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라운드의 지배자-54화 (54/262)

제3장. 이제부터 행복해 질 거다. (1)

퍼엉!

하미레스의 코너킥이 또다시 골대 앞으로 솟구치며 날아왔다.

[함께 뛰어 줘야죠!]

수비수들은 물론이고 앞쪽 라인의 노경래, 박영길, 선도민, 이창진까지 악착같이 브라질 선수들의 헤딩을 막기 위해 몸을 솟구쳤다.

투욱!

공은 강서준의 머리에 맞고 뒤로 흘렀다.

[강서준 선수의 헤딩! 2선으로 흐른 공을 향해 선수들이 달려들고 있습니다!]

[걷어 내야죠!]

김범주와 네이마르가 동시에 공을 향해 달려들었을 때, 정지우는 오른쪽 골포스트로 몸을 바싹 움직였다.

툭! 투욱!

“우-!”

네이마르는 묘기를 보이는 선수처럼 공의 밑을 띄워 올렸고, 머리를 이용해 골대 앞으로 공을 보냈다.

이 상태에서 슛이 날아오면 정말 위험하다.

달려드는 코스타를 신준석이 어깨로 막아섰고, 그 앞으로 정지우가 뛰어나갔다.

휘이익! 꽈악!

몸을 던져 공을 잡는 정지우를 피해 코스타가 다리를 들며 허공으로 몸을 띄웠다. 그렇지 않았다면 둘 다 크게 다쳤을 게 분명할 정도로 위험한 장면이었다.

[정지우 키퍼가 공을 잡아냈습니다!]

[위험한 순간이었습니다.]

“대- 한민국!”

둥둥둥! 둥둥!

공을 가슴에 안은 정지우는 신준석에서 시작해 그라운드에 자리한 선수들을 한 명씩 돌아보았다.

‘20분 잘 견뎠다!’

정지우는 검지와 중지를 펴서 높다랗게 들었다.

“우와- 아!”

[정지우 선수가 관중들과 선수들을 향해 승리를 표시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있다는 뜻일까요?]

[브라질 선수들에게 도발이 될 수도 있어요.]

정지우는 마지막으로 신준석을 향해 시선을 주었다.

‘라인을 올려!’

‘그래도 될까?’

‘이 정도면 몸 다 풀렸다. 얻어맞기만 하면 한 방에 간다.’

고개를 끄덕여 준 정지우가 공을 앞으로 굴려 주었다.

[정지우 키퍼의 사인 때문일까요? 우리 선수들, 수비 라인을 위로 올린 것처럼 보입니다.]

[괜찮아요! 지금처럼 일방적으로 당하는 것보다는 미드필드 진영에서 확실하게 싸워 주는 게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선수들의 긴장감이 어느 정도 풀린 데다, 라인을 올린 효과가 나타나자 분위기가 바뀌었다.

“오영아!”

퍼엉!

[김오영 선수! 공을 소유했습니다!]

[넓게 벌려 줘야죠! 아……!]

공을 받은 김오영이 오른쪽을 달리는 이창진에게 패스하기 직전에 공을 빼앗겼다.

브라질의 진영에서 우리 선수들이 거칠게 압박을 가하고 있었다.

삐익!

[이재범 선수! 파울입니다.]

[잘했습니다. 공을 빼앗긴 저 지점에서 기습을 끊어 준 건 잘한 일입니다!]

브라질 선수들은 몸값이 비싼 만큼 몸싸움을 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그런 모습들이 우리 선수들의 사기를 더 끌어 올리는 역할을 하는 느낌이었다.

[우리 선수들! 초반과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문광국 감독의 지시가 있었던 것처럼 전반, 중반 이후로 움직임이 전혀 달라졌습니다.]

[보세요. 신준석 선수를 중심으로 우리 수비 라인을 바짝 올렸어요. 초반과 다르게 저렇게까지 하는 건 감독의 지시가 있었던 게 분명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저렇게 수비 라인을 올리면 최종 수비 라인과 골키퍼의 공간이 커지는데요?]

캐스터가 위험을 지적한 직후였다.

“우와- 아!”

한순간 엄청난 함성이 터져 나왔다. 네이마르가 뒷발로 툭 공을 띄워서 이창진을 제쳤고, 달려드는 김범주를 피해 앞으로 길게 차 주었기 때문이다.

[잡아야죠!]

수비 라인에 몸을 숨기고 있던 코스타가 공을 향해 뛰어나왔다.

[온 사이드입니다! 코스타 단독 질주! 한국팀 위기입니다!]

신준석과 주길성은 분명하게 한발 늦게 출발했다.

[코스타! 단독 질주! 코스타! 정지우 키퍼는 골대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습니다!]

정지우는 실제로도 골대 앞으로 한 걸음 나선 위치에서 코스타를 노려보고 있었다.

신준석과 주길성이 이를 악물며 달려오는 앞이다. 코스타가 툭툭 공을 몰며 다가오고 있었다.

단독 찬스라고 해도 슈팅을 날리는 데 적정한 거리라는 게 있다. 무조건 골대에 가까이 다가온다고 유리한 게 아니라는 뜻이다.

숨이 막히는 이런 순간에 가장 무서운 건 시선을 놓치는 거다.

후욱. 후욱.

정지우는 자세를 낮추고, 코스타의 발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와아악!”

신준석이 괴물처럼 고함을 질렀다. 코스타를 조금이라도 급하게 만들려는 의도였다.

주춤! 주춤!

정지우는 코스타가 달려오는 쪽의 골포스트를 향해 짧고 빠르게 움직였다.

달려오는 쪽 포스트? 아니면 먼 쪽 골포스트?

대개 뛰어난 선수는 늘 자신과 가까운 쪽 골포스트를 노린다.

[코스타! 키퍼와 일대일!]

움찔!

정지우는 일부러 오른쪽의 먼 골포스트를 향해 상체를 기울였다.

[코스타! 코스타! 슈웃!]

[오오- 우!]

퍼엉!

코스타의 슛은 거짓말처럼 왼쪽의 가까운 포스트를 노리고 날아왔다. 그 짧은 순간에 정지우의 상체가 기우는 것을 확인했다는 의미였다.

정지우는 주저앉는 것처럼 뒤로 넘어지며 왼손을 쭉 뻗었다.

타악!

왼손 손바닥과 손가락이 얼얼할 정도로 강력한 슈팅이었다.

“이예에에에에!”

[막았습니다! 또 막아 냈습니다! 정지우 키퍼가 대한민국 팀을 또다시 위기에서 구해 냈습니다!]

[아! 정지우 선수! 이건 한 골을 넣은 것과 다름없는 선방입니다! 기가 막힌 선방입니다!]

정지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왼쪽 가슴을 연신 두드렸다.

“우와- 아아아아!”

관중들은 골을 넣은 것만큼이나 흥분하고 있었다.

전은주는 자리에서 펄쩍펄쩍 뛰었다.

손을 둥그렇게 말아서 입에 대고 ‘지우야! 지우야!’ 하며 목청껏 정지우를 불렀다.

물개 박수를 쳐도, 아무리 ‘지우야!’라고 외쳐도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다.

가슴을 두드린 정지우가 하늘을 향해 검지를 높게 들었을 때, 전은주는 왜 그런지 모르는데 눈물이 왈칵 솟구쳤다.

“정지우! 정지우! 정지우!”

전은주는 관중들이 부르는 정지우의 이름을 함께 외쳤다. 물개 박수를 멈추지 않은 채였다.

머리를 감싸 쥔 코스타의 옆을 스치며 신준석이 완전히 흥분한 얼굴로 달려왔다.

“야! 정지우!”

꽈악! 휘익! 쿵!

[신준석 선수와 정지우 선수가 선방 세리머니를 펼치고 있습니다!]

[충분히 저럴 자격 있어요! 오늘 정지우 선수와 우리 수비진은 저럴 자격 있어요!]

“대- 한민국!”

둥둥둥! 둥둥!

“대- 한민국!”

둥둥둥! 둥둥!

관중들이 불에 기름을 부어 넣은 것처럼 뜨겁게 달아올랐다.

목청껏 외친 응원 구호가 그라운드에 울릴 때 브라질 선수들이 페널티 에어리어를 둘러싼 것처럼 몰려 있었다.

자존심이 상했다는 얼굴의 코스타는 말할 것 없고, 브라질 선수 전체가 이번에는 반드시 골을 넣고 말겠다는 것처럼 달라진 눈빛을 하고 있었다.

“이번엔 우리가 막아 보자!”

하미레스가 코너킥을 준비하는 사이 신준석이 목청이 갈라진 음성으로 고함을 질렀다.

“해 볼 만하잖아! 지우가 이 정도 막아 줬으면 우리도 좀 해야 하잖아!”

“대- 한민국!”

둥둥둥! 둥둥!

신준석의 두 번째 고함은 응원 구호에 먹혀서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와! 얼마나 잘났는지 차 봐!”

술을 처먹은 것처럼 고함을 지른 신준석이 코스타를 바짝 따라붙을 때였다.

삐이익!

주심이 휘슬을 불었고, 하미레스가 코너킥을 올렸다.

와락! 꽉!

몸을 밀치고, 상의를 잡아가며 선수들이 뒤엉켰다.

휘이익!

그 사이에서 김오영이 높게 뛰어올랐다.

독이 얼마나 올랐는지 뛰어오르는 김오영은 이를 꽉 깨물고 있었다.

터엉!

김오영의 머리에 맞은 공이 위로 튀면서 속도가 뚝 떨어졌다.

휘이익!

정지우는 달려 나가며 그대로 공을 향해 몸을 띄웠다.

신준석, 주길성, 박영길, 선도민이 브라질 선수들을 몸으로 막아 내고 있었다.

꽈악!

정지우가 높게 든 손안에 공이 잡혔다.

[위기를 벗어나는 대한민국!]

“우와- 아!”

바닥에 내려선 정지우는 그대로 페널티 에어리어 끝을 향해 달렸다.

이재범의 놀란 눈을 본 것 같았다.

[정지우 키퍼가 공을 잡고 달립니다!]

페널티 에어리어의 끝 선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이었다.

휘이이- 익!

정지우는 있는 힘껏 앞으로 공을 던졌다.

이재범이 골대를 향해 미친놈처럼 달렸고, 이창진과 노경래가 양쪽 끝에서 브라질 수비수들과 경쟁하듯 뛰었다.

“와- 아아아!”

정신이 아득할 정도로 함성이 터져 나왔을 때였다.

투욱!

공을 툭 밀어 놓은 이재범이 악착같이 달리고 있었다.

[이건 걸렸어요! 지금이에요! 쏴야 해요!]

[이재범 일대일입니다! 이재범! 이재범! 슈우- 웃!]

두 걸음쯤 달려 나온 골키퍼를 보고 이재범이 슛을 날렸다.

달리던 탄력에 슈팅 동작까지 겹친 이재범이 옆으로 구른 몸을 세우는 순간이었다.

몸을 날린 브라질 골키퍼의 손 위로 툭 튀어 오른 공이 골대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철렁!

“우와- 아아아아!”

“이예에에에에!”

[고올! 고- 오올!]

[골이에요! 골! 이재범 선수! 골입니다!]

[대한민국! 세계 최강의 브라질을 상대로 전반 40분에 선취골을 넣었습니다!]

이재범이 양팔을 높게 들고 사이드라인을 따라 달리는 동안, 자리에서 일어난 관중들이 펄쩍펄쩍 뛰며 함성을 질러 대고 있었다.

정지우가 양손 검지를 높게 세우고 하늘을 바라보는 모습이 TV에 고스란히 나왔다.

‘감독님! 보고 계시죠?’

라이트 위로 펼쳐진 어두운 하늘에 높다랗게 달이 걸려 있었다.

‘어머니! 나 이제부터 행복해질 거야. 그러니까 이젠 걱정하지 마세요.’

터치라인을 따라 달리는 이재범을 맞이하려는 것처럼 문광국이 양손을 내리고 있었다.

그런데 달려드는 선수들을 향해 비키라고 손짓한 이재범이 그대로 골대를 향해 뛰었다. 선수들이 이재범을 쫓는 것처럼 그 뒤를 따라 함께 달리고 있었다.

‘어어?’

일직선으로 달려온 이재범이 탄력을 이용해 높다랗게 뛰어올라 정지우에게 날아왔다.

‘이 미친놈!’

꽈다당!

정지우가 뒤로 넘어지는 순간에 선수들이 일제히 달려들어 그 위로 뛰어들었다.

“우와아- 아!”

선수들이 골대 앞에 뒤엉켜 서로의 머리를 두드리고 안고, 소리치고 있었다.

“혀엉! 나 골 넣었어요! 우리 골 넣은 거예요!”

이재범이 미친놈처럼 악을 써 댔고,

“지우야! 정지우! 이 멋진 놈!”

신준석의 고함이 귀를 파고들었다.

둥. 둥. 둥. 둥. 둥. 둥.

“오오-! 오오! 오오오-! 오오-! 오오! 오오오-!”

응원가가 점점 더 빠르게 울려 나왔다.

TV 화면에는 정지우가 공을 던져 주는 장면에서 시작해 이재범이 골을 넣는 순간까지가 반복해서 나왔다.

[몇 번을 봐도 질리지 않는 장면입니다!]

[아! 정지우 키퍼와 이재범 선수! 그리고 이창진과 노경래 선수도 칭찬해 줘야 합니다. 함께 달리면서 브라질 수비를 흔들었어요.]

[대한민국의 동생 팀이 브라질을 상대로 전반 40분 골을 넣었습니다! 문광국 감독! 평가전 첫 게임을 맞아 환상적인 작전을 선보였고, 그것이 그대로 적중했습니다!]

[네! 아직 전반도 끝나지 않았지만, 이 정도라면 지금까지 월드컵 예선에서 보였던 부진을 씻고 앞으로 우리 대표팀, 좋은 모습을 기대할 수 있겠어요.]

세레머니가 끝나고 선수들이 몸을 일으켰을 때였다. 신준석이 정지우의 귀에 머리를 가져왔다.

“우리 벤치 맞은편 관중석에 노란색과 흰색 옷 입은 사람 둘 보이지? 우리 누나들이야. 알아보라고 그렇게 입기로 했거든. 그 앞에 우리 감독님과 김문호 감독님 와 계실 거야.”

정지우는 얼른 시선을 돌렸다.

골이 들어간 순간, 전은주는 박용근을 얼싸안으며 그 품에서 자꾸만 뛰었었다. 선수들이 정지우를 향해 달려오는 것을 보며 전은주는 세상을 모두 얻은 것 같았다.

저런 선수가 끝까지 잊지 않은 남자, 저런 선수를 키워 낸 남자, 그리고 묵묵하게 지켜봐 준 남자. 그 남자가 인생의 동반자 박용근이었다.

왜 자꾸 눈시울이 뜨거워지는지는 모른다. 스포츠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감동이라는 말 이외는 설명이 어려웠다.

그때, 신준석과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던 정지우가 박용근과 전은주를 향해 시선을 똑바로 돌렸다.

어떻게 여길 알고 바라보았을까?

전은주는 그만 눈물이 왈칵 솟구치고 말았다.

세상 사람이 다 몰라줘도 정지우는 남편과 자신을 챙겨 주고 있었다.

이걸로 됐다.

높게 높게 날아서 행복한 선수가 된 정지우를 바라보며 응원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전은주는 충분히 행복했다.

선수들이 자리에 서고, 주심이 휘슬을 빠르게 불었다.

한 골을 먹고 나자 브라질 선수들의 모습이 확실히 달라졌다. 몸싸움에 좀 더 적극적이었고, 이전보다 날카롭고 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골을 넣은 흥분이 가시지 않은 우리 선수들에게 신경질적인 반응이 연달아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전반 40분에 나온 골이었다.

삐익! 삐이이익!

“우와- 아!”

브라질 선수들이 날카로워진 것을 확인하며 전반전은 그렇게 끝났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