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라운드의 지배자-102화 (102/262)

제4장. 잘할 거지? (2)

정지우는 뒤쪽에서 던져 주는 공을 받아서 골대 앞에 놓았다.

전방에서부터 강한 압박을 펼치겠다는 것처럼 리버풀 선수들이 중앙선을 넘은 위치에서 뛰어다녔는데, 당장은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공 앞에 선 정지우는 양손을 앞으로 모으는 동작으로 동료들에게 밀고 올라가라고 신호를 보냈다.

밀턴 FC가 그랬던 것처럼 지금은 리버풀의 골대 가까이 공을 보내 놓고, 그쪽에서 어떻게 해결할 방법을 찾는 것이 가장 현명해 보였다.

콕콕.

오른발로 그라운드를 찍은 정지우는 천천히 달려 나가 세차게 공을 찼다.

퍼어어어엉!

높다랗게 뜬 공이 리버풀의 진영 한가운데 떨어졌다.

“우와- 아!”

레믹과 브라운이 달려들었지만 위치 선정이 제대로 되지 않았고, 몸싸움에서도 밀렸다.

퍼어엉!

사코의 헤더로 공을 받은 엔리코가 앞쪽으로 기다랗게 공을 찼다.

투욱!

루카스가 가슴으로 받아 앞으로 떨군 후,

툭!

떨어지는 공을 그대로 오른쪽 코너로 찔러 주었다.

“우와- 아!”

정지우가 보기에 왼편 코너였다.

리버풀의 7번 밀너가 공을 향해 달려들었고, 유니온의 3번 스웰던이 뛰어들었다.

콰아악! 콰다당!

스웰던이 밀너와 부딪치며 두 선수가 넘어지자 선심이 빠르게 기를 들고 흔들었다.

삐이이익!

곧바로 휘슬을 울렸고, 주심이 달려왔다.

“우와- 아아!”

주심은 리버풀의 프리킥을 선언했다.

페널티 에어리어가 시작하는 곳과 터치라인의 중간쯤이었다.

“포그이! 헤이!”

정지우는 입에 손을 가져가서 악을 쓴 후에, 엄지와 새끼손가락을 접어서 머리 위로 들었다.

포그이, 브라운, 꼼빠니가 공 앞에 섰고, 포그이가 뒤를 돌아보았다.

공에서 수비벽까지의 거리 규정은 9.15미터다.

주심이 아홉 걸음을 걸어 포그이에게 뒤로 더 물러나라고 손짓을 했다.

주춤, 주춤.

반걸음이라도 덜 밀리는 게 정말 큰 도움이 된다.

낮고 빠른 슛, 커브가 많이 들어가는 일반적인 슛, 마지막으로 높고 느린 슛 중 하나가 날아올 수 있었다.

그게 다면 골키퍼 좀 편안하게 해 먹을 거다.

골키퍼와 수비벽 중간으로 공이 날아오고, 앞에서부터 잘라먹고 하는 헤더, 중간에서 궤적을 정확하게 맞춰 날리는 헤더, 아니면 아예 뒤로 흘려서 빈 곳을 노리는 헤더까지 경계해야 한다.

정지우는 수비벽에 앞쪽을 맡기기로 했다.

“포그이! 헤이! 헤이!”

오른손 엄지를 왼편으로 눕힌 정지우는 포그이를 향해 왼편을 가리켰다.

주춤, 주춤.

반걸음씩이다.

포그이가 브라운과 꼼빠니를 밀며 왼쪽으로 움직였다.

정지우는 손바닥을 펴서 정지 신호를 보냈다.

이 정도면 상대 키커도 정지우가 왼편을 벽으로 막았다는 것을 충분히 알 정도인 거다.

이럴 때 수비벽을 아슬아슬하게 넘어오거나, 아니면 발밑, 혹은 수비벽 사이에서 튀어나오는 공이 가장 무섭다.

그렇더라도 지금은 이 방법이 최선이었다.

이런 때 앞을 막겠다고 나섰다가 뒤로 크게 감아 들어오는 슈팅이 제대로 날아오면, 2미터 이상을 점프하지 않는 한 절대로 막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정지우가 보기에 왼편이었다.

그렇다면 왼발로 차면 뒤쪽 골대를 노리는 거고, 오른발로 차면 골대 앞쪽을 노리는 게 된다.

계산할 게 더럽게 많은 순간이었다.

“리버- 풀! 리버- 풀! 리- 버풀!”

리버풀 관중들의 응원가가 대화를 못할 정도로 커다랗게 웸블리를 휘감고 있었다.

“헤이! 멜스! 멜!”

정지우는 다급하게 멜스를 불렀다.

급해서, 제대로 들리지 않아서 앞머리만 커다랗게 외친 수준이었다. 엄지로 스터리지를 가리킨 정지우는 다시 카알을 향해 악을 썼다.

“카알! 헤이!”

주심이 입에 휘슬을 물고 있는 것이 보여서 더는 여유도 없었다. 헨더슨을 맡으라는 신호를 보낸 정지우가 허리를 낮추는 순간이었다.

삐이이이이익!

날카로운 휘슬 소리가 리버풀의 응원가를 뚫고 들렸다.

와락! 와라락! 콰악!

수비 라인은 페널티킥 포지션 바로 위쪽에 있었다.

공을 차기 전에 리버풀의 선수가 수비를 뚫고 나오면 오프사이드다. 그러나 공을 찬 직후에 뛰어오는 건 온사이드라, 그런 선수를 놓치면 아무리 정지우라도 막아 내기 어렵다.

“헤이! 헤이!”

양 팀 선수들이 뒤엉켜 옷을 붙잡고, 상체를 밀고, 두 팔을 위로 들어서 파울하지 않는다는 제스처를 취하면서도 몸통으로 서로를 밀어 대고 있었다.

공을 바닥에 내려놓은 앞에서 리버풀 선수들 셋이 한꺼번에 움직였다.

프리킥 위치에서 골대까지 대략 30미터 안쪽이었다.

움찔!

골키퍼는 이런 때 모두 대비해야 한다.

정말이지 눈 깜짝할 사이에 공이 눈앞을 지나는 걸 보는 거리였다.

“리버- 풀! 리버- 풀! 리- 버풀!”

집중력이 흐트러질 정도로 거센 응원가가 그라운드를 휩쓸 때였다.

밀너가 공을 지났고, 랄라나가 뛰어들었다.

움찔!

정지우의 허리가 두 번째로 움직인 직후였다.

퍼어엉!

벤테케가 공을 짧게 올렸다.

오른발! 앞쪽!

유니온과 리버풀의 선수들이 골대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는데, 그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몸을 솟구친 브라운을 아슬아슬하게 지나친 공이 앞쪽 골대를 파고들고 있었다.

화아아악!

이건 막아! 막을 수 있어!

정지우는 왼발을 이용해 몸을 날렸다.

날카롭기는 했지만, 못 막을 정도는 아니었다.

정지우라면.

TV로 중계된다고 했다.

월드컵 대표팀과 비교될 거다.

유니온에는 미친 골키퍼가 살지!

동료들과 사이좋게 지냈지!

박용근에게 제대로 배웠지!

정지우의 손끝에 공이 제대로 걸렸다.

터어억! 털썩!

“이예에에에에에에-!”

태풍이 몰아치는 듯한 함성이 웸블리를 휩쓸었다.

몸을 일으킨 정지우는 양팔을 연속해서 위로 치켜들었다.

“컴 온! 누구도 내 경기에서 골을 넣지 못해!”

“이예에에에에에-!”

유니온 시티 관중들은 골을 넣은 것처럼 흥분하고 있었다.

밀리던 경기에서 기대하던 모습을, 유니온 시티다운 장면을 보아서일 거였다.

“이 미친 골키퍼!”

데이빗과 카알, 라파엘, 스웰던이 다가와 등과 뒤통수를 두드려 주고 달려갔다.

반대로 리버풀 선수들이 불쾌한 표정으로 정지우를 힐끔거렸다. 조금 전에 뱉어 낸 고함이 모욕적으로 들렸던 모양이었다.

코너킥이었다.

세계적인 키커인 제라드가 지금의 리버풀에 없는 게 다행이었다.

정지우는 수비수들을 둘러보며 눈빛을 번득였다. 그리고 가장 바깥에 있는 레믹을 보았다.

‘한번 해 봐!’

놈의 답은 들을 필요도 없었다.

앞쪽 골대에 맥슨을 세운 정지우가 골대 중심에서 1미터쯤 뒤쪽으로 움직였다.

삐이익! 우르르르!

주심의 휘슬과 동시에 벤테케가 움직였고, 양 팀 선수들이 뒤엉켜 골대를 향해 움직였다.

퍼어어엉!

기계로 쏘아도 이렇게 정교하긴 어려울 코너킥이었다.

골대 앞쪽으로 멋지게 휘고 있어서 뛰어나갈 수도 없었다.

“우와아- 아!”

앞에서 자르고 들어오는 헤더가 가장 겁난다.

휘이이익!

선수들이 동시에 뛰어올랐다.

터어엉!

공은 데이빗의 머리에 맞고 골대 반대편으로 튀었다.

정지우가 움찔하는 순간이었다.

퍼어어엉!

떨어지는 공을 랄라나가 그대로 날렸다.

못 봤다!

선수들이 뒤엉킨 뒤쪽에서 날린 슛이라 공이 보이지 않았다. 그저 발 사이에서 어른거리는 그림자만 보았다.

화아아악!

몸을 날렸지만, 분명 타이밍이 늦었다.

털썩!

바닥에 떨어진 정지우가 시선을 주었을 때,

“우-!”

공은 이미 골대를 벗어나 있었다.

랄라나가 양쪽 관자놀이를 감쌌던 손으로 볼을 쓸어내렸고, 리버풀의 관중들은 또다시 뒤통수를 감싸 쥐며 커다랗게 탄식을 뱉어 냈다.

위기를 겨우 벗어났다.

공을 세워 놓은 정지우는 벤치를 힐끔 보고는 뒤로 물러났다.

투욱!

그러나 이번엔 세게 차지 않았다.

뒤편에서 천천히 돌려서 나가라는 의미였다.

조금 전의 위기를 넘기고 나자 유니온 시티 동료들의 표정이 달라진 것을 보아서였다.

조금이나마 긴장이 풀리고 있는 거였다.

월드컵 대표팀은 쿠웨이트를 제대로 뚫지 못하고 있었다.

솔직히 두 경기 모두 밀리는 양상은 비슷했다.

그러나 사람이 ‘기대치’라는 것이 있다.

가장 경계해야 하는 선수 두 명이 빠진 쿠웨이트를 상대로 밀리는 대표팀과 밀리는 와중에도 정지우가 선방을 펼치는 FA컵 결승.

댓글들이 점점 대표팀과 감독, 협회를 비난하는 쪽으로 몰리고 있었다.

“우-!”

이번엔 유니온 시티 관중들이 탄식을 쏟아 냈다.

1층 관중석 위쪽에 떨어질 정도로 높게 날아간 슈팅이어서 탄성을 지를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더라도, 지금 날린 맥슨의 중거리 슈팅이 유니온 시티의 첫 번째 슈팅이라는 데 의의를 둔 것처럼 보였다.

전반 30분이 넘어가도록 양 팀 모두 특별한 기회를 잡지는 못했다.

유니온은 공을 소유하려 애썼고, 리버풀은 공의 흐름을 멈추지 않고 연결하는 데 주력하는 경기였다.

“멜스! 스터리지만 잡아!”

시간이 지날수록 유니온 시티 수비가 좀 더 단단해지고 있었다. 긴장에서 좀 더 풀려난 데다, 리버풀 공격수들의 움직임을 어느 정도 익힌 덕분이었다.

“라파엘! 위치만 잡아 줘!”

중앙선을 중심으로 공이 옮겨 다니는 것에 맞춰 정지우는 골대의 각을 계산하며 움직였고, 틈틈이 수비수들에게 고함을 질러 댔다.

쿵. 쿵. 쿵. 쿵. 쿵. 쿵.

“오- 오오! 오- 오오!”

맥슨의 중거리 슈팅 이후로 유니온 시티의 응원이 점점 열기를 더하고 있었다. 리버풀 팬들은 기대대로 경기가 풀리지 않자 팔짱을 낀 채 침묵했다.

관중들이 경기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를 극명하게 보여 주는 모습이었는데, 이것이 또한 영국 리그의 특징이었다.

그때 꼼빠니가 수비수들 틈으로 공을 밀어 주었다.

“우와아- 아!”

이런 순간을 노리는 것이 레믹의 특기다.

그가 툭 하고 뛰어들었는데, 리버풀의 엔리코에게 부딪치며 그대로 엎어졌다.

“우우우우-!”

페널티킥을 기대할 만한 장면이었다.

그러나 주저앉아 양팔을 높게 든 레믹과 손짓으로 그를 가리키는 유니온 시티 선수들을 주심은 고개를 저어 가며 외면했다.

“헤이! 망할 놈의 판정을 똑바로 하라고!”

주심을 향해 바락바락 지르는 관중들의 고함이 날아들었다.

“우우-!”

그리고 연달아 거친 탄식이 터졌다.

꼼빠니가 리버풀의 골대 앞을 노리고 날린 공이 헨더슨의 어깨 근처에 맞은 거였다.

유니온 시티 관중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팔로 왼팔을 두드리며 계속해 야유를 퍼부어 댔다.

응원가와 함성 사이에서 ‘Fuck!’나 ‘Goddamn it!’ 같은 거친 야유가 터져 나오며 경기장의 분위기가 점점 거칠어지고 있었다.

전반 40분이 넘어가자 리버풀은 속이 타는 눈치였다.

서너 번의 기회를 살리지 못한 이후로 유니온 시티의 움직임이 좀 더 활발해진 것을 느꼈고, 그만큼 경기가 뜻대로 풀리지 않는 것에 당황한 눈치였다.

공은 다시 꼼빠니가 잡았고, 바로 뒤를 지키고 있던 카알에게 넘겨주었다.

콰아아악!

“우우-!”

유럽 최고의 태클러라는 루카스다.

그가 옆에서 다리를 들고 카알을 덮쳤는데 이번은 분명 발이 높았다.

삐이이이익!

주심이 휘슬을 불어서 파울을 선언했다.

“우와- 아!”

“우-!”

함성과 야유가 동시에 터져 나왔을 때, 카알이 오른손으로 발목을 부여잡은 자세로 몸을 일으켰다.

중앙선과 페널티 에어리어의 중간쯤, 그리고 리버풀의 골대를 바라보아서 오른쪽으로 치우친 자리였다.

정지우는 장갑을 낀 손을 두 번 세게 부딪치며 동료들을 격려했다.

전반 내내 이만한 기회는 없었다.

꼼빠니가 킥을 준비했고, 유니온 시티 선수들이 페널티 에어리어 앞으로 움직였다.

거칠기로 챔피언십만 한 곳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리버풀 선수들의 피지컬은 정말 대단해서 레믹은 수비수 둘에게 완전히 갇혀 있었고, 브라운은 자꾸만 밀려나고 있었다.

삐이이익!

주심이 커다랗게 휘슬을 불었고,

퍼어어엉!

꼼빠니가 공을 길게 날렸다.

뒤엉킨 선수들이 높다랗게 몸을 띄웠는데,

터엉!

헤더는 14번 헨더슨이 따냈다.

리버풀의 6번 로번이 앞으로 길게 내준 공을 20번 랄라나가 잡아서 그대로 반대편으로 밀어 주었다.

완벽한 역습이었다.

“우와아아아- 아!”

정신이 아득할 정도로 엄청난 함성과 함께 스터리지가 정지우의 앞으로 내달리고 있었다.

라파엘이 앞을 막아섰고, 멜슨이 도우려 움직일 때, 리버풀의 루카스와 밀너가 주변으로 뛰어들고 있었다.

정지우는 허리를 낮췄다.

“우와아아-!”

고함이 문제가 아니었다.

투욱!

스터리지가 라파엘의 왼편으로 공을 툭 차며 뛰었다.

완벽하게 뚫렸다.

스터리지를 향해 섰던 라파엘이 돌아선다고 해도 막을 방법은 없었다.

“우와아아아-!”

정지우는 왼편 골포스트에서 1.5미터 떨어진 곳에서 양팔을 펼쳤다.

왼쪽을 노려! 왼쪽! 왼쪽!

주춤! 주춤!

그러고는 오른쪽으로 움직이는 척 스터리지를 유혹했다.

스터리지가 슈팅을 날리려는 순간이었다.

콰아악!

뒤늦게 달려온 스웰던이 슈팅을 날리려던 스터리지와 뒤엉켰다.

철퍼덕!

삐이이이이익!

“우와아아아아-!”

스터리지가 넘어졌고, 주심이 휘슬을 불며 페널티킥 위치에 손을 뻗었으며, 리버풀 관중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미친 사람들처럼 고함을 질러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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