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라운드의 지배자-90화 (90/262)

제8장. 멋진 플레이였어! (1)

캐슬의 코너킥이었다.

시간이 흐르는 게 안타까운 뉴캐슬 선수들이 빠르게 움직였다.

“무둔바! 헤이!”

정지우의 지시를 받은 무둔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194의 윌리암슨과 184의 콜로시니를 앞뒤로 두고도 전혀 밀리지 않은 채, 오히려 두 선수가 휘청일 정도로 밀어 댔다.

“라파엘! 뒤! 뒤!”

정지우는 또다시 뒤에서 기회를 노리는 아니타를 가리켰다.

선수들이 뒤엉켰다.

특히나 골대 중앙에 선 무둔바를 밀어내기 위해서 윌리암슨이 그를 등으로 밀어 대고, 뒤에 있는 콜로시니가 옷을 당겨 가며 헤더 위치를 뺏으려 애썼다.

삐이익!

휘슬이 울린 직후였다.

제자리를 뛰는 동작을 보인 심데종이 공을 향해 움직였다.

선수들이 뒤엉킨 상태로 골대로 밀려들었고,

퍼어엉!

공이 빠르고 높게 골대 앞을 향해 날아왔다.

무둔바는 확실히 경험이 부족했다.

힘으로 이겨 내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윌리암슨, 콜로시니를 막겠답시고 골대 앞까지 뭉쳐서 달려들었다.

정지우가 움직일 공간을 오히려 무둔바가 차지한 꼴이었다.

“이익!”

정지우는 어깨로 무둔바를 밀었다.

이미 공을 찬 다음이라, 상대 팀 선수를 잘못 건드렸다간 페널티킥을 받을 수 있었다.

휘이익!

뒤엉킨 윌리암슨과 콜로시니 뒤편에서 183의 더밋이 불쑥 뛰어올랐다.

터엉!

공은 정지우의 얼굴 왼쪽으로 날아왔다.

다행히 더밋은 가장 키가 큰 세 사람 뒤에서 솟구치는 바람에 타이밍을 제대로 맞추지 못했고, 그 덕분에 속도가 빠르지 않았다.

터어억!

정지우는 반사적으로 왼팔을 뻗어 공을 튕겨 냈다.

“우와- 아!”

시세, 아니타, 콜백이 공을 향해 태클처럼 몸을 날렸고, 그들을 막기 위해 스웰던, 라파엘, 데이빗이 달려들었다.

툭!

누구 발에 맞았는지 모른다.

정지우는 골대 왼편 구석을 파고드는 공만 보았다.

휘익! 터엉!

쭉 뻗어 낸 정지우의 발에 걸린 공이 바로 튀어 나갔다.

흘러 나간 공을 잡은 선수는 뉴캐슬의 아니타였다.

그는 달려드는 라파엘을 피해 뒤쪽으로 공을 넘겨주었다.

“우-!”

정지우가 허리를 낮추고 자세를 잡은 순간이었다.

투웅!

콜백이 선수들의 가슴 높이로 공을 날렸다. 수비수들의 손을 노린 게 아닐까 싶을 정도의 높이였다.

와락!

정지우는 공을 향해 달려 나갔다.

휘이익!

씨소코가 공을 차기 위해 허공에 눕는 것처럼 몸을 띄우는 것이 보였다.

이럴 땐 공을 먼저 건드리는 게 최선이다.

판단은 주심이 한다.

그러니까 지금은 저 발길질을 무서워할 게 아니라 무조건 막아 내고 본다.

골키퍼는 그런 임무를 위해 그라운드에 서는 선수인 거다.

꽈아악!

분명 정지우가 확실하게 공을 품에 안았다.

퍼어억!

그런데도 씨소코의 무식한 발길질이 정지우가 안은 공을 제대로 갈겼다.

철퍼덕!

충격에 밀린 정지우가 몸을 틀며 공을 안은 자세로 엎어졌고, 허공에 떴던 씨소코가 그 자리에 그대로 떨어졌다.

“우-!”

관중들의 야유와 탄성이 터져 나왔을 때였다.

마틴과 박용근, 전은주, 유정호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크게 다쳤을 게 분명한 발길질이었다.

“우와- 아!”

그런데 느닷없는 함성이 커다랗게 터져 나왔다.

이를 꽉 깨문 정지우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아직 일어서지 못한 씨소코를 밟아 버릴 것처럼 다가간 거였다.

“뭐 하는 거야!”

“너희는 또 뭐야!”

뉴캐슬 선수들이 정지우를 밀쳤고, 유니온 시티 선수들이 달려들어 그들을 다시 밀치는 바람에 골대 앞은 완전히 아수라장이었다.

정지우는 이를 악문 얼굴로 뉴캐슬 선수들을 밀쳐 대며 씨소코를 향해 움직였다.

저놈은 공을 잡은 걸 알고도 끝까지, 있는 힘껏 발을 뻗었다. 씨소코와 정지우, 단둘만이 알 수 있는 사실이지만, 그만큼 분명한 일이기도 했다.

얀센을 그렇게 보내 놓고 정지우마저 내보내고 싶었던 게 역력한 발길질이었다.

삑! 삑!

주심이 정말 빠르게 달려와 정지우를 안는 것처럼 막았다.

“참아! 참아! 멋진 플레이였어! 그러니까 경기도 멋지게 끝내!”

아직도 공을 안은 정지우가 한 번 더 씨소코를 무섭게 노려보며 그쪽으로 움직이려 했다.

정지우만이 아니었다.

“너! 그따위로 하지 마!”

주심의 등 뒤에서 씨소코에게 감정이 많았던 스웰던을 라파엘이 목을 끌어안다시피 말리고 있었다.

“왜 이래! 그만해!”

주심이 정지우의 얼굴을 들여다보고는 몸을 돌렸다.

이 정도면 적당한 거다.

유니온 시티 선수들을 자극하고, 뉴캐슬 선수들의 저 기세를 어느 정도 꺾었다면 말이다.

정지우를 위로하는 것처럼 주심이 옐로카드를 꺼내서 씨소코 앞에 높게 들었다.

“우와- 아!”

관중들의 함성이 레드 블레이트를 부술 것처럼 울려 나왔다.

그리고 정지우가 공을 바닥에 놓았을 때,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Go, Go, Go my Ji! Go, Go, Go my Ji!”

웃옷을 벗어 던진 관중들이 자리에서 뛰며 응원 구호를 외쳤다.

삐이익!

주심이 공을 차라고 휘슬을 불었다.

콕콕! 퍼어엉!

시간 끌 것 없다. 그냥 길게 차 주면 된다.

이기면 되는 경기다.

지금 씨소코의 기를 꺾어 놓았으니까 이대로 밀어붙이는 게 오히려 낫다.

중앙선을 넘어간 공이 뉴캐슬 진영에 떨어진 순간이었다.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나나나- 나! 나나나- 나! 헤이! 헤이! 헤- 이! 굿- 바이!”

관중들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뉴캐슬 선수들과 원정 응원단을 약 올리기 시작했다.

중앙선 부근에서 좀 더 치열한 공방이 이루어졌다.

정지우가 나서자 라파엘이 조금씩 수비 라인을 끌어 올렸기 때문이었다.

대기심이 추가 시간 10분을 알리는 보드를 관중석을 향해 드는 것으로 승부의 저울이 확실하게 기우는 느낌도 들었다.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나나나- 나! 나나나- 나! 헤이! 헤이! 헤- 이! 굿- 바이!”

함성이 관중석에서 쏟아져 나와 그라운드에 튕기고는 메아리로 레드 블레이트에 열기를 더하는 순간,

“우-!”

레믹의 멋진 중거리 슈팅이 뉴캐슬 수비수의 발에 맞고 튕겨 나왔고, 이어서 맥슨의 슈팅이 허공을 높이 날아 관중석으로 날아갔다.

괜찮다. 이제 8분쯤 남았다.

정지우는 공과 선수들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으려 날을 바짝 세운 채 앞을 노려보았다.

뉴캐슬은 유니온의 골대를 향해 긴 패스를 계속 뿌려 댔다. 그러나 이런 공격은 별 의미가 없다.

공을 잡은 정지우는 서너 걸음을 걸으며 유니온 시티 동료들을 훑어보았다.

‘끝나는 순간까지 웸블리로 가는 길을 망치지 말자!’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알아들을 수 있는 순간이 있다.

마치 지금 정지우의 눈빛을 보았을 때처럼.

앞으로 움직인 정지우는 라파엘을 향해 공을 굴려 주었다.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나나나- 나! 나나나- 나! 헤이! 헤이! 헤- 이! 굿- 바이!”

어쩐지 따라서 흥얼거리고 싶을 정도로 반복해서 나오는 응원가를 타고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삐이이익!

이번에는 공이 사이드라인을 넘어가 관중석 중간에 떨어졌다.

바로 던져 주면 되는 거리인데도 웃옷을 벗은 관중들은 앞에 있는 관중에게 차례대로 공을 건네주었다. 이렇게 단 20초라도 시간을 벌어 주겠다는 의미였다.

뉴캐슬 선수들이 땀을 뚝뚝 흘리며 뛰어다녔고, 유니온 시티 선수들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그들에 맞서 달렸다.

퍼어어엉!

또다시 길게 날아온 공을 정지우가 뛰어나가 높다랗게 떠서 잡았다.

씨소코와의 일이 있어서인지 뉴캐슬 선수들은 정지우에게 거친 플레이를 펼쳐 내지 못했다.

삐익.

주심이 휘슬을 불었고, 대기심이 등번호 3번의 스웰던과 23번 멜스를 교체하겠다는 사인을 보냈다.

짝짝짝짝짝짝짝짝짝.

스웰던은 씨소코를 노려본 후에 데이빗, 카알과 하이파이브를 나누며 걷는 것보다 느리게 달렸다.

견뎌라. 난 이렇게라도 시간을 벌어 볼게.

그렇게 터치라인까지 움직인 스웰던이 멜스와 두 손을 마주치고 벤치로 움직였다.

툭툭.

마틴이 스웰던의 등을 두드려 주는 것을 본 정지우는, 느긋하게 달리는 듯한 움직임으로 골키퍼 에어리어를 가로질렀다.

휘이익!

그리고 공을 기다랗게 맥슨에게 던져 주었다.

거칠고, 바쁘게 뉴캐슬 선수들이 달려들었으나 효과는 없었다.

맥슨이 멜스에게, 멜스가 라파엘에게 공을 돌리는 사이 시간은 계속 흘렀다.

악착같이 시세와 고프란, 씨소코가 달려들어 봤지만 공보다 빠를 순 없었다.

콜백이 뻗은 발에 걸린 공이 터치라인 바깥으로 나가서 공이 돌아오는 동안 잠시 시간이 흘렀다.

거기에 공을 던질 것처럼 팔을 들었던 카알이 달려오는 라파엘에게 공을 양보하며 또다시 시간을 끌었다.

이기고 싶은 욕망, 이렇게까지 만들어 놓은 경기를 마지막 순간에 망치거나 놓치지 않겠다는 집념에서 나온 모습들이었다.

관중들이 손을 입에 대고 휘파람 소리를 불어 대는 사이, 라파엘은 공을 포그이에게 던져 주었다.

툭!

포그이가 다시 라파엘에게, 그리고 공을 받은 라파엘이 곧바로 정지우를 향해 길게 차 주었다.

삐이이익! 삐이익! 삐이익!

“이예에에에에에에에!”

웸블리! 웸블리로 갈 자격이 유니온 시티의 품에 들어왔다.

벗어서 허리춤에 끼워 두었던 관중들의 웃옷들이 허공을 날고 있었고, 벤치에서 서브 선수들과 스태프들이 서로를 끌어안은 채 미쳐 날뛰고 있었다.

정지우는 양손 검지를 든 자세로 하늘을 보았다.

‘어머니, 감독님과 사모님 모시고 웸블리로 갈 수 있게 됐어요. 오늘 같은 날은 참 많이 엄마가 보고 싶어요.’

저 하늘 어디에선가 정지우와 박용근, 전은주, 유정호, 그리고 레드 블레이트를 보고 있었으면 싶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박용근과 전은주, 유정호도 박수를 멈추지 못했다.

하늘을 향해 검지를 들고 시선을 준 지금의 정지우가 누굴 그리워하는지 알고 있는 세 사람이었다.

이런 순간에, 그렇게나 치열했던 경기를 마치고 나서, 저런 모습으로 엄마를 그리워하는 심정이 어떨까?

전은주는 자꾸만 손바닥 안쪽으로 얼굴을 닦아 가며 박수를 쳤다.

뉴캐슬의 스티브 감독을 비롯해 스태프들과 악수를 나눈 마틴은 머리 높이로 손을 들고 박수를 치며 벤치로 걸어왔다.

그는 가장 먼저 박용근을 보았다.

‘고맙소. 영국 리그가 최고란 자만에서 날 일깨워 준 점에 깊이 감사합니다.’

두 사람은 비슷하게 웃었다.

‘지우를 잘 부탁합니다.’

‘직접 확인해 주었으면 싶습니다.’

말로 전하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에 나눈 눈빛의 의미는 조금 달랐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것이 중요한 때는 아니었다.

정지우가 시선을 내렸을 때, 아직도 웃옷들이 허공을 떠다니고 있었다. 잡히는 대로 다시 던지는 건데 색깔이 뒤섞여 있어서 화려해 보이기는 했다.

나중에 어떻게 찾아 입으려고 저러지?

정지우가 피식 웃었을 때였다.

“Ji! 오늘이 내게 최고의 경기였어.”

상의가 늘어진 무둔바가 긴장을 털어 내지 못한 웃음과 함께 정지우에게 다가왔다.

이럴 땐 굳이 말이 필요 없다.

꽉! 터억!

손을 세워 잡은 정지우는 무둔바와 오른쪽 가슴을 부딪쳤다.

몸을 돌린 정지우가 데이빗을 시작으로 다른 동료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을 때, 씨소코가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프리미어리그에서 보자.”

씨소코는 얼른 맞붙고 싶다는 눈을 하고 있었다.

피식.

정지우는 손을 맞잡아 준 뒤에 놈의 뒤통수를 툭 쳐 주었다.

뉴캐슬 선수들과 뒤엉켜 인사를 나눈 다음이었다.

홈 관중들을 위해 벤치 앞으로 움직인 정지우와 동료들이 손을 머리 위로 들어서 박수를 쳤다.

물개 박수를 치는 전은주와 엄지를 치켜든 유정호, 그리고 굳은 얼굴인 박용근이 확실하게 보였다.

서울은 자정에 중계를 시작한 경기가 새벽 2시 10분경 끝났다.

TV는 계속해서 레믹과 정지우, 마틴과 박용근을 번갈아 보여 주었다.

그러다가 관중석, 유니온 시티 선수들을 잠시 보여 준 다음, 또다시 정지우와 박용근을 번갈아 잡아 주었다.

하이라이트도 나왔다.

레믹이 골을 넣는 장면에서는 ‘이예에에에에에!’ 하는 함성이 효과음으로 터져 나왔고, 그가 벤치로 달려가 박용근에게 인사하는 장면까지 그대로 나왔다.

이어서 아니타의 헤더를 고양이처럼 날아오른 정지우가 걷어 내는 장면, 일어서서 가슴을 두드리며 ‘컴 온!’이라고 외치는 장면도 나왔다.

툭 건너뛴 화면이 정지우가 양손 검지를 치켜들고 하늘을 바라보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중계가 끝났다.

“후- 와!”

장진모가 힘이 빠진 사람처럼 등받이에 등을 척 기댔다.

저런 경기가 있다니!

영국의 관중들을, 동료들을 단숨에 사로잡은 한국 선수가 있다니! 그것도 골키퍼가!

그의 맞은편에 앉은 부장 역시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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