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라운드의 지배자-58화 (58/262)

제4장. 네가 뭘 잘못했다고 그래? (2)

“퇴소야?”

기자 한 명이 던진 질문에 강서준이 ‘예.’라고 답을 했다.

“잠깐만!”

질문을 던졌던 기자가 승합차를 향해 카메라를 잡는 시늉을 하고는 바로 수첩을 꺼내 들었다.

“정지우! 어제 경기 소감은 어때?”

어차피 그만두기로 한 거다. 적당한 선에서 답을 하는 것도 나쁠 것 같지 않아서 정지우는 질문을 던진 기자를 향해 입을 열었다.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녹음기를 켠 기자가 입을 내밀면서 메모지에 빠르게 정지우의 말을 옮겨 적었다.

“후반전에 결과가 안 좋았는데 그 점은?”

“브라질이 후반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왔고, 그 외에 전반과 달리 운이 따르지 않았습니다.”

옆에서 따로 인터뷰를 진행하던 기자 2명과 선수들이 의외라는 눈으로 정지우를 힐끔 보았다.

“전에 문제가 있었는데 그 점에 대해서 할 말은?”

기자가 질문을 던진 직후였다.

파주 NFC에서 제공하는 버스가 시동을 걸어 선수들을 태울 준비가 끝났음을 알렸다.

“제게 기회를 주신 것에 감사합니다.”

기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빠르게 메모를 해 나가는 앞이었다.

“저는 어제 경기를 끝으로 더 이상 국가대표를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답을 받아 적던 기자가 놀란 얼굴로 정지우를 바라보았다. 옆에서 함께 인터뷰를 진행하던 기자들과 선수들 역시 고개를 돌렸는데 표정은 비슷했다.

“뭐야? 고작 한 게임 뛰고 국가대표를 은퇴하겠다는 거야?”

“예.”

“왜?”

“과거에 제게 있었던 문제 때문에 대표팀에 누가 될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잘했다. 이왕 그만두는 거, 이렇게 점잖게 끝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무엇보다 박용근 감독의 입장을 생각해서라도 말이다.

기자가 멍할 때였다.

정지우는 그 정도만 하기로 하고 버스를 향해 몸을 돌렸다.

“야! 야! 정지우!”

꽈악!

기자가 정지우의 어깨를 잡아채는 바람에 점퍼와 면 티가 홱 돌아갔다.

정지우는 이를 꽉 깨물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욕이나 주먹을 날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너 사람 치겠다?”

얼른 손을 놓은 기자가 그게 무안했던 것처럼 말을 뱉었다.

“적당히 좀 하죠.”

“야! 적어도 국가대표를 그만두겠다면 그에 맞는 이유쯤은 말해 주는 게 도리 아니냐!”

“말한 것 같은데요? 누가 되기 싫다고.”

“그러니까 후반에 교체된 게 불만이라는 뜻이냐?”

정지우는 대놓고 웃어 버렸다.

묘하게 빛나는 기자의 눈빛이 어쩐지 ‘정지우, 후반 교체에 불만 폭발, 국가대표 은퇴’라는 제목의 기사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단추가 잘못 끼워진 걸까?

어머니를 살려 보겠다고 일본에 간 거?

하루하루 피가 마르는데 기다리라고 시간을 끈 구단이 결국 계약금이나 선금 지급이 불가능하다고 통보했고, 그래서 일본에 간 거였다.

왜 억울한 사정을 말하지 않았냐고? 지금에라도 속 시원하게 말하라고?

소위 기자라는 인간들이 정말 그걸 몰라서 저런다고 생각하면 26살 정지우보다 순진하거나 멍청한 사람이 되는 거다.

잠시 기자의 눈을 똑바로 보았던 정지우가 버스를 향해 몸을 돌렸다.

“야! 정지우! 좋아! 내가 기자 계급장 뗀다! 그러니까 우리 저쪽에서 솔직하게 말 좀 해 보자! 후반전 교체 때문이 아니라면 도대체 왜 그만두는 건데!”

드르르르르.

거듭 말하지만, 정말 몰라서 저런 질문을 하는 게 아니란 것을 기억해야 한다. 저 말에 속으면 좀 더 엉뚱한 기사가 나온다.

정지우가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버스를 향해 갈 때였다.

“어제 응원해 준 한국 축구 팬들을 위해서, 그리고 박용근 감독을 위해서라도 분명하게 말해야 하는 거 아니냐!”

버스에 짐을 올리기 위해 허리를 숙인 옆으로 기자가 불쑥 다가왔다.

“야! 정지우!”

정지우는 커다란 가방을 버스의 계단 위로 올렸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버스의 조수석 사이드미러 옆에 선 기자를 보았다.

“솔직히 말해 봐. 좋아! 여기 명함 있다. 지금 말하는 거 기사로 쓰면 내가 개새끼다.”

“왜 이렇게까지 합니까?”

“궁금해서 그런다! 너, 나 처음 보는 거 아니냐?”

정지우의 시선 앞에서 기자는 분명 흥분한 얼굴이었다.

마흔쯤 되었나? 붕 뜬 곱슬머리에 나이 먹은 남자치고 쌍꺼풀이 짙어서 어쩐지 느끼하게 보이는 인상이었다.

“말해 봐! 뭐가 문제야!”

“후, 누가 되는 게 싫다니까요. 나에 대한 문제를 알고 있으니까 질문했던 거 아닙니까? 그런 것들을 국가대표팀에 연관시키고 싶지 않았습니다. 됐습니까?”

“그럴수록 더 열심히 뛰어서 만회해야지!”

이 양반이 정말 몰라서 이러나? 알고도 일부러 이러는 건가?

피식.

정지우는 계단을 올라가 가방을 안쪽으로 들어 올린 다음 그대로 자리로 움직였다.

나이가 저 정도 되는 기자가 지금 축구판이 어떤지 몰라서 저런 질문을 하는 건 아닐 거다. 그리고 아는 것을 다 기사로 쓰는 게 기자가 아니란 것을 지난 6년 동안 뼈저리게 느꼈었다.

자리에 앉은 정지우는 기자의 시선을 무시하고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다른 선수들의 인터뷰 때문에 잠시 기다렸다.

선수들이 곤란한 표정으로 버스를 흘깃거리는 것으로 봐서 정지우의 은퇴 발언에 대한 질문을 받는 모양이었다.

15분쯤 시간이 흐른 다음이었다.

신준석을 시작으로 선수들이 버스에 올라왔다.

“뭐냐? 느닷없이? 그런 생각이 있었으면 나한테는 말해 줬어야 하는 거 아니냐?”

통로를 걸어와 정지우의 맞은편에 앉기 무섭게 신준석이 쏟아 낸 질문이었다.

“에이, 씨……! 나도 그만둔다고 하고 올까?”

“정신 차려.”

“왜! 나는 못 그럴 거 같냐?”

“부모님이 기대하신다면서?”

신준석이 입을 꾹 다물고 버스의 앞을 노려보았다.

선수들이 모두 올라와서 문을 닫은 버스가 천천히 움직였다. 커다랗게 돌아서 현관을 향하는 버스를 아까 쫓아왔던 기자가 끝까지 바라보고 있었다.

파주의 호텔 앞 버스 정류장에 내린 후에 한 명씩 편한 교통편을 이용해 흩어졌다. 호텔 앞이라 택시가 제법 있어서 그게 무엇보다 좋았다.

정지우를 제외하고 전부 전화기를 들고 있어서 가족들과 만나기로 한 장소나 숙소까지 바로 택시를 이용해 움직이는 모양이었다.

“형, 다음에 한국 오면 꼭 연락 주세요.”

“열심히 해.”

한 명씩 보내고 마지막으로 주길성이 떠나는 데까지 대략 30분쯤 흘렀다.

“우리도 움직여야지?”

신준석이 말과 함께 손을 들어 택시를 잡았다.

“일단 영등포까지 가자. 그동안 아버지께 나와 달라고 하거나 아니면 우리끼리 부천으로 움직여도 되고.”

“그래.”

둘이서 가방을 억지로 끼워 넣고, 앞자리에 신준석이, 뒷자리에 정지우가 탔다.

택시가 출발한 직후였다.

“아버지! 지금 지우랑 파주에서 출발했어요. 택시 타고 영등포까지 가는데 시간 되세요?”

신준석이 부친과 통화를 하며 시간과 장소를 정했다.

“혹시 축구 선수요?”

나이가 지긋한 택시 기사가 통화 내용을 듣고 짐작한 것처럼 신준석과 정지우를 힐끔거렸다.

아직 퇴근 시간 전이라 길은 시원하게 뚫렸다.

“어제 브라질전에 나왔던 선수들 아니요?”

“예.”

“그렇지? 그래! 어쩐지 낯이 익더라니까!”

“보셨어요?”

“봤지! 후반 중반에 속 터져서 죽는 줄 알았수.”

넉살 좋은 신준석과 말하기 좋아하는 듯한 기사가 시답잖은 이야기를 연신 주고받을 때였다.

띠리리리. 띠리리리. 띠리리리.

신준석의 전화가 울렸다.

“예, 아버지.”

잠시 수화기에 귀를 대고 있던 신준석이 힐끔 정지우를 보았다.

“그럼 어떻게 해요? 예? 예. 알았어요.”

전화를 끊은 신준석이 상체를 뒤로 돌렸다가 택시 기사를 힐끔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

“무슨 일을 이렇게 합니까!”

조동익은 난처함을 닦아 내는 것처럼 손으로 코언저리를 쓸었다.

“유고전을 앞두고 이런 기사가 뜬다는 게 말이 됩니까? 보세요!”

축구협회 회장 허양수가 출력한 인터넷 기사를 조동익의 앞으로 내밀었다.

“브라질전에서 가장 뛰어난 활약을 펼친 선수들의 퇴소!”

허양수가 검지로 제목 란을 콕콕 찍어 댔다.

“축피아의 고질적인 문제일지 모른다는 말도 나왔어요! 도대체 출입 기자 한 명 제대로 관리 못하면서 지금껏 뭘 하고 다닌 겁니까? 방송 기자들의 전화와 축구 팬들의 항의 전화가 장난이 아니란 말이오!”

조동익은 인상을 찌푸린 채로 답을 하지 못했다.

“이거야 원! 기껏 사회부에서 잘라 냈더니 장진모 이놈은 왜 불쑥 축구 바닥에 나타나서 이런 기사를 써 대는 거야! 축피아라니!”

“그 점은 제가 단단하게 항의를…….”

“허어!”

허양수가 답답함을 탄식처럼 쏟아 냈다.

“장진모를 몰랐던 거구만! 비리란 비자만 봐도 끝까지 달라붙는다는 거머리 장진모요! 축피아란 말까지 기사에 올린 걸 보면 당연하게 속사정을 눈치챘을 거라는 생각은 안 들어요? 만약 어설프게 항의했다가 그놈이 과거 일까지 알게 된다면 그거 부회장이 책임질 거요? 책임질 거냐고!”

정계에 상당한 힘을 가진 허양수가 조동익을 아예 꼬마 취급하며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하나만 물읍시다. 이충도? 그 이진용이 아버지에게 얼마나 받은 거요?”

“예……?”

다 알고 있다는 것처럼 허양수가 눈을 갸름하게 뜨고 노려보고 있었다. 허양수가 마음만 먹으면 그까짓 거 얼마든지 알아낼 능력이 있었다.

“적당히 좀 먹어요! 적당히!”

수치심을 이기지 못해 조동익의 입가가 부르르 떨렸다.

“이건 원! 내가 이런 일 때문에 경기장에 못 간다는 게 말이 됩니까?”

“면목 없습니다.”

“아무튼, 내일 평가전 결과 보고 결정합시다. 부회장은 평가전 끝나고 다음 날 오전 10시까지, 거 누구요? 어! 한승관이! 그 인간하고 꼭 내 방으로 오시오.”

“알겠습니다.”

고개를 숙인 채 답을 한 조동익이 이를 꼭 깨물었다.

***

“그걸 지금 변명이라고 하는 거야!”

본인의 사무실로 들어온 조동익이 목에 핏대가 서도록 악을 바락바락 써 댔다.

“내가 이게 무슨 개망신이야! 당신, 우리 회장님이 어떤 분인지 몰라! 허하수 국회의장의 사촌 동생 되는 분이야! 그 양반이 독하게 마음먹으면 당신은 고사하고 나까지 날아간단 말이야! 알아! 아냐고!”

한승관이 다급하게 전하는 말을 들은 조동익이 창가를 향해 눈을 부라렸다.

“장진모란 그 기자 놈 뒤 좀 알아봐! 왜 느닷없이 이렇게 나오는 건지? 박용근하고 관계가 있는지? 아! 그 주성호 기자인가? 그놈하고 관계되었는지도 좀 알아보고! 그러게 왜 자꾸 기자한테까지 편을 갈라! 왜!”

말을 하다가 다시 분통이 터진 것처럼 조동익의 목청이 한껏 높아졌다.

타악!

전화기를 거칠게 내려놓은 조동익이 이를 깨물며 창밖을 노려보았다.

“어떻게 된 애새끼가 공 하나를 못 막아! 공 하나를! 에이! 병신 같은 새끼! 뛰어나오는 건 또 아주 선수예요!”

그러고는 누구에게인지 모를 욕을 있는 대로 뱉어 냈다.

***

두 번째 전화를 받은 신준석은 목적지를 여의도의 한 관광호텔로 옮겼다.

말하지 말라는 눈짓에 정지우가 잠자코 차에서 내렸을 때였다. 뜻밖에도 박용근과 신준석의 부친이 다가오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정지우와 신준석이 인사했을 때, 박용근과 신준석의 부친 신재득은 ‘고생했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자.’ 하고는 바로 호텔 안쪽을 가리켰다.

뭐가 어떻게 된 거기에 이러지?

작은 호텔이었다. 현관을 들어서면 정면에 엘리베이터가 바로 있고, 왼편에 오래된 레스토랑이 달랑 있어서 사람 눈을 피해 들어서기 꼭 좋았다.

5층에서 내리자 복도에서 눅눅한 냄새가 났는데, 그건 방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방은 생각 밖으로 컸다. 문 안쪽으로 탁자와 소파가 있는 거실과 화장실, 그리고 안쪽으로 침대 2개가 놓였는데 가구와 카펫이 워낙 낡아서 고급스러워 보이지는 않았다.

방에 들어간 이후에 정지우와 신준석은 정식으로 박용근과 신재득에게 번갈아 인사를 마쳤다.

“앉자.”

박용근과 신재득이 앉은 앞으로 정지우와 신준석이 앉았다.

“국가대표 그만둔다고 했었냐?”

“예.”

박용근의 질문에 정지우가 바로 답을 했다.

“그게 기사로 올라왔는데 협회에서 너를 밀어낸 것 같다고 써 놨다. 거기에 이권과 파벌로 뭉친 축피아가 존재한다는 말까지 올려놔서 나도 집에 있기 어려울 정도로 기자들이 몰려왔다.”

아까 그 기자가?

정지우의 표정을 본 박용근이 고개를 끄덕였다.

“왜 그랬는지 알아보고 싶은데 지금 잘못 전화했다가는 방송국 카메라까지 달려들 형편이라 전화도 꺼 놨다.”

“죄송합니다.”

“네가 뭘 잘못했다고 그래?”

박용근이 정지우의 사과를 단칼에 잘라 버렸다.

“일단 이곳에서 상황을 보자. 저녁도 먹고 나서 여차하면 여기서 잘지 모르니까 옷들 편하게 갈아입고 나와.”

말을 마친 박용근이 정지우와 신준석에게 방을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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