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내가 골키퍼를 선택한 이유. (2)
툭!
공은 모우라의 머리에 맞고 바닥으로 꽂혀 들었다.
[모우라! 헤디잉!]
정지우는 물로 뛰어드는 것처럼 왼쪽 바닥을 향해 손을 뻗었다. 생각할 틈도 없이 반사적으로 몸이 날아간 거였다.
크로스가 강하지 않아서 다행히 헤딩 역시 빠르지 않았다.
투욱!
[오오- 우!]
“우- 와아!”
해설자의 비명과 함께 관중들의 탄성이 터져 나왔을 때, 공은 왼쪽 포스트 앞으로 흘러나갔다.
[막아야죠! 몸으로라도 막아 줘야죠!]
오스카와 주길성이 동시에 달려들었을 때 정지우는 바닥에서 벌떡 일어났다.
[각 잡아야 돼요!]
[오스카 좋은 위치입니다! 슈팅 내주면 안 되겠……! 오스카, 그대로 슈우- 웃!]
퍼엉!
오스카의 슈팅은 정지우의 가랑이를 노리고 날아왔다.
털썩! 터엉!
정지우는 주저앉는 것처럼 다리 사이 간격을 좁혀서 공을 막아 냈다.
[오우!]
“우와-아!”
[정지우의 선방!]
[걷어 내야죠!]
튀어 나간 공이 오스카의 옆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뒤로 튀어 나갔다.
퍼엉!
뒤에서 달려들던 강서준이 급하게 공을 걷어 냈다.
[강서준! 공을 멀리 차 냈습니다!]
“우와- 아!”
[정지우 선수! 두 번이나 한국팀을 위기에서 구해 냅니다!]
[기가 막힌 슈퍼 세이브예요!]
정지우가 헤딩슛을 막는 장면과 이어서 주저앉으면서 오스카의 슈팅을 막아 내는 장면이 느린 그림으로 나왔다.
[한국팀, 전반전 10분도 되지 않아서 실점 위기를 맞았는데 정지우 선수가 멋진 선방으로 막아 냈습니다!]
[하마터면 선제골을 내줄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는데요. 정지우 선수가 멋진 선방을 보여 줬네요!]
브라질의 다니가 터치 라인에서 공을 던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준석아! 뒤! 뒤!”
정지우의 고함을 들은 신준석이 모우라에게 바싹 붙었다.
“범주야! 야!”
이재범과 함께 네이마르에게 붙어 있던 김범주가 급하게 코스타의 상체를 감싸듯이 달려들었다.
휘이익! 툭!
다니가 던진 공을 받은 하미레스가 곧바로 다시 다니에게 공을 돌려주었다.
[브라질! 한국의 페널티 에어리어 외곽에서 공을 잡고 있습니다!]
[붙어 줘야 돼요! 공이 넘어오면 위험해요!]
다니를 맡은 선수는 노경래였다.
그가 달려들 듯, 움찔거리는 순간이었다.
투욱!
“우와- 아!”
다니가 노경래의 옆으로 공을 툭 차고는 바로 스치듯 공을 따라 달려 나갔다.
콰악!
삐이이익!
[노경래 선수, 파울입니다!]
[저럴 필요 없었는데요! 페널티 에어리어 바로 앞의 위험지역이라 일단 센터링이나 중거리 슛만 막아도 충분했는데 조금 무리했어요.]
페널티 에어리어 왼쪽 바로 앞이었다.
신준석이 시선을 돌릴 때 정지우는 엄지만 접어서 손가락 4개를 높이 들었다. 4명이 벽을 쌓으라는 의미였다.
노경래와 박영길, 선도민, 김오영이 어깨를 바짝 붙이고 공 앞에 섰다.
주심이 발로 거리를 측정하고 와서는 네 선수에게 뒤로 더 물러나라고 손짓을 했다.
[저 위치라면 왼발과 오른발이 동시에 가능한데요. 충분히 직접 노릴 겁니다.]
“오영아! 김오영!”
정지우는 김오영을 불러서 좀 더 왼쪽으로 움직이라고 엄지로 왼쪽을 가리켰다. 김오영이 상체를 돌린 자세로 두 걸음을 옮겼을 때, 정지우가 손바닥을 들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브라질은 골키퍼를 제외한 모든 선수가 중앙선을 넘어와 있습니다.]
“헤이! 헤이!”
정지우는 고개를 돌려서 이재범을 보았다.
‘나가!’
‘벌써요? 이렇게 위험한 상황에서……?’
이재범은 이 위기 상황에서 기습을 노린다는 것을 믿기 어려운 눈치였다.
브라질이 방심할 때다.
그게 시간이 한참 흐른 뒤든, 시작한 지 10분가량 흐른 지금이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범주야!”
정지우는 김범주에게 또다시 코스타를 가리켰다.
슬금슬금 이재범이 외곽에 서 있는 다비드를 경계하는 척하면서 중앙선 방향으로 움직였다.
고등학생팀과 프로팀의 대결처럼 브라질 선수들은 여유를 보이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브라질 선수들 전원이 이번에 반드시 골을 넣겠다는 것처럼 중앙선을 넘어와 있었다.
[오스카와 하미레스 선수가 킥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바로 찰 거예요. 흘러나온 공을 조심해야 돼요!]
브라질 선수들을 모두 지나쳐서 이재범이 서 있었고, 그 너머로 바로 브라질 골키퍼가 있어서 오프사이드에 걸리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재범이 중앙선을 넘지 않고 우리 진영에 서 있는 한, 오프사이드 규정을 어긴 건 아니다.
관중들의 응원, 함성 때문에 정신이 혼란할 지경이었다.
4명의 수비벽을 세운 대신에 공이 보이지 않았다.
수비벽 위로, 혹은 옆으로, 발아래로 느닷없이 공이 나타날 거다.
회전이 걸린 공은 멋진 궤적을 그려 내고, 회전이 전혀 없는 공은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꿈틀 날아오며, 수비수나 다른 공격수에게 맞은 공은 짐작조차 못하는 방향으로 튀어 온다.
앞으로 나갔다가 멋진 궤적에 걸리면 정지우가 아무리 높게 점프를 해도 그 위를 지나쳐 뒤쪽 골대 구석에 꽂히는 거고, 뒤를 지키려다 공이 뚝 떨어지는 것처럼 날아오면 바로 앞쪽 골대 구석을 파고들 거다.
후욱. 후욱.
정지우는 숨을 조절하며 골대의 중간에 자리했다.
“준석아! 화이팅!”
신준석의 누나들이 고함을 지를 때 전은주는 두 손으로 입을 가렸다.
회색 유니폼을 입은 정지우가 자세를 낮춘 채로 눈빛을 빛내고 있었다.
두렵고 떨린다.
저렇게 애쓰고도 골대를 지키지 못하면 모든 비난이 정지우에게 달려든다. 파울을 한 선수, 상대 팀 공격수를 놓친 수비수는 잊히지만, 골을 먹는 순간이 반복해서 TV에 보일 때마다 골키퍼는 숙명처럼 멋진 슈팅을 증명하며 함께 나와야 하는 거다.
‘잘해. 지우야!’
정지우가 양손 엄지와 검지 사이를 두 번 마주치고 손을 어깨높이로 들었다.
삐이익!
주심이 휘슬을 불었고, 오스카와 하미레스가 동시에 움직이는가 싶었다.
하미레스가 먼저 공을 지나치나 싶은 순간이었다.
퍼엉!
그가 찬 공이 점프한 김오영의 머리 위를 스치듯 날아와 앞으로 뚝 떨어졌다.
휘이익!
몸을 날리면서 정지우는 숨이 턱 막혔다.
저렇게 떨어지는 공은 바닥에 튕긴 이후에 얼마나 튀어 오를지 가늠하기 어렵다. 공의 회전과 궤적에 따라 전혀 다른 바운드가 나온다.
‘제발!’
못 봤다. 느닷없이 나타났다.
그렇지만 지금의 판단이 맞았으면 싶다.
막고 싶다. 막아 내고 싶다.
그래서 박용근과 전은주에게 지지 않는 경기를 선물하고 싶다.
투웅!
정지우가 몸을 날린 1미터쯤 앞에서 공이 튀었고, 정지우의 몸 위로 날아왔다.
왼손을 쭉 뻗었던 정지우는 헤엄을 치는 것처럼 오른손을 높게 들었다.
투욱!
걸렸다! 걸렸다구!
정지우가 바닥에 떨어졌을 때 공은 왼쪽 포스트 바깥을 구르고 있었다.
“우와- 아!”
귀청을 찢을 듯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정지우 키퍼의 선방이 또 한 번 대한민국 팀을 위기에서 구해 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은 뚝 떨어져서 바닥에 한 번 튕겼기 때문에 정말 쉽지 않았는데 정지우 선수! 슈퍼 세이브입니다!]
[브라질, 코너킥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자!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수비 위치 확인하고 막아 줘야 해요!]
“대- 한민국!”
둥둥둥! 둥둥!
“대- 한민국!”
둥둥둥! 둥둥!
상암 월드컵 경기장은 완전히 흥분의 도가니였다.
전은주는 아직껏 물개 박수를 멈추지 못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스쳐 간 장면이었지만, 정지우가 얼마나 간절하게 공을 막으려 했는지 느낄 수 있는 장면이었다.
신준석이 달려와서 일어서는 정지우의 오른손을 잡았다.
휘익! 쿵!
둘이서 오른손을 잡고 높다랗게 뛰어올라 오른쪽 가슴을 부딪치는 순간,
“우- 와아!”
함성이 터져 나왔고,
둥. 둥. 둥. 둥. 둥. 둥.
“오오-! 오오! 오오오-! 오오-! 오오! 오오오-!”
관중들이 목청껏 한국 응원단 특유의 응원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가자!”
신준석이 미친놈처럼 고함을 질렀을 때, 우리 선수들의 눈빛과 표정도 어느 정도 바뀌어 있었다. 멋진 선방과 함성, 목청껏 불러 주는 응원가에 피가 끓은 거였다.
지고 이기는 것을 떠나 최선을 다하겠다는 각오가 올라온 눈빛이었다.
[코너킥입니다. 하미레스 선수가 준비하고 있습니다.]
[길게 찰 것 같구요, 헤딩하는 선수를 놓치면 안 돼요. 다음으로 흘러나온 공을 주의해야 합니다.]
“길성아!”
정지우는 앞쪽 골포스트에 주길성을 세우고 뒤편의 골포스트 쪽으로 좀 더 움직였다.
정지우는 힐끔 시선을 돌려 이재범을 확인했다.
‘계속 여기 있어요?’
‘아직은 있어 봐!’
삐익!
주심의 휘슬에 하미레스가 천천히 공을 향해 움직였다.
퍼엉!
경기가 시작되고 두 번째로 정지우는 숨이 턱 막혔다.
이런 것이 세계적인 수준인 건가?
마치 기계로 쏘아 올린 것처럼 발을 떠난 공이 골대에서 바깥으로 휘며 올라왔다.
아차 했으면 뛰어나갈 뻔했다. 그랬다면 휘어진 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가 골을 먹었을 거다.
신준석과 강서준, 김범주가 치열하게 몸싸움을 벌이며 브라질 선수들과 함께 솟구칠 때였다.
불쑥!
앞쪽에서 엉켜 있는 선수들 틈에서 다비드가 느닷없이 솟구쳤다.
헤딩하기 직전,
세상이 온통 멈추고 단둘만 남은 것 같은 그 짧은 순간에 다비드는 정지우의 위치를 확인하는 것처럼 보였다.
정지우는 오른쪽으로 치우쳐 있었다.
터엉!
[다비드! 헤딩… 슛!]
[오오- 우!]
허공에 떠 있던 다비드가 고개를 돌리는 동작으로, 왼쪽 골포스트를 향해 공을 날렸다.
주춤! 화아악!
정지우는 왼손을 쭉 펴고 허공에 몸을 띄웠다.
봤다! 보이면 막는다!
6년 만이다. 감독님과 사모님 앞에서 경기하는 거!
투욱!
“이예에에에에에!”
퍼억! 콰다당!
공이 손을 맞은 느낌 뒤에 커다란 함성과 엄청난 충격이 동시에 정지우를 덮쳤다.
[정지우 키퍼! 멋진 선방을 보이고, 왼쪽 포스트에 서 있던 주길성 선수와 충돌했습니다!]
[심각한 부상이 아니었으면 싶은데요!]
TV 화면에 느린 그림이 나오고 있었다.
[앞에서 공격수들을 막느라고 달려드는 다비드 선수를 완전히 놓쳤어요.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뛰어올랐는데요. 정지우 키퍼! 믿기지 않는 선방입니다.]
박용근은 응원 온 이후 처음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전은주는 물론이고 김문호 부부, 그리고 신준석의 부모와 누나들, 응원단 거의 전부가 동시에 일어나 한국팀의 골대 앞을 지켜보고 있었다.
남자들은 고개를 저었고, 여자들은 입을 가렸다.
선수들이 감싸고 있는 틈으로 주심이 달려갔을 때였다.
“우와- 아!”
관중들의 함성이 일제히 터졌다.
선수들 틈에서 일어난 정지우가 오히려 주길성의 손을 잡아 일으켜 세우고 머리를 툭툭 두들겨 주고 있었다.
둥. 둥. 둥. 둥. 둥. 둥.
“오오-! 오오! 오오오-! 오오-! 오오! 오오오-!”
관중들이 미친 듯한 함성으로 응원가를 불렀다.
그라운드에서 정지우와 신준석이 다시 높다랗게 뛰어올라 가슴을 부딪치는 순간!
“우와- 아!”
또다시 함성이 터져 나왔고,
“대- 한민국!”
둥둥둥! 둥둥!
“대- 한민국!”
둥둥둥! 둥둥!
이어서 미칠 듯이 흥분한 관중들의 응원 구호가 좀 더 빠르게 울려 나왔다.
[상암 월드컵 경기장! 열기로 가득합니다!]
[그렇습니다! 객관적인 열세인 우리 선수들이 세계 최강이라는 브라질을 맞아 정말이지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축구죠! 이것이 대한민국 축구입니다! 우리 선수들! 정말 대단합니다!]
해설자가 관중만큼이나 흥분한 음성으로 경기를 설명했다.
“가자!”
신준석이 버릇처럼 고함을 질렀을 때였다.
“경래야! 야! 노경래!”
김오영이 먼저 고함을 지르며 협력 수비를 지시했다.
“뒤! 뒤 좀!”
이미 피가 끓은 선수들이 서로 고함을 지르며 혹시라도 놓친 브라질 선수가 없는지를 살폈다.
브라질 선수들은 아예 골키퍼 에어리어 근처에 모여 있다시피 했다.
[일방적인 경기입니다. 경기가 시작하고 전반전이 절반쯤 지났는데 거의 모든 선수가 우리 진영에 몰려 있습니다.]
[이겨 내야 돼요. 우선 공을 잡아서 템포를 끊어야 합니다.]
정지우는 다시 코너킥에 대비해 주길성을 앞쪽 포스트에 세웠다.
브라질 선수들은 ‘어쭈?’ 하는 시선으로 정지우를 힐끔거렸다. 그중 슈팅을 날렸던 오스카, 모우라, 하미레스, 다비드는 자존심이 상한 눈빛이었다.
삐이익!
다시 주심이 휘슬을 불었다.
[브라질의 일방적인 공세입니다.]
약이 오른 것처럼 브라질 선수들이 일제히 골대를 향해 움직였고, 하미레스가 코너킥을 차기 위해 공을 힐끔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