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일이 커진 모양입니다. (2)
밤 10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조동익에게서 있는 대로 욕을 먹은 한승관이 신문사로 전화를 걸었는데, 뜻밖에도 장진모와 바로 연결되었고 시간까지 내주었다.
종로구청 뒤편의 단란주점으로 약속 장소를 던져 보았다.
불편하면 거절할 거고, 생각이 있다면 나올 테니 사람 떠보는 거로는 그만한 장소도 없었다.
장진모는 기다렸다는 것처럼 장소를 받아들였고, 늦지 않게 단란주점에 들어섰다.
눈이 커다랗고 쌍꺼풀이 진한 장진모와 그래도 선수 출신답게 덩치가 커다랗고 인상이 거친 한승관이 명함을 나눈 뒤에 자리에 앉았다.
장진모는 면바지와 면 티, 점퍼 차림이었고, 한승관은 면 티 위에 양복을 입었다.
“술은 좀 하십니까?”
“기자 생활만 15년입니다. 없어서 못 먹지, 있는 술을 마다하지는 않습니다.”
입가에 야릇한 미소를 단 한승관이 국산 양주를 커다란 컵에 반 넘게 따라서 장진모의 앞에 놓아주었다.
“역시! 운동을 하시던 분이라 호탕하시네!”
안주는 몇 가지 과일을 잘라 놓은 것과 그 옆에 놓인 오징어와 땅콩이 전부였다.
“자! 일단 드시고 이야기합시다.”
한승관이 내민 잔에 장진모가 ‘틱!’ 소리가 나도록 잔을 부딪치고는 느긋하게 양주를 들이켰다.
두 사람 모두 입 한 번 떼지 않고 한 번에 마셨다.
“허우!”
인상을 찌푸린 장진모가 수박 한 조각을 입에 무는 것을 보며 한승관이 또 술을 채웠다.
“석 잔은 마셔 줘야죠?”
“오랜만에 듣는 말이네요.”
한승관의 도발을 장진모가 웃으며 받았고, 둘이서 단숨에 잔을 비웠다.
양주 한 병이 그렇게 사라졌다.
두 번째 병을 딴 한승관이 세 번째 잔을 채웠고, 역시나 단숨에 마셨다.
네 번째 잔을 채우는 것으로 양주 2병이 바닥났다.
속이 울렁이는지 마른침을 꿀꺽 삼킨 한승관이 알딸딸한 눈으로 장진모를 바라보았다.
“장 기자님, 솔직히 하나만 물읍시다.”
“그럽시다.”
수박씨를 옆으로 뱉어 내며 장진모가 흔쾌하게 답을 했다.
“왜 그런 기사를 쓰신 거요?”
“에이! 솔직히 협회가 몇 명 싸고도는 거 사실이잖소?”
한승관이 취기가 오르는 척 눈을 껌벅이며 장진모를 노려보았다.
“우리가 특정 선수를 싸고도는 게 아니라 경기를 제대로 풀어내기 위해 호흡이 맞는 선수를 기용하는 거고, 그러다 보니 당장 눈에 보이는 한 게임이 아니라 전술을 이해하고 발이 맞는 선수를 기용하는 거요.”
장진모가 그럴 수도 있겠다는 투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이 우리 장 기자 눈에는 편파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 나름으로 고충도 있어요. 당장 정지우 같은 경우는 예전에 국내 축구를 무시하고 해외로 바로 나간 것도 있고.”
“이번에 임의 탈퇴는 풀어 주신 거 아닙니까?”
가랑이 사이로 수박씨를 뱉는 천박한 모습으로 장진모가 질문을 던졌다.
“그러니까요. 그런데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이번 소집에서도 놈은 굉장히 비협조적이었다고 합디다. 그러고 우리에겐 말 한마디 안 한 채로 대뜸 우리 장 기자에게 은퇴 선언을 해 버린 거지!”
“애가 좀 생각이 짧구만.”
한승관의 설명에 장진모가 맞장구를 쳤다.
힐끔.
건너편에 앉아서 이번엔 파인애플 조각을 먹고 있는 장진모를 살핀 한승관이 품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 테이블 건너편으로 밀었다.
“좋게 갑시다.”
파인애플 때문인지 눈가를 찌푸렸던 장진모가 이게 뭐냐는 투로 한승관을 바라보았다.
“이미 나간 기사는 몰라도 앞으로 기사를 쓰기 전에 협회의 입장을 먼저 들어 달라는 뜻이오. 그리고 우리 자주 보면서 이렇게 술도 좀 채워 넣고, 애들이랑 밴드 불러서 회포도 풀고, 그렇게 삽시다.”
장진모가 입술 한쪽을 들며 웃었다.
“역시! 짐작대로 뭘 좀 아시는 분이네!”
그는 손을 쭉 뻗어 봉투를 가져갔고, 한승관의 맞은편에서 보란 듯이 안에 든 현찰을 꺼내서 금액을 확인했다.
“에이! 이건 아니지!”
그런 다음 실망했다는 투로 탁자에 봉투를 올리고 앞으로 쭉 밀어 버렸다.
“한승관 위원님, 내가 사회부에서 온갖 비리를 파헤치고 다녀서 얻은 별명이 거머리요. 그런데 이렇게 취급하는 건 정말 아니지.”
한승관은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눈만 멀뚱멀뚱하게 뜬 채 살피고 있었다.
쭈우욱!
그 앞에서 장진모는 잔에 담긴 양주를 단숨에 마시고는 인상을 찌푸리며 오징어 다리를 집어 들었다.
“이진용 부친이 이충도 회장 아니요? 막말로 조동익 부회장은 아들 이름으로 최고층 주상복합 받았고, 문 감독은 분당의 상가 노른자위 받았는데…….”
질겅질겅.
“이런! 모르셨나 보네? 내가 눈 감는 거? 한국 축구로 위로받는 우리 국민들과 생업을 외면하면서까지 응원해 주는 축구 팬들을 팔아먹는 거요. 그런데 그 대가치고는 너무 적은 거 아니오?”
한승관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양반들 심했다! 우리 한 위원님한테는 이따위 봉투만 줬나 보네. 우리 이렇게 합시다. 이번에 건물이랑 상가 받은 양반들 물러나게 하쇼. 그다음에 제대로 된 감독과 선수 기용합시다. 그럼 나도 우리 축구판을 위해서 입 다물겠소. 아니라면…….”
장진모의 눈빛이 완벽하게 바뀌어 있었다.
“지금 말한 내용, 기사로 보게 될 거요. 되셨소?”
잠시 침묵이 흐르는 동안 한승관이 팔을 뻗어 맥주를 잡고는 뚜껑을 땄다.
콸콸콸콸.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요?”
한승관의 질문에 장진모가 바람 빠지는 것처럼 웃었다.
“어차피 썩어빠진 바닥이라 적당히 해 먹는 것까지 털어 낼 자신은 없는데, 해도 너무하는 거잖소. 한 곳이라도 실력대로, 한 번이라도 응원해 주는 우리 국민들을 위해서 뛰어 보라는 거요.”
“우린 그렇게 하고 있다니까!”
한승관의 음성이 대뜸 높아진 직후였다.
“적당히 하라는 거야! 적당히! 왜 TV를 시청하는 축구 팬들도 납득하지 못하는 선수를 기용하고! 왜 다른 나라에서 인정받는 선수들을 외면하냐고!”
“당신, 정지우 쪽에서 뭐 받았어?”
장진모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봐! 알고 있잖아. 정지우가 억울할 거라는 거!”
장진모가 품에서 손바닥에 들어갈 만한 네모난 기계를 꺼냈다.
“오늘 대화 여기 다 녹음했어. 앞으로 딱 일주일 줄 테니 건물 먹은 두 사람, 그거 토해 내고 물러나. 그리고 축구판 제대로 좀 굴려. 적어도 월드컵만큼이라도 제대로 해 보라고!”
흑색으로 바뀐 한승관을 보며 장진모는 잔에 남은 맥주를 홀랑 털어 넣었다.
“잘 마셨어요, 한 위원. 계산은 그걸로 하면 되는 거지요?”
한승관이 시선으로 탁자에 놓인 봉투를 가리키고는 몸을 일으켰다.
“아! 하나만 더 말하고 갑시다.”
뭔가 잊었던 것처럼 멍청하게 있는 한승관을 향해 장진모가 입을 열었다.
“월드컵 경기나 국가대표 말이오. 그거 당신들 게 아니라 국민 모두의 것이라는 거 잊지 마쇼.”
말을 마친 장진모가 고개를 갸웃하며 몸을 돌렸다.
“하아! 이럴 때 난 좀 멋있어.”
그러고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룸을 나섰다.
***
아침 7시에 신준석의 누나 둘이 들이닥쳤다.
“지우야! 감독님께 우리가 전화드렸어. 점심때 사모님하고 함께 오시는 거로 했다.”
누나 둘은 시원시원하게 유정호와 인사를 나눈 뒤에 언제 준비했는지 집에서 끓였다는 진한 곰탕 국물에 하얀 쌀밥, 그리고 먹음직스럽게 보이는 김치들을 꺼내 놓았다.
유정호는 유감없이 식욕을 발휘했다. 그래서 꽤 많은 양이었음에도 남은 것이 거의 없을 정도로 먹어치웠다.
“입에 맞으셨나 보네요?”
“태어나서 이렇게 맛있는 곰탕과 김치는 처음입니다.”
라면과 밥을 줘도 아마 저 정도는 먹었을 건데?
정지우의 시선 앞에서 유정호는 헤벌쭉한 얼굴로 웃어 대고 있었다.
잠시 후, 신준석의 부친과 모친이 들어와 유정호와 인사했고, ‘오늘은 그나마 분위기 가라앉았다.’라는 말을 전해 주었다.
그리고 곧바로 신준석의 영국 진출에 대해 의논이 시작되어서 정지우는 방으로 들어가 느긋하게 스트레칭을 했다.
***
허양수가 벌레를 보는 듯한 눈으로 조동익을 노려보았다.
“우리 부회장님, 밥통이 정말 크시네.”
조동익은 바라보기 민망할 정도로 참담한 얼굴이었다.
“그러니까 먹기는 부회장과 감독이 먹었는데 뒤처리는 나보고 해라? 허! 허허! 허허허! 그래서 한승관인가 그 사람은 안 먹었소?”
“면목 없습니다.”
조동익은 고개를 숙인 채 이를 악물었다.
분명 이진용의 아비인 이충도가 허하수와 허양수에게 직접 손을 쓸 테니 찾아가 보라고 해서 왔음에도 허양수는 사람을 대놓고 쓰레기처럼 대하고 있었다.
“하나만 물읍시다.”
“예.”
가까스로 고개를 든 조동익을 향해 허양수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월드컵 본선에 나갈 자신은 있는 거요?”
“물론입니다.”
“흥! 말은……. 이진용이를 데리고 말이오?”
조동익은 답을 하지 못했다.
아무리 억울해도 어떻게 허양수에게 ‘당신도 처먹었잖아!’라고 고함을 지를 수 있겠나.
“기사는 내가 알아서 덮을 건데, 만약 다음 예선에서도 결과가 신통치 않으면 국민들이 단숨에 입 닫을 방법을 만들어 내시오. 아니라면…….”
허양수가 매섭게 눈빛을 번득였다. 조동익의 자리를 장담하지 못한다는 의미였다.
***
육개장을 시원하게 들이켠 장진모가 검지로 볼을 긁었다.
맞은편에서 줄줄 흐르는 땀을 닦으며 눈치를 살피는 부장의 표정이 무얼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나가자.”
“그럽시다.”
둘이서 평소에는 잘 들르지 않는 커피 전문점에 앉았다.
장진모는 시럽을 붓고도 모자라 설탕을 2봉이나 터서 커피에 부었다.
“난 믹스 커피가 더 좋지, 이런 건 영…….”
“너 영국으로 발령 내서 그쪽 축구 담당 기자로 배정하겠다고 하더라. 가족 모두 함께 보내 준단다.”
“어휴! 축구판이라 그런가, 발 한 번 정말 빠르네.”
“너 허하수 의장이랑 무슨 억하심정 있냐? 왜 그 양반 주변만 그렇게 들입다 파?”
“이상하게 걸리면 그쪽 줄기더라구. 허상수에 허양수에, 아니면 양진우가 얽혀 있고, 내가 잘못한 게 아니라 그쪽이 워낙 썩은 거지.”
부장은 커피를 마시는 장진모를 보며 답답한 얼굴이었다.
“잔말 말고 이번 건은 여기에서 덮어. 네 맘대로 인터넷에 기사 흘리면 알지? 회사 규정에 따라 너 아웃되는 거? 그러니까 이번은 내 말대로 해.”
“형!”
“시끄러워. 아니면 가족들하고 다 함께 영국 갈래? 너 안 보내려고 나 피 같은 모닝커피도 던졌어.”
“고작 믹스 커피 한 잔 가지고 과장이 너무 심하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좀! 나도 숨 좀 쉬자. 너 사회부에서 건져서 스포츠부 넣은 지 고작 한 달 남짓이다.”
“후속 기사 있는 거 알잖아! 그거 터트리면…….”
“진모야.”
부장이 나직한 음성으로 장진모를 불렀다.
“소정이 이번에 대학 간다. 그러니까 나 한 번만 살려 주라.”
“소정이는 학교 갈 성적도 안 된다면서?”
억지로 슬픈 표정을 짓던 부장이 기가 막힌 것처럼 웃고 말았다.
“야! 막말로 허하수에 허상수가 달려들어서 아무렴 그깟 뇌물 처먹은 거 두 건 못 덮을 거 같냐?”
장진모가 커피 잔을 들었다가 빈 것을 알고는 입맛을 다셨다.
“그리고 애꿎은 정지우인가 하는 그 애도 좀 생각해 줘라. 공연히 중간에서 제보자 꼴이 돼서 죽게 생겼던데 그건 생각 안 하냐?”
장진모는 입을 내민 채 물끄러미 빈 커피 잔을 바라보았다.
다른 테이블에서 웃는 소리, 누군가 아들의 여자 친구가 서울대에 다니는데 앞으로 판검사 될 거라는 자랑이 들려오는 커피 전문점의 한쪽 구석이었다.
“내가 잘못하는 거야?”
장진모가 착 가라앉은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어딜 가든 정지우 같은 놈이 있어. 재능은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는데, 내가 사는 나라의 축구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놈인데…….”
부장은 잠자코 장진모의 말을 듣고 있었다.
“나 같은 미친놈도 하나 있어야 정지우 같은 녀석이 희망을 만들 수 있는 거잖아? 힘이 없어도, 연줄이 없어도 잘 사는 세상. 나 처음 입사했을 때 형이 해 줬던 말이잖아! 그런 세상 만드는 기자 되라구.”
“후유!”
부장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걸로는 부족해. 좀 더 파. 부회장이나 감독 말고, 허양수의 목줄을 쥘 만한 거로.”
장진모의 눈빛이 반짝하고 빛났다.
“그런 거면 내 목도 던진다.”
“소정이는?”
“성적이 안 나와.”
장진모가 흐느끼듯 웃었고, 부장이 비슷하게 따라 웃었다.
“알았지? 이번 건은 여기에서 접고 당분간 머리 숙이면서 허양수를 파라. 난 지난번 건에 이어서 허하수하고 허상수 계속 쫓을 테니까.”
“아! 내가 이래서 형을 좋아하는 거잖수.”
“흐흐흐, 개새끼.”
욕을 먹은 장진모가 커다랗게 웃음을 터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