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라운드의 지배자-48화 (48/262)

제9장. 너무하네, 진짜. (2)

“그렇지!”

패스를 본 문광국이 고함을 질렀고,

퍼엉!

조성환이 달려들며 슛을 날렸다.

공은 바닥을 스치는 것처럼 오른쪽 골대를 향해 날아왔다.

눈에 들어온 슈팅이었다.

휘이익!

고양이처럼 몸을 날린 정지우는 공을 향해 손을 쭉 뻗었다.

툭!

바닥을 한 번 구르고 일어났을 때 공은 골대 옆을 지나 굴러가고 있었다.

“나이스!”

신준석이 오른손을 높게 들고 다가왔다.

퍼억!

장갑에 부딪쳐서 소리가 이상하게 났지만, 소위 말하는 하이파이브였다. 연습 경기라서 가능한 일이기도 했는데 1조는 아쉬운 얼굴이었고, 2조 선수들은 놀란 눈으로 정지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코너킥이다.

“준석아!”

정지우는 손으로 황지산을 가리켰다.

“길성아! 뒤쪽을 맡아!”

정지우가 고함을 지르자 주길성이 빠르게 왼편 골포스트 안쪽에 섰다.

1조는 그래도 그동안 발을 맞췄던 선수들이었다.

1조의 송학기가 코너킥을 준비하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주장 안동주를 비롯한 선수들이 골대 앞으로 몰려왔다.

2조는 물론이고, 1조 선수들조차 놀랐다는 눈으로 힐끔힐끔 정지우를 바라보았다.

아무렴 그렇게 빤히 보이는 골을 먹을 줄 알았어? 그것도 디딤 발로 어떤 슛을 날릴 건지 다 가르쳐 주는데?

코너킥을 위해 송학기가 움직였다.

2조 놈들과 얼굴이라도 좀 친하면 이래라저래라 지시를 할 텐데, 정지우는 마음을 비우고 공을 향해 뛰어나갔다.

이렇게 가까이 오는 공은 일단 쳐내는 것이 유리한 거다.

휘이익!

정지우가 몸을 높이 띄울 때 안동주, 조성환이 동시에 뛰어올랐다.

신준석은 그래도 고등학교 3년을 함께 운동한 사이다.

황지산이 그에게 걸려 제대로 뛰어오르지 못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퍼엉!

공은 정지우의 주먹에 먼저 맞고 앞으로 튀어 나갔다.

페널티 에어리어 앞으로 흘러 나간 공을 1조 선수가 받아서 그대로 슛을 날렸다.

그러나 정지우가 몸을 움직이기도 미안할 만큼 엉뚱하게 휘어졌고, 그대로 골라인을 벗어났다.

“뭐하는 거야?”

뒤쪽에서 던져 준 공을 받을 때 신준석이 던진 질문이었다. 살살 하자고 해 놓고 왜 그렇게 열심히 하냐는 뜻처럼 들렸다.

“그냥 막을 만하잖아!”

그래서 정지우가 생각한 대로 답을 했는데 그것이 1조 선수들의 자존심을 건드린 모양이었다. 근처에 있던 선수들이 대놓고 정지우를 노려보았다.

정지우는 일단 공을 신준석에게 차 주었다.

투욱.

공을 받은 신준석이 앞으로 넘기고 고작 두 번의 패스가 건너간 뒤에 1조 선수들이 다시 가로챘다.

오늘 모인 선수들이라 호흡이 맞지 않았고, 무엇보다 체력을 회복하지 못해서 공을 받을 선수가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만들어! 만들어서 들어가!”

문광국이 좀 더 큰 소리로 고함을 질러 댔다.

만들긴 뭘 만들어?

정지우는 자세를 낮추고 공의 흐름과 달려드는 선수들을 살폈다.

“길성아! 거기 무조건 자리 지켜!”

분위기는 알았다.

수비수들이 제대로 따라붙지 못하는 상황이라 어설프게 물러나면 중거리가 날아오기 딱 좋았다.

“준석아! 라인! 라인!”

신준석이 수비수들에게 양팔을 펼쳐 보였다. 기준선 아래로 내려가지 말라는 의미였다.

우습게도 체력이 떨어진 2조 선수들이 알아서 페널티 에어리어에 몰려 있어서 수비는 단단했다. 거기에 뭐라고 해도 11명이 9명을 상대하는 경기인 이점도 있었다.

1조 선수들이 파고들 공간을 찾아서 이리저리 공을 돌렸지만, 쉽사리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있었다.

“야! 라인!”

신준석이 오른쪽에 선 수비수를 향해 악을 썼다.

저렇게 혼자 안으로 들어온 놈 때문에 오프사이드 트랩이 깨지고, 그렇게 되면 바로 골을 먹는다.

투욱!

그때, 주장 안동주가 주길상과 수비수 사이로 공을 흘려주었다.

정지우가 달려드는 순간에, 황지산이 수비수 사이에서 튀어나왔는데 공은 정지우가 먼저 잡았다.

“라인 좋았어!”

정지우가 팔을 들었고, 신준석이 다가와 장갑에 손을 마주쳤다.

퍼억!

“할 만한데?”

신준석은 포르투갈 리그에서 뛰는 선수다. 국가대표 선발전에 담긴 의미를 알고는 이미 마음을 비웠는지 대놓고 1조 선수들의 가슴에 불을 지르고 있었다.

정지우는 공을 잡고 왼쪽으로 던지는 척하다가 다시 오른쪽으로 걸었다.

어차피 전반 20분, 후반 20분 경기다. 이렇게 시간을 끈다고 2조가 손해 볼 것 없는 경기였다.

오른쪽으로 걸어간 정지우는 있는 힘껏 중앙선 앞쪽에 있는 선수에게 공을 던져 주었다.

투욱. 툭!

그래도 프로 선수들이었다.

그나마 조금씩 체력이 올라왔고, 다음으로 기본적인 패스를 연결할 줄 알았다.

“수비! 수비 라인을 잡아!”

문광국이 악을 바락바락 쓰는 틈으로 공이 움직였다.

그러나 아직 체력을 회복하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 기껏 페널티 에어리어까지 몰고 올라간 2조 공격수가 공을 어설프게 차고 말았다.

공이 데굴데굴 굴러가자 상체를 숙인 이진용이 공을 가슴에 안으며 앞으로 커다랗게 엎어졌다.

지랄!

저렇게 시간을 끌면 누가 손해 보는 건데?

신준석이 기가 차다는 표정으로 정지우를 바라보았다.

저놈은 전국대회 결승전에서는 그래도 좀 하는 거 같았는데, 어째 덩치가 커진 만큼 몸이 둔해진 느낌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2조 선수들의 움직임이 조금씩 살아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럴수록 2명이 많다는 이점이 살아났다.

중앙선 부근에서 2조 선수 한 명이 패널티 에어리어 안쪽으로 멋지게 패스해 준 공이 1조 선수에게 걸렸다. 비록 걸렸더라도 저런 건 충분히 칭찬해 줄 만한 시도였다.

공은 곧바로 중앙선을 넘어 이쪽 골대를 향해 움직였다.

“헤이!”

정지우는 주길상의 바깥쪽에 있는 선수에게 고함을 질렀다.

“자리! 자리 지켜!”

녀석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본 정지우는 곧바로 신준석에게 악을 썼다.

“준석아! 주장! 주장 잡아!”

길게 차 준 공을 잡은 송학기가 툭툭 차는 것처럼 몰며 페널티 에어리어 근처로 달려왔다.

신준석은 연습 경기라는 것이 무색할 만큼 악착같이 안동주를 따라붙으며 그의 공격을 막아 댔다.

“헤이! 자리! 자리!”

정지우는 신준석의 오른쪽에 있던 수비수에게 또다시 고함을 질렀다.

9명이 하는 역습이었다.

달랑 셋이 달려오는데 송학기는 공을 몰고 있었고, 안동주는 신준석에게 묶였으며, 황지산만이 그나마 안쪽으로 뛰어들고 있었다.

원래는 주길성이 황지산을 막았어야 했다. 그러나 지쳐서 발이 움직이지 않는 주길성에게 그를 맡겼다가 잘못되면 공연히 시선만 가려진다.

투욱!

오른쪽을 파고들던 송학기가 왼발로 공을 꺾으며 달려들었다.

휘익!

정지우가 골포스트로 움직이며 각을 좁히는 순간이었다.

투우욱!

송학기가 가운데로 공을 밀어 주었다.

신준석이 이를 악물며 안동주를 몸으로 막아섰을 때 황지산이 공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래!”

문광국의 기쁜 고함이 그라운드에 퍼지는 순간이었다.

퍼엉!

마음먹고 갈긴 황지산의 슛이 정지우가 선 반대쪽 포스트를 향해 빨랫줄처럼 날아들었다.

옆걸음으로 움직인 정지우가,

화아악!

높다랗게 몸을 띄웠다.

봤다! 빤히 앞을 비워 두어서 처음부터 보고 있었다.

새를 낚아채는 고양이처럼 허공에 뜬 정지우의 모습이 한 장의 예술사진처럼 보인 직후에,

툭!

공은 정지우의 손을 맞고 골포스트를 넘어갔다.

“예에!”

신준석이 고함을 지르며 다가왔고,

“이예에!”

몸을 일으킨 정지우가 아래로 내린 손의 주먹을 꼭 쥔 채로 신준석에게로 걸어갔다.

꽈악! 퍼억!

둘이서 오른손을 세워 잡은 다음, 허공으로 뛰어오르며 오른쪽 어깨와 가슴을 세차게 부딪쳤다.

함께 고등학교에서 선수 생활을 하며 장난처럼 하던 버릇이었다. 골키퍼와 수비수이기 때문에 늘 호흡을 맞췄고, 둘 중 한 사람이 멋진 플레이를 펼치면 당연하게 해 오던 세레머니이기도 했다.

분위기가 묘하게 흘렀다. 2조 선수들의 눈빛이 바뀌기 시작한 거였다.

다시 코너킥이었다.

“자리 잡아!”

문광국의 일방적인 지시가 2조 선수들의 염장을 긁었는지 모른다. 있는 대로 뺑뺑이를 돌려서 진이 빠지게 한 뒤에 1조 선수들의 연습 상대로 던져 줬다는 사실에 굴욕감을 느꼈고, 그것이 정지우의 활약을 통해 터져 나온다는 것이 맞을지도 몰랐다.

“헤이!”

정지우가 주길성의 옆에 있던 수비수에게 다시 고함을 질렀다. 그러고는 당연하게 근처를 어슬렁거리는 1조 선수를 가리켰다.

움직임이 확실히 초반과는 달랐다. 뿌리치려는 1군 선수를 2조 수비수가 끈질기게 따라붙고 있었다.

“길성아!”

정지우는 주길성에게 골대의 앞쪽 포스트를 맡겼다.

“헤이! 헤이!”

정지우는 허리를 숙이고 상체를 뒤로 돌려서 뒤편에서 기회를 노리는 안동주에게 수비수를 붙여 주었다.

신준석은 이미 페널티 에어리어 중앙에서 황지산을 따라붙고 있었다.

퍼어엉!

코너킥은 기다랗게 날아왔다.

잘 찼다. 그래서 달려 나가기 애매한 궤적을 그리며 골대 앞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자체 청백전? 연습 경기?

2조 선수들의 움직임이 바뀌어서 그런지 갑자기 실전과 다름없는 분위기로 돌변한 느낌이었다.

안동주가 수비수를 뿌리치고 뛰어올라 머리로 공을 받았다.

투욱!

그렇게 페널티 에어리어 앞쪽으로 날아간 공을 2조 수비수가 걷어 냈다.

숫자가 2명이나 많은 2조다.

세 번의 패스에 벌써 공은 저쪽 진영의 중앙까지 넘어가 있었다.

2부 리그라고 해도 해외파가 모두 6명이었다.

당황하는 1조 수비수 사이로 멋진 패스가 이루어졌고, 달려들던 2조의 공격수 한 명이 그대로 슛을 날렸다.

퍼엉!

이진용이 옆으로 쓰러지는 것처럼 공을 막았다.

툭!

그러나 튀어나온 공이 패스를 날려 준 2조 공격수의 앞으로 굴러갔다.

투욱!

세게 찰 것도 없이 골포스트를 노리고 패스처럼 욱여넣은 공이 그대로 골대 안으로 들어갔다.

“우와!”

2조 선수들이 탄성처럼 소리를 지르며 박수를 쳤다.

몇 놈은 문광국의 표정이 궁금한 것처럼 고개를 돌려 바라보기까지 했다.

신준석이 다가와 정지우와 하이파이브를 하는 것을 신호로 수비들이 다가와 신준석, 정지우와 연달아 하이파이브를 해 댔다.

이상하게 결정적인 골 찬스를 놓친 팀은 거의라고 해도 좋을 만큼 곧바로 골을 먹는다. 그게 슈팅을 날린 선수의 실수이든, 아니면 상대 골키퍼의 선방이든, 사기가 뚝 꺾인 것이 스코어로 나타나는 거다.

“적당히 하자며?”

중앙선에 공이 놓이는 것을 보며 신준석이 질문을 던졌다.

“그러려고 했었지.”

“그런데 왜?”

“그냥 막을 만했다니까.”

신준석이 장난처럼 웃으며 페널티 에어리어 앞으로 움직였다.

“똑바로 못해!”

문광국의 고함이 그라운드를 때렸을 때 공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라인! 라인!”

지금은 신준석이 양팔을 벌린 대로 수비수들이 알아서 움직이며 호흡을 맞추고 있었다. 골을 먹지 않는다는 믿음에 1군 선수들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붙은 동작이었다.

툭! 투욱! 툭!

1조는 쉽게 넘어오지 못했다.

“움직여! 움직여서 받아!”

문광국의 고함에 따라 1조 선수들이 뛰어들려고 했으나 2조 선수들이 곧바로 따라붙었다. 뭐라고 해도 2명이 많은 건 쉽게 이겨 낼 수 있는 조건이 아니었다.

중앙선 부근을 돌던 공이 아예 뒤로 돌아서 결국 이진용에게까지 넘어갔다.

“뭐해! 앞으로 줘야지!”

골을 넣었던 2조 선수가 이진용에게 달려들었다.

투욱!

이진용이 놀라 차 준 공을 1조 선수가 받아 앞으로 돌리려는 순간이었다.

투욱!

2조 선수가 바로 뒤에서 달려들어 공을 뺏어 냈다.

기가 막히게 공을 뺏은 2조 선수가 패스를 뿌렸는데, 아쉽게도 호흡이 맞지 않았다. 달려드는 선수의 뒤로 넘어간 거였다.

“아! 아깝다!”

신준석이 고개를 털어 내며 탄성을 지를 만큼 아쉬운 장면이었다.

“야! 수비들, 정신 안 차려!”

어쩐지 문광국의 고함이 2조 선수들에게는 칭찬처럼 들릴 지경이었다.

삐이익!

그때, 20분 경기가 끝나는 휘슬이 울렸다.

통상 이런 경기는 휴식 시간을 5분 정도 가진다. 벤치로 걸어간 선수들이 죄다 물병을 들고 물을 마셨다.

“신 코치! 후반은 윤섭이하고, 병조 넣어서 1조도 11명으로 늘려!”

1조에게 걸어가는 문광국의 고함이 모두에게 들렸다.

“너무하네, 진짜.”

신준석이 물병을 내린 뒤에 2조 선수들의 심정을 대신하는 것처럼 불만을 쏟아 냈다.

정지우는 못 들은 척 물을 마셨다. 그런데 신준석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고개를 돌리다가 하필이면 이진용과 눈이 마주쳤다.

실력이 아니라 운이 없어서 골을 먹었다는 투의 눈빛, 그래서 실제로는 진 게 아니라며 억지를 부리는 듯한 놈의 표정을 보자 이상하게 피식하는 웃음이 올라왔다.

“후반 20분 정도는 더 뛸 수 있잖아?”

정지우는 2조 선수들을 돌아보았다.

“이왕 하는 거 이겨 보는 거 어때?”

“포메이션은 지금처럼 갑니까?”

2조에서 정지우와 신준석이 가장 나이가 많다는 것을 알아서인지 처음 보는 선수가 존댓말로 질문을 던졌다.

알아서 만든 4-4-2였다.

“괜찮던데? 후반엔 밀고 올라가자. 어차피 여기서 진다고 손해 볼 것도 없고, 우리가 이기면 내일은 1조 애들 뛰게 할지도 모르잖아?”

정지우가 뻔뻔스러운 얼굴로 건넨 말에 2조 선수들이 킬킬거리면서 웃었다.

그냥 재미있어서 웃는 건 분명 아니었다. 그저 명목상 부른 들러리들이 이렇게 1조를 깨는 것이 재미있다는 의미의 웃음이었다.

문광국이 1조 선수들을 세워 놓고 전술을 설명하는 동안의 일이어서 그런 감정이 더 생겼는지도 모른다.

신동수 코치가 2조 선수들에게 작전 지시라도 했으면 이렇게까지 서운하지 않았을 거다.

“후반전 준비해!”

신동수 코치의 말에 선수들이 운동장으로 걸었다.

1조에 상관없이 2조 선수들이 알아서 어깨를 걸며 허리를 숙였다.

“전방부터 있는 대로 압박한다. 20분쯤 그냥 밀어붙이자!”

정지우가 좌우를 보며 지시를 내린 뒤에,

“어이!”

신준석이 고함을 질렀고,

“어이!”

선수들이 다 함께 고함을 질렀다.

상체를 들었을 때, 문광국과 신동수가 날카로운 눈초리로 정지우를 노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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