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라운드의 지배자-26화 (26/262)

제1장. 유니온에는 두 사람이 살지. (1)

11번 게리가 무섭게 달린 뒤에 공을 툭툭 차면서 골대를 향해 움직이는 순간, 마틴은 간이 불붙은 초처럼 녹아내리는 느낌이었다.

알고 있다. 그리고 보고 있다.

레믹이 또다시 욕심을 부리다가 정지우와 부딪쳤고, 그 때문에 전체적인 사기가 뚝 부러져 버린 것을.

교체해야 하나? 아니면 정지우에게 좀 더 맡겨 둬?

마틴이 양쪽 팔꿈치를 다리에 걸친 자세로 초조하게 정지우를 바라보는 순간이었다.

“우와- 아!”

포츠머스의 게리가 데이빗의 앞을 스치는 멋진 패스를 보내 주었다.

공을 향해 달려든 7번 아담이 있는 힘껏 슈팅을 날렸다.

마틴은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투욱!

다행히 공은 라파엘이 걷어 냈다.

반대로 튕긴 공을 이번엔 포츠머스의 9번 매튜가 잡아서 왼쪽 구석으로 보내 주었다.

전반과 다르게 포츠머스의 7번 아담과 9번 매튜가 좌우를 바꿔 가며 달려들었고, 그 때문에 클레이와 스웰던은 제대로 된 대인 마크를 못하고 있었다.

“우와- 아!”

2선에서 움직이던 포츠머스의 9번 마이클이 공을 잡았다.

꼼빠니가 수비를 위해 바싹 붙자, 그는 11번 게리에게 공을 보내 주었다.

외곽에서 공이 돌고, 유니온 시티 선수들이 공이 이동하는 방향을 향해 몸을 움직였다.

골키퍼 에어리어 안에서 선수들이 엉켜 있었다.

이미 2골을 뒤진 포츠머스 시티는 거의 전 선수가 중앙선 부근을 넘어서서 밀어붙이고 있었다.

그야말로 일방적인 공격이었다.

포츠머스 마이클의 슛!

“우와- 아!”

그러나 이번에는 몸을 던진 클레이를 맞고 공이 골대 옆으로 튀어나갔다.

정지우가 클레이의 뒤통수를 툭 쳐 주고 코너킥에 대비하는 것이 보였다.

마틴은 힐끔 레믹을 보았다.

놈은 비록 중앙선을 건너와 유니온 시티 진영에 서 있기는 했지만, 전반전 초반과는 달리 어슬렁거리기만 할 뿐 수비에 가담하지는 않는다.

‘레믹을 교체해 달라는 거냐? 네가 원하는 건 뭐냐?’

공격이 최선의 수비라는 교과서적인 말을 굳이 가져다 붙이지 않아도, 이렇게 수비만 하다가는 골을 먹을 확률이 점점 더 높아진다.

삐이익!

심판의 휘슬이 울리자 포츠머스의 선수가 두 팔을 높이 들어 보인 다음, 공을 향해 움직였다.

밀고 밀리고, 손을 뻗어 상대 선수를 뿌리친다.

선수들의 몸싸움에 유독 관대한 영국 축구에서 저 정도는 심판도 그러려니 한다.

후욱. 후욱.

공이 날카롭고 빠르게 골대를 향해 날아왔다.

“Shit!”

거친 성격의 수비수 스웰던의 욕설이 터져 나왔고,

휘이익!

그를 뿌리친 포츠머스의 9번 매튜가 높다랗게 뛰어올랐다.

정지우는 본능적으로 허리를 낮췄다.

터엉!

공은 정확하게 매튜의 머리에 맞았다.

보인다! 보인다고!

휘이익!

정지우는 있는 힘껏 몸을 날렸다.

터억!

생각 밖으로 강하게 날아왔던 공이 정지우의 손에 맞고 앞으로 떨어졌다.

“우와- 아!”

함성이 귀청을 찢을 만큼 커다랗게 터져 나온 직후였다.

공을 향해 뒤엉킨 선수들 틈에서 포츠머스의 게리가 튕긴 공을 그대로 걷어찼다.

휘익!

정지우는 제자리에서 뒤로 넘어지는 것처럼 몸을 띄웠다.

터엉!

공을 잡지도 못했다. 그래서 그대로 쳐내기만 했다.

“우!”

포츠머스 응원단이 머리를 감싸 쥐었고,

“이예에에에!”

유니온 시티 응원단이 함성을 질러 댄 직후였다.

툭! 투욱!

9번 매튜가 떨어진 공을 잡아서 라파엘과 클레이 사이를 뚫으며 골대 왼편으로 달려왔다.

그 짧은 순간에 정지우와 매튜가 마주 선 꼴이 되었다.

이럴 때 공격수는 둘 중 하나를 택한다.

골키퍼의 머리를 노리고 힘껏 차던가, 가랑이 사이를 노리고 깔아 차는 것!

정지우는 가슴을 있는 대로 벌린 자세에서 두 팔을 아래로 쭉 펼치고 매튜에게 달려들었다.

차! 차 봐!

머리가 터지든, 코가 주저앉든, 절대로 안 놓칠 거니까!

퍼엉!

매튜의 선택은 가랑이였다.

정지우는 다리를 꼬는 동작으로 주저앉았다.

틱!

정지우의 다리에 맞은 공이 다시 튀어 나갔다.

투욱!

수비에 가담한 꼼빠니가 걷어찬 공이 빗맞은 것처럼 바로 옆으로 굴렀다.

“우와- 아!”

포츠머스 15번 바튼이 오른발 안쪽으로 정지우의 오른쪽 구석을 향해 공을 밀어 넣었다.

주저앉았던 자세에서 일어나던 정지우는 탄력을 이용해 그대로 몸을 날렸다.

화아악!

고양이가 새를 잡아채는 것처럼 정지우는 허공을 날았다.

터억!

“우와- 아!”

공은 다시 골대를 벗어나 밖으로 굴러나갔다.

포츠머스 선수들과 관중들이 일제히 뒤통수를 감싸 쥐며 아쉬움을 토해 낼 때, 홈 관중들은 쿵쿵거리며 응원 구호를 시작했고, 유니온 시티 선수들은 다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Come on!”

주장 데이빗이 선수들을 돌아보며 악을 썼고,

“Nobody gets the goal on my game(누구도 내 게임에서 골을 넣지 못해)!”

정지우가 왼편 가슴에 달린 유니온 시티의 엠블럼을 두드리며 고함을 질렀다.

쿵. 쿵. 쿵. 쿵. 쿵. 쿵. 쿵.

“Go, Go, Go my Red! Go, Go, Go my Red!”

수비다.

그런데도 홈 관중들은 마치 공격을 퍼붓는 팀의 관중들처럼 흥분을 주체하지 못한 채 응원 구호를 질러 댔다.

소름 끼치는 홈 관중들의 응원, 몇 번의 위기를 악착같이 막아 낸 정지우의 고함, 그리고 피가 끓어오른 주장의 눈길이 다시 선수들의 열정에 불을 붙여 주고 있었다.

“Hey!”

정지우는 스웰던을 향해 포츠머스의 9번 매튜를 가리켰다.

달라졌다.

스웰던도, 라파엘도, 클레이도, 다시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맡은 선수들에게 달려들고 있는 것이.

“꼼빠니! 헤이! 헤이! 꼼빠니!”

정지우는 꼼빠니를 불러 포츠머스의 15번 바튼을 찍어 주었다.

삐이익!

코너킥이다.

후욱. 후욱.

정지우가 자세를 낮춘 다음이었다. 11번 게리가 정지우의 어깨를 툭 밀치며 앞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는 어깨로 정지우를 밀었다.

반칙이다! 이건 명백한 반칙인 거다!

그러나 주심은 휘슬을 불지 않았고, 선심은 기를 들지 않았다.

퍼엉!

이미 공이 날아오는 상황이었다. 이 상태에서 게리의 등을 잘못 밀면 꼼짝없이 페널티킥이 선언된다.

‘이이익!’

정지우는 이를 꽉 깨물며 골대를 향해 날아오는 공을 향해 몸을 날렸다.

“감독님, 저 축구 그만둘래요.”

“왜?”

“그냥, 저하고 안 맞는 거 같아요.”

박용근은 묘한 표정으로 웃으며 정지우를 빤히 바라보기만 했다.

“너한테서는 늘 냄새가 나.”

그러고는 엉뚱하고 기분 나쁜 말을 툭 던졌다.

“몰랐어?”

“죄송합니다.”

훈련이 끝나면 합숙소에서 씻는다고 씻었는데 아무래도 냄새가 제대로 빠지지 않았던 모양이다.

“에라, 이 녀석아. 언제까지 그렇게 재능을 썩히고 있을래? 네 몸에서 썩어 가는 재능이 악을 쓰고 있잖아. 능력을 발휘해 달라고, 그래서 빛을 보게 해 달라고.”

왜 그랬는지 그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울컥 올라왔었다.

“힘들어?”

정지우는 고개를 떨구며 울고 말았다.

고등학교 1학년이 견디기엔 다른 부모들의 수군거림이, 매번 얻어먹기만 하는 회식이, 돌아가면서 싸 오는 돼지 불고기와 삼겹살이 너무나도 힘겨웠었다.

“에이그, 이 녀석.”

처음이었다.

거칠고, 무뚝뚝하던 박용근이 정지우를 안고 등을 두드려 주는 게.

정지우와 포츠머스의 게리가 뒤엉켜 뛰어올랐다.

‘나 이거 막아야 돼! 난 이거 무조건 막아야 하는 거라고!’

터억!

그리고 공은 정지우의 손끝에 먼저 걸렸다.

기우뚱!

게리의 어깨에 밀린 정지우의 몸이 기울어졌고,

털썩!

그대로 가슴부터 바닥에 떨어졌다.

숨이 턱 막혔고, 눈앞이 온통 시커멓게 변해 버렸다.

“네가 지우구나? 감독님이 얼마나 네 칭찬을 하시던지 꼭 보고 싶었어.”

정지우는 전은주를 향해 어색하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얼른 와. 밥 먹자.”

자그마한 체격의 전은주다.

그런데 식탁에는 축구부원 절반이 먹어도 될 만큼의 돼지 불고기와 반찬이 놓여 있었다.

나중에 알았다.

처음 온 정지우가 더 달란 말을 못할까 봐 그렇게 했다는 걸.

“지우야, 나 혼자 외로워서 그러니까 저녁은 꼭 나랑 먹고, 내가 한 달에 두 번씩 이거 만들어 줄 테니까 엄마가 해 주신 거라고 축구부에 가져가. 그리고 참! 저기 따로 담아 놓은 건 이따가 집에 가져가고.”

밥이 뿌옇게 보였다.

이상하게 목이 메서 그 맛있는 불고기와 반찬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삐익! 삑! 삑!

휘슬이 날카롭게 들리면서 주변이 눈에 들어왔다.

포츠머스의 11번 게리, 9번 매튜와 시비가 붙은 클레이와 스웰던을 주장 데이빗과 선수들이 껴안다시피 뜯어말리고 있었다.

“Ji!”

팀 닥터가 정지우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난 괜찮아요.”

정지우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팀 닥터는 아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고, 관중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쳐주었다.

경고가 4장 나왔다.

포츠머스의 게리와 매튜가 억울하다고 주심에게 대가리를 디밀었고, 클레이는 정지우를 가리키며 저놈들이 먼저 그랬다고 항변했다.

정지우는 다가가서 클레이의 머리를 툭툭 치며 놈을 끌고 왔다.

“고맙다!”

녀석이 멋쩍게 웃으며 정지우를 바라보았다.

어수선한 분위기가 끝나고 포츠머스가 코너킥을 준비할 때였다.

페널티 에어리어 앞까지 달려온 레믹이 얼쩡거리며 정지우를 힐끔거렸다.

하여간, 정체성이 모호한 놈이다.

조금만 잘되면 욕심을 부리다가, 또 이렇게 동료들이 악착같이 뛰는 걸 보면 바로 바글바글 피가 끓어 대니.

어수선한 상황이어서 오래 시선을 줄 수 없었다.

“헤이! 레믹!”

정지우는 가장 바깥에 서 있는 포츠머스의 수비수를 가리켰다.

유니온 선수들이 모두 보았다. 정지우가 레믹에게 지시를 내리는 것을.

그러자 분위기가 한순간에 후끈 달아올랐다.

퍼엉!

또다시 코너킥이 날아왔다.

선수들이 뒤엉켜 뛰어올랐지만, 유니온 시티 선수들이 워낙 악착같이 막아 낸 덕분에 정지우는 가볍게 점프하면서 공을 잡아 낼 수 있었다.

공을 잡은 직후였다. 정지우는 페널티 에어리어 끝까지 있는 힘껏 달렸다.

시선이 마주친 레믹이 눈을 동그랗게 뜨는 것이 보였다.

‘달려! 이 멍청아!’

레믹이 뒤늦게 미친놈처럼 앞으로 달려 나갔다.

휘이익!

정지우는 힘을 이기지 못해 페널티 라인 앞에 엎어질 정도로 있는 힘껏 공을 던져 주었다.

“우와아아아!”

수비 셋, 골키퍼, 그리고 레믹이다.

워낙 주력이 좋고 드리블이 뛰어난 레믹은 공을 툭 차 놓고는 기를 쓰고 달려가고 있었다.

“우와아아아아아!”

레믹이 골대에 다가갈수록 함성이 더욱 커졌다.

수비수 둘이 레믹에게 달려드는 순간이었다.

투욱. 툭!

레믹은 공을 오른쪽으로 넘기며 방향을 바꿨다. 평소에 늘 쓰던 버릇이었는데, 당황한 포츠머스 수비는 그대로 역동작에 걸려서 레믹을 놓치고 말았다.

퍼엉!

하는 짓은 밉지만, 지금 슛은 정말 아름답다고 할 정도로 멋졌다.

빨랫줄처럼 쭉 뻗어 나간 공을 향해 포츠머스의 골키퍼 폴이 몸을 날렸다.

철렁!

“이예에에에에에!”

유니온 시티의 홈구장 레드 블레이트가 터져 나가지 않을까 싶을 정도의 함성이었다.

레믹은 좀 더 커다란 함성을 원한다는 것처럼 응원단을 향해 양손을 치켜들며 껑충껑충 뛰어갔다. 그러고는 홈 관중들을 향해 양팔을 커다랗게 들어 보인 다음, 알통을 자랑하는 것처럼 어깨 옆으로 세웠다.

그 순간이었다.

“Mr. AmaJing!”

홈 관중들이 마법의 구호라도 되는 것처럼 목청껏 ‘미스터 어메이징!’이라고 외쳐 주었다.

“이예에에에에!”

다시금 함성이 울려 나올 때 선수들이 레믹에게 다가갔다.

주장 데이빗이 그의 머리통을 심하다 싶을 정도로 세게 때렸는데, 놈은 그다지 기분 나쁘지 않은 얼굴이었다.

3 대 0이었다.

포츠머스의 골키퍼 폴이 공을 잡아서 신경질적으로 차 버리는 사이, 유니온 선수들은 천천히 중앙선을 향해 움직였다.

경기가 다시 시작되기 전, 레믹이 힐끔 정지우를 보았다.

피식.

정지우가 웃어 주고는 발로 그라운드를 찍었을 때였다.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유니온에는 두 사람이 살지!”

관중들이 발을 구르며 승리의 응원가를 커다랗게 불렀다.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레드와 Ji가 사이좋게 지냈지!”

그런데 응원가의 중간에서 뜻밖에도 정지우의 이름이 툭 하고 나왔다.

유니온 시티의 선수들이 관중석과 정지우를 번갈아 힐끔거렸다.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Ji가 시합에 나가면 레드는 항상 이렇게 말했어!”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Go, Go, Go my Ji! Go, Go, Go my Ji!”

정지우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관중석을 둘러보는 것이 그대로 화면에 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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