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세상에! 우리가 승리했어! (2)
결승전이다. 그것도 영국 축구의 성지라 불리는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펼쳐지는 FA컵 결승전.
한 골은 아무래도 조마조마했었다.
한 명이 부족한 상황에서 리버풀이란 강팀을 상대하는 경기여서 더 그랬다.
그런 상황에서 정규 시간을 거의 다 보낸 때에 레믹이 추가골을 만들어 낸 거였다.
한 골을 먹는다고 해도 한 골 차 우승을 담보하는 추가골이 터졌다.
거기에 여섯 경기 연속 무실점 기록을 보유한 정지우가 유니온 시티의 골대를 지키는 경기에서 말이다.
웸블리 스타디움은 광란과 비탄이 서로의 꼬리를 문 것 같은 모습으로 맞물려 있었다.
굳어진 얼굴로 고통을 참아 내는 리버풀 관중들 앞이었다.
하늘로 연신 여러 가지 색깔의 티셔츠와 체크무늬 셔츠가 날아다녔고, 웃통을 벗은 유니온 시티 관중들이 어깨를 걸치고 자리에서 펄쩍펄쩍 뛰었다.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유니온에는 두 사람이 살지!”
상의를 벗어 던진 남자들이 어깨를 걸치고 응원가를 부르는 동안, 주변에 있는 가족들과 연인들이 연신 상의를 허공으로 던져 댔다.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레드와 블레이트가 사이좋게 지냈지!”
장진모가 정신을 추스르기 위해 고개를 흔들어야 했을 정도로 웸블리에 울려 퍼지는 응원가는 엄청났다.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레드가 시합에 나가면 블레이트는 항상 이렇게 말했어!”
양 팀 선수들이 중앙선을 중심으로 모여들었는데, 선수들 간의 대화가 불가능할 정도로 응원가는 거세게 울려 나왔다.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Go, Go, Go my Red! Go, Go, Go my Red!”
응원가가 끝났을 때였다.
삐이익!
주심의 휘슬과 동시에 리버풀이 공을 돌리기 시작했다.
후반 추가 시간 역시 5분이었다.
이런 경기에서 추가 시간 5분은 끔찍한 느낌이었다.
만약 레믹이 추가골을 넣지 못했다면, 그래서 지친 유니온 시티 선수들의 걸음이 느려진 상태에서 5분이 주어졌다면, 이 경기가 어떻게 흘러갔을지 모른다.
몸을 던져 허벅지로, 가슴으로, 얼굴로 막아 줘서 만들어 낸 추가골이 추가 시간 5분을 이겨 낼 힘이 된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막말로 추가골이 아니라 1 대 1이 된 상황에서 추가 시간 5분을 받았다고 생각해 봐라.
분명 유니온 시티 선수들은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을 시간이었다.
레믹의 골 덕분에 유니온 시티 선수들은 아스널전 때와 같이 약을 처먹은 사자들처럼 그라운드를 누비고 있었다.
관중들은 현명하지만, 한편으로는 잔인했다.
쿵. 쿵. 쿵. 쿵. 쿵. 쿵. 쿵.
“나나나- 나! 나나나- 나! 헤이! 헤이! 헤- 이! 굿- 바이!”
두 팔을 이마 방향으로 높다랗게 뻗은 유니온 시티 관중들이 드디어 잘 가라는 의미의 응원가를 불러 댔다.
리버풀은 강팀이었고, 그들이 강팀이라고 불리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들은 마지막까지 한 골이라도 만회하고 보겠다는 강한 의지를 온몸으로 뿜어 대며 뛰고 달려들었다.
만약 실제로 한 골을 만회하면 반드시 비겨서 승부를 원점으로 돌리겠다고 달려들 팀이 바로 리버풀이었다.
투욱! 툭!
엄청난 유니온 시티 관중들의 응원을 뚫고 루카스가 밀어 준 공을 벤테케가 잡았다.
중앙으로 공을 띄워 봐야 중심에 선 무둔바를 이기지 못한다는 것을 눈치챈 것처럼 리버풀은 패스를 잘게 잘게 자르며 들어왔다.
벤테케가 루카스에게 다시 공을 넘겼다.
투욱!
루카스는 랄라나에게 넘겨주고 곧바로 골대를 향해 달려들었다.
투욱!
랄라나가 무둔바의 뒤로 공을 찔러 주었다. 몸이 굼뜬 무둔바의 약점을 제대로 파고든 패스였다.
정지우는 반걸음을 빠르게 앞으로 움직이며 자세를 낮췄다.
오른쪽 골포스트와의 거리는 대충 짐작했다.
퍼어어엉!
루카스가 디딘 왼발의 각도만 보았다.
바닥으로 깔린 공! 왼쪽?
정지우는 순간적으로 왼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그러나 루카스는 가랑이를 노렸던 모양이었다.
공이 정지우가 서 있던 오른쪽 옆으로 날아왔다.
몸이 완벽하게 기운 상태였다.
“이이익!”
정지우는 악착같이 발을 뻗어 냈다.
터엉!
발끝에 걸린 공이 튀어 나갔고, 머리에 맞히려고 점프한 루카스를 훌쩍 넘어갔다.
함성과 탄식이 교차하는 가운데 정지우는 얼른 몸을 일으켰다.
공이 바닥에 닿기도 전이었다.
퍼어엉!
수비수들의 마크를 피해 서 있던 벤테케가 그대로 슈팅을 날렸다.
워낙 가까웠고, 혼전 중이라 수비수들의 시선이 다른 곳에 있었으며, 공이 바운드되기 전에 그대로 날린 기습적인 슈팅이었다.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전은주, 감정을 표시하지 않으려 주먹을 움켜쥔 박용근, 한순간 그라운드를 향해 뛰어나오다시피 한 리버풀의 벤치, 거센 함성을 지르며 몸을 일으킨 리버풀 관중들, 짧은 비명을 지른 릴리, 메기, 데이지.
그들 모두 공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퍼어엉!’ 하는 슈팅 소리만 들었다.
그런 직후에 고양이처럼 몸을 날린 정지우만 보았다.
정말이지 눈 깜짝할 사이에, 기습적으로 날린 슈팅이어서 어떻게 공이 날아가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정지우는 허공에 높다랗게 몸을 띄우고 있었다.
터어어억!
정지우의 손에 튕긴 공이 골대를 훌쩍 넘어가 뒤로 떨어졌다.
털썩!
정지우가 바닥에 떨어져 두 바퀴를 구른 다음이었다.
“예에에에에에에-!”
관중들이 난동 수준으로 뛰는 장면이 나왔고, 화면이 잠시 흔들렸다. 누군가 카메라가 설치된 부스를 건드린 모양이었다.
리버풀의 밀너가 코너킥을 위해 빠르게 달려가는 동안, 정지우는 장갑을 낀 손을 마주치며 고함을 질러 댔다.
“얼마 안 남았어! 조금만 더 기운 내자!”
“으아아-!”
무둔바가 괴성을 지르며 정지우의 고함을 받았다.
“선수 놓치지 마! 집중해!”
추가 시간은 3분가량 남았다.
리버풀의 골키퍼 미놀레가 중앙선 조금 못 미친 곳까지 나와 있을 정도로 거센 공격이었다.
페널티 에어리어에 레믹까지 11명의 유니온 시티 선수 전부가 들어와 있었고, 그 틈에서 리버풀 선수 7명이 거칠게 몸을 부딪치거나 밀어 가며 골을 노렸다.
페널티 에어리어 바깥을 남은 리버풀 선수 3명이 빙 둘러싼 형태로 지키고 있었다.
퍼어엉!
골은 무섭다.
특히나 이렇게 악착같이 달려드는 팀에게 막판에 당하는 골은 더더욱 그렇다.
2 대 0이라고 해도 여기서 한 골을 먹으면 지금껏 쌓였던 피로가 한 방에 올라오고, 그게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 모른다.
공이 빠르게 골대 앞으로 날아왔다.
무둔바를 먼저 노리자는 계획인 게 분명했다.
4명의 거친 리버풀 선수들이 그를 대놓고 밀어 대며 점프를 방해했다.
휘이이익!
그리고 그 뒤에서 헨더슨이 높다랗게 떠올랐다.
정지우는 자세를 낮추고 양팔을 넓게 벌렸다.
어디를 노릴래? 어디?
헤더는 맞히는 선수가 의도했던 방향으로 올 확률이 50퍼센트가 채 안 된다.
점프한 상황이나 공이 날아오는 형태에 따라 공의 방향이 결정될 때가 많기 때문이었다.
터어어엉!
높게 떠오른 헨더슨의 성격만큼이나 거칠고 직선적인 헤더였다.
기교보다는 힘으로 승부하겠다는 의미였다.
공은 정지우의 얼굴을 맞히겠다는 것처럼 머리 위로 바로 날아왔다. 거리가 워낙 가까웠고, 잡는다는 것은 생각도 못할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휘이익! 터어엉!
배구에서 토스를 하는 것처럼 정지우가 공을 걷어 냈다.
워낙 강하고 빠른 헤더여서 뒤로 보내려 했다가 자칫 골을 먹을 수도 있었다. 정지우가 강하게 쳐 낸 공은 그래서 앞으로 튀어 나갔다.
와락! 와라락!
날아간 공을 향해 양 팀 선수들이 뒤엉켜 달려들었다.
골대 바로 앞에서 8명이 넘는 선수가 공에 달라붙었다.
4명은 죽으라고 슈팅을 날려 대고, 나머지는 악착같이 막아 댄다. 골대 바로 앞에서 눈 깜짝할 사이에 함성, 거친 숨소리, 발에 공이 튕기는 소리가 뒤엉켰다.
달려들지도 못한다.
이럴 때 달려들면 유니온 시티 수비수들이 물러나야 하고, 그런 때 날리는 슈팅은 막을 방법도 없는 거다.
정지우가 이를 악물며 이리저리 튕기는 공을 노려볼 때였다.
터어엉!
리버풀의 누군가가 찬 공이 무둔바의 발에 맞고 골대를 파고들었다. 공은 낮게 깔려 들어왔다.
화악!
손을 쓰거나 몸을 날릴 틈이 없어서 정지우는 발만 뻗었다.
터엉!
튕겨 나간 공이 선수들이 몰린 반대쪽 골대 앞으로 굴렀다.
“우와아아아-!”
이번엔 밀너였다. 그가 튀어 나간 공을 향해 빠르게 달려들어 그대로 욱여넣었다.
방향이 워낙 빤한 슈팅이었다.
이쪽에 선수들이 몰려 있었기 때문에 그가 선택할 코스는 왼쪽으로 정해져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화아아악!
정지우는 골대의 중간쯤 높이로 몸을 날렸다.
정확한 슈팅을 위해서인지 밀너는 속도를 양보했다.
강하게 차서 뜨는 것보다 확실한 방향을 노린 슈팅이었다.
터억!
“우와아아아아아아-!”
정지우의 손에 맞은 공이 또다시 골포스트를 벗어나 바깥으로 굴러나갔다.
유니온 시티 관중들의 엄청난 환호 속에서 밀너는 고통스럽게 얼굴을 쓸어내렸고, 그의 동료들과 리버풀 관중들 모두가 뒤통수를 안고 인상을 찌푸렸다.
데이빗이 다가와 정지우를 툭 치고 움직였다.
체력이 완전히 방전된 사람처럼 보였는데 라파엘, 카알, 꼼빠니 역시 비슷한 얼굴이었다.
“레믹! 앞쪽을 맡아!”
또다시 코너킥이었다.
추가 시간이 거의 끝난 시점이었다.
정지우의 고함을 들은 레믹이 골포스트를 안다시피 서서 골대를 지켰다.
퍼어어엉!
이번 코너킥은 아예 골대 바로 앞으로 날아왔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정지우와 직접 부딪쳐서라도 골을 만들어 내라는 의도처럼 보였다.
사람 잘못 본 거다.
거칠게 나오는 공격수를 무서워할 정지우가 아닌 거다.
휘이이익!
정지우는 빠르게 달려 나가 몸을 띄웠다.
데이빗과 무둔바, 라파엘이 정지우를 지키기 위해 달려드는 리버풀 선수들과 뒤엉켰다.
꽈아악!
공을 잡은 정지우는 앞으로 내려서며 가슴에 공을 끌어안은 자세로 그라운드에 엎어졌다.
“이예에에에에-!”
이겼다. 이 경기 분명하게 잡아낸 거다.
이 정도면 이 경기는 절대 뒤집히지 않는다.
관중들도 그걸 짐작해서 저런 함성을 지르는 걸 거다.
두근. 두근. 두근. 두근.
경기가 끝나기 직전인데도 시작하기 전인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라운드에서 올라오는 잔디 냄새, 주변에서 헉헉거리며 가쁜 숨을 몰아쉬는 선수들, 그라운드를 향해 쏟아지는 관중들의 함성까지.
정지우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골키퍼 에어리어에서 골키퍼가 6초 이상 공을 잡고 있으면 파울이다.
몸을 일으킨 정지우는 골키퍼 에어리어를 벗어났다.
그리고 공을 짧게 굴린 후에 다시 잡았다.
앞쪽에 있는 주심이 휘슬을 입에 무는 것이 보였다.
시간을 끈 것에 대한 파울을 선언하거나, 아니면 경기 종료일 거다.
정지우는 앞으로 달려가며 공을 띄운 뒤, 높다랗게 걷어찼다.
퍼어어어엉!
삐익! 삐이익! 삐이이이익!
“이예에에에에에에에-!”
경기가 끝났다.
두 손을 높이 드는 정지우를 향해 골대 앞에 있던 레믹이 높다랗게 떠서 달려들었다.
콰다다당!
넘어진 정지우에게 달려든 동료들이 머리를 감싸 안았고, 어깨를 두드렸다.
퍼어어엉!
축포가 터졌고, 웸블리 하늘에 오색가루가 휘날렸다.
“세상에! 우리가 승리했어! 우리가 승리했다고!”
관중들이 미친 듯이 날뛰며 비슷비슷한 고함을 질러 댔고, 그 옆에서 또 다른 관중들은 희한한 괴성을 질러 댔다.
덩치 큰 영국 남자가 뭐가 그렇게 서러운지 굵은 눈물을 뚝뚝 흘려 댔고, 눈 화장이 번진 여자의 모습도 보였다.
“우리가 이겼다고!”
고함을 지르는 남자를 끌어안은 부인과 아이들!
“맙소사! FA컵이야! 우리가 승리 팀이야!”
“이걸 믿을 수가 없어! 우리 우승한 거 맞아?”
누군가 지르는 함성을 들으며 뒤늦게 사실을 확인하려는 관중들도 있었다.
벤치에서 뛰쳐나온 스태프들이 마틴과 안은 채로 껑충껑충 뛰었고, 서브 선수들이 달려 나와 경기를 마친 선수들과 얼싸안았다.
기예르모가 완벽하게 흥분한 얼굴로 뛰어와서 정지우에게 달려들었다.
투욱!
정지우는 안기는 놈의 뒤통수를 툭 쳐 주고 벤치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마틴과 스태프들이 뒤엉킨 뒤편에서 시상을 위해 나온 경기 운영위원들이 몰려 있었다.
방송 카메라, 흔히 보이는 플래시 터지는 카메라.
정지우는 벤치의 정면에서 두 손을 들어 입을 맞추고 검지를 높다랗게 들었다.
“이예에에에에에-!”
관중들이 기다렸다는 것처럼 함성을 질러 댔다.
“헤이! 인사해야지!”
종잡기 어려운 놈, 레믹이 세레머니가 끝난 정지우를 향해 고개를 디밀며 고함을 질렀다.
뭐?
레믹이 웃으며 손을 들어 박용근을 가리켰다.
이렇게 검지로 스승을 가리키는 게 버릇없는 행동이라는 건 정말 모르는 걸 거다.
레믹의 행동을 동료들 전체가 보았다.
마틴과 포옹을 나누고 온 데이빗까지 정지우의 옆에 섰다.
꾸벅!
웃기지만, 레믹이 가장 먼저 고개를 숙였고, 두서없는 모습으로 유니온 시티 선수 전체가 박용근을 향해 인사했다.
“우와아아아아-!”
짝짝짝짝짝짝짝짝짝.
온전히 박용근을 향한 함성과 박수가 웸블리 스타디움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