혹시?

장진모의 얼굴을 본 일본인 기자가 부럽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정지우 선수 때문입니다. 스카우트 팀이 왔다는 것은 여차하면 이번에 아예 계약을 확정하고 돌아가겠다는 뜻이 됩니다. 어쩌면 축구계가 화들짝 놀랄 천문학적 금액이 제시될 수 있습니다.”

“확실합니까?”

“정지우 선수가 가계약 상태인 것을 알고 있고, 심지어 본계약을 인정한 상태에서 이적료를 지급할 계획까지 모두 세워 놓은 것으로 보입니다.”

상체를 세운 일본인 기자가 주변을 힐끔 둘러본 다음 다시 입을 열었다.

“유벤투스와 뮌헨은 스카우터들이 오늘 경기를 관전했고, 지금 런던에서 묵고 있습니다.”

“오!”

축구 바닥을 제대로 모르는 장진모였다.

굳이 아는 척할 이유도 없었지만, 그가 들어도 엄청난 팀들이 정지우를 데려가기 위해 달려든다는 말을 듣고 나니 탄성이 먼저 튀어나왔다.

“내일 아침을 함께 먹기로 하지요. 스카우트 팀 중에 가능한 이들을 한번 만나 봅시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상태에서 그들이 정지우를 스카우트하고 싶어 한다는 기사를 쓰세요. 지금 한국에서라면 제대로 먹힐 겁니다.”

“그냥 들었다는 말로만 기사를 쓸 수는 없잖습니까?”

일본인 기자가 빙그레 웃었다.

“이 바닥은 그렇게 씁니다. 계약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신 그런 기사가 나가면 정지우 선수의 주가가 분명하게 올라가지요. 한국 축구 팬들이 좋아할 기사가 될 겁니다.”

“제가 쓰는 방식과는 좀 다르군요.”

일본인 기자가 의외라는 표정으로 장진모를 보았다.

“전에 다른 한국 기자분 중에는 스카우트 팀이 올지도 모른다는 말을 했을 뿐인데, 그 밤에 계약 성사 단계라고 기사를 쓰는 분도 봤었는데요.”

“한국만 그런 건 아니지요.”

“그렇긴 합니다. 비난하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일본인 기자는 얼른 장진모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한 걸음 물러났다.

“일단 만나 보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그거야 오히려 제가 부탁할 일입니다.”

“그럼 그렇게 하시죠.”

두 사람은 다음 날의 약속을 정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경기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정지우는 저녁을 먹고 바로 잠에 빠져들었다.

전에도 경기 후에 일찍 잠자리에 들긴 했었다.

그래도 설마하니 FA컵을 우승하고도 그럴까 했던 박용근과 전은주는 유정호와 소파에 앉아서 웃고 말았다.

정지우는 물론이고, 박용근과 전은주까지 전화기를 모두 꺼 두었다.

한 번 울리기 시작하더니 아예 고장 난 전화기처럼 벨이 연달아 울리는 통에 견딜 방법이 없었고, 정지우의 숙면을 방해할까 염려되어서였다.

유정호는 묵음으로 처리해 두었는데, 화면에 연신 전화가 오고 있다는 불이 켜져 있었다.

셋이서 멍한 얼굴로 각자 결승전을 떠올리다가, 결국 세 사람도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은 평소와 다름없는 시간에 시작되었다.

아침 8시, 서울은 오후 5시인 시간이었다.

유정호까지 넷이 앉아서 밥을 먹을 때쯤 우승을 했다는 실감도 들었고, 웃으며 어제 경기에서 있었던 사소한 이야기들을 나눌 여유도 생겼다.

“난 또 네가 인사시킨 줄 알았었다.”

“저도 좀 놀라긴 했는데, 워낙 기복이나 변덕이 심한 선수라 종잡기가 어려워요.”

박용근이 고개를 끄덕였다.

따듯한 음식, 고마운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며 하는 식사가 정지우에게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느낌이었다.

“오늘은? 회복 훈련을 해야지?”

“예. 조금 후에 바튼이 이리 올 거예요.”

“일요일인데 쉬지도 못하고. 하여간 이곳이나 저곳이나 운동하는 사람들 주변은 힘들어.”

식사를 마쳤고, 정지우가 보약을 먹은 후에 다시 세 사람이 소파에 앉아 홍삼 봉지를 입에 물었다.

“감독님, 리그 끝나면 한국에 들어가실 거죠?”

“그래야지? 왜? 자네도 들어가려고?”

“예. 저도 다녀올까 해서요. 준석이도 좀 만나 볼까 하구요.”

박용근이 고개를 끄덕인 다음이었다.

전화기를 살핀 유정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김문호 감독님이신데요?”

그가 전화기를 들어서 번호를 재차 확인한 후에 박용근을 보았다.

“우리 전화기를 꺼 놓아서 그랬나? 받아 봐?”

유정호가 얼른 통화 버튼을 누른 후에 전화기를 귀에 가져갔다.

“여보세요? 아! 예, 감독님. 전화가 워낙 많이 와서요. 예. 예, 함께 계세요. 잠시만요.”

유정호는 ‘감독님 찾으시는데요.’ 하며 박용근에게 전화기를 건네주었다.

“여보세요?”

박용근은 무슨 일인가 하는 얼굴로 전화를 받았다.

우승 축하한다는 인사를 하자고 유정호에게까지 전화할 김문호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전화가 워낙 많이 와서 그랬어. 무슨 일이야?”

[박 감독, 여기 아주 난리 났다.]

“왜? 또 뭐?”

정지우가 경기를 마칠 때마다 워낙 피곤하게 반응하는 터라 박용근의 대꾸 역시 곱지 않았다.

[야, 이 친구야! 일본에서 기사가 올라왔는데 지우가 계약금 못 받아서 일본 간 거, 그렇게까지 했는데 결국 어머니 잃은 거, 자네가 항명하다가 불이익 받은 거, 이번 축구 교실 거부해서 자네가 그쪽에 감독으로 내정됐다는 기사까지 싹 떴다니까.]

박용근은 대꾸도 하지 못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듣고 있어. 그게 그러니까…….”

[그 기사가 우리나라 인터넷 기사로 번역돼서 뜨는 바람에 협회가 발칵 뒤집혔어. 거기다 어제 대표팀이 쿠웨이트에 패배한 것까지 겹쳐서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니까.]

“후우-!”

정지우와 전은주, 유정호가 무슨 일인가 하고 박용근의 안색을 살필 때였다.

[박 감독, 저기…….]

김문호가 말을 차마 건네지 못하고 말꼬리를 흐렸다.

“뭔데? 뭐가 또 있어?”

[점심때 조동익 부회장과 한승관이가 날 찾아왔더라고.]

“그래서?”

[자넬 만나고 싶은데 연락이 안 된다고.]

“뭐라는 거야? 날 왜 만나?”

[자네에게 국가대표팀을 맡아 달라고 할 모양이더라고.]

“니미……!”

욕을 뱉어 내던 박용근이 뒷말을 꿀꺽 삼켰다.

정지우나 전은주가 보는 앞에서 차마 더 흉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러나 김문호가 이런 말을 했다면 저쪽이 답을 기다릴 것 역시 분명한 일이었다.

“내가 탐날 일은 없을 테고.”

[뭔 소리야? 자네가 그쪽 리저브 팀 감독으로 내정됐다고 해서 여기 축구 팬들이 지금 난리인데!]

“김문호.”

박용근의 목소리가 완벽하게 으르렁대고 있어서 김문호는 답도 하지 못했다.

“지우로 방패막이할 생각인 거 너도 알고, 나도 아는 거야. 그런데 네가 그따위 변명을 입에 담으면 안 되는 거지.”

김문호는 여전히 대꾸가 없었다.

“그리고 모든 걸 참고 국가대표 간 아이를 뺑뺑이 돌려서 망쳐 놓으려고 했던 놈들이.”

박용근이 튀어나오려는 욕을 다시 꿀꺽 삼켰다.

“나 축구 바닥에서 친구라고 너 하나 남았다.”

[알았다, 알았어. 그렇게 딱 부러트릴게. 그렇더라도 내가 왜 이런 말 하는지 오해하는 거 같아서 그건 좀 서운하다.]

“쯧! 그래. 내가 좀 심했나 보다. 그동안 그 인간들이 했던 짓이 있어서 그랬던 거니까, 자네가 좀 이해해.”

[알았어. 하여간 서울에 올 때 좀 살피고 들어와. 여차하면 나한테 전화해 보고.]

통화를 끊은 박용근이 전화기를 유정호에게 돌려주었다.

이미 반쪽 통화 내용을 들어 버린 세 사람이 눈치를 살피는 상황이었다.

박용근은 김문호의 이야기를 그대로 전해 주었다.

정지우는 피식 웃었고, 전은주는 복잡한 표정이었으며, 유정호는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전은주는 분하고, 안쓰럽고, 뿌듯했으며, 한편으로 통쾌했다.

어린이 축구 교실까지 찾아와 악착같이 사람을 바보로 만들더니, 이제 와서 감독을 맡아 달라고 해?

“나쁜 인간들!”

전은주가 툭 뱉어 낸 말이 그녀의 심정을 완벽하게 대변해 주었다.

어색한 분위기였다.

“에이! 아침부터 기분 싹 잡치네! 혹시 너 국가대표 하고 싶었는데 내가 덜컥 막은 건 아니지?”

“제가요? 설마요!”

정지우의 반응이 워낙 가볍고 유쾌해서 그나마 분위기가 좀 풀렸다.

“야! 이 개새끼야!”

김문호가 악을 바락바락 써 댔다.

조동익이 옆에서 ‘이 새낀 또 왜 지랄인가?’ 하는 얼굴로 있는 한승관을 향해서였다.

“그러게 내가 그만두라고 했었지! 그걸 악착같이 쫓아와서 잘라 내라고 지랄, 지랄, 지랄병을 하더니! 내가 전화했다가 얼마나 욕을 먹은 줄 알아! 이 개만도 못한……! 으이그!”

퇴근 무렵에 다시 찾아온 조동익과 한승관 앞에서 김문호는 쌓였던 것이 폭발하고 말았다.

씩씩대는 김문호, 눈치를 살피는 조동익, 죽었다고 대가리를 처박고 있는 한승관, 이곳 사무실의 분위기 역시 죽여주는 수준이었다.

“꼴도 보기 싫어! 꺼져!”

“이봐, 김 감독.”

김문호가 아니꼬운 눈으로 조동익을 바라보았다.

“나 박용근이 쫓겨난 이후로 이 짓에서 마음 비웠다고 벌써 잘나신 그 옆자리 한 위원께 말씀드렸슴다, 예!”

김문호는 전에 없이 독이 올라 있었다.

“오늘 통화하다가 알았습니다. 아직 날 유일하게 친구라고 생각해 주는 놈 팔아먹고 살고 있었다는 것을요! 내가 이 짓 해서 얼마나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러는지. 후우!”

“사람이 살다 보면 실수할 때가 있잖은가?”

“그러게요. 내가 실수한 겁니다. 나도 그때 얼른 이 짓 때려치우고 마누라랑 축구공이라도 팔아먹고 살았어야 했는데, 하나밖에 없는 친구 놈을 팔아먹고 살았던 거지요. 이제부터라도 그 잘못 바로잡을랍니다.”

김문호가 고개를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가쇼. 퇴근해야 하니까.”

두 사람은 낡은 소파에서 꼼짝도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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